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직 이임
정진석 추기경, 서울대교구장직 이임
  • 신영수 기자
  • 승인 2012.06.16 08: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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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고마움과 사랑을 느낍니다.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각기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해 사목활동을 하는…
여러분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노(老)추기경의 목소리가 울먹이듯 떨렸다.
15일 오후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 정진석(鄭鎭奭·81) 니콜라오 추기경 이임(離任) 미사.

14년간 이끌어온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직을 내려놓고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는 정 추기경을 배웅하기 위해 주교·사제와 신자 등 1200여명이 성당을 꽉 채웠다.

의자에 앉지 못한 사람들은 선 채로 미사를 함께 했다.
사제 서품을 받은 지 벌써 51년.
그 중 37년(1970~ 2006)을 주교로,
또 6년을 추기경으로 살며
수많은 미사에서 강론했던 그였지만,
이날만은 복받치는 감정을 추스르지 못했다.
추기경의 목소리가 떨릴 때면 신자들도 손수건을 꺼내 눈가를 닦았다.



"내가 살아온 건 하느님 섭리"

정 추기경은 지난 1998년 김수환 추기경의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로 임명된 뒤
한국교회의 '얼굴'로서 서울대교구를 이끌었다.
2006년에는 한국 가톨릭교회의 두 번째 추기경에 임명됐다.
특히 가정 사목, 낙태 반대와 장기 기증 등 생명 존엄성 수호 운동에 큰 힘을 쏟았다.

1931년 서울 수표동의 독실한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난 정 추기경은 초등학교 때부터 명동성당 새벽 미사의 복사(服事)를 맡을 만큼 신심이 깊었다.

서울대 공대에 진학해 공학자가 되려 했지만, 6·25 전쟁 당시 미군 통역으로 일하며 고통받는 사람들의 삶을 지켜본 뒤 사제의 길을 택했다.

1970년에는 한국 천주교 최연소 주교로 임명돼 청주교구장으로 재직했다.
정 추기경은 "사제가 26명이던 청주교구에 부임하며
'사제가 100명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1998년 이임 때 보니 101명이 돼 있었다.
그때 정말 내 삶을 이끄시는 하느님의 섭리를 느꼈다"고 말하곤 했다.



사제 대표 백남용 신부는 이임식 송별사에서
"지난해 미사 기도문 노래를 하시다 갑자기 '힘이 없어서 음이 조절이 안 되는구나'
하셨을 때 스승님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래서 오늘 모든 공적인 짐을 내려놓으시는 이 자리를
가벼운 마음으로 축하드릴 수 있다"고 했다.

추기경은 답사를 하며 두 번 더 흐느꼈다.
"신부님과 교우들의 협조와 기도, 격려 감사했다.
모두가 제게는 하느님이 보내주신 천사라고 생각했다"고 말할 때,
또 "성당 하나를 짓기 위해 신자들이 드리는 희생과 봉사를 생각할 때
너무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할 때였다.

정 추기경이 교구장으로 있는 동안 서울대교구에는 본당 100여곳이 신설돼, 총 229곳이 됐다.

정 추기경은 또 누구보다 각별한 명동성당과의 인연도 언급했다.
"명동성당은 제가 태어나서 세례성사를 받은 곳이고,
고해성사를 했던 곳입니다.
첫영성체도, 견진성사(세례 교인이 자기 신앙을 증언하는 성사)도,
사제 서품도 여기서 받았습니다.
일곱 성사(聖事) 가운데 두 가지만 안 받았습니다."
추기경의 말에 좌중에선 폭소가 터졌다.
가톨릭 교회의 일곱 성사 중 남은 두 가지는 혼인성사와 병자성사(사망 직전 환자가 받는 성사)뿐이기 때문이다.


이임 미사를 마친 정 추기경이 중앙 제단을 내려서자 신자들이 몰려들었다.
"행복하세요."
"그동안 고생 많으셨어요."
"건강하셔야 해요."….
정 추기경은 신자들이 내미는 손을 일일이 잡아주며 환한 미소로 화답했다.
그는 이제 태어나 자랐으며 주교와 추기경으로 살아온 명동을 떠난다.
처음 사제의 꿈을 키웠던 혜화동 가톨릭 신학대의 원로 사목자 사제관이 그의 새로운 집이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최홍준 회장은 "'혜화동 할아버지'로 지내시는 동안 저희 교우들이 종종 찾아뵙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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