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리더십 부재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
삼성, 리더십 부재로 창사이래 '최대 위기'
  • 연성주 기자
  • 승인 2017.08.25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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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경영인 비상체제' 유지…글로벌 시장서 평판 악화 우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25일 법원으로부터 징역 5년형을 선고받으면서 삼성그룹이 80년 역사에서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
삼성의 '총수 부재'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한층 높아지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영은 전문경영인 중심의 '비상체제'를 당분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우 이 부회장 구속 이후인 올 2분기에 사상 최대 규모인 14조700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정도로 겉으로는 문제가 없는 듯하다.
하지만 삼성 내부에서는 우려가 깊어지고 있다.
당장 활발히 굴러가던 M&A가 올스톱됐다. 삼성전자는 2015년 3건, 지난해엔 6건의 주요 M&A가 있었지만 올해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징역 5년을 선고받으면서 삼성그룹은 리더십 공백으로 인해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연합)
2014년 캐나다 모바일 클라우드 솔루션업체 '프린터온', 미국 사물인터넷(IoT) 플랫폼 개발회사 '스마트싱스' 등을 사들였고, 2015년에도 미국 모바일 결제 솔루션 업체 '루프페이', 미국 상업용 발광다이오드 디스플레이 업체 '예스코 일렉트로닉스' 등을 품에 안았다.
지난해에도 미국 클라우드 서비스업체 '조이언트', 미국 럭셔리 가전 브랜드 '데이코', 인공지능(AI) 플랫폼 개발기업인 '비브랩스'를 인수한 데 이어 미국 자동차 전장(전자장비)업체 '하만'을 사들이기도 했다.
하지만 올들어 주요 M&A가 단 1건도 없다. 지난달 문자를 음성으로 변환하는 기술을 보유한 그리스 스타트업 '이노틱스'를 인수했지만 직원 7명 규모의 소규모 회사다.
삼성 내부에서는 변화 속도가 특히 빠른 IT(정보기술) 업계에서 이런 전략적 의사결정의 부재가 장기화하면 기업 경쟁력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는 걱정이 나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가상현실(VR)·증강현실(AR), 커넥티드 카 등 첨단 기술 패권을 두고 펼쳐지는 치열한 기업 간 전장에서 순식간에 도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월스트리트 저널은 최근 "(재판에 따른) 이 부회장 운명은 삼성 제국에도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그의 공백이 길어지면 스마트폰에서 테마파크, 바이오 의약품을 아우르는 거대기업에 리더십 공백이 초래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에서 중소기업청 수석고문을 지낸 매트 와인버그는 최근 허핑턴 포스트에 쓴 기고문에서 "혁신 리더라는 삼성 입지는 최근에 처한 불확실성과 한국의 정치적 격변으로 인해 흔들리고 있다"며 삼성이 '제2의 소니'로 전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이 경고대로라면 이번 유죄 선고는 '리더십 공백'의 장기화로 삼성의 미래를 더 불확실하게 만들었다.
이 부회장의 해외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한 경영활동도 공백기가 연장될 수밖에 없게 됐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팀 쿡 애플 CEO(최고경영자),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 래리 페이지 구글 창업자 등과 만나 교류해왔다.
이런 개인적 인맥을 활용한 경영은 가시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아도 막후에서 영향력을 발휘하는데 이런 인맥 자산도 당분간 활용할 수 없게 됐다.
그룹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던 미래전략실이 해체됐다는 점은 총수 부재 리스크를 더 키우고 있다. 일부 비판을 받긴 했지만 과거에는 미전실이 주요 의사결정을 내려왔기 때문이다.
대형 M&A나 그룹의 미래 전략 수립, 사장단 인사, 계열사 간 역할 조정 및 경영 진단 등 그룹 살림을 거시적으로 살피고 결정할 사령탑이 없는 것이다.

사장단 인사도 2년 연속으로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삼성 그룹은 지난해 11월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며 통상 12월에 하던 사장단 인사를 건너뛰었다.
앞으로 진행될 항소심 등 일정을 고려하면 올해 12월에도 사장단 인사는 힘들다는 게 삼성 안팎의 시각이다.
그룹의 핵심 역량에 집중하고 비핵심 분야는 정리하는 사업구조 개편도 언제 재개될지 기약할 수 없게 됐다.
이 부회장은 그동안 방위산업·화학 분야 계열사를 매각하는 등 이른바 '선택과 집중' 작업을 벌여왔지만 이 역시 중단된 상태다.
부실 계열사에 대한 정리 작업도 늦춰지게 됐다.
미전실 경영진단팀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감사는 부실 계열사를 가려내 과감한 구조조정, 사업구조 전환, 부실 털어내기 등으로 계열사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장치였다.
특히 재계에서는 유죄 판결이 글로벌 시장에서 삼성의 평판에 악영향을 줄 것이란 우려가 크다.
브랜드 이미지나 대외 신인도가 나빠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좀 더 실질적으로는 미국에서 '해외부패방지법'(FCAP)에 따라 거액의 벌금을 물고 사업 기회를 박탈당할 수도 있다.
이 부회장에 대한 유죄 판결이 FCPA 제재로 이어질 경우 과징금을 내야 하는 것은 물론, 미국 연방정부와 사업이 금지되는 등 미국 내 공공조달 사업에서 퇴출된다.
미국 외에 중국, 인도, 영국, 브라질 등에서도 강도 높은 부패방지법을 운용 중이어서 글로벌 사업에 제한을 받을 수 있다.
재계 관계자는 "미래 먹거리 발굴이나 그룹의 중장기 미래 성장전략 수립 같은 거시적 의사결정에선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그룹의 경영은 현재의 '비상체제'가 당분간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의 경영진은 공식적으로 4명의 상근 등기임원이 사업을 총괄하는 형태로 구성돼 있다. 권오현 DS(디지털솔루션) 부문장·윤부근 CE(소비자가전) 부문장·신종균 IM(인터넷·모바일) 부문장 등 3명의 대표이사가 각 사업부문을 총괄하고, 이 부회장은 사내이사 자격으로 경영 전반을 총괄한다.
미등기 임원으로는 총수인 이 회장과 함께 총 13명의 사장이 각 부문에서 '야전사령관' 역할을 하고, 이밖에 5명의 사외이사가 포진해 있다.
지난 2월 이 부회장의 구속 수감 이후 약 6개월간 '비상체제'가 큰 무리 없이 가동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촘촘한 경영시스템 덕분이다.
실제로 총수와 총수 대행이 모두 경영 일선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일상적인 투자와 영업은 계속 진행됐고, 올해 들어 삼성전자를 비롯해 대부분의 계열사는 좋은 실적을 기록했다.
앞으로도 그룹의 '맏형'격인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을 중심으로 전문경영인 비상체제를 계속 가동하면서 그룹 전체를 전반적으로 챙기되, 각 계열사의 자율권을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삼성 관계자는 "일상적인 판단은 전문경영인이 할 수 있지만 그룹 전체의 명운이 걸린 전략적인 판단은 유보할 수밖에 없다"면서 "특히 이른바 '오너 리스크'로 인해 글로벌 경영에는 심각한 차질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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