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북한에게 시장영역은 항상 위협인가’
LG경제연구원 ‘북한에게 시장영역은 항상 위협인가’
  • 유승경 연구위원
  • 승인 2011.04.05 1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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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민시장, 암시장 등은 북한이 시장경제에 눈뜨고 있다는 징후로 이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회주의 체제내에서의 사적 시장은 새로운 특이 현상이 아니다. 사회주의체제는 사적 부문에 대해 통제와 완화를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사회주의경제에서 발견되는 시장영역은 체제 와해의 직접적 징후로 단정하기 어렵다.

북한경제의 침체가 계속 되는 가운데 주민들의 사적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시장경제 영역이 크게 확대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북한은 국가의 공식경제부문의 기능 상실로 말미암아 계획경제가 시장경제에 의해 대체되면서 체제가 와해되는 상황에 있다는 진단까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북한경제가 악화일로에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 1999년부터 마이너스 성장을 멈추고 미진하나마 회복세를 보이고 있고, 특히 대외무역 면에서는 북중무역의 급증에 힘입어 괄목할 성과를 거두고 있다. 또한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핵과 탄도미사일 개발에서 상당한 진전을 보여 전략적 부문에서는 국가부문이 큰 문제 없이 기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편, 북한경제의 시장화 추세는 북한을 시장개혁의 길로 나서게 할 것이라는 기대를 낳기도 한다. 시장영역이 확산된 것은 북한당국이 주민들의 비합법적인 경제활동을 묵인하거나 정책적으로 양성화한 데 기인한 바도 크며, 현재의 추세를 거스르기에는 북한 사회는 이미 많이 달라졌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대도 속단하기는 어렵다. 북한은 2009년 말 ‘몰수형 화폐개혁’을 강행하여 비합법적 사적 경제의 확산을 큰 저항 없이 억제한 것으로 보인다.

일견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는 북한이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가늠해보기 위해서는 사회주의경제의 실제적인 작동원리를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북한경제의 이론과 실제

이론상의 계획경제는 ‘계획수립 등 경제적 결정에 필요한 정보를 중앙계획당국에 집중시키고 하부조직은 중앙의 명령에 따라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체제’를 말한다. 많은 연구자들은 북한은 전형적인 중앙계획경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전제한다. 북한의 공식적인 주장대로 북한경제가 ‘계획의 세부화와 일원화’에 따라 관리되고 있으며, 다만 경제 규모의 확대로 경제가 복잡해져 운영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현실에서 계획경제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해서는 중앙계획당국은 모든 개별주체의 경제적 결정을 완벽하게 예상하거나 통제할 수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각각의 결정으로 야기되는 모든 결과들을 정확히 예견할 수 있어야 한다. 계획경제가 기능하기 위해서는 현실 경제가 완전 정보와 완전 예측의 사회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정보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주어지지 않으며, 경제행위자들은 자신의 결정이 초래하는 모든 결과(의도한 결과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완벽하게 예상할 수 없다. 따라서 계획경제는 비현실적인 모델이다.

구체적인 예를 든다면, 경제전체에 대한 일관된 계획을 작성하기 위해서는 생산품별로 투입과 산출의 비율이 장소와 시간, 생산주체 등에 상관 없이 동일해야 한다. 하지만 기업들은 생산입지, 조직적 역량, 경영방식 등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제품을 생산하더라도 ‘투입과 산출의 비율(norm)’은 일정하지 않다. 따라서 일정한 투입에 대한 산출을 정확히 예상할 수는 없다. 소련은 체제붕괴 직전까지 제품별로 단일한 투입/산출의 비율을 확정하려 했지만 성공하지 못했다.

계획경제를 실행하는 데 있어서 1차적인 문제는 계획당국이 생산기업의 활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계획당국은 국유화를 통해 기업을 철저히 통제하려 들지만, 기업소 지배인은 생산과 관련하여 감독기관보다 우월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에 통제에서 벗어나 재량권을 발휘할 여지가 있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사회주의 기업의 지배인들은 생산목표를 최소화하고 자재는 최대한 확보하기 위한 전략을 구사한다. 그러나 감독기관은 기업의 생산능력을 정확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개별 기업소의 계획지표는 대개 감독기관과 지배인과의 협상을 통해 결정된다. 사회주의경제가 교섭경제로 불리는 이유이다.

계획경제는 중앙이 모든 경제단위의 상호·복합적인 거래과정을 단일의 계획안에 최적으로 짜맞추어 이 계획에 따라 기업소간의 자재공급이 정확히 이뤄지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북한 역시 ‘계획의 일원화와 세부화’의 원칙을 부단히 강조해 왔지만 자재공급의 난맥상은 전시기에 걸쳐 일상적인 것이었다. 개별공장이 많은 물자를 지원받기 위해 원자재 등의 재고량을 축소 보고하거나 필요 이상의 기자재를 보유하는 문제, 자재공급의 잦은 문제에 따른 생산 차질 등은 북한의 사회주의 공업화 초기인 1950년대 중반부터 지속적으로 제기되었다.

사실상 국유기업의 주된 경제활동은 세부계획을 실천하는 것이 아니라, 자재공급의 불확실성에 사전적으로 그리고 사후적으로 대응하는 것이었다.

● 경제결정의 분권화와 행정부서의 증가

사회주의국가들은 계획의 불가피한 실패에 대처하기 위해 우선 ‘경제결정의 분권화’를 시도했다. 산업별 행정부서들을 신설하여 산업부문별로 권한을 분권화하는 한편, 지역별로도 분권화를 추진했다.

북한을 비롯한 사회주의의 행정부에 기계공업성, 화학공업성, 경공업성 등과 같은 산업부문별 행정부서가 있는 것은 ‘경제적 분권화’의 결과이다.

부문별 경제부서들은 부서별 계획을 조율하여 생산목표를 할당 받으며, 부서별로 독립적으로 작성한 계획에 따라 내부의 생산을 조직한다. 경제계획의 분권화가 빠르게 진행되었다는 것은 행정부서의 급속한 증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소련의 경우, 1932년 산업별 행정부서는 3개에 불과했으나 이후 매우 빠르게 증가했다. 1933년부터 1941년까지 29개의 행정부서가 신설되었는데 대부분이 산업부문별 관리부서였다. 이러한 산업부문별 행정부서체제는 사회주의체제의 고유한 제도로 정착되었다.

북한에서도 동일한 경향을 발견할 수 있다. 제1차 내각(1948.9)에는 산업부문별 경제부서는 농림성, 상업성 등 6개였고 공업분야는 산업성 1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1954년부터 전후 복구와 함께 사회주의 공업화가 시작되면서 전기공업성, 화학금속성, 기계공업성 등 중공업을 중심으로 산업부문별 부서가 빠르게 늘어났다.

행정부서별 분권적 계획화에도 불구하고 경제 규모가 커지고 산업연관관계가 복잡해지면서 계획의 오류와 실패가 확대되자 부문별 행정부서는 원칙과는 달리 전문분야의 제품만을 생산하지 않았다. 자재조달의 불확실성이 지속되자 산업관리부서와 기업들은 장비, 부품, 반제품 등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전문 분야 외의 영역으로 생산활동을 확대했다.

기계공업부는 독자적으로 제철소를 운영했고, 야금 분야로도 생산시설을 확대했다. 이 경향은 행정부처별로 원자재부터 최종생산품까지 완결적인 생산체계를 갖추려는 움직임으로 이어졌다. 이는 경제부서간의 협력체계를 약화시키고 생산의 전문성을 떨어뜨린다. 또한 자본의 축적이 분권적으로 이뤄지는 것을 의미한다. 중앙계획의 실패를 보완하기 위해 취해진 부문별 분권화는 오히려 전체경제를 산업부문별로 분할하여 계획화를 무효화하는 효과를 낳았다.

● 행정부서의 거듭되는 통합과 분리

각 산업부문이 자기완결적 생산체계를 형성해감에 따라 부문간 협력이 단절되는 현상이 심화되면, 사회주의정부는 여러 부서를 아우르는 조정기구인 위원회 조직을 신설하여 부문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고자 했다.

북한도 1960년에 와서는 여러 행정부서간 협력관계를 강화하기 위한 조정기구로서 위원회를 두어 행정부체계의 중심조직으로 활용했다. 중공업위원회를 신설하여 금속, 기계, 동력, 화학공업을 관장하도록 하고, 경공업위원회를 설치하여 중앙 소속 경공업기업을 운영하도록 했다.

그러나, 중공업위원회는 불과 2년만에 행정적 조정의 어려움으로 인해 금속화학, 전기석탄공업성 등으로 분할되었고, 이 부서들은 다시 금속, 화학, 전기, 석탄, 기계 공업성 등으로 다시 세분화되었다. 그리고 1972년에 가서는 다시 중공업위원회로 통합되는 등 현재까지 통합과 분리를 거듭하고 있다.

● 기업의 대형화와 미니시스템화

산업부문만이 아니라 개별 기업도 불확실성에 대비하여 생산공정의 ‘수직적 통합’을 추진함에 따라 기업들은 점차 대형화되거나 기업연합을 형성한다. 중공업 위주의 투자로 인해 소비재가 부족한 까닭에 노동자 가계를 위해 소비재를 자체적으로 생산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기업소들은 생산측면뿐만 아니라 사회적인 면에서 하나의 통합된 공동체가 된다. 1984년부터 연합기업소 제도가 본격적으로 도입된 것도 이 같은 맥락에 따른 것이다 .

산업부문별 분권화는 부문별 경제부서의 통합과 분리의 반복으로 귀결되며, 이로 인한 조직과 제도의 잦은 변경은 경제체제의 안정성을 훼손한다. 따라서 계획 실패를 만회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을 찾게 된다.

다른 대응방식의 하나는 5개년 혹은 연간 계획 내에 우선적인 사업을 추진하기 위한 ‘특수 계획’을 마련하거나, 정부 내의 특별위원회나 공산당의 경제부서 하에 우수한 기업들을 독자적으로 조직하여 전략적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방법이다.

특수 계획의 사례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북한이 1988년 제13차 평양청년학생축전의 준비를 위해 벌인 200일 전투, 1990년대 들어 제기된 ‘90년대 속도창조운동’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이러한 특수계획을 추진할 때에는 ‘000 돌격대’와 같은 특수조직을 구성하기도 한다.

사회주의체제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은 특별위원회나 공산당이 직접적으로 관장하는 독자적인 생산체계를 꾸리는 방식이다. 북한은 군수산업의 운영에서 이 방식을 적용하고 있다. 북한은 군수산업을 제2경제라 지칭하면서 제1경제인 민수경제와 조직적으로 분리된 생산체계로 운영하고 있다. 제1경제는 국가기구인 내각이 관리하지만, 제2경제는 노동당이 직접 통제·운영한다.

북한은 1966년 경제와 국방의 병진정책을 표방하면서 군수산업을 본격적으로 육성하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정무원 산하에 군수산업 전담부서인 제2기계공업부를 설치했다가, 1970년대 초부터는 노동당 전문부서인 군수공업부 산하에 제2경제위원회를 설치하여 당이 직접 통제하는 체제로 전환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 방식을 택하는 이유는 경제전체적으로 생산자원의 부족이 만연한 상황에서, 자원을 국가전략상 가장 우선적인 분야로 효과적으로 배분하기 위해서이다. 생산 자재는 우선 분야의 필요를 충족시킨 후에 다른 분야에 배분된다.

이런 점에서 사회주의경제는 계획에 따라 자원이 배분되고 생산되는 계획경제가 아니라, 자원부족의 상황에서 행정적 방식을 통해 자원을 최대한 동원하여 우선순위에 따라 자원을 배분하는 전시경제와 같은 동원경제체제라고 할 수 있다.

당이 군수산업을 비롯한 전략적 프로젝트를 직접 통제·관리하는 것은 북한만의 고유한 특징은 아니다. 소련 등 여타 사회주의나라들도 당의 특수기구 아래 유사한 체제를 꾸리고 있었다. 사회주의의 역사에서 이 방식은 확실히 몇몇 전략적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다. 소련은 우주개발계획과 첨단 군사무기 개발에서 성과를 이루었고, 중국은 대약진운동(1958~60)의 실패가 가져온 경제적 시련기 속에서도 1964년 핵 실험에 성공했다. 북한 역시 같은 방식을 통해 핵 무기와 탄도미사일 개발에서 일정한 성과를 냈다.

그러나, 특수 산업부문에 대한 우선적 자원배분 방식은 불가피하게 후순위 분야의 계획의 변경을 강요하게 된다. 계획의 분권화와 마찬가지로 계획실패에 대한 대응이 다시 계획적 생산을 와해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사회주의체제에서 세 번째로 택하는 방안은 ‘비계획적 경제영역’을 묵인하거나 승인하는 것이다. 북한을 포함한 모든 사회주의에서 사적 경제부문(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은 개인 소비재를 공급하는 핵심적 경제영역이었다.

● 보완관계로서의 국가부문과 사적 부문

대부분의 사회주의 국가는 초기단계에 농업을 집단화하였지만, 농민과의 정치적 타협의 하나로서 농민들이 자유경작을 할 수 있는 텃밭을 허용하였고, 텃밭의 산물을 거래할 수 있는 농민 시장’(kolkhoz market)을 합법적으로 보장했다. 북한도 이 면에서 예외는 아니다. 정권 초기부터 합법성을 인정받은 농민시장은 정치적 분위기에 따라 부침을 겪었지만 단절 없이 사적 생산물의 시장으로 기능해 왔다. 이것이 시장메커니즘의 도입이라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빼 놓을 수 없는 것이 암시장이다. 구 소련의 경우, 스탈린의 철권통치가 이뤄지던 시기에도 비합법적인 암시장과 불법적 생산 단위는 존재했다. 북한의 비공식적 시장은 엄격한 사회통제와 배급제의 시행으로 다른 사회주의국가에 비해 발달이 저조했고 현재의 시장영역의 확대는 중앙관리경제의 마비에 따라 1990년대 들어서 빠르게 증가한 것으로 평가하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개인 상공업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완료되었다고 선언한 1958년 이후에도 2차 경제라 불리는 사적 영역은 엄연히 존재했을 뿐만 아니라 농민시장과 함께 국가부문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969년까지 공식적인 농민시장으로서 특별한 제약을 받지 않았으며, 당시의 농업 gnp가 공업gnp의 3배를 상회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합법화된 영역만을 고려해도 시장은 단순히 자본주의체제의 잔재에 불과한 것은 아니었다. 또한 일일 시장, 장마당, 야시장 등이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들어서가 아니라 북한당국이 시장거래를 양성화한 1984년 때부터이다.

북한당국은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의 경우와 같이 경제위기 시에 통제를 강화했다. 사실상 배급제는 국가의 온정주의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주민의 식량수요를 통제하여 소비를 최저생존수준(existenzminimum)으로 낮추기 위한 것이다. 1993년대 이후 경제위기 속에서 비합법적 시장거래를 허용한 것은 공식적 배급망이 마비된 상황에서 농민의 자구책을 용인한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에서 ‘사적 경제영역’이 사라진 국가나 시기는 없었으며, 오히려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은 상호보완적 관계 속에서 사회주의경제의 재생산을 뒷받침하는 두 축으로 기능했다.

● 갈등적 관계로서의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

그러나 국가 부문과 사적 부문 사이에는 갈등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당 간부나 행정의 책임자들은 사적 영역의 확대를 통제능력의 약화로 인식하며, 특히 중앙권력이 체제 안정에 대한 불안감을 느끼게 되면 사적 영역에 대한 통제는 강화된다.

북한 당국도 7·1조치 직후인 2002년 7월 농민시장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고 사적 거래를 금지하는 조치를 취하기도 했으며, 2005년부터 시장 억제책이 점차 강화되었고 2008년 말에는 2009년부터 종합시장을 농민시장으로 다시 되돌린다는 정책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리고 2009년 말, 화폐개혁 조치와 함께 종합시장을 폐쇄하고 개인영리기업을 몰수하는 조치를 취했다.

모든 사회주의에서 집권세력들은 사적 부문에 대해 통제와 완화를 주기적으로 반복해왔다. 북한이 취한 2009년 말의 조치도 2003년 이후 사적 경제의 양성화 정책이 중앙권력의 통제력을 약화시켰다는 집권층의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2010년 들어서도 지난 4월 인민경제계획법을 개정하여 과거 계획경제의 규율을 다시 강조하면서 주민에 대한 통제 강화를 이어가고 있다. 북한이 현재 권력교체기에 있고 한국과 미국 정부와 갈등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에 당분간 주민통제 강화는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시장 확대, 체제 와해의 징후로 보긴 어렵다

북한의 경제체제는 중앙집중적 계획경제이며 ‘계획의 일원화·세부화 조치’가 북한경제운영의 기본원리로서 기능하고 있다는 것은 북한의 국가 이데올로기일 뿐이다. 북한당국이 ‘계획을 통한 경제운영을 의도하고 있지만 현실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는 북한 경제의 실제적인 작동원리는 공식인 주장과 크게 동떨어져 있다.

산업부문과 지역에 따른 경제 분권화와 제2경제위원회를 통한 군수산업의 운영은 북한의 정책담당자들이 계획화의 의도를 갖고 있다 하더라도, ‘계획이 현실에서 관철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자각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세계에는 다양한 경제체제가 있지만 완전한 계획경제도 없으며 완전한 시장경제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장경제로 지칭되는 자본주의도 시장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계획도 존재한다. 많은 자본주의경제에서 교육, 보건, 사회복지 서비스는 시장을 통하기보다 정부의 행정적 기구를 통해 서비스가 제공된다.

마찬가지로 사회주의경제에서 시장은 계획과 함께 경제활동을 조정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사회주의에서 발견되는 시장영역은 경제체제의 일시적인 혼란의 결과이거나 체제와해의 직접적 징후는 아니다. 따라서 북한 체제의 현실을 진단할 때 시장영역이 양적으로 확대되는가 줄어드는가에 일방적으로 의존하기보다는 북한당국의 정책 의도가 통제와 완화 중 어느 쪽에 있는가에 대한 판단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유승경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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