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매너- 41] 식탐(食貪)이 아니라 식담(食談)으로 우아하게
[비즈니스 매너- 41] 식탐(食貪)이 아니라 식담(食談)으로 우아하게
  • 신성대 동문선 사장
  • 승인 2019.05.07 15:0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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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격에선 동서양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테이블 매너 역시 마찬가지. 저 사람과 함께 식사하면 즐겁겠다, 함께 식사하고 싶은 사람, 어떤 분야 누구와도 저녁 먹으면서 서너 시간 즐겁게 담소를 나눌 만한 교양과 매너를 갖춘 사람이라면 글로벌 주류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 제대로 배워야 제대로 산다. 사람답게 산다.

신성대 동문선 사장
신성대 동문선 사장

베트남 독립의 아버지 호찌민(胡志明, 1890-1969)은 1911년 6월 프랑스 기선 아미랄 라투셰-트레빌 호의 주방 보조로 고용되어 유럽으로 건너갔습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지배국 프랑스로 유학을 가던 청년은 배 안에서 수시로 펼쳐지는 프랑스 식탁문화를 접하면서 후일 세계 최강대국 프랑스, 미국과 대항해 이길 상승무공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나갔을 것입니다.

그리스의 선박왕 오나시스(1906-1975)는 젊은 시절 꽤나 가난했다고 합니다. 그는 하루하루 벌어 끼니를 굶어 가며 돈을 모았는데,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부자들만 다니는 고급식당으로 갔습니다.

당연히 행색과 신분이 너무 초라해서 출입을 거부당했습니다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계속 찾아가 졸랐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부자가 오나시스에게 “자네는 왜 힘들게 번 돈을 한 끼 식사에 다 바치려 하는가?”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오나시스는 “저는 당신들의 생활이 부럽습니다. 그래서 당신들의 생활 방식과 문화를 배우고 싶습니다.”고 하자 그 부자가 “그래 그렇다면 어디 한번 우리들의 방식을 배워보게.”하며 허락했습니다.

그리하여 식탁매너에서부터 상류층 문화를 배워 나가 그들과 친구가 된 오나시스는 그들로부터 일감을 받아내어 결국에는 세계적인 대부호가 되었습니다.

식불언에 담긴 아주 불편한 진실

장시간 디너가 끝나고 배웅을 하면서 주인 부부 왈 “그렇게들 배가 고팠었어요? 그래서 남은 음식 몇 가지를 좀 담아봤으니 가져가세요.” 어느 미식문화 전문가의 프랑스 유학 시절 회고담입니다.

옆집 프랑스인 부부가 그들의 친구들과 함께 자기까지 집으로 초대해 벌어진 일이라 합니다. 아닌 밤중에 '배고픈 동양 유학생'으로 전락하고 만 이 해프닝의 발단은 자기 생각에는 한국식 식사예절의 기본인 '식사 중에는 말하지 말라(食不言)'는 공자님의 가르침을 너무 잘 지켰다는 데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인 부부 생각에는 저 친구가 그동안 얼마나 허기졌으면 그토록 긴 식사시간 내내 대화도 없이 음식만 조용히 먹느냐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인의 식불언이란 조선시대, 즉 할아버지, 아버지, 아들, 손자 그룹, 하인 하녀, 행랑채 손님, 노비 등 최소한 7 단계의 신분으로 구성된 대가족제도에서 총인원수에 비해 식기와 밥상 및 반찬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 하에서 불가피하게 같은 반찬의 밥상을(일인당 밥과 국, 수저만 바뀌는) 최소한 5회 이상 돌림상하는 과정에서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궁여지책의 편법이었습니다.

정부 관공서도 실정은 마찬가지. 점심 때 각자가 15분 남짓 재빨리 번갈아 먹었는데 수저와 밥그릇, 국그릇 씻고 퍼담는 시간 또한 만만치 않아 경복궁 근정전의 경우 당상관, 당하관, 주사 서기급, 하위직, 여직원, 일용잡급, 민원실 손님, 노비 그룹, 미결수 등 대략 15단계의 식사 신분 그룹별 식사에 따라, 전체로는 3~4시간이 걸려 오후 업무가 자주 마비되는 등 폐해가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문제로 선조 시절 이율곡 선생이 시정할 것을 상소하였으나 재정 현실을 감당할 수 없어 유야무야 되었다는 기록도 전해오고 있습니다.

여기에다 배고픈 역사의 굴곡을 지내온 어른들은 하나같이 “농부의 정성을 생각해, 밥 한 톨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라!”고 자식들을 가르쳤습니다.

문제는 정작 21세기 현대에 와서입니다. 수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해외로 공부하러 나가지만 이들이 목적하는 바는 영어 혹은 현지어 습득과 학위 취득입니다.

하지만 모두 거기까지입니다. 그 목적한 바를 이루게 되면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오지요. 유학한 현지에서 자리를 잡고 그들과 함께 사는 이는 불과 몇 되지 않습니다. 한국인을 넘어 세계인으로 살아갈 용기도 능력도 없는 거지요.

세계를 제패하러 나간 게 아니라 한국에서 행세하기 위한 영문 증(證)이 필요했던 겁니다.[파이낸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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