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전세,집값 상승 기대심리 무너져...월세 전환 바람 거세
사라져가는 전세,집값 상승 기대심리 무너져...월세 전환 바람 거세
  • 안현진 기자
  • 승인 2011.07.07 17:2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증권사에 다니는 김신영씨(40)는 최근 거처하던 용산구 아파트를 반전세로 바꿨다. 2년 전 2억원 전세로 들어간 아파트였다. 집주인이 7000만원 인상을 요구했다. 다른 곳에 집을 구하러 다녀야 하는 것도 번거롭고, 이사비용도 만만찮아 김씨는 집주인과 협상 끝에 월세 34만원을 더 주기로 하고 재계약을 했다. 김씨는 “전세보증금 7000만원을 연 금리 5% 정도로 생각하고 월세로 돌린 것”이라며 “다른 곳에 비해서는 그래도 싸게 계약했다”고 말했다. 통상적으로 전세금 1000만원을 월세로 돌리면 월 10만원 정도를 받는다. 김씨의 경우라면 주인이 전세 2억원에 월세 70만을 요구할 수 있었다는 얘기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이지영씨(35)도 새집을 구하느라 한동안 골머리를 앓았다. 7월 말로 전세 만료가 되는 이씨는 5월부터 집을 구하러 다녔다. 하지만 그녀가 머무르는 서초구 인근에는 도통 전세매물이 나오지 않았다. 월세가 아니면 반전세가 태반이었다. 직장이 강남에 있었지만 결국 거처는 강동구에서 구했다. 그녀는 “2년 전 1억원에 구했던 전셋집을 1억5000만원을 가지고도 구하지 못했다”며 “특히 강남 인근에는 아예 매물이 없었다”며 황당해했다.

넉달만에 전세 비중 4%포인트 감소
전세가 사라지고 있다. 저금리가 이어지고 있고,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서 전세를 월세로 돌리려는 움직임이 빨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토해양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 5월 전국의 아파트 전세계약은 4만여건 74%, 월세는 1만4000여건 26%로 집계됐다. 이는 지난 1월 아파트 전세 비중(78%)에 비하면 넉달 만에 4%포인트나 감소한 것이다. 그만큼 월세가 많아졌다. 집주인들이 반전세(담보부 월세)나 월세를 선호하면서 전체 임대물건 중 전세 비중이 감소하고 있다는 것이 현장 공인중개사들의 얘기다.

전세 감소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인구주택 총조사에 따르면 전세가구가 차지하는 비중은 1995년 29.7%에 달했지만 2005년에는 21.0%까지 떨어졌다. 반면 월세가구는 같은 기간 14.5%에서 19.2%로 급상승했다. 국민은행은 광주, 대전, 대구 등 광역시에서는 이미 보증부월세가 전세 비중을 앞섰다고 밝혔다. LG경제연구원 강선구 연구위원은 “전세 제도는 임대차 계약의 한 형태로 강제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추세라면 제도 자체가 소멸될 가능성이 있다”며 “집주인 입장에서는 전세가 월세에 비해 나은 점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리에게는 낯익은 제도지만 전세는 상당히 한국적인 제도다. 전월세 보증금 규모는 259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전세제도는 미국, 영국, 일본은 물론 중국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이 회사로부터 사택을 지원받을 때 주로 월세 계약을 맺는다. 사내 계정에 전세보증금이라는 항목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전세는 기본적으로 집가격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믿음이 있어야 유지된다. 전세보증금은 집주인 입장에서는 무이자 차입이다. 1970∼80년대 고도성장기에는 주택 수요가 많았고 대출금리가 높았다. 집주인들은 전세를 끼고 주택을 구입하는 것을 선호했다. 목돈인 전세보증금은 금융기관에 대출이자를 물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집주인에게 이익이었다. 기다리면 집값은 올라갔다. 시세차익까지 보장되다보니 전세보증금을 낮춰도 됐다.

전세보증금을 은행에 예치시켜놓더라도 짭짤한 수익으로 돌아왔다. 한때 10%를 넘나들던 예금이자는 매달 거두러 다니거나 심지어 연체가 될 수 있는 월세에 비해 수익이 나쁘지 않았다.

세입자 입장에서도 월세보다는 전세가 나았다. 전세는 주택가격의 50% 내외만 가지고도 들어가 살 수 있었다. 2년이 지나면 원금을 고스란히 돌려받았다. 전세보증금에다 2년간 모은 돈을 보태면 내집 마련의 꿈이 한층 가까워졌다.

하지만 고성장이 꺾이면서 이야기가 달라졌다. 저금리 시대로 접어들면서 주택대출을 받기가 쉬워졌다. 금융기관에서는 서로 돈을 빌려가라고 아우성을 쳤다. 전세금에 기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예금금리가 하락하자 은행 예치로는 이자소득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 예금금리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시중금리는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목돈을 받아 은행에 맡겨본들 손실만 났다.

올 상반기 전국 전셋값 7.9% 올라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집값 하락에 따른 불안감은 집주인들로 하여금 전세를 더 기피하게 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며 “전세를 걸고 집을 샀던 사람들의 경우는 집값이 떨어지면 은행에서 대출을 받기 힘들어져 보증금을 내주기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2018년부터 인구가 감소한다. 늦어도 2015년께부터는 전국적인 집값 상승 기조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여기에다 1955∼1963년 태어난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기다리고 있다. 부동산 자산이 대부분인 이들 세대는 은퇴 후 집을 담보로 월세를 얻어 생활자금을 마련할 가능성이 높다. 이래저래 월세 선호가 강해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전세가 귀해지다보니 전세가격은 갈수록 올라간다. 부동산 정보업체인 부동산써브에 따르면 올 상반기 전국 전셋값은 7.9%올랐다. 지난해와 비교해 4.5%포인트가 높아진 것이다. 서울은 7.2%가 올랐다. 특히 성북구(12.2%), 강북구(11.9%), 도봉구(10.1%) 등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한 강북지역이 많이 올랐다. 전세가 상승은 지방도 마찬가지다. 경남(13.6%), 광주(11.0%), 부산(8.9%) 등은 서울보다도 많이 올랐다.

하반기에는 전세가격이 또 오를 전망이다. 주택산업연구원에 따르면 올 하반기 아파트 전세가격은 5%, 주택 전체 전세가격은 4% 오를 것으로 추정됐다. 소득이 정체된 상태에서 전세가격이 급등하면 결국 반월세로 타협하는 사례가 많아질 수밖에 없다.

월세전환은 내수시장 침체 불러
전문가들은 전세 감소 경향은 분명하지만 단기간에 제도 자체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여러가지 현실적인 난제가 있기 때문이다. 심형석 영산대 교수는 “전세를 끼고 집을 산 가구의 경우는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능력이 크지 않아 당장 월세 전환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집주인이 임대용 주택을 담보로 대출을 받은 금액은 73조원이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

또 집주인 입장에서도 월세는 공실 리스크가 있다. 아무리 수요가 많다고 해도 가격이 맞지 않으면 집을 비워둬야 한다. 그만큼 수익이 감소한다는 얘기다. 월세는 통상 관리비로 인식된다. 입주자의 요구가 많아지면 월세에 따른 소득증가가 예상보다 크지 않을 수도 있다.

월세 전환은 사회경제적으로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집주인은 소득이 늘어나지만 세입자는 소득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집주인은 소비여력이 커지고, 세입자는 소비여력이 줄어드는 셈이다. LG경제연구원은 전세가 월세로 모두 전환되면 연간 15조5000억원 정도의 추가적인 현금 흐름이 생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집주인의 경우는 고소득층, 세입자는 중산층 이하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고소득층은 소득이 늘더라도 늘어난 소득에 비례해 소비를 하지는 않는다. 한계소비성향이 낮기 때문이다. 강선구 연구위원은 “소득이 늘어난 집주인이 소비를 늘리는 것보다 소득이 줄어든 세입자가 소비를 줄일 가능성이 크다”며 “전세의 월세 전환은 내수 시장 침체라는 의외의 결과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말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86-12 금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0807
  • 팩스 : 02-333-0817
  • 법인명 : (주)파이낸셜신문
  • 제호 : 파이낸셜신문
  • 주간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8228
  • 등록일자 : 2009-4-10
  • 발행일자 : 2009-4-10
  • 간별 : 주간  
  •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825
  • 등록일자 : 2009-03-25
  • 발행일자 : 2009-03-25
  • 간별 : 인터넷신문
  • 발행 · 편집인 : 박광원
  • 편집국장 : 임권택
  • 전략기획마케팅 국장 : 심용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권택
  • Email : news@efnews.co.kr
  • 편집위원 : 신성대
  • 파이낸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신문. All rights reserved.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