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인맥⑤] 5공 이원조 ‘금융황제’로 화려하게 등장
[한국의 금융인맥⑤] 5공 이원조 ‘금융황제’로 화려하게 등장
  • 임권택 기자
  • 승인 2018.03.02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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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회장 “시류에 순응은 힘 있는 사람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
 
 
5공의 전두환 정권 초기 김재익 경제수석을 빼놓고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경제 가정교사였던 김재익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5공 초기 경제기틀을 만든 사람이었고, 후반기에는 사공일 장관이 경제를 맡았다.
 
특히 경제에 문외한 이었던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은 경제기획원 경제기획국장이던 김재익씨를 가정교사로 초빙, 경제에 대한 철학과 정책에 대해 배웠다.
 
전두환 전 대통령은 아주 열심히 스승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웠고, 그가 제언하면 바로 정책에 반영시켰다.
 
김재익 수석은 박정희 정권의 성장위주의 정책에 문제점이 있다고 판단, 강경식 당시 기획차관보와 함께 과감한 정책전환을 주문했다.
 
이런 결과가 제5차 경제계획으로 나타났다.
 
또 당시 신병현 한은 총재는 통화안정을 강조 했으며 6.28 금리인하 조치는 금융자율화의 첫 걸음이었다. 당시 정책금리가 10퍼센트가 넘는 시대였다.
 
경제기획원은 당시 신중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재무부를 제치고 정책금리 폐지, 금융실명제, 은행민영화, 금리인하 등 개혁조치를 밀어 붙였으나 개혁 저항 세력과 김재익 수석의 아웅산 참사로 순직하여 결국 무위로 끝나고 말았다.
 
아이러니하게도 97년 IMF시절에 이러한 정책이 실행된 것을 볼 때 김재익 수석의 죽음은 두고두고 아쉬움이 크다 하겠다.
 
▲   88년 일해재단 뇌물공여 청문회에서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과 같이 힘 있는 사람이 기업을 돕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류에 순응한다는 의미는 힘 있는 사람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사진= 금융계)
 
서슬 퍼런 전두환 정권시절 은행은 정치자금을 제공한 재벌들에게 반대급부로 대출 등을 지원해준 관계로 전락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는 몇몇 정치행장이 금융계를 좌지우지 했고 5공은 금융계와 유착관계가 점점 깊어졌다.
 
박정희 대통령은 친인척관리가 엄격했으나 전두환 대통령은 정 반대이다. 오죽하면 새마을운동중앙본부 회장이던 전경환씨와 은행장이 점심을 먹게 되면 점심값이 2억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결국 조흥은행, 서울신탁은행, 주택은행이 새마을성금으로 2~3억을 내놓았다.
 
5공 당시 은행들은 100억 이상 대출이 이루어질 경우 청와대에게 보고하게 되고 문제가 있으면 지침이 내려와 기업들 입장에서는 정치자금을 내지 않을 수 없는 구조이다.
 
다시 말하면 대출 최종 책임자인 은행장에게는 정치자금을 어떻게 요리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이 달라지게 된다.
 
은행장은 어떤 자리인가.
 
오죽하면 은행장은 하늘이 내려준다고 했는가. 국군의 별 만드는 것은 쉽지만 은행 임원을 만드는 것은 하늘의 별따기처럼 어렵다고 했을 정도로 은행임원 그리고 은행장은 막강했다.
 
은행장에 오르면 만나는 사람의 격이 다르다. 더구나 당시만 해도 기업의 생사여탈권을 은행장이 가지고 있어 그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은행장 휘하에 4~5백명의 지점장이 있고, 은행장은 인사권을 가지고 이들을 지휘했다. 특히 1급 점포나 특급점포장은 대기업을 관장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이 자리에는 필히 자기 사람을 심어 놓는다.
 
이들 친위부대 점포장들은 은행장의 고충이나 애로, 청탁 등을 해결해주었고 정재계와 연결고리도 이들 점포장들의 역할이다.
 
5공때는 은행장 친위점포 지점장이 되기 위해서 경쟁이 치열했고 발탁되기만 하면 승진코스의 길목인 셈이다.
 
예를 들어 현대그룹의 주거래은행은 당시 외환은행 계동지점이다. 계동지점장은 현대그룹 경영진과는 수시로 독대할 수 있고 다양한 관계를 돈독히 유지할 수 있는 점포장이다. 당연히 임원 승진 1순위임은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들 점포장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자리 이동값이 2천만원 내외였고 임원은 억대, 은행장은 5억대 이상의 자리 값이 정해져 있다.
 
은행장은 권력 핵심부에서 정해지고 임원은 청와대 수석의 전화가 와야 결정된다. 수석끼리 경쟁하다보니 보니 은행에서는 먼저 전화가 온 수석을 선임하는 관례가 생길 정도이다.
 
일부은행에서는 청와대 두 군데의 수석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하나는 비상임이사로 임명하는 웃지 못하는 일이 생기곤 했다.
 
5공의 특징을 보면 경제는 김재익이나 사공일 장관에게 맡기는 ‘당신이 경제 대통령이야’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맡기는 용병술을 보였다.
 
그러나 금융계는 정치자금을 만드는 통로로 활용했다. 은행은 5공말에 엄청난 정치자금을 조성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에 따라 5공의 7년은 그 어느 정권보다도 재계의 부침이 심한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오로지 정권에 밉보였다는 이유로 인해 하루아침에 공중 분해되기도 했다.
 
반면, 혜성같이 등장하는 기업도 있으니 정권에 줄서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국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필히 금융특혜를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금융특혜를 시기별로 구분해보자.
 
60년대 초기부터 자금조달의 주된 원천이 되었던 차관도입에 있어서의 금융특혜이다.
 
또 60년대 말부터 80년대 중후반까지 수차에 걸쳐서 시행된 부실기업의 정리과정에 있어서의 금융특혜이다.
 
다음은 70년대에 종합상사를 육성하면서 수출주도형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했던 수출금융의 특혜이다.
 
마지막으로 70년대말과 80년대초에 걸친 중화학투자 조정과정에서의 통폐합에 대한 금융특혜이다.
 
이러한 금융특혜의 공통점은 정부가 막강한 자의적인 자금 배분권을 가지고 있으며, 특혜의 대부분이 대규모의 기업집단에게 베풀어져서 기업집단의 팽창을 가져왔다.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이원조 은행감독원장을 선거모집책으로 지명, 직접 대기업들에게 선거자금을 모집하게 되면서 수면위로 부상하게 된다.
 
이원조씨는 경북대를 졸업하고 1956년 제일은행에 입행, 1980년 상무이사 자리에 올랐고 같은 해 전두환 전대통령에 의해 청와대 경제비서관으로 발탁됐다.
 
이후 1986년 1월부터 1988년 2월까지 은행감독원(금융감독원의 전신 중 하나) 원장을 지내면서 관치금융과 정경유착을 주도했다. 즉 5·6공 시절 전두환·노태우의 친구이자 ‘금융 황제’로 불렸던 이원조 전 은감원장은 재무부 장관 인사까지 좌지우지했다고 한다.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 시절이던 1988년부터 1993년까지 두 차례에 걸쳐 민자당의 전국구 국회의원을 지냈다.
 
이원조씨는 전두환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대기업 회장들에게 선거자금 모금을 하게 된다. 또한 경호실을 통해 전두환 대통령과 재벌회장의 독대를 마련, 회장들이 직접 선거자금을 헌납하도록 주선했다.
그 외의 대기업은 안현태 경호실장을 통해 간접적으로 선거자금을 전달했다고 한다.
 
전두환 전 대통령에게 82부터 87년까지 대기업들이 준 뇌물공여 내역을 보면 현대 정주영 회장이 7차례에 걸쳐서 220억, 삼성 이병철 회장 8회 220억, 동아 최원석 회장 4회 180억, 한진 조중훈 회장 5회 160억, 대우 김우중 회장 6회 150억, 한일 김중원 회장 3회 150억, 선경 최종현 회장 3회 150억, 롯데 신격호 회장 5회 150억, 엘지 구자경 회장 2회 100억, 금호 박성용 회장 3회 70억, 미원 임창욱 1회 70억, 한화 김승연 회장 3회 70억, 동국제강 장상태 회장 3회 60억, 쌍용 김석원 회장 4회 60억, 극동 김용산 회장 1회 10억, 근영농산 최무영 회장 1회 10억, 진흥기업 박영준 회장 1회 10억, 애경 장영신 회장 1회 15억, 삼양화학 한영자 100억, 조선맥주 박경복 회장 2억,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 3억5천, 삼천리 이장균 회장 5억, 한일시멘트 허정섭 회장 3억, 벽산 김인득 회장 3억, 동방유량 신명수 회장 5억, 아세아시멘트 이동영 회장 5억, 대한전선 설원량 회장 15억, 동양화학 이희림 회장 3억, 삼부토건 조남욱 회장 5억, 부산파이프 이운형 회장 3억 등 총30개업체가 73회에 걸쳐서 2천7억5천만원을 주었다.
 
지난 1988년 11월 국회 일해재단 청문회에서 노무현 의원의 뇌물공여 질문에 정주영 회장은 “대통령과 같이 힘 있는 사람이 기업을 돕는 것을 원치 않는다. 시류에 순응한다는 의미는 힘 있는 사람으로부터 괴로움을 당하지 않기 위함”이라고 대답했다.
 
최근 박근혜, 최순실 뇌물사건 관련, 삼성 이재용 회장과 롯데 신동빈 회장의 재판과정을 지켜보면서 역사는 되풀이 되는 것인가에 대해 자문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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