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진그룹, 故 조중훈 회장 ‘사업은 예술이다’
[기획특집] 한진그룹, 故 조중훈 회장 ‘사업은 예술이다’
  • 김바울 기자
  • 승인 2015.12.04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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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하나로 사업 시작한 청년 조중훈의 도전열정 담아내
▲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에는 조중훈 회장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신념으로 걸어 온 신념과 창의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발자취들을 고스란히 담아냈다.


조양호 회장, 창립70주년 맞아 출간기념회 가져
“선배 임직원 헌신적인 희생, 영원히 기억할 것”


한진그룹은 지난 2일 그랜드하얏트인천 웨스터타워 그랜드볼룸에서 열린 ‘한진그룹 창립 70주년 기념식’에서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의 전기를 그린 ‘사업은 예술이다’ 출간기념회를 함께 가졌다.
이날 기념식에는 창업주의 창업정신과 경영철학을 되새기고 그룹의 미래 70년을 준비하는 추모사업, 창업주의 업적 등을 통해 그룹역사 및 대한민국의 교통, 물류산업의 발전사를 조명하는 자리로 이어졌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이날 기념사를 통해 “한진그룹은 선배 임직원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있었기에 존재하며, 이들의 도움을 결코 잊지 않고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업을 예술처럼 여기며 스스로 또 하나의 길이 되셨던 선대회장님의 그 길을 따라 한진그룹은 계속 전진하며 새로운 미래를 향해 전진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전기 ‘사업은 예술이다’는 70년 전 신용하나로 사업을 시작한 청년 조중훈의 도전과 열정을 비롯해 베트남 전쟁에서의 숨막히는 수송작전, 대한항공의 인수 및 발전과정을 그린 ‘하늘길을 열다’, ‘수송외길을 위한 변주곡’, ‘인생과 사업의 예술가’ 등 총 9장으로 구성돼 있다.

이 전기는 지난 2010년부터 4년6개월 동안 40여명의 그룹원로 및 전문가들의 생생한 인터뷰를 증언 기반으로 대한민국 현대 수송역사의 커다란 변곡점에서 한진그룹을 세계적인 수송 물류 전문 기업으로 성장시킨 조중훈 회장의 핵심 경영 철학을 고스란히 담았다.

지난 2002년 작고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는 1945년 한진그룹의 모태인 ‘한진상사’를 창업한 이후 창의와 신념으로 수송사업 외길을 개척, 지금의 한진그룹을 육·해·공 종합 물류 수송기업으로 키워낸 기업인이다.


이번에 발간한 전기에는 조중훈 회장의 수송보국(輸送報國) 신념으로 걸어 온 신념과 창의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발자취들을 세세하게 그려냈다.

‘지고 이기는’ 겸손함. 상대방에 대한 무한한 신뢰. 수송을 핵심 사업으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해온 조중훈 회장의 모습을 담아낸 ‘사업은 예술이다’는 창의와 혁신으로 우리나라 경제를 이룩했던 창업 1세대들이 던져주는 교훈을 담아냈다.

조중훈 회장은 처음엔 지더라도 나중에 이기면 된다고 생각했다. 또한 투자도 없이 이익만을 바라는 것은 사업이라기보다 도박이나 투기에 가까운 것이고, 항상 이기기만 바라는 것 또한 이기적이고 이타적인 오만과 통한다고 봤다.


◆ ‘지고 이기는’ 신념으로 신용 쌓아

그는 ‘지고 이기는’ 신념으로 욕심을 버리고 신용을 쌓았다. ‘지고 이겨라’는 창업주의 유훈은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가장 존중하는 경영철학이기도 하다.

조중훈이 미군에게 확실한 신뢰를 얻게 된 극적인 사건이 있었다. 어느 트럭회사로부터 임차한 차량의 운전기사가 수송을 맡은 미군 파카를 차떼기로 팔아먹은 것이다. 어렵사리 미군의 신뢰를 얻어가고 있던 때라 난감하기 짝이 없었다.

무슨 재주를 부렸는지 운전기사는 인수장에 미군의 사인까지 받아왔다. 서류가 있으니 변상을 피할 수도 있었지만 조중훈에게는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조중훈은 지고이기는 길을 택했다.

도난품이 남대문시장에 넘겨질 것이라 판단하고 직원들을 보내 시장을 지키게 했다. 예상대로 물건이 나돌았지만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상인들의 원성만 살 뿐, 물건은 자취를 감추기 십상이었다. 겨울이 되기 전이라 파카는 아직 팔리지 않은 상태였다.

조중훈은 장물을 취득한 상인에게 약간의 이문까지 보태주고 1,300벌에 달하는 파카를 되사왔다. 파카 구입비용으로 사채시장에서 3만 달러나 융통했다. 빚을 내 신용을 산 것이다.

이 일은 금전적으로는 큰 손해였지만 미군에게 변상금이 아닌 현물을 인계했을 뿐 아니라 미군에게 확고한 신용을 얻는 결과를 가져왔다. 나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미군들은 한진과 조중훈을 대하는 태도가 더욱 달라졌다. 조중훈은 3만 달러로 가치를 따질 수 없는 믿음을 얻었다. 조중훈은 한 걸음 한 걸음 견실하게 사업을 추진하면서 먼저 주고 나중에 받는 것, 지고이기는 것이야말로 성공의 비결임을 확신하게 됐다.

에어버스를 구매할 당시 대한항공 안에서는 반대의 목소리가, 밖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다. 자칫 한국과 프랑스 간 외교마찰의 희생양이 되고 말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왔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한항공 성장의 발자취를 되짚어볼 때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기회였음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조중훈의 ‘지고 이기는’ 지혜가 또 한 번 위기를 기회로 만든 것이다.


◆ 낚싯대 경영 ‘핵심가치에 집중’

조중훈 회장은 모방사업, 즉 ‘남이 닦아놓은 길을 뒤쫓으며 훼방하는 얌체사업’을 싫어했다. 모르는 사업에 뛰어들어 확장을 거듭하는 무모한 행동도 자제했다. ‘낚시대를 열개 스무개 걸쳐 놓는다고 해서 고기가 다 물리는 게 아니다. 진정한 낚시꾼은 한대의 낚시대로도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는 조중훈 회장의 ‘낚시대 경영론’에 따라 한진그룹은 수송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사업만 운영하는 종합물류그룹으로 성장했다.

훗날 조중훈은 이런 철칙으로 무리한 사업확장을 경계했다. 한국경제가 성장가도를 달리던 1970년대 기업마다 물불 안 가리고 사업을 확장할 때 한진 임원들도 “땅을 사고 공장을 지어 제조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했지만, 조중훈은 그때마다 고개를 저었다. 모르면서 남들이 한다고 따라하는 것은 사업이 아니라며 ‘수송외길’을 고집했다.

조중훈은 이런 사업철학을 유명한 ‘낚싯대론’으로 정립했다. 자원을 효율적으로 운용하고 위협요인을 최소화하는 위기관리 전략을 일찍이 터득하고 실천했던 것이다. 낚싯대론은 오늘날 한진이 세계적인 수송그룹으로 우뚝 서게 한 안전장치가 되는 밑거름이 됐다.

◆ 결단의 경영, ‘사업은 타이밍’

사업에서는 정확한 판단력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조중훈 회장은 사업가로서 동물적인 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감각은 현장에서 체득한 것이다. 기회라는 의미에서라면 사업은 ‘운’도 있겠지만, 조중훈 회장은 그 찬스가 우연히 자신에게 다가온 것은 아니라고 믿었다. 기업을 도약 시키는 것은 운이나 요행수가 아니며, 시의 적절한 판단과 결단력, 미래를 내다볼 줄 아는 시각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조중훈은 사업가로서 동물적 감각이 있었다. 항공기를 새로 구입할 때의 일이다. 기획실 직원들이 며칠 밤을 새워 꼼꼼하게 보고서를 만들어 예상 단가와 손익을 계산했다. 득보다 실이 많다는 보고였다. 하지만 조중훈은 보고서를 덮고 미국에 다녀와야겠다고 했다.

그 길로 보잉사를 찾아가 항공기를 12대나 구입하는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왔다. 항공기를 12대나 사겠다고 하자 침체에 빠져 있던 보잉도 일어서고, 보잉 본사가 있는 시애틀의 경기도 살아났다. 그러자 구입을 미루어왔던 다른 항공사들이 하나둘 몰려들더니 몇 달이 지나자 항공기 가격이 껑충 뛰었다. 대한항공은 싼 값에 항공기를 입도선매하고 보잉과 돈독한 관계까지 맺었다.




◆ 신뢰경영, ‘신용 정신’

조중훈 회장은 사업 초창기부터 신용과 자금관리를 기업의 가장 중요한 덕목으로 삼았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더욱 힘들고 자금 역시도 치밀한 계획 없이 처음에 다 쏟아 부어 뒷심이 없게 되면 큰 사업을 이루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한번은 직원이 빌린 자금을 상환하는 업무를 게을리 해 기일을 하루 넘기고 말았다. 조중훈은 훗날의 경계로 삼고자 퇴직금을 주고 직원을 해고한 뒤 곧바로 채권자들을 찾아가 정중히 사과했다. 조중훈은 훗날 항공공사와 대한선주, 조선공사 등 부실 공기업을 인수하면서 인위적인 감원을 실시하지 않았다. 급여를 미룬 적도 없었다. 이것은 사업가로서 그의 자랑이기도 했다.

‘刻削之道 鼻莫如大 目莫如小’ 조중훈이 금과옥조로 삼은 한비자의 명언이다. 사람의 얼굴을 조각할 때는 코는 크게, 눈은 작게 새겨 놓고 다듬어야 한다는 뜻이다. 코를 작게 해놓으면 다시 크게 만들 수 없고, 눈을 크게 해놓으면 줄일 수 없기 때문이다.

조중훈은 신용을 얻는 것도 이와 같다고 생각했다. 처음에 얻지 못한 신용을 나중에 얻기는 힘들다. 한진상사의 초기 사업이 순항한 것은 어려움 속에서도 신용을 지키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 輸送報國 “수송으로 국가에 보답”

조중훈 회장이 ‘한진’을 설립한 것은 기업은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노블리스 오블리제’ 경영 철학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한진’은 한민족 전진(韓民族 前進)의 의미를 새긴 것으로, 사업을 통해 우리 민족을 잘 살게 하겠다는 조중훈 회장의 신념이 담겨 있다.

특히 수 많은 업종 중에서 운수업을 택한 것은 ‘교통과 수송은 인체의 혈관처럼 정치ㆍ경제ㆍ문화ㆍ군사 등 모든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기간산업’이므로 수송으로 우리나라의 산업화에 이바지 할 수 있다는 ‘수송보국’(輸送報國)의 철학이 뒷받침됐다.

◆ “믿음과 배려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다”

조중훈 회장은 지혜로운 사람이었지만, 그 지혜는 머리가 아니라 가슴에서 샘솟는 것이었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조중훈 회장의 사람의 대한 신의와 배려는 인간적이었다. 아들을 직원처럼, 직원을 아들처럼 여겼다. 언제나 자신보다는 상대의 편에서 상대가 무엇을 원하고 있는지를 생각했기에 답을 찾아내고 상대를 설득할 수 있었다.

실제 조중훈은 베트남에 파병된 한국군 장병들에게도 각별히 신경을 썼다. 한국군 군복을 입은 사람이 한진상사를 방문하면 누구나 식사를 무료로 제공하도록 했다. 미군 시레이션이나 찐밥이 입에 맞지 않은 한국병사들은 한진상사에서 정성스럽게 주는 밥에 김치와 찌개를 먹는 맛에, 외출이나 외박을 나오면 한진상사부터 찾았다. 조중훈은 한진상사 직원들이나 파월 장병들이나 모두 이역만리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며 일하고 있는 만큼 서로 의지하고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진상사의 배려로 한국군의 사기는 충천했다.




◆ “가장 뜻있는 일은 인재를 키우는 것”

조중훈 회장은 기업이 사회 복지 증진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방법 중에서 가장 보람 있는 일은 바로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라는 게 조회장의 평소 지론이었다.

조중훈 회장은 “사학(私學)을 운영하는 목적은 육영사업의 보람을 찾는데 그쳐야지, 일시적으로 반짝 광이나 내고 보자는 식의 자기 과시적인 지원이나, 당장의 과실(果實)만 염두에 둔 것이어서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면서 인재양성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지원을 하면서 기업의 사회적인 책임을 다해왔다.

◆ 국익을 우선하는 민간 외교관’

조중훈 회장은 수송외길을 개척하며 민간 차원에서도 훌륭한 외교를 할 수 있음을 실감했다. 기업이 사업으로 국가와 사회에 기여하는 것 말고도 민간외교를 통해 국익에 일조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한진의 사업이 계속 밖으로 뻗어가면서 조중훈의 명성도 해외에 알려지게 되었고 정부의 요청으로 외교를 해야 할 때가 많아졌다. 민간외교가로서 조중훈은 전후 50년 한국 외교사 곳곳에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조중훈은 검증도 되지 않은 에어버스 항공기를 구매하면서 북한의 WHO 단독가입을 둘러싼 한국 정부와 프랑스 정부간 외교 마찰을 일거에 해소한 바 있다. 대한항공의 에어버스 항공기 구매는 프랑스 항공산업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고, 프랑스 정부는 이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조중훈의 용단은 이후 프랑스와 한국 간 외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1980년대 고리원자력발전소 4호기를 건설할 때도 조중훈의 외교력이 빛을 발했다. 당시 한전은 4호기 건설에 프랑스 알스톰의 기술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는데, 좀처럼 협조를 구할 수가 없었다. 정부는 이를 해결할 사람이 조중훈밖에 없다고 판단했다. 조중훈은 엘리제궁의 협조를 구해 알스톰과의 기술제휴가 이루어지도록 했다

◆ “사업은 예술이다”

조중훈 회장은 ‘사업은 예술’이라는 신념을 믿고 이끌어온 경영인이다. ‘사업은 예술’은 기업가도 예술가의 신념과 노력으로 모든 사업에 전념해야 한다는 조중훈 회장의 기업 경영 철학이 표현되어 있는 단어다. 조중훈 회장은 한진그룹을 육·해·공 종합물류기업으로 완성하는 동안 신념과 창의로 수송분야를 개척하면서 사업을 예술로 승화시킨 기업인이다.

조중훈은 항공을 멋지게 하고 싶었다. 민영 대한항공을 이륙시키면서 사업가가 아니라 예술가처럼, 사장이 아니라 화가처럼 노선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항공기 도입을 결정한 다음 조중훈은 국제선 항로를 확보하기 시작했 다. 외화를 벌어들여 적자를 메우기 위해서는 외국 항공사들이 선점하고 있는 국제선 노선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했다.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향후 10년, 20년, 50년을 내다보고 대한항공이 취항할 노선을 그렸다. 그는 서울을 아시아의 중심으로 두고 미주 노선과 유럽 노선의 거점을 잡았다.

오늘날 대한항공이 개척해 운항하는 그물망 같은 노선도를 보면 40여 년 전 조중훈이 얼마나 주도면밀하게 선견지명을 가지고 밑그림을 그렸는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오늘날 대한항공 노선도는 그 자체로 하나의 멋진 그림이며 예술작품이다. 조중훈의 예술정신은 전 세계에 길을 열고 하나로 연결한 수송의 걸작을 완성하는 원동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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