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칼럼] 새 헌법, ‘국민사법권’ 제대로 담아야
[월요칼럼] 새 헌법, ‘국민사법권’ 제대로 담아야
  • 강동호 기자
  • 승인 2018.01.0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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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신문=강동호 칼럼니스트] 헌법 개정은 단지 법조문 몇 개 바꾸고 국가 최고지도자를 어떻게 뽑느냐 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달라진 경제사회적 환경과 더불어 보다 높아진 기본권에 대한 국민적 요구에 부응한 ‘시대 정신’을 오롯이 담아내는 ‘큰 그릇’이 돼야 한다.
이번 개헌은 지난 1987년 6월항쟁으로 들어선 이른바 ‘87체제’의 시대적 역할을 마무리하고 민주주의와 선진화에 대한 열망을 담아야 하는 시대적 소명을 안고 있다.
현재 국회내 개헌특위가 다루고 있는 주요 내용에는 이원집정부제냐 대통령연임제냐 하는 지배구조에서부터 현행 소선거구제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는 문제, 국민기본권의 강화문제, 국민소환이나 국민발안 등 직접민주제도 도입여부, 지방분권의 강화 등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공안권력의 핵심인 검찰·경찰과 법원 개혁 등 국민사법권(國民司法權)의 위상 정립과 확대 문제는 제대로 다루어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헌법조문 자체가 대단히 추상적이라 검찰·경찰의 기소권 조정이나 업무 분할, 검사와 판사의 임용과 법원내 인사 문제 등은 하위법인 법률이나 민사·형사소송법, 또는 법원 조직법이나 대법원내 규칙 등에 대부분 위임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렇게 될 때 사법권에 대한 국민적 참여는 배제되고 오로지 소수집단인 법관이나 변호사, 검사 등 법률기술자들의 직역이익이나 자의적인 판단에만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사법구조가 반복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사법권 독립이라는 미명아래 상식에 반하는 법원의 결정이 비일비재로 일어나 국민적 분노를 사는 것은 물론, 사법부에 대한 신뢰가 땅에 떨어져 있다.
지난 201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사법신뢰도를 보면 우리나라의 경우 27%로 조사대상 42개국 중 39위로 거의 세계에서 꼴찌 수준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사법 신뢰도는 멕시코, 러시아, 슬로바키아, 이탈리아보다 낮았고,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콜롬비아(26%), 칠레(19%), 우크라이나(12%) 세 나라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기대는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높으며 자칫하다간 ‘법치’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약하는 악마의 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제는 새 헌법에 국민사법권에 대한 명백하고 불가침의 근거 조항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현재 우리 헌법에는 ‘국민이 재판을 받을 권리’만 있지 ‘재판권을 행사할 권리’는 배제돼 있다. 즉 헌법 제1조
2항 주권재민(主權在民)의 원칙이 사법권에는 미치지 못하며, 그 결과 국민사법권에 대한 권리가 실종돼 있는 상태다.
국민을 피치자(被治者)로만 보지 사법권을 행사하는 주체로서는 보지 않는 전근대적인 사법개념이 철저히 관철돼 있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관심을 끄는 조항이 헌법 103조(“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이다.
이에 따르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법원 외적인 구속이나 속박을 받지 않고, 심지어 소속기관장의 간섭도 없이 오로지 개인의 양심에 따라 재판할 수 있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는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여 사회적 압력이나 권력자의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도록 보호하기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비리판사, 비양심적인 판사들에 의해 엉터리 판결, 비상식적인 판결이 속출하고 있는게 우리의 사법현실이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판사들뿐만 아니라 기소독점권을 쥐고 있는 검사들에게도 마찬가지로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영장담당판사의 판단과 달리 상위직 판사가 이를 기각하고 국민적 법감정과는 달리 판사가 구속영장 발부를 거부하는 등의 사례에서 보여지듯이 법관 역시 신은 아니기 때문에 개인적 편견이나 이익에 따라 또는 의도적이든 아니든 오판을 내릴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는 것이다.
결국 법관에게 무한대의 재량권을 부여한 헌법103조가 최악의 경우 사회적 통념과는 달리 아무 근거없이도 자의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허용하는 사법정의의 독소조항으로 작용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는 법관의 판결(검사의 기소권 포함)도 사회적 시대정신을 반영하여 당시의 상식수준에 맞게 이뤄져야 할 당위성이 있고, 그 판결의 결과에 책임도 져야 한다는 대명제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실제로 우리와 같은 성문법 국가가 아닌 영국, 미국 등 불문법 국가에서는 상식이라할 수 있는 판례, 조리, 관습 등에 법관의 판단이 기속을 받으며 이에 대한 법관의 명백한 위반이 있을 경우 손해배상 등 광범위한 책임도 져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를 위해서는 헌법103조에 “양심과 ‘상식’에 따라...재판한다”거나 “...다만, 판례, 조리, 관습 등 상식에 배치되어서는 안된다” 등의 조항 수정이나 단서조항을 도입하는 것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 같은 국민사법권에 대한 명백한 선언이 새 헌법안에 반영되어야 그간에 지속적으로 사회문제가 되어 왔던 전관예우 문제도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최근 제기되고 있는 전문영역의 법관인사에 전문인 발탁제도나, 일반인이 배심원으로 참가하는 배심원제 확대나 지법원장(지검장)이상 고위직 법관에 대한 직선제 도입 등의 문제도 비로소 실마리를 풀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국민사법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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