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금융인맥⑥] 6공 말뿐인 금융자율인사
[한국의 금융인맥⑥] 6공 말뿐인 금융자율인사
  • 임권택 기자
  • 승인 2018.03.16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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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공의 금융인사를 한마디로 말하면 ‘緣의 인사’라고 부른다.
 
그만큼 6공의 인사행태를 보면 지연, 학연, 혈연 등 연고에 의한 인사가 바탕을 이뤘다.
 
6공의 금융인사의 특징으로 무엇보다도 TK의 집단화, 정부의 인사개입의 노골화로 요약된다.
 
재무장관이 바뀔 때마다 은행자율인사가 단골메뉴로 등장했고, 강조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80년대에 들어서면 금융의 자율화, 민영화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 근로자은행을 표방한 평화은행은 1992년 10월 은행업 인가를 취득해 같은 해 11월2일 영업을 개시했다.사진은 평화은행 광고
 
아울러 6공 은행인사원칙으로 은행장을 중임시키지 않겠다고 발표까지 했으나 일부 은행장은 중임을 용납했다.
 
특히 6공 금융인사를 보면, 편중인사가 5공대보다도 심해 졌으며 재무부 관료 출신들이 금융계 인사를 독차지 했다.
 
6공시기 첫해인 88년도 그리고 89년도 은행주총을 보면 비교적 은행자율인사가 됐으며 은행장의 자율권한이 어느 정도 반영된 주총이었다고 평가된다.
 
88년도에 은행장이 됐던 분들은 제일은행의 송보열 은행장, 신한은행의 김재윤 은행장 이다.
 
89년도에는 대부분 초임 은행 임원들은 중임이 자연스럽게 이뤄졌다. 다만 한국은행 이사 승진에 서열이 바뀌어 이사가 된 경우가 있어 당시, 노태우 대통령 경북고(32회) 친구의 덕을 봤을 것으로 추측했다.
 
90년대에는 은행 인사 제도에 새로운 변화가 생겼다. 다름 아닌 복수전무제 도입이었다.
 
당시 정부에서는 시중은행의 업무영역이 확대되어 한 사람의 전무를 가지고는 은행업무를 통괄하기에 힘들다는 이유로 복수전무제도를 도입했다.
 
당시 언론에서는 위인설관(爲人設官)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당시 전무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과정속에서 유언비언가 난무할 정도였다.
 
결과적으로 당시 감사, 상무였던 분들인 제일은행 이철수 전무, 신탁은행 김준협 전무, 조흥은행 김태두 전무, 상업은행 박태만 전무, 한일은행 윤순정 전무, 외환은행 홍희흠 전무가 선임됐다.
 
이들 대부분 경상도 출신들이다.
 
주총배경 설명이전에 당시의 금융정책을 살펴보자.
 
3공때의 경제성장 정책, 5공때의 안정적인 경제성장이라는 목표가 6공에서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금융정책 또한 일관성 부재라는 비판을 받는다.
 
6공은 6·29 선언을 통해 탄생된 배경을 안고 있다 보니 정치 경제적으로 다양한 사회적 욕구가 한꺼번에 분출된 시기이다.
 
6공 초기에는 각종 정책이 안정 위주의 정책이었으나 과거 정권의 반작용으로 각종 개혁정책이 우선시 됐다.
 
6공 출범 당시 거론되던 주요 정책으로는 금융실명제 실시, 토지공개념 도입, 재벌에 대한 여신 규제 등이 있었다. 특히 분당지역에 200만호 건설은 경제논리보다는 정치논리가 앞선 결과물이다.
 
UR협상 등 대외개방 압력도 두드러진 시기였다.
 
특히 대통령 공약사항이었던 은행인사의 자율성 보장은 후퇴했으며 투서난무 등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여기에다 대통령 공약의 하나인 한국은행 독립은 연기, 미뤄진 금융실명제, 금융기관 무더기 설립 등은 후에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된다.
 
이와 관련, 6공은 우리나라 금융기관을 대거 설립하여 후에 IMF원인 중 하나로 부상하게 된다.
 
6공하에서는 은행, 보험, 증권, 투신, 리스, 신용금고, 창업투자, 투자자문사 등 가릴 것 없이 80개 이상의 금융기관이 설립하게 된다.
 
은행의 경우 지방은행, 이북5도민을 위한 은행, 단자사로부터 전환한 은행, 노동자단체를 위한 온갖 명분으로 6개사가 늘어나 당시 은행이 19개사가 됐다.
 
증권업의 경우 기존 25개사에서 단자사로부터 5개사가 전환하고, 산업은행은 자회사가 신설되어 6개가 늘어났다.
 
투신사도 89년에 지역경제활성화와 증시육성이라는 명분으로 지방에 5개사가 설립되어 8개사로 늘어났다.
 
리스사의 경우, 당시 3년 내에 17개가 신설되어 총25개사에 달했다.
 
특히 90년 10월 ‘단기금융회사의 기능조정방안’과 92년 7월 ‘종합금융업 발전방안’이라는 것을 내놓으면서 후에 IMF 외환위기의 싹을 키우는 도화선이 된다.
 
단기금융회사의 기능조정방안에 따르면 일부 단자사를 증권사와 은행으로 전환시키고 잔류단자사는 단기금융시장에서 전문 중개기관으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때 지방단자사에 대해서는 희망하는 경우 종금사로 전환시킨다는 방침이다.
 
종금업발전방안은 서울에 합작 종금사를 2~3개 신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금융기관기관을 대거 신설하다보니 금융업간 업무영역 조정도 늦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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