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매너-37] 와인, 어떻게 즐길 것인가?①
[비즈니스 매너-37] 와인, 어떻게 즐길 것인가?①
  • 신성대 동문선 사장
  • 승인 2019.03.25 10: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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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와인을 두고 대화를 즐기는 것이 아니라 와인 자체, 즉 마시고 취하는 게 목적이다. 무엇보다 성질 급한 한국인들은 대부분 몸에 좋다며 처음부터 레드와인으로 시작하기 일쑤다.

신성대 동문선 사장
신성대 동문선 사장

와인을 술로만 여기는 술꾼 기질 때문에 까짓 단돈 만 원짜리 샴페인은 거추장스런 상표딱지 쯤으로 여겨 생략한다. 글로벌 비즈니스 매너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아직도 술주정뱅이의 나라라 할 수 있다.

2015년 봄 영국의 천재감독 매튜 본의 《킹스맨》이 히트를 친 적이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각종 고급 소품들은 전 세계적으로 완판 되는 바람에 여화의 위력을 새삼 실감했습니다.

<아서왕과 원탁의 기사들>이란 영국 전설을 뼈대로 현대판 스파이액션물을 만든 이 영화는 배우들의 매너는 물론 영국식 고급 영어까지, 영국의 고품격 문화의 저력을 실감케 해주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역할과 구도, 코드명은 모두 ‘아서왕의 전설’에서 나오는 인물들과 일치시켜 놓았습니다.

《킹스맨》은 품격의 교과서 같은 영화여서 《바베트의 만찬》 《아웃 오브 아프리카》와 함께 매너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절대 빠트릴 수 없는 영화중의 하나입니다. 특히나 이 영화에선 명품 와인들이 소품으로 등장하는데 기실 그 와인들 속에 담겨진 풍자를 이해하지 못하면 영화를 반밖에 못 본 거나 다름없다 하겠습니다.

“Manners maketh man!”

킹스맨포스터
킹스맨포스터

맨 처음 주인공 해리 하트와 에그시가 마시는 <기네스> 흑맥주. 1755년에 아일랜드의 아서 기네스(Arthur Guinness)가 만든 맥주입니다. 그 술잔을 양키즘에 물든 영국 양아치 면상에 던짐으로써 본격적으로 영화를 시작합니다. 여기서는 ‘아서’란 이름이 중요합니다.

다음, 아르헨티나 산장에 납치된 아놀드 교수를 구하러 간 랜슬롯이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맛본 <달모어 62>는 명품 중의 명품 위스키입니다. 2002년 출시했을 당시 가격은 3만 9천 달러, 마지막으로 시장에서 거래된 것은 2011년 20만 달러(2억 2천만원)였으니 돈이 많더라도 희귀성 때문에 구하기 쉽지 않은 품목이지요.

아놀드 교수가 죽음의 공포 앞에서 반색을 하고, 죽이고 죽이는 와중에도 한방울도 흘리지 않고 악당 두목 발렌타인에게까지 전달될만한 이유가 되겠습니다.

한데 하필 왜 62년산일까요? <달모어 62>는 딱 12병밖에 생산되지 않은 위스키입니다. ‘최후의 만찬’의 열 두 제자와 열 두 명의 ‘원탁의 기사’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술이지요.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와인은 추도주 <나폴레옹 브랜디 1815>입니다. 역시나 빈티지 1815에 매튜 본 감독의 천재성이 돋보입니다. 1815년과 나폴레옹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 추도주에 숨겨진 매튜 본 감독의 의도를 알 수가 없습니다.

하필 왜 1815인가? 나폴레옹은 1821년 5월 5일 새벽 5시에 남대서양 절해고도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죽었지만, 실제 몰락은 1815년 6월 18일 워털루 전투 패배였기 때문입니다. 이 1815년을 기점으로 프랑스가 몰락하고 대영제국의 시대가 도래 하였지요.

와인으로 치열하게 신경전을 주고받는 장면도 압권입니다. 해리 하트가 발렌타인을 찾아갔을 때 맥도날드 햄버거와 함께 나온 술이 <샤토 라피트 로칠드 1945>입니다.

미국 양키즘을 상징하는 맥도날드 햄버거에 명품 와인을 함께 내놓으면서 잘난 척하는 영국 신사를 비꼰 것이지요. 게다가 하필 1945년산으로 현재 시중에서 4,5백만 원쯤 되는 고가 명품 와인입니다.

2차대전 종전 기념으로 나온 와인. 그러니까 1945년을 기점으로 영국의 시대가 가고 미국의 시대가 열렸음을 풍자한 것입니다.

그러자 이를 눈치 챈 해리 하트는 차라리 <트윙키>와 고급 디저트 와인 <샤토 디켐 1937>이면 좋았겠다며 쏘아부칩니다. 미국의 국민과자 <트윙키>는 속은 하얗고 겉은 진노란색으로 백인 행세하는 동양계 2세를 비꼬는 속어로도 쓰입니다.

돈자랑하며 거들먹거리는 흑인 발렌타인을 <트윙키>에 비유해 비하시킨 것입니다. <샤토 디켐 1937> 역시 4,5백만 원을 호가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공 에그시가 발렌타인과 그 악당들을 물리치고 스칸디나비아 공주를 구하러 갈 때 챙긴 축배주는 <멈> 샴페인입니다. <멈>은 F1 그랑프리 공식 샴페인으로 도전과 승리를 상징하는 술이니 영화의 마지막을 자축한 셈이죠. 추억의 명화 <카사블랑카>에서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를!”을 읊조리던 험프리 보가트 손에 <멈> 샴페인 잔이 들려 있었지요.

그리고 바로 이 장면에서 매튜 본 감독의 발칙한 장난기가 발동해 그 암시를 눈치 챈 관객으로 하여금 포복절도하게 만듭니다. 바로 공주가 갇힌 감옥 문의 비밀번호인데, 역시 왜 하고많은 숫자 중에서 하필 2625일까요?

에그시가 그 직전에 세상을 구하고 난 다음 공주를 꺼내주겠다며 그때 보답으로 키스를 해달라고 하자, 공주는 키스 뿐 아니라 ‘뒤’까지 약속했더랬지요. 그 ‘뒤(anal)’가 핸드폰의 2625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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