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 신년사, 정부에 규제혁신 요구 일색…기업역할은 외면
재계 신년사, 정부에 규제혁신 요구 일색…기업역할은 외면
  • 황병우 기자
  • 승인 2018.12.28 1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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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상의, 경총, 전경련 각 회장들 신년사 통해 정부에 규제완화 주문…기업의 역할은 간략하게 언급 그쳐
 
▲ 지난해 7월 27일, 청와대 상춘재에서 열린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본준 LG 부회장, 권오준 포스코 회장, 금춘수 한화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박정원 두산 회장, 손경식 CJ 회장, 함영준 오뚜기 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재계가 새해를 앞두고 신년사를 통해 정부의 규제 혁신을 잇달아 요구했다. 그러나, 기업의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단 몇 줄로 간략하게 언급하거나, 전혀 다루지 않기도 했다. 
 
법과 제도의 변화를 정부에 요구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지만, 기업 스스로의 변화와 사회적인 역할에 대해서는 고민의 흔적이 그닥 보이지 않아 아쉽다는 의견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은 27일 각각 신년사를 발표하고 정부에 규제 개혁을 주문했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이날 발표한 2019년 신년사에서 "2019년에는 우리 기업을 둘러싼 법과 제도의 패러다임을 과감히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규제개혁 전도사'라는 별칭답게 "법·제도 같은 플랫폼을 시대 흐름에 맞게 고쳐야 한다"며, 이로써 "기업으로 하여금 경제·사회적 효용을 창출하는 시도가 활발히 일어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직면한 문제들에 대한 원인과 해법은 상당 부분 나와 있다"며 "폐쇄적 규제환경, 낮은 생산성, 미흡한 사회 안전망 등에 대한 해법을 실행에 옮겨 미래성장의 원천과 국민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부터 시대 흐름에 맞게 능동적인 변신을 이루겠다"며 기업들의 경제적 및 사회적 역할을 언급했다.
 
그는 "노동과 자본의 양적 투입을 늘리는 기존 방식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더는 맞지 않는다"며 "시장에 없는 새로운 가치를 남보다 먼저 창출하려면 개방의 폭은 넓히고, 융합의 문턱은 낮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회장은 "사회 안전망 강화 역시 반드시 필요한 국가 과제"라면서 "근로자들의 전직과 실직 지원, 소외 부문에 대한 배려 등을 적극 강화해 경제의 포용성을 살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성장은 기업 투자를 늘리고 국가 재정을 늘리는 데에도 기여할 것"이라며 "이는 복지 재원으로도 활용 가능한 만큼 분배 문제 해결에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낡은 규제 시스템은 혁신 기회를 막고, 이는 신산업 출현을 방해해 일자리 기회 창출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했다. 또 "취약한 사회안전망은 실직에 대한 공포를 키워 고용 경직성을 강화하고, 이는 노사 관계의 발전을 막는 원인이 된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사진=연합)  
 
손경식 경총 회장도 이날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새해에는 우리 기업들이 미래를 내다보며 보다 도전적으로 투자할 수 있도록 '기업의 기(氣) 살리기'에 힘을 모으는 한 해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전했다.
 
손 회장은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기업의 도전 의욕을 높이는 기업인에 대한 격려"라며, "최일선에서 국가 경제 발전을 이끌어 온 기업이 세계를 무대로 재도약할 때 일자리가 늘어날 수 있으며 소득분배 또한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 노동시장이 감당해 낼 수 있는 적정한 최저임금 수준에 대해서 고민하고, 최저임금 결정구조 개편과 구분 적용, 결정주기 확대 등 다양한 측면에서 합리적인 제도 개선이 이뤄지도록 적극적으로 건의하겠다" 말했다.
 
이어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산업현장의 충격이 완화할 수 있도록 탄력적·선택적 근로시간제 확대와 특별 연장근로 허용, 재량근로제 확대와 같은 현장 맞춤형 보완 입법의 조속한 마련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노동계를 중심으로 화두가 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과 노동기본권 관련 노사관계 법제 논의와 관련해서는 "노사 간 협상에서 힘의 균형을 회복함으로써 상생의 관계로 나아갈 수 있게 노동계를 설득해 진정한 공동체로서 함께 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손 회장은 "공정거래법과 상법 등 기업 경영을 위축시킬 수 있는 법 개정이 빠르게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기업의 과감한 투자와 경영 활동을 저해하지 않도록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라고 강조했다.
 
또한, "과도한 상속세 부담 문제로 기업하고자 하는 의지가 꺾이지 않도록 하겠다"며, "원활한 가업 상속으로 장기적인 안목의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일자리 창출에 기여할 수 있게 여건을 조성할 것"이라고 신년사를 마무리했다.
 
▲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7월 28일 오후 청와대 본관 로비에서 기업인들과 '칵테일 타임'을 갖고 있다. 권오현 삼성 부회장, SK 최태원 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 GS 허창수 회장, 현대중공업 최길선 회장, KT 황창규 회장, 대한항공 조원태 사장, 대한상의 박용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사진=청와대) 
 
허창수 전경련 회장 역시 이날 발표한 신년사를 통해 정부의 규제 개혁을 강하게 주문했다.
 
허 회장은 "한국경제의 새로운 도약을 위해 규제개혁은 선택이 아닌 생존의 문제"라며, "우리 경제를 이끌어갈 신성장 동력이 뚜렷하지 않은 상황에서 근본적인 체질개선 노력에 힘써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현재 한국경제는 중대한 기로에 서 있다"면서 "1990년대 일본처럼 장기 침체의 길로 들어설 수도 있고, 재도약을 위한 기반을 닦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를 위해 허 회장은 "최소한 외국에 있는 기업이 할 수 있는 것은 우리 기업도 할 수 있게 길을 터줘야 하고, 규제가 외국기업들과 경쟁하는 우리 기업에 부담이 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허 회장은 4차 산업혁명 등 새로운 형태의 산업에 대해서도 육성 필요성을 언급했다. 
 
그는 "세계 경제는 구글,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젊은 기업들이 주도하고 있으나 우리의 주력 산업은 대부분 마흔 살을 넘은 것들"이라며, "누구나 원하는 분야에서 쉽게 도전하고 창업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하며,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환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허 회장은 "새로운 기업가가 많이 나올 수 있도록 정부와 국민 여러분의 많은 응원을 부탁드린다"면서 "기업들도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최선을 다하는 한편 신성장 동력 확보에도 앞장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재계를 대표하는 인사들이 정부의 규제개혁 또는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내용의 신년사를 잇달아 밢표하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지난 2017년에 재계에서 발표한 신년사는 '사회적 책임과 역할'을 축소하는 등 당시 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인 '최순실 게이트' 후폭풍에 바짝 몸을 낮춘 모습이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사태를 앞둔 상황이다 보니, 사회적 가치, 상생, 소통, 책임경영 등의 단어를 많이 사용하는 등 기업의 사회적 역할을 강화하고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내용이 많았지만, 올해 신년사는 이에 비해서는 꽤 후퇴했다는 의견이다. 
 
향후 발표될 주요 기업들의 신년사에서도 기업 성장에 대한 의지, 위기상황 및 혁신에 대해서는 목소리를 높이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역찰에 대해서는 짤막하게 언급하거나 아예 입을 닫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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