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120년] 민족자본은행 '한성은행·대한천일은행' 설립①
[한국금융 120년] 민족자본은행 '한성은행·대한천일은행' 설립①
  • 임권택 기자
  • 승인 2019.02.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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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은 한국금융이 120년을 맞는 해이다. 120년 전에 1899년 지금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大韓天一銀行)이 설립된 해이다.

손태승 우리은행장은 1일 신년사를 통해 올해 창립 120주년을 맞은 우리은행이 역사적 사명감을 가지고 고객과 함께 새로운 미래를 열어갈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손 행장은 신년사에서 "우리은행 120년의 역사는 고객과 함께 만든 대한민국 금융의 역사"라며, "고객의 사랑에 보답하는 최고의 은행을 만들어가자"고 신년 다짐을 밝혔다.

대한천일은행은 '화폐융통(貨幣融通)은 상무흥왕(商務興旺)의 본(本)'이라는 창립 이념으로 설립된 민족금융기관이다. 우리은행은 이를 계승하여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사회, 은행, 직원 모두가 건강해지는 2019년을 만들어 가겠다는 신년 의지를 전했다.

이날 손태승 은행장을 비롯한 임원들은 우리은행의 전신인 대한천일은행의 기틀을 마련한 고종황제의 묘소(홍유릉)를 참배하여 우리은행의 힘찬 도약을 다짐하고 창립 120주년의 새 아침을 맞이했다.

이렇듯 올해는 한국금융에 있어 중요한 해이다. 올해는 근대금융 131년, 19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시작으로 한 한국금융사로는 71년을 맞는 해이다.

이에 본지에서는 근대금융에서 한국금융까지 면면이 이어온 우리은행 120주년을 기준으로 한국금융 발전사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1일 경기도 남양주 소재 홍유릉에서 우리은행의 120년 역사와 전통을 살려 1등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고 있다.(사진=우리은행)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1월1일 경기도 남양주 소재 홍유릉에서 우리은행의 120년 역사와 전통을 살려 1등 종합금융그룹으로 도약을 기원하는 제례를 올리고 있다.(사진=우리은행)

◇ 근대은행제도 도입, 1878년 일본 제일은행 부산지점이 효시

1978년에 재무부가 발간한 한국금융 30년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있어 근대적 은행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878년 6월 일본 제일은행(第一銀行) 부산지점 설치가 그 효시다.

그후  제일은행은 원산(1880년), 인천(1883년), 서울(1888년), 목포(1898년) 등에 지점 또는 출장소를 설립했다.

그 외에도 제18은행(1889년), 제58은행(1891년), 흥업은행(1907년) 등 일본계 은행이 우리나라에 속속 진출했다.

일본계 은행외에도 향항상해은행(香港上海銀行.1898년)의 인천대리점과 러시아 재정고문인 알렉시예프(K.Alexieff)에 의한 로한은행(露韓銀行.1898년)이 잠정 개점된 적 있으나 우리나라의 근대적 은행제도의 도입은 일본 제일은행에 의하여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들 일본은행의 국내진출은 한일간 외환거래를 통하여 양국의 교역증대 및 상거래의 원활화를 기한다는 명분하에 이루어졌으나 실제로는 일본의 대륙침탈을 위한 선도적 수단으로서의 금융자본의 진출이었다.

특히  일본계은행의 국내 진출을 통해 우리나라 상권를 지배하게 된 상황에 자극받은 우리나라 국민들은 민족자본에 의한 근대적 금융기관 설립을 염원한다.

◇ 1897년 한성은행, 1899년 대한천일은행 설립

1894년 갑오경장이후 일본계은행 국내 상권침탈에 자극받은 우리국민들은 조선은행(朝鮮銀行), 한흥은행(韓興銀行), 제국은행(帝國銀行) 등을 설립했으나 자본금 부족으로 1년도 안돼 폐점됐다. 

마침내 민족자본으로 1897년 한성은행(전조흥은행 전신)과 1899년 대한천일은행(우리은행전신), 1906년 한일은행(韓一銀行)이 설립되어 민족금융기관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외국자금이 필요한 시기에 한국 민족금융기관들은 일본의 제일은행자금을 융통하거나 정부자금을 보관하는 등 부대업무만을 주력하게 되자 정부는 대책을 세우게 된다.

정부는 1906년에 ‘은행조례’를 공표하여 한성은행에 10만원(10萬圓), 천일은행에 22만5천원(22萬5千圓)을 무상으로 지급하게 된다.

비로서 은행으로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어 정부는 1906년 산업발전을 위해 3월 '농공은행조례'를 통해 전국 각도에 농공은행이 설립된다.

또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령'에 의해 각 지역에 지방금융조합이 설립된다.  이 조합은 독일의 라이파이젠(F.W. Raifferisen)이 제창한 농촌신용조합을 우리나라 농촌에 도입한 것이다.

그후 지방금융조합은 1914년 5월 개정되어 도시에도 설립하게 되며 각도별 연합회도 구성했다.

특히, 1908년 8월에는 일제가 동양척식주식회사법(東洋拓殖株式會社法)을 만들어 공포하고 1909년 1월부터 동양척식주식회사가 영업을 개시했다.

이후 동양척식주식회사는 일제가 한국의 경제를 독점, 착취하기 위하여 한국내 설립한 국책회사로  일제의 한국농민 수탈의 선봉된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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