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능력과잉, 향후 수년간 중국 경제에 부담’
‘생산능력과잉, 향후 수년간 중국 경제에 부담’
  • 박광원 기자
  • 승인 2009.11.02 09: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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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산능력과잉 문제가 중국 경제의 골칫거리가 되고 있다. 생산능력과잉은 투자 확대를 제약하며, 해소 과정에서 보호주의 경향을 강화시킬 우려가 있다. 수출시장인 선진국 경제의 회복이 늦어질수록 생산능력 과잉 문제의 부작용은 더욱 커질 것이다.

순조로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 경제에서 최근 생산능력과잉(overcapacity) 문제가 집중조명을 받고 있다. 생산능력과잉이란 수요에 비해 생산설비가 과도하게 많은 현상을 가리키는 것으로, 비효율적인 투자와 자원배분의 왜곡을 초래함은 물론 자칫 기업 부실화와 대량파산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요인이다.

사회주의 정치사회체제에 시장경제를 접목시켜 고속성장을 해오는 과정에서 중국은 생산능력과잉 문제를 고질적으로 앓아왔지만, 이번에는 그 범위와 정도가 유례 없이 심각하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인식이다.

올해 8월 말 중국정부 관계자들이 수 차례의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밝힌 생산능력과잉 업종 수는 19개로, 2005년에 지목된 업종 수 10개의 갑절에 가깝다.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악화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로 인한 경기 급락으로 시장 수요가 급감한 반면, 그 직전 3~4년 간 지속된 호경기 속에서 투자가 과열 양상을 보인데다, 금융위기 직후 경기부양이 투자 활성화를 중심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생산 설비는 계속 확충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의 생산능력과잉 문제의 실태와 이에 대한 중국 정부의 대응방향을 살펴보고, 그것이 중국 경제의 성장 및 산업구조 전환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전망해 본다.

9월 말 발표된 중국 정부의 문건1에 따르면 현재 생산능력과잉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곳은 강철, 시멘트, 평판유리, 석탄화공(코크스, 탄화칼슘), 다결정실리콘(태양광발전 기초재료), 풍력발전설비 등 6개 산업이다. 이밖에 전해알루미늄, 조선, 대두압착, 대형단조, 화학비료 등의 산업이 함께 거론되었다. 또한 이상의 11개 부문 외에 산화알루미늄, 방적, 화학공업 등도 정부 기관지 역할을 하는 여러 언론매체들에 의해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있는 업종으로 꼽히고 있다.

중국 정부의 자체진단에 따르면, 강철 부문은 2008년 연간 국내수요의 30%에 해당하는 과잉 생산능력을 갖고 있으며, 현재 건설 중인 설비를 포함하면 과잉률이 40%에 달할 전망이다. 시멘트의 경우 현재 진행 중인 설비 확충이 완료될 경우 생산능력이 중국 내 시장수요를 70% 정도까지 초과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평판유리는 생산능력과잉 정도가 수치로 제시되진 않았지만, 예정된 설비 증설이 완료될 경우 중국의 생산능력이 2008년 전세계 생산 규모의 80%에 이를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강철, 시멘트와 더불어 고질적인 생산능력과잉업종인 석탄화공의 과잉율은 30% 가량으로 추정되고 있다. 다소 의외이지만,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 등 일부 신생산업에서도 경쟁과열에 따른 생산능력과잉 현상이 출현하고 있다는 것이 중국 정부의 판단이다. 태양광 발전의 기초재료인 다결정실리콘의 경우 2008년에 실제 생산·공급 규모가 전체 생산능력의 20%에 불과했는데도, 현 생산능력의 3배나 되는 추가설비가 증설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에서 생산능력과잉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1980년대 초에 가전산업에서, 90년대엔 자동차산업에서 생산능력과잉 우려가 제기된 바 있다. 광범위한 부문들에서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발생한 경우는 90년대 후반(1차 생산능력과잉)과 2005년 이후(2차 생산능력과잉) 등 두 차례이다. 지금 진행 중인 2차 생산능력과잉은 1차 때보다 더욱 심각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으며, 후유증 역시 더 클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1차 때는 대다수가 경공업 업종이었고 대내외 경제여건이 비교적 좋았으나, 지금은 대부분 생산능력과잉 산업이 경제 내 비중이 크고 산업 연관 고리가 긴 중화학공업 위주이고 중국 및 글로벌 경제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생산능력과잉은 불확실한 미래 수요에 대한 전망 하에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여야 하는 시장경제에서 으레 생기는 문제이다. 계획경제에서처럼 정부가 투자조정을 하지 않다 보니, 한 기업의 입장에서는 적정하고 합리적인 투자가 산업 전체로 볼 때는 과도한 투자로 귀결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미국은 일찍이 1980년 중반과 1990년대 초에 자동차, 강철 등 전통제조업 부문에서 생산능력과잉 문제에 직면한 바 있다.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it 버블기’에는 정보통신산업과 전자산업에서 유례 없는 생산능력과잉이 발생했다. 일본 역시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제조업 강국으로 등장한 이래 주기적으로 생산능력과잉 문제에 시달렸다. 특히 1990년대 거품 붕괴 후 자동차, 강철, 가전, 조선 등 중공업 부문 전반에 걸쳐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나타나고, 이것이 장기간 해소되지 않는 바람에 대량기업파산의 후유증을 겪어야 했다. 한국도 1960년대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주기적으로 생산능력과잉 문제에 직면했으며, 이를 산업 합리화, 부실기업 정리, 빅딜(big deal·사업교환) 등과 같은 방식으로 해결해온 경험이 있다.

중국의 생산능력과잉은 미국, 일본, 한국 등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와는 다른 특유한 배경에서 비롯되는 측면이 있다. 첫째, 투자주도형 성장방식의 문제이다. 중국은 지난 30년중 24년 동안 투자 증가율이 10%를 초과할 정도로 유례 없는 투자 주도형 성장을 해왔다. 이에 따라1997~2006년 10년간 시멘트, 발전설비, 컬러tv 등의 생산능력이 2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또한 석탄화학은 3배, 조강과 자동차는 4배, 제철은 7배, 핸드폰은 무려 160배 이상으로 생산능력이 확충되었다. 이번의 생산능력과잉도 전세계적으로 수요가 위축되는 가운데 중국 정부가 금융위기에 대응해 지난해 말 이후 대대적인 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중심으로 경기부양에 나선 것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둘째, 중국에서 경제운영 방침은 중앙정부가 정하지만, 이를 실행하는 것은 지방정부이다. 따라서 경제 운영이 지방정부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다 보니 중앙정부의 통제가 먹혀들지 않아 과잉산능이 야기되는 측면이 있다.

지방정부는 중앙정부가 요구하는 세원 확보와 관할 지역 내 고용 창출에 책임을 진다. 게다가 지방 관료들에 대한 중앙정부의 인사 평가가 주로 지역내총생산(grp) 지표를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지방 관료들은 가급적 투자를 늘려 세원(稅源)과 고용을 창출하고자 하는 ‘성장 지상주의’로 치닫는 유인을 갖게 된다. 셋째, 생산능력과잉은 유례 없는 고속압축성장의 불가피한 후유증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후발 개도국들에서는 선진/현대적 부문과 낙후/전통적 부문이 병존하면서 과잉과 부족이 공존하는 경우가 많다. 중국의 경우도 저기술/저부가가치 부문에서는 생산능력과잉이, 고기술/고부가가치 부문에서는 산능부족이 문제가 되고 있다.

중국 언론들의 보도에 따르면, 생산능력과잉 문제에 대한 중국 정부의 종합대책(‘산업 구조조정 지도목록’)이 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도로 성안 중이며, 조만간 발표될 예정이다. 하지만 주요 대응방안은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노출되어있는 바, 총량적 진입제한, 낙후설비 도태, 인수 및 합병, 기술 개발 등이 주 내용이다. 즉, 생산능력과잉 부문에 대한 생산능력 확대를 최대한 억제하고, 낙후한 설비와 기술은 폐기하며, 현존 생산설비 및 기술의 고도화를 통해 산업 경쟁력을 높이고 시장을 창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신 및 용지(用地) 제한, 환경영향평가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총동원할 예정이다.

구체적으로 강철, 코크스, 탄화칼슘, 풍력발전설비, 전해알루미늄, 조선 등의 산업에 대해서는 2011년까지 3년간 신규설비 건설이나 기존설비 확장 프로젝트를 일절 중단시킬 계획으로 알려졌다. 또한 생산능력 증가 물량과 같은 규모의 낙후설비를 도태시킨다는 동량도태(同量淘汰) 원칙을 적용하여 생산능력과잉 산업의 기술 수준이나 상품 구성을 고도화한다는 복안도 갖고 있다. 동량도태 원칙은 주로 시멘트, 평판유리, 다결정실리콘, 조선 등에 적용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이와 관련하여 발개위는 향후 3년 내 구체적인 부문별 도태 목표를 작성 중이며, 대책 실시 이후 전국 각지의 산능도태 진행 과정에 대한 전면조사도 실시할 계획이다.

이 같은 정책수단들은 중국 정부가 처음 생산능력과잉 문제를 공식 제기한 2005년 당시부터 이미 써왔지만 뚜렷한 효과는 거두지 못한 방법들이다. 일견 강력해 보이는 이들 대책이 실효성이 없었던 것은 퇴출 대상기업 선정, 퇴출 업체 및 지역에 대한 보상 등에 대한 합리적이고 명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행정규제를 통해 생산능력과잉을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컨대 잡음 방지 명목으로 단순한 생산능력 규모가 퇴출 기준으로 활용되다 보니, 퇴출을 면하기 위해 후보 기업들이 앞다퉈 규모를 늘리는 악순환이 빚어지곤 했다. 한편 생산
능력과잉 산업의 구조조정을 실행해야 하는 지방정부들은 세수 및 일자리 감소를 우려해 관할 지역 업체들의 퇴출을 꺼려왔다.

하지만 이번에 중국 정부는 생산능력과잉 문제에 대한 인식이나 정책대응 면에서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8월 말 이후 정부 주요관계자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해왔다. 9월 들어서는 문제 업종의 기업융자에 대한 심사권을 금융감독당국으로부터 발개위로 이관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또한 지방정부들을 다그쳐 산업 구조조정에 협조하는 내용의 서약서를 작성케 하는 등 중앙정부의 장악력을 높이는 갖가지 비상수단을 총동원하고 있다.

생산능력과잉 문제는 생산능력, 즉 공급 능력을 줄여 해결할 수 있으나, 수요를 늘리는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있다. 특히 수출이나 해외직접투자를 통해 해외수요를 창출하는 방안이 산업 구조조정의 고통을 줄이고 생산능력과잉을 해결하는 유력한 수단으로 활용되어 왔다. 중국의 1차 생산능력과잉이 4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시간 내에 해소될 수 있었던 데는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수출시장이 확대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2005년경 시작된 2차 생산능력과잉이 2008년 말 이전에 크게 문제시되지 않았던 것도 2005~2007년에 글로벌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해외수요가 중국산 생산능력과잉 부문 제품들을 거뜬히 소화시켜 준 덕택이었다.

생산능력과잉과 관련한 토론이 활발해지면서 중국 관변 학계에서 수출을 일차적인 해법으로 보는 시각이 확산되고 있다. 실제로 현재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두드러진 업종들은 해외시장 의존도가 작지 않은 편이다. 강철은 4분의 1 정도가 해외수요에 의존해왔으며, 평판유리의 경우 전세계 생산에서 중국 내 생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50%에 이른다.

또한 전해알루미늄과 조선의 생산 점유율은 각각 43%, 36%에 달한다. 생산능력과잉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 정부의 노력이 덤핑 수출, 수입 제한 등 보호주의 조치로 나타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우리나라도 영향권에 들 전망이다. 특히 강철의 경우 2008년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수출 금액 중 대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16.9%, 중국의 강철 수출 중 한국에 대한 수출 금액의 비중이 25.8%에 달하여 어느 정도 영향이 불가피해 보인다.

생산능력과잉 문제가 대내외 경제에 미치는 충격은 선진국 경기의 회복 속도에 달려 있다. 글로벌 경기, 특히 선진국 경기가 빠르게 살아나고 이로 인해 중국의 수출 경기가 호전된다면 생산능력과잉 문제는 2007년 이전처럼 순조롭게 해소될 수 있다. 하지만 선진국 경기회복이 더뎌질 경우, 생산능력과잉 문제는 산업구조조정이나 내수 확대를 통해 해결하는 길밖에 없다.

생산능력과잉 부문이 중국 전체 고정자산투자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10%에 이르는 점을 감안하면 퇴출, 신규진입 제한 등을 골자로 하는 산업 구조조정은 상당기간 투자 확대를 제약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또한 내수확대의 열쇠를 쥐고 있는 소비가 올 들어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구조적 장애요인들이 많아 올해 투자(상반기에 공공 soc투자, 하반기에 부동산투자)가 했던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단기간 내에 대신하리라고 낙관하기 힘든 상황이다. 요컨대 생산능력과잉 문제는 중국경제에 산업구조 전환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향후 3~4년간의 경제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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