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인도 경제를 중국 경제와 달리 봐야 할 8가지 이유’
LG경제연구원 ‘인도 경제를 중국 경제와 달리 봐야 할 8가지 이유’
  • 홍석빈 책임연구원
  • 승인 2011.02.01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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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를 코끼리에 비유하지만, 실제 인도경제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실체를 파악하기 어렵다. 최근 국제투자은행들마다 인도를 가까운 미래 중국경제를 위협할 유일 개도국으로 묘사한다. 그러나 인도에서 비즈니스 활동을 하는 기업인들 중에도 인도의 미래를 보는 시각은 천차만별이다.

1. ‘중국’이라는 거울

흔히 ‘next china’라고 말한다. 13억이 넘는 거대한 인구가 지닌 잠재력을 바탕으로 쾌속성장을 해온 중국의 전철을 그대로 밟을 것이라는 기대도 많다. 실제 최근 수년 새 연 8~9%대의 성장세를 구가하면서 잠재력의 일부를 세상에 드러낸 인도는 인구구조나, 외국자본의 관심, 그리고 정부의 성장정책 등을 종합해볼 때 개혁개방 초기의 중국과 가장 닮은 나라라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나라 경제의 외피를 벗겨내고 내부를 들여다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기원 수천 년 전 수천㎞ 떨어진 황허(黃河)와 인더스 강가에서 독자적인 문명세력을 일군 데서 알 수 있지만, 두 문명의 적자(適者)를 자임하는 두 나라는 유사점보다 상이점이 훨씬 많은 것이 오히려 자연스럽다. 경제구조는 물론 권력구조, 사회구조, 심지어 정신세계에서조차 뚜렷한 차이가 드러난다.

next china 라는 표현에는 은연 중 중국보다 개혁개방의 시작만 늦었을 뿐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란 예상이 숨어있다. 광둥성의 선전(深?)이 그랬듯 바닷가 한적한 어촌에 외국기업과 저렴한 노동인구가 몰려들고 공장설비를 세우는 망치소리가 곳곳에서 울려 퍼지며, 상하이 푸동(浦東) 지구가 불과 10년 만에 고층 빌딩숲을 이뤘듯 뭄바이 인근의 첨단 기업단지가 마천루로 변모해갈 것이라는 그런 기대들이다. 그러나 성장의 초기 조건이 다르면, 아무리 같은 성장전략을 취하더라도 성과는 달라지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한국과 대만은 비슷한 물적 토대와 정치적 리더십, 비슷한 수출주도형 성장방식을 채택했지만, 현재의 경제 산업구조는 크게 달라졌다. 하물며 인도는 ‘문명의 라이벌’인 중국을 캐치 업 하겠다는 성취 동기만 드러낼 뿐, 초기 조건부터 성장전략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큰 상이성을 보이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이성은 인도 경제의 성장과정과 미래 모습을 중국의 그것과는 크게 다른 인도 고유의 것으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렇더라도 인도경제의 속살을 살펴볼 때 중국의 경험은 매우 유용한 ‘보완재’로 작용할 수 있다. 개혁개방이 30년의 성상(星霜)을 겪는 동안 중국경제가 당면한 도전과 그에 대한 대응, 그 결과로서의 중국의 변화는 비교적 세세하게 외부에 공개됐다. 따라서 인도 경제 및 사회를 내재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기보다 여러 각도에서 중국이란 ‘거울’과 비교함으로써 보다 수월하게 인도의 향후 성장과정에 대한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

본고에서는 이러한 배경에서 인도경제의 향후 성장과정이 중국의 전철과 다를 수밖에 없는 8가지 배경요인을 찾아보았다. 가장 먼저 경제 운용체제에 관련된 물적 소유관계나 정치적 리더십을 비교해보고, 이어 중국이나 인도 같은 대국경제에서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중앙과 지방정부간 관계를 들여다봤다.

거대인구를 거느린 개도국의 성장과정에서 중요하게 나타나는 인구 보너스효과를 살펴보기 위해 양국의 인구구조를 비교해보고, 노동이동성을 제약하는 사회제도 및 인습의 차이도 살펴봤다. 이어 고도성장의 기폭제 역할을 하는 자본투자의 추이를 살펴보고, 외국자본 및 토착자본의 기여를 살펴본다. 화상(華商)과 인상(印商)이란 수천 년에 걸친 기업가 dna가 현대 기업인들에게 어떻게 뿌리를 내려 산업계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간략하게 살핀다.

중국의 고도성장엔 일본이나 한국 대만 같은 인접 산업 강국들과의 국제 분업이 큰 영향을 미쳤다. 아울러 미국 유럽 등 선진국 시장은 중국이 수출주도형 성장을 오래도록 지속할 수 있었던 훌륭한 토양이 됐다. 그러나 중국경제의 대국화가 결과적으로 글로벌 불균형을 심화시킨 지금 인도가 비슷한 전략으로 성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인도가 처한 글로벌 통상환경도 중국의 그것과는 크게 다를 것이다.

2. 인도와 중국의 상이점 분석

중국의 개혁개방 실험은 1978년 11월 공산당 3중전회(中全會)에서 시작됐다. 소비에트(soviet)식 계획경제를 사회주의의 핵심요소로 파악했던 보수파들에게 덩샤오핑(鄧小平)은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결코 시장 메커니즘을 배척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덩의 선언 이후 시장의 역할이 점차 확대되기 시작, 1984년 ‘사회주의 상품경제’란 개념이 등장했고 결국 1992년 14차 당 대회에서 ‘사회주의시장경제 건설’이 명확한 개혁목표로 제시됐다.

지난 30여 년 중국 사회주의는 역대 어느 왕조도 해결 못한 ‘13억 인민의 먹는 문제를 해결하면서’ 탄탄해진 인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더욱 유연해졌다. 국가가 담당했던 자원분배 기능을 시장메커니즘에 넘기는 가격개혁이 단계별·분야별로 확대됐고, 정부 기구가 직접 관장했던 산하 기업 경영도 소유와 경영의 분리 원칙을 적용해 자율화시켰다. 금융부문도 중국인민은행의 주요 기능을 나눠 몇 개의 주식제 상업은행으로 전환시켰다.

심지어 장쩌민(江澤民) 총서기 시절엔 신진 경제세력으로 부상한 자본가 계급을 공산당에 입당시키는 혁명적 조치도 취했다(2002년). 선진 생산력을 대변하는 자본가 계급을 공산당이 대표해야 하는 3개 그룹에 포함시킴으로써 노동자 농민이 주축을 이뤘던 중국 공산당은 더욱 외연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 사회주의가 포기하지 않는 대원칙은 공유제(共有制)이다.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토지나 국가기간 산업에 종사하는 핵심기업은 국가소유나 공동소유(集體所有)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고 있다.

중국 사회주의의 또 다른 특징은 경제적으로는 실용주의 노선을 추종해 왔지만, 정치적으로는 ‘민주집중제’와 공산당 영도의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공산당 영도의 원칙은 당의 핵심 지도자들이 국가 각급 행정기구의 영도자급 지위를 장악, 혹은 겸임함으로써 관철되고 있는데, 이에 따라 중국 경제는 공산당의 경제철학 및 정책운용에 전적으로 좌우되고 있다.

이 같은 공산당 일당독재 체제는 중국 경제가 저개발국에서 급속하게 경제규모를 키우는 과정에서 자원을 동원하고 배분하는 데 신속성과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핵심 배경이 됐다. g2급 경제로 성장한 지금에도 국가가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국유기업들은 거시경제의 고용, 투자 등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글로벌금융위기의 조기 극복 과정에서 정부 정책이 즉각적으로 경제 각 부분에 반영돼 효과를 발휘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러한 배경에서이다.

반면 인도는 무갈(mughul) 왕국의 뒤를 이은 영국의 식민통치기에 들어 생산수단의 사적소유에 기반한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유지해 왔다. 흥미로운 것은 중국 공산당의 개혁이 사회주의에 시장 메커니즘을 접목하는 쪽이었던 반면, 인도는 독립초기 식민지 유산을 척결하는 과정에서 국가가 경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소위 ‘허가경제(license raj)’ 체제로 가닥을 잡았다는 점이다. 이는 식민지 수탈에 기여했던 자본가 세력에 대한 반동으로서 정권을 장악한 초대 수상 네루(jawaharlal nehru)와 집권 국민의회당의 정치경제적 성향과 관련이 깊다.

명문가 출신의 영국 유학파였지만, 네루는 부농, 산업자본가 등 식민지 기득권세력과 궤를 달리했다. 독립을 전후해 네루는 인도가 나가야 할 길로 ‘매판자본을 혁파하고 근대화 된 산업입국’을 국정방향으로 제시했다. 당시 국정지표였던 네루적 합의(nehruvian consensus)는 탈종교주의와 정치민주주의와 함께 옛 소련식 계획통제경제를 주창했다.

인도 정부의 경제에 대한 계획과 통제는 imf 구제금융을 받고 개혁개방 노선으로의 전환을 선언한 1991년까지 지속됐다. 그 사이 각종 인·허가권을 틀어쥔 관료 및 공공부문의 영향력이 절대적으로 비대해졌다. 개혁개방이 시작된 지 19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인도 고용시장(등록부문 기준)에서 공공부문 비중이 민간부문의 2배를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1991년 개혁개방 노선으로 전환을 표명한 이래 인도 허가경제는 서서히 완화돼 점차 자유시장 경제체제 본연의 모습을 되찾아가고 있다. 정치 리더십에 있어 실용주의 개방세력이 주축이 된 현 정부가 재집권에 성공했으며, 경제에 있어서도 민간 부문의 성장기여도가 높아지는 가운데 일부 국유기업 민영화가 진행 중이다. 공공부문 비중이 높았던 고용시장도 비등록 부문까지 포함시킬 경우 민간고용이 공공부문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중앙의 통치권력을 일정 범위 내에서 지방 자치단위에 이양하는 분권형태가 ‘자치적분권’이라면, 중국의 지방분권은 중앙 행정권력을 지방 행정기관에 위임하는 형태의 ‘행정적’ 분권에 가깝다.

중국 헌법은 중앙의 통일적인 지도에 따라 지방의 주동성과 적극성을 충분히 발휘하게 한다는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이 같은 원칙에 따라 각 소수민족이 거주하는 지역은 구역자치가 허용돼 있으며, 지방 각급 인민정부는 중앙이 정한 국정운영 방침 내에서 지방적 특성에 맞는 구체적인 집행계획을 수립,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각급 행정기관의 주요 간부 대부분이 공산당원으로 구성된 만큼 공산당이 국가의 일체 행정사무를 지도한다는 중국 사회주의의 특징은 지방 말단 행정단위까지 예외가 거의 없다.

개혁개방 초기엔 선부론(先富論)에 입각한 불균등 성장을 방조하면서 지방의 이기주의는 ‘필요악’처럼 용인될 수밖에 없었다. 성장 잠재력이 풍부한 지방의 정치엘리트의 지지를 얻기 위해선, 상당 폭의 권력이양이 불가피했던 것이다. 또 각 지역경제 활성화는 해당 지역 사정에 정통한 당 간부들이 적극적으로 비교우위를 찾아내 활용할 때만이 가능한 것이기도 했다. 중국식 제후경제(諸侯經濟)는 이러한 배경에서 나타났다. ‘중앙이 정책을 내세우면, 지방은 대책을 강구한다(上有政策下有對策)’는 중국 속담도 지방 이기주의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제후경제는 그러나 1994년 분세제(分稅制) 개혁으로 결정적 고비를 맞는다. 최대 조세수입원이었던 부가가치세(增置稅)의 75%를 중앙 재정으로 편입시킴으로써 중앙이 지방보다 재정파워 면에서 우위를 확고히 다지게 된 것이다. 중앙정부는 더욱 세진 돈줄을 바탕으로 지역격차 해소를 위한 재분배 정책(낙후지역 개발계획)을 실시하고 있고, 이러한 흐름은 분배개혁을 표방하는 12차 5개년 규획에서 더욱 강화될 것이다.

재정파워 외에도 교통, 통신 인프라의 전국 단위 구축, 금융권력의 중앙 집중화경향도 중앙정부의 파워를 키우는 배경이 되고 있다. 중국경제가 글로벌 경제 흐름에 깊숙이 편입되면서, 지방정부의 이기주의는 갈수록 타당성을 잃어가는 모양새이다.

현대의 인도는 중국에 비해 지방분권과 자율성이 더 센 편이다. 과거 네루 정권이 집권했던 1964년까지만 해도 일당 독재는 아니었지만 인도 중앙정부의 파워가지방 정부를 압도했던 적이 있었다. 집권당이자 거대 유일정당이었던 국민의회당의정파들이 독립운동을 전개했던 각 세력의 연합체적 성격을 띠면서 네루의 권위를 인정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러나 네루 사후 제 정파는 이합집산을 거듭, 1970, 1980년대 들어 종교, 인종, 카스트(계급) 등에 기반한 다당제 지역기반 세력으로 재편됐다. 그 결과 지금은 지방정부의 권한이 크게 신장됐다. 예를 들어 세제(稅制)를 살펴보자.

중앙이 조세항목의 세율을 정해 국가적으로 일관되게 적용하는 중국과 달리 인도 지방정부는 조례를 통해 적용세율에 차등을 둘 수 있다. 인도의 외자기업들에게는 큰 불편사항 중 하나가 아닐 수 없다. 2007년에야 세율통일을 위한 입법절차가 진행돼 상품 및 서비스세 등 일부 부가세의 경우 단일세제(gst, goods andservice tax)로 통합하는 성과를 이루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소득세, 법인세, 관세, 배당세 등 여러 세목에서 지방간 격차가 여전하다.

인도 지방정부의 자율성은 재정면에서도 가늠해 볼 수 있다. 2000년대 들어 10년간 중국 정부부문의 수입 중 중앙의 비중이 과반을 상회하고, 지방정부에 대한 보조금 비중도 한때 30%를 넘었다. 반면 인도는 정부수입 중 중앙정부수입 비중이 30%대에 그치고, 지방교부금에서도 15~20%수준에 머물러 있다. 재정 파워가 약한 중앙정부가 지방권력에 대해 강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지난 60년 동안 중국의 인구정책은 극단적으로 냉탕과 열탕을 오갔다. 해방전쟁 후 마오저둥(毛澤東)은 ‘사람이 많을수록 역량이 커진다(人多力量大)’란 슬로건 아래 출산장려 운동을 펼쳤다. 아이를 5명 이상 낳은 어머니는 ‘영광엄마’, 10명 이상 낳으면 ‘영웅’ 호칭을 부여했다. 노동력을 늘리는 것이 시급했기 때문이다. 이때의 베이비 붐 세대가 결과적으로 80년대 본격화된 개혁개방을 이끌었던 노동계급이 됐다.

‘인구가 많아지니 걱정도 늘어나는 법이다’. 1970년대 들어서자 흐름이 뒤바뀌었다. 당시 증가속도를 방치할 경우 2000년 중국 인구는 수용한계인 7억 명을 돌파해15억 명에 이른다는 언론보도가 쏟아졌다. 결국 1980년 1자녀 정책이 국책으로 자리 잡아 강도 높은 산아제한 정책을 펼치게 된다. 중국 언론들은 이 정책으로 중국의 빈곤문제는 물론 지구촌의 자원부족이나 환경훼손 등에도 상당한 긍정적 효과가 있었다고 자평하지만, 최근 학자들을 중심으로 1자녀 정책을 수정하거나 폐기해야 한다는 주장이 점차 세를 얻고 있다.

인구정책이 극단을 오가면서, 중국의 인구구조는 매우 기형적으로 변모했다. 가령 1980년에 독생자(獨生子)로 태어난 남성이 같은 독생자 여성을 만나 아이를 낳았다면, 이 부부의 아이는 부모, 부모의 양가 부모 등 모두 6명의 생계를 책임지는 부담을 안게 된다. 국민경제적으로 낮은 연령층 인민이 한 두 세대 위의 인민 생계를 책임지게 되는데, 이는 경제성장 잠재력을 갉아 먹는 중대한 위협요인이 될 수밖에 없다. 현 추계라면, 중국은 2010년대 초중반 고령화의 영향으로 부양인구 비율이 상승세로 돌아설 전망이다. 마오 시대가 창출했던 인구 보너스가 종료된다면, 노동의 희귀성도 더욱 높아질 것이고 노동비용 증가는 불가피해질 것이다.

국제 경제전망기관은 이 점에서 인도의 고성장 가능성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본격적으로 ‘인구 보너스’ 효과를 누리기 시작할 것이란 기대다. 현 추세라면 인도의 경제활동인구 수는 2025년경 중국을 앞지를 것으로 전망된다. 인구증가세가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면, 전체 인구수에 있어서도 2027년 중국을 넘어서게 된다. 인도정부는 현재 주소지 관리, 세원관리, 교육 의료 등 복지 서비스 제공을 원활히 하기 위해 전자주민증(unique id) 카드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연말부터 시행해온 전국 인구센서스 결과는 올 상반기 중 결과가 나온다. 2001년 센서스 이후 농촌과 도시 빈민지구 등에서 태어난 인구 중 30% 정도의 신생인구가 한국의 주민등록증에 해당하는 pio(persons of indian origin) 카드 등록을 하지 않았던 점을 감안한다면, 2010년 센서스 총계가 15억 명에 달할 것이란 추정도 나온다. 25세 이하 인구 비중이 53%에 달하고 지난 해 추정 인구증가율이 중국의 세 배에 이르는 1.5%인 만큼 이 같은 추론도 무리는 아니다.

인도의 부양인구 비중은 현재 55.6%에서 2050년경 42.4%로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다. 부양비의 감소는 경제의 성장여력을 높인다는 점에서 고성장에 매우 유리하다. 생산가능인구 비율의 상승은 총저축률의 증가를 가져오고, 이는 투자확대로 이어져 국가경제의생산력 증가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인구증가에 따른 수요 측면의 부정적 결과들을 무시할 수 없지만, 과거 인도의 인구증가에 대한 비관적 전망(onus)은 최근 장밋빛(bonus)으로 바뀌는 단계에 있다.

중국의 노동 이동이 호구제 등 사회제도에 의해 통제되었던 데 비해 인도는 카스트라는 전통 관습이 자유로운 노동이동에 제한을 뒀다. 중국은 계획경제 시절, 노동투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봉건적 신분질서를 대대적으로 타파했다. 여성근로를 장려하고, 이를 위해 탁아시설을 대대적으로 설립한 것이 대표적 사례이다. 종교를 아편으로 간주했으니, 종교적인 터부도 중국 노동시장에선 작동하지 못한다.

인도는 다르다. 1950년 인도헌법은 카스트에 의한 차별금지를 명문화했지만 그 후 오랫동안 신분은 개인의 사회경제적 활동범위를 제약해 왔다. 인도 카스트는 익히 잘 알려진 4개의 대표적 계급범주를 의미하는 바르나(varna)와 여기서 각 범주별로 수십, 수백 개씩 갈라지는 생업, 종교, 언어 등과 복잡하게 연관된 자띠(jati)로 세분화돼 있다.

카스트는 왕정이나 공화정 등 정치권력이 삶을 해결해 주지 못하는 사람들의 의식세계를 규율함으로써 사회적 위계질서를 유지하게 하는 기제로 작용했다. 수 천년 동안 ‘삶의 나침반’으로서 작용해오면서 카스트적 규제는 오늘날 노동 이동성을 크게 제한하는 요인으로 탈바꿈했다. 예를 들어 중국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은 46%에 이르지만, 인도의 경우 20% 내외에 그치고 있다.

언어와 종교도 양국 노동 이동성에 상반된 영향을 미쳤다. 중국은 노동력의 질적 차이가 지역에 따라 크게 나타나지 않는다. 공산당 정부가 일찌감치 중국 표준어인 보통화(普通話)를 전국 단위로 의무교육화함에 따라 인적 자원의 균질화에 비교적 성과를 낸 것이다.

반면 인도는 공용어만 해도 2개의 전국 공용어(힌두어, 영어)에 인종 및 민족에 따라 별도 공인된 22개 지방 공용어가 따로 있다. 여기에 종교적 편향마저 가세돼 인도 시장은 거의 독립적인 최소 4~5개의 상권으로 쪼개진다. 실제 언어 사용의 불편 때문에 인도 북부의 인도인 노동력이 반도 남단의 다른 경제권으로 옮겨 일자리를 찾는 게 쉽지 않다. 노동시장의 왜곡현상이 심하단 뜻이다. 당연히 외국기업들의 진출도 인도가 아닌, 인도 특정지역에 초점을 맞추고 실행돼야 한다.

중국 노동이동성을 가장 크게 제약했던 호구제도도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농민들의 도시 호구취득에 제한을 가하는 규제는 해당 도시 이주노동의 기회비용을 상승시키게 마련이다. 도시호구가 없을 경우 교육비, 의료비 등에서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연해지역 산업단지 내 농민공 부족현상(民工荒)이 심각해진 것도 이와 관련이 깊다. 급기야 지난해 초 선전지역외국기업에 파업이 벌어지는 등 연해지역 임금 및 복지수준은 중요한 노사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그러나 지난해 국무원 산하 정책연구기관이 호구제 개혁의 가이드라인을 ‘낮은 도시문턱, 점진적 복리혜택(低門檻, 漸進性)’으로 정리했고, 이에 앞서 시작된 스촨성의 청두(成都)와 총칭(重慶)시의 실험적 호구전환 작업이 올해엔 더욱 탄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도시 인프라가 급속히 확충될 수는 없는 만큼 농업호구자의 비농업 호구 전환이 전면적으로 신속하게 이뤄지긴 어려울 것이다.

노동이동성이 크게 제약 받는 인도이지만, 중국 호구제와 같은 이주제한은 없다. 따라서 인도경제의 산업화가 진행될수록 농촌인구의 도시이주 현상이 두드러질 것이다. 그러나 도시 부문의 일자리 창출이, 취약한 제조업기반 탓에 상대적으로 미약한 만큼 이촌향도의 속도는 중국의 경우보다는 다소 완만할 것으로 예상된다.

⑤ 자본축적과 투자

투자는 중국 경제의 고도성장을 이끈 최고의 동력이었다. 경제개혁 초기 덩샤오핑이 설정한 경제특구 4곳(선전 주하이 샤먼 산터우)이 각각 홍콩, 마카오, 대만의 화교자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이었음을 주지의 사실이다. 개혁개방의 닻을 올렸지만 중국의 앞날이 불투명했던 시기, 화교자본의 본토 투자 러시는 외국기업들의 대중투자 붐을 선도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최근까지 홍콩, 마카오, 대만, 싱가포르 및 인도차이나 국가들의 중국에 대한 투자가 전체 fdi의60~70%를 상회하고 있는데, 이중 상당수가 화교자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국의 고정자산 투자는 이제까지 모두 세 차례의 폭풍기를 거쳤다. 덩의 실용주의 노선이 당내 위상을 확고히 다진 직후인 1980년대 중반 화교자본의 본토행이 진행됐고, 이어 1990년대 중반의 1차 외자기업 러시, 마지막으로 2000년대 초반의 2차 외자 러시이다. 두 차례의 외자투자 붐은 천안문사태 이후 중국 안팎의 회의적인시각을 덩이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통해 정면 돌파한 덕택이었다. 외자기업의 투자붐은 합작 파트너인 중국기업의 투자규모도 덩달아 키우는 효과가 있었다.

인도의 경우에도 인교(印僑)로 불리는 재외거주 인도인들(nri)의 역할과 비중이 컸지만 화교의 역할에는 미치지 못한다. 인도는 중국의 개혁개방이 시작된 1978년 만해도 경제규모나 소득수준이 중국을 근소하게나마 앞서 있었다. 그런데도 현재 중국의 경제규모와 소득수준이 인도의 4배에 이를 정도로 격차가 확대된 것은 ‘세계의 공장’을 자임한 중국의 제조업 분야의 수출주도 성장전략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다.

제조업이 견인하는 성장은 대규모 자본축적과 투자가 전제돼야 한다. 중국의 자본축적 규모는 1989년 천안문 사태 전후를 제외하고는 지속적으로 증가해 왔으며, 개혁개방 30년 동안 연평균 투자증가율(총고정자본형성액 기준)이 17.3%에 달한다. 덕택에 중국 gdp에서 투자비중은 개혁 초기 30% 중반에서 최근엔 40% 후반까지 치솟았다. 반면 같은 기간 인도는 7.9%의 투자증가율을 기록했다.

개혁 초기 투자견인 효과가 컸던 외자의 질도 차이가 있다. 중국은 제조업 부문으로의 외자유입 규모가 인도에 비해 월등이 많았다. 외자의 진입은 합작이나 합자로 나선 중국 토착자본의 투자사업 기대 수익률을 높이고 이에 자극 받은 다른 외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고리를 형성하면서 급속한 투자 붐을 조성할 수 있었다. 1990년대 초 중국으로 유입되는 외국인 직접투자(fdi) 규모는 인도의 30배에 달했는데, 제조업 부문 투자비중이 인도보다 훨씬 높게 나타난다. 이는 중국 정부가 서비스 부문의 시장개방에 미온적이었던 반면 제조업 투자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다각적인지원책을 상당기간 유지했기 때문이다. 중간재 시장의 가격억제, 저임정책, 각종 제조업 분야의 세제지원이 지대한 역할을 했고, 특히 제조업 분야 수출에 대해선 인위적 위안화 저평가와 파격적인 면세혜택을 부여함으로써 지원했다.

최근 인도경제의 미래전망이 밝아지면서 fdi 격차는 많이 줄었다. 1990년대 초 fdi 유입 규모에서 중국과 30배 가까이 차이가 나던 것이 2006년부터는 1/3 수준으로까지 격차가 좁혀졌다. 하지만 fdi 중 제조업으로 유입되는 비중이 2004년 이후 감소하고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

유대상인에 버금가는 상재를 자랑해온 화상(華商)의 기업가 dna는 계획경제 시절 억눌려 있었지만, 실사구시(實事求是)를 주창해온 덩의 권력 전면 등장으로 부활의 계기를 맞았다. 대표적인 것이 객가(客家)로 불리는 중국 동남부 상인그룹이다.

객가는 중화문명의 발원지인 황허 일대에 살다, 서진(西晉) 때부터 전란을 피해 광동 푸젠 등지 산간지역으로 이동해온 사람이 스스로를 ‘타향에 사는 사람’으로 부른 데서 유래했다. 타향에 살면서도 전통 언어인 객가어 사용 등 전통문화를 유지하며, 일찍이 통상에 종사하면서 축재를 했다. 중국 동남부 지역이 활동의 주무대이다 보니, 해상무역을 통해 동남아 각지에 세력을 심어 타이완이나 싱가포르 유력 기업인이나 정치인 중에 객가 출신이 적지 않다.

중국 개혁개방의 1번지인 선전과 기타 경제특구들은 모두 광둥, 푸젠성에 설립됐다. 이 지역 주민들의 왕성한 이윤동기와 이들과 혈연지연으로 묶인 화교 자본을 활용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이에 따라 중국 초기 경제성장은 광둥, 푸젠성이 이끌었고, 현재 글로벌 수준에 달한 대기업 대주주들도 이 지역 출신이 비교적 많다.

중국의 기업가 정신은 제조업보다 상업 분야에서 더욱 만개(滿開)했다는 특징을 지닌다. 기간산업은 국유기업의 영역인데다, 고가의 내구재시장은 개방 초기 외국산 브랜드가 강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개혁개방 초기엔 물류 및 유통분야가 취약하고 지방 이기주의가 횡행해 동일한 제조물품의 판가가 지역마다 크게 달랐다. 이런 가격차에 착안해 발 빠르게 대응하는 상인자본은 경제성장과 함께 큰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현재 중국의 100대 부자에 오른 거부들은 이 과정을 통해 축적한 종자돈을 다시 부동산 및 주식자본으로 전환해 제 2의 성공을 거둔 사람들이다.

그러나 중국 공산당이 입당을 허용한 ‘선진 생산력’의 대변자들은 상인자본가보다 제조업 분야에서 혁혁한 공헌을 한 기업인들이다. 중국 it산업을 대표하는 lenovo나, 태양광발전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잉리그룹, 중국 가전산업을 이끌어온 하이얼 그룹의 최고경영자들이 이 같은 반열에 올라있다.

인도 기업인들의 상재(商才)도 화상에 뒤지지 않는 것으로 정평이 나있다. 특히 흥정의 철두철미함, 정교함은 물론 심지어 계약 후 거래이행에서도 철저하게 이문을 따지고 밑지는 장사 같으면 거래를 사후에 깨트리는 것도 불사한다. 척박한 아프리카 대륙에서 주요 상권을 장악하고 있는 그룹이 인상(印商)이라고 한다.

인도 파르시(parsi) 상인계층은 인도판 객가 상인들이다. 북서부 라자스탄, 펀잡 등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유력 그룹인데, 인도 국민기업이라는 타타(tata)그룹의창업자 잠셋지 타타(jamsetji n. tata)도 구자라트 파르시 상인계층 출신이다.

중국은 사회주의 건설이 시작되면서 자본가 계급의 명줄을 50년 이상 끊었던 반면 인도는 수백 년 가업의 전통을 잇는 토지부농과 상인자본 출신의 기업가 층이 두텁다. 여기에 it경기 활황을 타고 통신 및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축재한 신흥기업가들이 가세한다.

포브스 선정 2010년 세계 100대 부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도인은 모두 9명이다. 미국, 러시아에 이어 3위다. 중국의 경우 본토인은 없고 홍콩의 화교 3명이 이름을 올렸다. 절대 빈곤선 이하의 인구수가 가장 많지만, 상상하기 어려운 부를 쌓은 부유층 숫자도 가장 많은 게 인도이다. 인도상공회의소는 크고 작은 사업을 하는 소위 기업가(entrepreneur) 수를 4,500만 명으로 추산했다. 한국의 인구수만큼의 기업가가 인도 대륙을 누비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성장과정을 보면 2차 산업, 투자, 순수출의 기여율이 높게 나타난다. 특히 최종수요에서 차지하는 수출 및 서비스 비중이 30%에 달할 정도로 해외시장의 역할은 절대적이었다. 해외시장 중에서도 미국과 유럽지역의 수출비중은 각각 18%, 20% (2010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선진국 시장이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중국과 달리 인도는 2차 산업보다는 3차 산업, 투자 보다는 소비의 성장기여도가 높게 나타났다. 내수와 서비스업 중심의 성장을 해온 것이다. 인도 gdp에서 2차 산업 비중은 개혁원년인 1991년 18.3%에서 19년 동안 19.3%(2009년)로 소폭 늘어나는 데 그쳤다. 반면 3차 산업은 같은 기간 동안 52.1%에서 63.2%로 증가하면서 성장을 견인했다. 하지만 인도 정부는 서비스와 소비 중심의 생산소비 구조로는 고용을 창출하는 데 한계가 있고, 성장률이 고공행진을 하면서 경상수지 적자 위기가 심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더욱이 인도 gdp의 약 10%를 차지하는 it bpo 서비스 산업에서 콜 센터와 같은 선진국 아웃소싱 비즈니스의 상당 비중이 인도를 빠져나가 필리핀으로 이주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인도 토착 액센트가 섞인 영어보다 필리핀 콜 센터 상담사들의 중립적인 영어 억양이 알아듣기 쉽고, 과거 미국 식민지배를 받았던 문화적 친근감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인도 정부로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제조업 육성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조업 중심 수출 주도성장 전략을 성공시킨 데에는 중국의 다각적인 지원책이 주효했다. 저임의 풍부한 노동력이란 비교우위를 극대화하기 위해 수출산업에 대대적인 정책지원을 시행한 것이다. 수출보조금이랄 수 있는 위안화 평가절하가 줄곧 진행됐고, 매출의 70% 이상을 수출하는 기업들에겐 파격적인 우대 법인세율을 적용했다. 2008년 내외자 법인세를 통일하면서, 수출 우대세율 정책은 폐지했지만 수출용 수입원자재에 대해 관세를 돌려주는 관세환급제도를 여전히 시행 중이다. 수출우대세율과 같은 과거 중국의 파격적인 지원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인도 정부도 관세환급, 수출금융지원 등은 시행하고 있다.

수출지원책이 결실을 거두려면, 해외 환경도 뒷받침해줘야 한다. 중국에게 결정적 계기를 제공한 것은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가입이었다. 미국 등 서방세계는 당시 세계 8대 무역국이었던 중국을 글로벌 경제질서에 편입시킴으로써 중국의 시장개방을 압박하고, 체제개혁을 유도한다는 포석이었을 것이다. 중국으로선 대내적으로 사회주의시장경제 체제를 더욱 안착시킴과 동시에 대외적으로 수출시장 확보와 글로벌 경제위상 제고를 꾀할 수 있었다.

아울러 중국 wto 가입이 긍정적 영향을 미친 데에는 일본 한국 대만 등 동북아 제조강국들과 분업구도를 형성하기 유리한 경제 지리적 배경이 자리 잡고 있다. 선진국 수출비중이 원래 높았던 이들 인접국 기업들이 추가적으로 저임의 중국 연해지역으로 몰려들 수 있었던 배경이 바로 wto였던 셈이다.

중국의 ‘wto 도박’은 결과적으로 중국의 경제규모를 획기적으로 키우는 데 혁혁한 공헌을 했다. 그러나 현 중국 지도부가 제창하고 있는 ‘과학적 발전관’이 문제시하는 대내적 각종 모순들은 wto 가입을 통해 더욱 구체화되고 심각해지는 결과를 빚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이 wto 가입을 수출 드라이브의 계기로 활용했던 반면, 인도는 wto 전신인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에 이미 가입했음에도 불구하고 소극적이었다.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스리랑카 등 주변국들과의 제조업 부문 국제분업구도가 형성되기 어려웠던 것도 인도의 대외무역 소극성을 부추겼다.

중국이 g2급으로 부상한 현재에도 과거 중국의 수출의존 성장패턴이 작동하긴 힘들 것이다. 2008년 말 글로벌 금융위기가 폭발하면서 중국과 미국의 엄청난 무역수지 불균형이 지탄을 받았던 만큼 일대 전환이 불가피해졌다. 중국의 12차 5개년규획이 첫째 과제로 내수확대를 표방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러나 인도가 거대경제로 부상하는 데 있어 중국의 수출주도 전략은 여전히 벤치마킹 대상으로 간주되고 있다. 중국 같은 인위적인 환율시장 개입과 같은 적극성은보이지 않고 있지만 과거 중국의 개발구 전략을 차용한 특별경제구역(sez) 정책, 외자기업 본국송금 보장정책 등은 수출산업을 키우기 위한 고육지책으로 보인다.

지역적 편차는 중국, 인도 같은 대국에선 불가피한 현상이다. 찬란한 문명의 발상지라는 태생적 배경에, 교통 통신이 닿지 않았던 시절 수천 년의 분열과 분파를 거치면서 지역의 특성은 각기 진화에 진화를 거듭했다.

그런데도 현대 중국의 지역성이 인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유사성 내지는 통일성을 띠는 것은 중국의 중앙집권적 전통이 비교적 강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역대 왕조는 모두 문명 공동체란 특징을 지니고 있다. 춘추 시대처럼 사분오열된 시기에도 중화의 정통성은 훼손되지 않았고, 진(秦)의 천하통일은 현 중국 대륙이 더욱 동일화되는 초석을 마련했다. 이후 한민족 왕조를 무너뜨렸던 선비족의 북위(北魏)같은 북방 정권조차 중화를 인정하고 전파시키려 했다. 이는 중화민족이 민족학적 배타성으로 뭉친 것이 아니라 문화적 동질성만 인정하면 포용하고 변질시켰기 때문이다.

더욱이 1949년 중국에 사회주의 정권이 들어서면서 초창기 공산당은 대대적인국가개조 프로젝트에 착수했다. 공산당 영도란 확고한 원칙에 따라 중앙의 각종 법제도 규범이 지방 곳곳에 관철됐다. 베이징어가 국가표준어(普通話)로 지정됐고, 종교의 자유는 인정했지만 포교는 엄격히 금지했다.

현대의 중국에서 지역성이란, 소수민족 자치구 지역을 제외하고 나면 중화문명의 동질성 위에 펼쳐진 기후생태학적 차이와 지역이기주의에 연유한 경제력 차이가 핵심을 이룬다.

반면 인도는 지역성이 매우 강렬하게 남아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 지방 언어도 수십 개에 이르고, 인종 별 거주분포도 뚜렷하게 구별된다. 인도 대륙 전역에 권력을 행사했던 마지막 왕조가 이슬람 왕조였기에, 전통 힌두교 사회와 이슬람 사회의 갈등은 심각하다. 두 종교사회의 점유율은 현재 각각 80%, 13%대에 이른다.

인종, 언어, 종교가 한데 융합되지 못한 채 갈리면서 인도의 지역성은 모자이크스타일처럼 경계가 비교적 뚜렷하다. 이 같은 지역성은 외자기업에게도 인도를 단일 시장으로 접근하는 것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지역별로 세분화(segmentation)하고 개별적 최적화 시장전략을 펼쳐야 한다는 것이다.

앞에서 열거한 8가지 차이점은 경제성장에 영향을 미치는 전통적인 요인들만 추려 분석한 것이다. 비교분석의 범위를 넓힌다면, 두 나라의 차이점은 유사점보다 훨씬 많이 드러날 것이다.

인도가 중국과 같은 성장 궤적을 밟을 것이란 기대는 최근 인도 정부가 중국이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제조업-수출 주도의 성장정책을 도입하면서 더욱 강해졌다. 중국이 추진했던 연해지역 특구정책이나, 수출금융, 관세환급 정책 등이 인도에서 되살아나고 있고,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한 인프라 건설에 매진하고 있다. 인도 중앙정부는 특히 제조업의 부진이 인도경제의 경상수지 적자 해소에 필수적인 수출산업육성에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도경제의 향후 성장세가 중국처럼 빠르고 계획적이며, 일사불란하게 진행될 가능성은 현재로선 높지 않아 보인다. 앞에서 분석한 8가지 성장요인 중 인도가 중국보다 초기조건이 양호하다고 판단할 수 있는 부분은 인구 구조,임금 경쟁력과 기업가 정신 정도였다. 노동 및 자본투입에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외부환경에서 인도는 중국보다 열위에 있거나 일부 심각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

특히 현재 인도경제 성장에 필수불가결한 전력, 용수, 도로 등 제조 인프라사업은 개별 기업이나 빈한한 재정을 가진 지방정부 단독으로 추진하기 어려운 국가 주도형 프로젝트들이다. 그러나 gdp의 10%를 초과하는 재정적자를 내는 중앙재정의 여력 역시 충분치 않고, 사유지 수용에 따른 재산권 소송이 빈발한 데다, 외지 자본유입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식민지 피해의식에서 오는 배타성도 남아있다.

인도사회의 격차는 올해부터 분배개혁에 팔소매를 걷어붙인 중국사회보다 극단적이다. 그렇다 보니 인도사정에 비교적 정통한 외국기업인들조차 인도의 앞날에 대해 균형 잡힌 주장을 펴기가 쉽지 않다. 인도에 이해관계를 가진 많은 외부인들이인도 관료사회에 만연한 부패와 엉성한 행정서비스, 형편없는 산업인프라에 넌더리가 난다고 불평들을 한다. 반면 세계 최고수준의 고급인력과 공존하는 저임의 풍부한 노동력, ‘잘 살아 보겠다’는 강력한 성취동기 등을 겪은 기업인들은 인도의 미래를 쉽게 낙관하게 된다.

고층빌딩이 숲을 이룬 중국 광둥성의 선전은 30년 전엔 한적한 어촌이었다. 그 때의 선전역시 지금의 인도처럼 제조업 인프라가 열악했고 노동인력은 전부 외지에서 데려와야 했으며, 홍콩자본 역시 성공을 반신반의 했을 것이다. 선전의 천지개벽에는 이 같은 난관을 적극적으로 세심하게 돌파한 중앙정부의 개혁의지가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다.

중국 공산당이 주도했던 개혁 드라이브는 성장의 기반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던 시기 부족한 자원을 나라 안팎에서 끌어 모으고 한정된 분야에 선택적으로 투입하는 데 효율적이었다. 시장경제의 외피를 입었지만 정치적으로 민주집중(民主集中)의 원칙에 따라 공산당 영도원칙을 유지한 것이 일관성을 지키는 데 큰 도움이 됐다.

그러나 중국경제 모순이 커질수록 이 같은 정치 환경은 부정적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아진다. 중국경제의 여러 모순이 끝내 해결보다는 증폭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이러한 문제점이 체제의 특성에서 오는 구조적 성격을 지닌 것이라는 점을 중국인민들이 인식하기 시작할 때 권위주의적 정치 환경은 오히려 온전한 개혁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 억누르는 시도는 문제를 이연시키고 폭발성을 키우는 결과로 이어질지 모른다.

이 점에서 인도 정치 환경은 훨씬 유연하다. 저개발 경제의 초기 성장 드라이브엔 부적당한 정치체제일지 모르지만, 선거라는 민주적 절차를 거쳐 정치권력이 언제든 재편될 수 있기 때문에 개혁노선이 수정될 수 있을지언정 좌초하거나 과거로 회귀할 가능성은 오히려 낮다.

인도 경제의 향후 성장궤적은 중국보다 느리지만, 글로벌 평균보다는 월등히 높은 수준일 것이다. 정치적 리스크를 감안하면, 오히려 중국보다 오랫동안 상당히 높은 성장세를 유지할 수도 있다. 중국도 30년을 지속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었고, 천안문사태(1989년)란 내홍을 크게 겪었다. 외국기업으로선 중국에서의 사업경험보다는 초기에 다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인도의 성장패턴도 제조업이 견인해온 중국과 다를 것이다. 제조 인프라의 부족 등을 감안할 때 대규모 설비가 투자되는 장치 및 기간산업형 비즈니스는 외국기업으로선 시기상조로 판단된다. b2b형보다 떠오르는 소비시장에 직접 소구할 수 있는 b2c시장의 성장성이 더 양호할 것이다. 중국의 사업 경험을 인도시장에 그대로 이식하는 것만큼 위험한 진출 전략은 없다. [lg경제연구원 박래정 수석연구위원·홍석빈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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