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 유출 피해 5년간 23조원 … 한경협 "FDI 안보심사 기준 강화해야"

핵심 전략기술 해외 유출 5년간 110건, 반도체(38%) 등 전략산업에 집중 소수 지분 투자 등 FDI 통한 기술유출 증가→美·EU·日 등 주요국, FDI 심사 강화 안보심사 대상 확대, 안보심사 지분율 기준 하향 등 FDI 안보심사 강화해야

2026-01-14     임권택 기자
사진=파이낸셜신문DB

전 세계적인 첨단기술 패권경쟁 속에서 주요국은 핵심기술 유출 방지를 위해 외국인투자(FDI) 안보심사를 강화하고 있다.

한국 역시 외국인투자 안보심사 체계를 강화하며 전략기술 유출, 제3국의 우회투자·우회수출 기지화, 공급망 교란 등 안보·산업 위험을 예방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14일 한국경제인협회(이하 한경협)는 조수정 고려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게 의뢰한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제도 개선 방안 검토’ 보고서를 통해 외국인 투자 안보심사 제도 개선 과제를 이같이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국내 1,000대 기업의 연구개발비가 83조6천억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하는 등 최근 첨단산업에 대한 민간 투자가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동시에 대규모 투자로 확보한 핵심 전략기술이 해외로 유출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기술보호의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다.

최근 5년간(2020~2025년 6월) 한국의 해외 유출 산업기술은 110건으로 그 중 국가핵심기술은 33건에 달한다. 이로 인한 산업계 피해 규모는 약 23조2천700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기술 유출은 특히 반도체(38%), 디스플레이(20%), 전기전자(8%) 등 국가 전략산업에 집중됐다.

기술 유출 방식도 과거 단순 인력 스카우트 중심에서 벗어나, 합작법인(JV), 소수지분 투자, 해외 R&D센터 설립 등 투자 구조를 활용한 방식으로 진화하고 있다.

외국인투자가 기술·데이터·핵심 인프라 확보의 주요 통로로 부상하면서, 미국·EU·일본 등 주요국은 투자 단계에서의 안보 검증을 강화하고 있다. 반도체, AI, 바이오 등 전략기술 보호를 위해 투자 심사 범위를 단순 지분 취득 통제는 물론 기술·데이터 접근 차단 등으로 확대하는 것이 특징이다.

전 세계 FDI의 70%가 안보심사 도입 국가에 집중되며, FDI 안보심사는 글로벌 기술·산업 패권을 좌우하는 핵심 통제장치로 부상(UNCTAD, ‘World Investment Report 2025’)하고 있다.

미국은 '외국인투자심사현대화법(FIRRMA, 2018년 제정)'을 통해 외국인투자위원회(CFIUS)의 권한을 확대했다. 그 결과, M&A는 물론 TID 기업의 소수지분 확보, 군사·핵심 인프라 인근 부동산 취득까지 외국인투자 심사대상에 포함됐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린필드(국외자본이 용지를 직접 매입하고 공장이나 사업장을 새로 짓는 방식의 투자) 투자까지 안보 심사 범위에 포함하는 방향을 공식화해, 외국인투자 통제를 전면 강화하는 기조를 분명히 했다.

EU는 2023년 ‘경제안보전략’에서 외국인투자 안보 심사를 핵심 정책수단으로 채택했다. 이어, 2024년 발표한 '외국인투자심사규정(안)'에서는 그린필드·간접투자 포함, 미디어·핵심 원자재 등 전략산업으로의 심사 대상 확대, 27개 회원국의 제도 도입 의무화 추진 등을 제시했다.

일본은 지난해부터 악의적 사이버 활동, 민감 정보 접근, 제3국 우회투자 가능성이 있는 투자자를 ‘특정외국인투자자’로 분류하여 별도 규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CFIUS 모델을 참고하여 안보 중심의 심사기구 도입을 검토 중이다.

최근 미국이 동맹·파트너국과의 협의에서 외국인투자심사 강화 공조를 공식 의제로 포함하면서, 이 흐름은 전 세계로 확산되고 있다. 따라서, 투자안보 체계가 미흡한 국가는 글로벌 공급망에서 소외되거나, 기술유출·우회투자 경로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

한국은 심사 지분요건(외국인 지분 50% 이상 취득), 심사 대상(그린필드 투자 등 제외) 등 외국인투자 안보심사제도의 적용 범위가 주요국에 비해 좁다. 보고서는 최근 국제적 흐름을 감안하여, 외국인투자 안보심사 체계를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보고서는 전략산업에 대한 안전망 구축을 위해 심사대상 확대, 경영권 취득 기준 하향, 그린필드 투자 규율 등 4대 정책과제를 제안했다. 한편, 안보심사 강화가 전략적 제휴·기술 협력 목적의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제도 운용의 균형이 중요함을 강조했다.

한경협

먼저, 한국은 외국인투자 안보심의 대상이 주요국에 비해 제한적이다. 이에, 데이터·핵심 인프라·공급망·광물·디지털 기반 등 국가 경제안보와 직결되는 분야로 심사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또 미국·EU·일본은 첨단기술·데이터 분야 대해 소수(1%·10%) 지분 취득에 대해서도 사전 심사를 적용하고 있다. 해외 자본이 소수 지분 확보 후, 기밀 정보에 접근하거나 우회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도 현행 안보 심사 대상 기준(지분율 50%)을 하향하거나, 경영권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소를 심사 대상에 포함하도록 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아우러, 한국은 군사·문화·생태 보호 등 전략지역에 대한 토지 취득 규제를 제외하고는 외국기업의 그린필드 투자(신규 법인 설립·시설구축 등) 시, 별도의 안보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

반면 호주·캐나다는 그린필드 투자를 심사 대상에 포함하고 있으며, 중국도 2021년부터 의무 심사를 시행하고 있다. 이에 우리도 잠재적 안보 영향을 고려하여 그린필드 투자에 대한 안보심사 적용 여부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현행법상 외국인이 기존에 보유한 한국 법인(자회사)을 경유해 다른 국내 기업에 투자하는 간접지배 투자도 안보심사 범위에서 제외된다. 이 경우, 기존에 보유한 한국 법인이 ‘중간 지주회사’ 역할을 하며, 실질적 지배력을 확보하는 우회경로로 작동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간접지배 형태의 투자 역시 외국인투자 안보심의 범위에 포함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상호 한경협 경제산업본부장은 “산업·기술 협력 가능성을 제한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한국이 글로벌 공급망에서 약한 고리가 되지 않도록 FDI 안보심사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며 “국내 기업의 글로벌 파트너십과 공급망 연계가 위축되지 않도록 정교한 제도 운영 또한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