기사 (4건) 리스트형 웹진형 타일형 [한국금융 120년⑧] 해방후 극심한 경제혼란...금융정책은 ‘민생문제 해결’에 중점 [한국금융 120년⑧] 해방후 극심한 경제혼란...금융정책은 ‘민생문제 해결’에 중점 1945년 8월15일 해방과 더불어 일제의 식민지경제권에서 벗어나게 됐다. 그간 긴 세월동안 일제는 우리경제를 아주 취약하게 만들었고 남북분단의 비운은 경제상황을 극도의 상황으로까지 몰고 가게 된다.특히 해방후 미군정이 실시된 9월7일까지 2개월간은 무정부상태라 칭할만큼 우리 사회가 극도의 혼란에 직면했다.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은행권을 불과 수일만에 37억원(圓)이나 대량 난발했다. 또 금융기관들은 일본 기업체에 대한 대출금 회수불능은 물론 그들이 발행한 회사채 및 주식 보유에 따른 이자징수의 불가능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다.더구나 연재 | 임권택 기자 | 2019-04-11 10:43 [한국금융120년⑦] 해방전 금융제도...“외형은 금융기관, 내용은 일본 식민지정책 역할” [한국금융120년⑦] 해방전 금융제도...“외형은 금융기관, 내용은 일본 식민지정책 역할” 8.15해방이전의 우리나라 금융제도는 일본의 식민지 정책 또는 태평양전쟁중의 전시동원 체제에 맞추어 변천해왔다.외관상으로 근대적인 체계를 갖추고 각 금융기관별로 어느 정도 기능적인 분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1945년 6월말 현재 조선은행은 비록 일반은행업무를 수행하는 한편 중앙은행으로서 많은 제약을 받고 있었음에도 불과하고 은행권의 발행, 지불준비금의 보유, 국고업무의 취급 등 중앙은행업무를 담당했다.조선식산은행은 일본은행 업무외 일본 시장에서 채권을 발행하여 취득한 자금으로 농공업과 군수공업에 공급하는 장기개발금융업무를 담당했다. 연재 | 임권택 기자 | 2019-03-30 17:33 [한국금융 120년⑥] 1937년 중일전쟁...전시금융체제로 돌입 [한국금융 120년⑥] 1937년 중일전쟁...전시금융체제로 돌입 1937년 7월28일 중일전쟁을 일으켰다. 일본은 30만명의 난징대학살을 자행하면서 중국을 빠르게 점령해갔다.일본은 총독부를 통해 그간 우리나라의 경제구조를 농공병진정책에서 급속히 군수공업체제로 방향전환을 한다.총독부는 ‘임시자금조정법’과 ‘수출입품임시조치법’를 통해 군수산업을 강화하여 민간산업은 크게 위축됐다.일본은 중일전쟁으로 인해 크게 군사비지출로 인한 재정적자를 보전하기 위해 세금을 늘리고 저축증대조치는 물론 일본자본 유치에 주력했다.그 결과 우리나라에 진출한 일본계자본은 1940년대 초기에 이르러 국내 전국산업자본의 74% 연재 | 임권택 기자 | 2019-03-25 10:24 [한국금융 120년④] 1912년 ‘은행령’ 공포로 일반은행 난립 [한국금융 120년④] 1912년 ‘은행령’ 공포로 일반은행 난립 조선은행 설립과 일본의 금융자본침투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금융제도는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따라 정비확장 과정을 거친다.먼저 1911년에는 한일간의 금리차에 따른 일본자금의 과도한 한국유입을 막기위하여 ‘조선이식제한령(朝鮮利息制限令)’이 제정된 데이어 1912년에는 1906년에 발포된 ‘은행조례’를 폐지하고 그 대신 ‘은행령’을 공포하여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동경영에 의한 일반은행 설립의 근거를 마련했다.그 결과 1910년 후반에 들어와서는 제1차세계대전중의 경제호황을 배경으로 은행의 설립이 급격히 증가한다.1978년에 발간한 한 연재 | 임권택 기자 | 2019-03-12 08:57 처음처음1끝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