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만하지 않는 기업’
‘자만하지 않는 기업’
  • 박광원 기자
  • 승인 2009.08.05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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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기업환경의 초경쟁 상황은 기업에게 속도와 도전을 요구한다. 속도를 추구하다 보면 성급함이 되고 도전과 극복을 강조하다 보면 자만해져서 기업이 소화불량에 걸릴 수 있다. 기업에 자만심이 싹트게 되면 아무리 위대한 기업이라도 쇠락의 길로 들어서기 쉽다. 오랜 기간 수많은 위기 속에서도 살아남은 뛰어난 기업들을 보면 자만하지 않는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끊임없이 자신을 채찍질하고 배우는 자세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공하는 기업일수록 자만에 이르기 쉽다. 잘나갈 때 자신에 대한 약간의 그릇된 판단이 자만을 싹트게 한다. 그래서 자만하지 않는 기업의 특징을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자만하지 않는 기업은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변화에 민감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적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한편 외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Ⅰ. 속도의 시대

1597년 2월 26일 삼도수군통제사인 이순신(1545~1598) 장군은 체포된다. 허위 공적을 보고했다는 것과 조정의 명령을 거부했다는 것이다. 일본군 무장인 가토 기요마사의 이동 정보를 정적 관계인 고니시 유키나가 측에서 조선 조정에 알려주고 제거를 획책하였다. 조정에서는 이순신에게 가토의 머리를 베어오라고 명령하였는데, 듣지 않았던 것이다. 첫 번째 죄목은 실수였다고 하더라도 두 번째 항명은 이순신이 조정의 명을 거역하는 중죄를 감수한 것이다.

여기서 이순신 장군의 성격을 알 수 있다. 그는 군인으로서 임금의 명령에 불복종하면서까지 전쟁에서 신중을 기한 사람이었다. 흔히 우리는 이순신 장군을 이야기할 때 광화문에 서 있는 동상의 모습처럼 용맹스럽고 충성심이 가득하며 완벽한 전략으로 모든 전투에서 승리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인간 이순신은 7년 동안 전쟁 중에 일어난 일을 일기에 꼼꼼히 기록할 정도로 섬세한 사람이었다.
그는 월등한 전력을 지닌 일본 군대를 항상 경계하며 긴장감을 늦추지 않았다. 그는 이기지 못할 무모한 싸움은 쉽사리 하지 않았다. 가토가 바다를 건너는 정보를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장의 머리를 베어오기가 쉽지 않다는 판단에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순신 장군이 가장 적은 병력으로 치른 전투인 명량해전을 준비하는 과정을 보면 이러한 특성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적의 함대를 물살이 바뀌는 울돌목으로 유인하기 위해 치밀하게 준비하였다. 절대로 서두르지 않았고 기다렸다. 그래서 12척의 배로 적선 330여 척을 맞아 130여 척을 물리쳤다.

그는 위대한 전략가이자 충성심과 희생정신이 뛰어난 각별한 장수였다. 그러나 그가 세계사적으로도 희귀한 위대한 전과를 거둔 장수로 기록된 것은 그의 강인한 의지력과 섬세하면서도 자만하지 않는 기질 때문이다.

속도와 도전

몇 년 전부터 소설 <칼의 노래>를 비롯하여 이순신 장군에 대한 소설과 드라마, 평론 등이 쏟아져 나오면서 이순신의 인간적인 면모가 많은 관심을 받았다. 그 동안 한국인의 머릿속에서 성웅으로만 기억되던 ‘강한’ 이순신이 실제는 임금의 명령을 거역하면서까지 자신의 행동을 고민하고 숙고한 사람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이 열광한 것이다.

이처럼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과 같은 어려운 상황을 이겨낸 것이 천부적 자질이나 강인함이 아니라 겸손하고 자만하지 않는 신중함과 철저한 준비였다는 사실이 오늘의 경영환경에서 평범한 기업에게 더 큰 용기를 주고 있다.
글로벌 경쟁과 기술 및 산업의 컨버전스로 인해 기업간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는 것은 이제는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게다가 고객들의 파워가 더 강해지고 제품에 대한 니즈도 수시로 바뀌면서 제품의 라이프 사이클이 점점 감소하고 있다.
이처럼 빨리빨리 변하는 환경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서 기업들에게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속도이다. 시장에서 찬사를 받던 기업이 하루아침에 천덕꾸러기가 되고 어려움에 빠져 있던 기업들이 혁신기업으로 탈바꿈한다.
경쟁사가 모방하기 힘든 사업모델이라면서 각광을 받았던 델이나 기업문화혁신에 성공하여 하이테크에서 서비스로 사업모델을 성공적으로 탈바꿈하여 유명해진 ibm이 지난 10년간 pc 사업에서 뒤쳐져 있던 hp에 밀리고 있다. 세상은 기업에게 빠른 변화와 혁신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시장의 판도를 바꾸는 기업들이 탄생하여 산업의 모양새를 완전히 뒤바꿔 놓기도 한다. 날이 갈수록 시장에서 튼튼한 체질을 유지하며 장수하는 기업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영원히 지배할 것 같았던 it 업계에 구글이라는 새로운 강자가 출현하여 시장의 게임 룰을 바꾸고 있다. 최근 구글이 인터넷을 통해 누구나 무료로 활용할 수 있는 pc용 운영체제 개발을 선언하자, 마이크로소프트는 앞으로 발매할 운영체제의 가격을 어디까지 내릴 지 고민하고 있다. 환경은 기업에게 과감한 도전을 요구하고 있다.

성급함과 자만

그래서 대부분의 경영자는 속도와 도전이라는 과제를 풀기 위해서 의사결정을 빠르게 할 수 있는 경영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보다 과감한 움직임을 통해 새로운 도약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스피드 경영과 과감함은 자칫 성급함과 자만이라는 씨앗을 낳기도 한다. 이러한 씨앗이 점점 더 커져서 기업을 쇠락의 길로 빠뜨리게 할 수도 있다.

기업이 성급함에 빠져 너무 빨리 가려고 하면 제아무리 잘나가던 기업이라도 위험에 빠지게 된다는 사실을 머크(merck)의 예에서 볼 수 있다. 1995년 머크의 ceo였던 길마틴(ray gilmartin)은 회사의 목표를 ‘최고로 성장이 빠른 회사(being a top-tier growth company)’로 정했다.
이전까지 머크는 수익성, 혁신적 약품, 과학적 역량, 연구개발, 생산성 등에 많은 노력을 집중했던 회사였는데, 성장을 기업 활동의 중심에 놓은 것이다. 당시 5년 내로 다섯 개 특허의약품들의 특허가 만료될 예정이었으므로 성장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었다. 그래서 길마틴은 새로운 블록버스터(blockbuster) 제품을 출시하여 새로운 성장엔진을 가동하려고 한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관절염 치료제인 vioxx를 출시하였고 대대적인 마케팅 활동을 벌였다.
그런데 성장 목표를 맞추기 위해서 출시시기를 성급하게 앞당기다 보니 안전성에 대해 충분한 검증을 하지 않았다. 결국 vioxx는 심혈관 계통의 부작용으로 인해서 제품을 거두어 들이게 되어 회사에 막대한 타격을 주었다.
오랜 기간의 연구개발과 상당한 열정을 들인 제품을 포기하게 된 것이다. 만약 머크가 성장 목표를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성급하게 vioxx를 출시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반드시 메가 히트 상품이 되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나지 않았다면, vioxx가 좀더 신중하게 출시되어 머크의 또 다른 블록버스터 제품이 되었을 수도 있었다.

한편 ‘우리는 무엇이건 다 할 수 있다’라는 자만에 빠져서 지나치게 과감한 도약을 시도하다가 어려워지기도 한다. 이런 회사로는 모토로라(motorola)가 대표적이다. 모토로라는 1985년 한 엔지니어의 아이디어로 전세계를 연결시킬 수 있는 위성 통신망인 이리듐(iridium)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모토로라가 대주주가 되어 법인을 설립하고 이후 10년간 엄청난 자금을 쏟아 부었다. 1996년까지 13억 달러에 가까운 돈을 투입하였다. 프로젝트를 시작한지 10년이 지난 1990년대 중반에는 기존 휴대폰 서비스 기술이 발달하여 글로벌 통신망을 갖추는 것이 가능해졌음에도 이리듐이 실패할 리스크를 무시하고 투자를 지속하였다. 결국 1998년 사업이 런칭되었을 때 서비스는 실패로 돌아갔다.
이듬 해 20억 달러 이상의 손실을 기록하며 파산신청을 하게 되었고, 이 사업의 실패는 모토로라의 쇠퇴를 가속화시켰다. 요컨대 자만이 무분별한 시도를 하게 만들어 어려움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처럼 속도와 도전에 집착하게 되면 회사가 지속시킬 수 있는 능력 이상을 시도하게 된다. 결국 과부하가 걸려서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겸손함의 가치

결국 자신이 가진 능력에 비해 더 큰 욕심을 가지거나 능력을 너무 과신한 나머지 무엇이건 다 할 수 있다는 태도가 기업을 어렵게 만드는 것이다. 그래서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가 기업에게도 필요하다. 성공하는 기업으로 태어난 조직들의 특성을 연구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built to last)>과 평범한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한 조직들의 비결을 분석한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good to great)>를 집필하여 세계적으로 저명한 경영전문가가 된 콜린스(jim collins)는 최근 <위대한 기업의 몰락(how the mighty fall)>을 출간하여, 한때 위대했던 기업들이 어떻게 추락의 길을 걷게 되는지를 분석하였다. 절대로 망할 것 같지 않았던 기업들도 자만이 싹트는 순간 쇠락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자만하지 않고 지속적인 긴장감을 갖는 것만이 나날이 변화하는 기업환경에서 위기에 빠지지 않는 방법이다.

금융위기에 따른 경기침체로 2008년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1950년 이후 위기에 빠지지 않았던 도요타의 비결 역시 자만하지 않는 태도 때문이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1950년 도산의 위기에 몰렸던 경험을 한 이후 아무리 경영이 좋아도 직원들에게 앓는 소리를 하고 언론에게는 죽는 소리를 해왔다. 또 도요타는 언제라도 기업이 위기에 봉착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충분한 현금을 보유하면서 위기에 상시 대비해왔다. 작년에 적자를 보면서 위기에 빠졌지만 gm과 같은 미국 자동차회사들에 비해서는 잘 극복하고 있다. 자만하지 않고 겸손한 태도가 기업을 위기에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Ⅱ. 겸손과 자만

그런데 겸손과 자만은 큰 차이가 있는 것 같지만 겸손에서 자만으로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사람도 그렇고 기업도 마찬가지다. 겸손에서 자만으로 얼마나 쉽게 변하는지 살펴보자.

작은 인식 차이, 큰 결과

겸손하다(humility, humble)는 말은 라틴어의 땅(ground)을 나타내는 어근인 ‘hum’에서 파생되었다. 그래서 겸손함이라는 것은 자신을 땅까지 낮추어 남을 존중하고 큰 존재에게 복종한다는 뜻이다. 즉 자신의 낮음을 인식하는 것이다. 반면 자만(hubris)은 그리스 말로 영웅을 망치게 하는 과도한 자신감이라는 뜻에서 발달했다. 또 다른 단어인 오만(arrogance)은 주장하다(claim)를 뜻하는 말과 입양(adoption)을 뜻하는 말이 합쳐진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오만은 ‘자신에게 속하지 않은 것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한다. 즉 자만은 실체보다 자신을 더 크게 인식하는 것이다. 위의 두 말의 뜻을 정리하면 겸손은 자신에 대해 판단할 때 실제 능력보다 낮게 인식하는 것이고 자만은 높게 인식하는 것이다. 결국 실제 능력과 인식간의 차이가 겸손과 자만을 결정한다.

그런데 실제 능력을 측정하는 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다. 무언가를 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능력은 특히 기업의 경우에 정확하게 판단하는 것이 쉽지 않다. 특히 외부 환경이 불확실하게 바뀔 때 과거의 잣대로 어떠한 일을 해낼 수 있을지 알기란 쉽지 않다. 둘째로 능력이라는 것이 숫자로 명확하게 나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측정하기가 쉽지 않다. 풍부한 인적자원과 재무역량 등을 갖춰도 이를 활용하지 못해서 더 열등한 기업에게 패하는 골리앗 기업의 사례를 적잖이 볼 수 있다. 그래서 자만과 겸손은 판단이라는 종이 한 장 차이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 때문에 겸손이 자만으로 변하는 경우도 쉽게 발생한다. 사람이건 기업이건 어떠한 일을 경험하고 성공하면 능력이 커진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에 대한 인식도 변화한다. 이 때 겸손이 자만으로 바뀔 수 있다. 세계시장을 석권하던 미국의 자동차회사들이 자신들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소비자의 요구를 무시한 결과 오늘의 위험에 빠지게 된 것이 이러한 경우다. 특히 대외조건 등 외부 여건이나 행운으로 인해서 비즈니스가 성공한 경우, 자신의 실제 능력이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음에도 크게 높아졌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경우에 자만이 싹트게 되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처럼 작은 인식의 차이가 자만을 만들어내고 위대한 기업을 쇠락으로 이어지게 한다. 결국 자만이라는 것은 자신의 실제 능력에 대해서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을 내릴 수 있는가에 달려있다.

이순신과 나폴레옹의 차이

이순신과 나폴레옹(napoleon bonaparte, 1769~1821)의 차이를 생각해 보면 겸손이 얼마나 쉽게 자만으로 스멀스멀 바뀔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이순신은 일본군이 한반도에서 패퇴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순간까지 긴장을 놓지 않았던데 비해 나폴레옹은 황제 즉위 이후 전쟁에 임하는 자세가 달라졌다. 나폴레옹이 몰락하게 된 것은 1812년 러시아 원정이 계기가 되었다. 러시아가 대륙봉쇄에 불응하자 64만 대군을 이끌고 러시아를 공격했다. 군사의 반은 폴란드, 오스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등 동맹국에서 지원해주었다. 러시아는 스웨덴, 영국 등과 동맹을 맺고 훨씬 적은 규모인 23만으로 방위에 나섰다. 나폴레옹 군은 3개월 만에 모스크바에 입성하는데 성공하였지만 러시아 황제와의 평화교섭은 실패했다. 더욱이 모스크바 시내에 대화재가 발생하여 식량이 부족하게 되었고, 서서히 겨울이 다가와 모스크바에서 퇴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러시아군의 추격과 농민의 게릴라 공격으로 대패했다. 10만 명이 포로로 잡혔고 대부분의 군사가 목숨을 잃어 살아 돌아온 군사는 2만 5천명에 지나지 않았다. 이 원정으로 나폴레옹의 시대가 끝나기 시작했다.

이순신은 마지막 전투에서 목숨을 잃었지만 자신의 스타일대로 신중하게 전쟁에 임하여 끝까지 긴장감을 잃지 않았다. 그런데 나폴레옹은 기습이나 상대의 맥을 끊는 창조적인 전략을 사용했던 자신의 독특한 스타일을 버리고 명분이나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서 무리한 전투를 감행했다. 이순신은 일본군의 사기가 땅바닥에 떨어지고 임금은 빠른 공격을 원하고 있었지만 완벽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서 거의 1년여를 기다렸다. 반면, 나폴레옹은 자신의 군대가 빠른 습격으로 신속하게 전투를 종결하는 특징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지리적으로 불리한 러시아로 원정을 떠났다. 모스크바를 점령하면 러시아의 항복을 쉽게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한 것이다. 나폴레옹은 황제에 즉위한 이후 ‘불가능은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의 능력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결국 자신의 군대가 가지고 있는 실제 능력보다 더 과대평가하는 자만에 빠지게 된 것이다.

물론 두 사람의 차이는 정황상 클 수밖에 없다. 비록 퇴주(退走)하고 있지만 엄청난 병력의 일본군 앞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었던 이순신과 유럽을 통째로 손아귀에 넣은 나폴레옹 황제의 입장은 달랐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대한 장수가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여 급격하게 쇠락의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Ⅲ. 자만하지 않는 기업의 특징

이처럼 사람이나 기업이나 모두 쉽게 자만에 빠져 쇠락의 길에 들어설 수 있다. 그래서 자만하지 않는 기업의 특징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고 마음에 새길 필요가 있다. 자만하지 않는 기업은 얼핏 보면 모순되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변화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내적으로는 전통을 중시하는 강한 뚝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외적으로는 변화에 적응하는 유연성을 지니고 있다. 외유내강인 것이다.

1. 전통을 중시한다

과거를 소중히 한다

ge가 비록 금융부문에서 위기에 직면하긴 했지만 ge의 비금융 사업은 웰치가 경영하던 1980년대 이후 어려움에 직면했던 적이 없다. ge를 이야기할 때 사업 구조조정을 잘한다고 한다. 항상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 기존 사업을 바꾸어 간다는 것이다. 하지만 ge는 과거를 매우 중시하는 기업이다. ge는 새로운 사업을 할 때도 과거의 경험과 사업 역량을 바탕으로 추진한다. 유망한 분야라도 절대로 무분별하게 들어가지 않는다.

흔히 ge가 물 사업에 뒤늦게 뛰어들어 1위를 하는 것을 보고 놀라는 사람들이 많다. 전혀 진입하지 않았던 사업에서 m&a를 통해 들어가서 그 사업을 리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은 제품 중심적인 생각이다. 비록 ge가 수처리 등 물 사업과 관련한 기술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지만, 물 사업에 필요한 사업역량은 내부에 축적하고 있었다. ge는 이미 물 사업과 비슷한 특성과 가치사슬을 가지고 있는 발전설비 사업을 영위하고 있었다. 발전사업은 정부와 같은 대형 고객에게 발전설비를 구축해주고 자금조달과 운영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핵심이다. 물 사업에서도 핵심 기자재가 수처리 장비로 바뀌었을 뿐 사업하는 방식이나 가치사슬은 발전사업과 거의 같다고 봐도 된다. 즉 물 사업도 발전사업과 마찬가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먼저 발주처에 들어가기 위해서 특수목적 회사를 구성한다. 그리고 지분을 투자한 엔지니어링 업체를 활용하여 설비를 구축하고, 역시 지분을 투자한 운영업체로 하여금 이 설비를 운영하게 한다. 물론 이에 필요한 자금은 ge의 금융 사업부에서 담당한다.

ge가 물 사업을 하면서 우리에게 알려진 것은 수처리 장비, 화학약품, 필터, 담수 장비, 종합 수처리 시설 등 1999년 이후 거의 매년 수처리 시스템 관련 회사를 인수했다는 사실이다. 그런데 ge가 인수한 것은 물 사업을 하는데 필요한 일부분의 역량에 지나지 않는다. 즉 물 사업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자금조달을 원활하게 하는 것과 함께 엔지니어링 업체 및 운영업체와 함께 사업에 들어가서 공사를 마무리하고 장기적으로 운영관리사업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설비 기자재는 그 중 일부인 것이다. 즉 ge의 물 관련 업체에 대한 m&a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사업 역량에 기자재 제조와 관련된 기술력을 습득한 것에 불과하다. ge에게 물 사업은 전혀 새로운 사업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에 기반한 익숙한 사업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ge의 포트폴리오 조정은 과거의 전통과 역량을 중시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다

자만하지 않는 기업의 과거 중시의 철학은 전략적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만든다. 그래서 신사업 투자에 있어서도 극단적인 의사결정을 하지 않는 원칙을 지킨다. 고어사의 창립자인 빌 고어(bill gore, 1912~1986)가 제시한 ‘해수면(waterline) 원칙’을 보면 이를 알 수 있다. 해수면 원칙이란 해수면 아래에 난 커다란 구멍처럼 신사업 투자가 일거에 배를 침몰시킬 수 있는지 평가해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투자 의사결정에서 세 가지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첫째, 상황이 긍정적일 경우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둘째, 상황이 부정적으로 변하면 어떠한 결과가 나타나는가? 셋째, 실패할 경우에도 생존할 수 있는가? 등의 질문이 그것이다. 특히 이 중에서 세 번째 질문에 대해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다면 신사업에 투자하지 않는다고 한다.

<블랙 스완>이라는 저서로 불확실한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해서 철학적인 식견을 보여준 월스트리트의 투자가인 탈레브(nassim nicholas taleb)도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바벨 전략’을 사용한다고 한다. 바벨 전략이란 자금의 85~90%는 미국 재무성 증권과 같이 지극히 안정적인 투자 대상에 넣어놓고 나머지 10~15%의 자금은 가장 투기적인 분야에 투자하는 전략이다. 이렇게 하면 15% 이하에 대해서만 투기를 벌이는 것이기 때문에 위험관리가 따로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중간한 위험도의 상품에 투자하는 대신 한쪽으로는 위험도가 높고 한쪽으로는 위험도가 거의 없는 전략을 택해서 위험을 피해갔으며, 시장이 좋을 때는 고수익을 달성했다고 한다.

즉 자만하지 않는 기업은 전략적인 하나의 선택 대안이 가져올 결과가 어떻게 될지 생각해 봄으로써, 극단적인 결과가 예상되는 선택은 피하는 식으로 의사결정을 한다.

2. 변화에 민감하다

끊임없이 배운다

1980년대 말 브라질 유통업체에서 미국의 선진 유통사업을 벤치마킹하기 위해서 10개의 유통업체 ceo에게 편지를 보냈다. 남미의 유통업에 대해서 별반 관심이 없었던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그 요청에 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마트의 창립자인 샘 월튼(sam walton, 1918~1992)만은 예외였다. 그는 브라질 사업가들을 아칸소로 불러서 몇 일을 같이 지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브라질 유통업자들이 월마트의 방식을 벤치마킹하러 온 것이었는데, 오히려 월튼이 브라질 사람들에게 물어본 것이 더 많았다. 브라질은 어떠한 사업 환경을 가지고 있는지, 라틴 아메리카에서의 유통업의 특징은 무엇인지 등에 대해서 매우 자세히 물어보았다고 한다. 나중에 브라질 유통업자들은 그들이 월마트를 방문한 동안 오히려 월튼이 브라질의 유통업에 대해서 철저히 배우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월튼은 항상 호기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월튼이 후계자를 결정할 때도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것이 겸손한 태도로 끊임없이 질문하고 주변의 모든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경영자가 회사를 이끌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겸손하고 항상 질문하며 조용한 글래스(david glass)에게 1988년 회사의 경영권을 물려주었다. 글래스가 ceo가 되었을 때 유통업에 종사하지 않는 사람은 그의 이름을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을 정도로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글래스 역시 1999년까지 월마트의 ceo로 있으면서 변화하는 환경에 대해서 배우는 자세를 잊지 않았다.

앞에서 이야기한 ge가 사업 포트폴리오를 끊임없이 바꿀 수 있는 것도 시대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핵심역량이 될 수 있는 분야에 대해서는 계속해서 배우기 때문이다. 미래에는 인류에게 환경문제가 가장 중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 물 사업에 대해서 지식을 축적하고 이 분야에 진출하여 높은 성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차근차근 움직인다

이렇게 배우는 태도는 전략적으로도 충분히 심사숙고한 후에 실행을 하게 만들고, 심지어 변화관리에 있어서도 조급함을 보이지 않고 신중한 접근을 한다. 1993년 위기에 처한 ibm에 구원투수로 투입된 컨설턴트 출신의 ceo 거스너(louis gerstner)가 대표적인 사례다. 거스너는 ibm에 임명되면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지금 ibm에게 가장 필요치 않은 것이 바로 비전이다”라고 이야기하면서 기본적인 활동에 집중하였다. 사실 그가 ibm 이사회로부터 ceo 요청을 받았을 때 두 번이나 거절했다. 전문지식도 부족한데다 ibm이라는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가 ceo로 임명된 후 ibm을 이해하기 위해서 3개월을 아무런 일을 하지 않고 지냈다. 거스너가 취임한 지 100일이 지났을 때 언론에서는 ‘그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ibm 주가가 6%나 빠졌다’는 기사를 내보냈다. 또 어떤 분석가는 “그는 확실히 기적을 행하는 사람은 아니다”라고 단정지었다.

하지만 거스너는 ibm이 절대로 위기 상황이 아니라고 하면서 언론의 호들갑을 경계했다. ibm에게 필요한 것은 수익률을 올리기 위해서 사업의 기본적인 활동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잃어버린 고객을 되찾기 위해서 차근차근 문제가 되는 부분을 고쳐나갔다. 그리고 과거에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의 ceo로 있을 때 ibm 전문가들에게 요청하여 ibm의 하드웨어와 다른 회사의 제품을 통합시킨 경험을 떠올려서, ibm의 전략 방향을 it 서비스로 전환시켰다. 그러나 서두르지 않고 이러한 전환에 10년을 쏟아 부었다. 결국 1993년 -81억 달러의 순이익이 나던 ibm을 2000년 +81억 달러의 회사로 탈바꿈시켰다. 변화의 결과는 극적이었지만 그 과정은 매우 조용했고 서서히 진행되었다.

사실 위기에 빠진 기업을 구제하기 위해서 영입된 ceo의 변화관리는 대부분 선제적인 구조조정과 거대한 비전의 수립 등 떠들썩하게 진행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연예인 못지 않게 언론에도 자주 나오고 대대적인 광고 캠페인도 벌인다. 물론 이러한 ceo들의 충격요법이 효과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경영의 연속성 측면에서는 문제가 적지 않다. 많은 경우 구조조정 효과가 지나가면 회사의 성과가 다시 추락하곤 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자만하지 않는 기업의 조용한 변화관리 방식의 강점이 있다.

3. 외유내강이다

자만하지 않는 기업은 겉으로는 겸손한 태도로 과거를 중시하고 끊임없이 배우는 자세를 지니고 있지만, 안으로는 강한 의지력을 지니고 있다. 신중하게 의사결정을 하고 새로운 일을 차근차근 진행하지만 일단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면 끝까지 완벽을 다하는 태도로 확실하게 실행한다.

이것은 콜린스가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에서 설명한 ‘레벨5 리더십’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다.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리더를 조사해 보니, 개인적 겸양과 직업적 의지를 역설적으로 융합하여 지속적으로 큰 성과를 일구어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들 레벨5 리더들은 겸손하면서도 의지가 굳고, 변변찮아 보이면서도 두려움이 없는 이중성을 가졌다고 했다. 가령 노예를 해방시킨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abraham lincoln, 1809~1865)은 위대한 나라를 만들고자 하는 큰 대의를 가졌으면서도 겸양과 수줍은 성격으로 많은 사람들로부터 오해를 받았다고 한다. 이밖에 킴벌리-클라크, 질레트, 패니 매, 뉴코어, 필립모리스 등을 위대한 기업으로 도약시킨 리더들은 모두 겸손하면서도 의지를 가지고 있는 레벨5 리더였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기업은 외부에 자주 드러나지 않지만 꾸준한 실행과 일관성으로 핵심역량을 축적해 왔다는 것이다.

사실 콜린스는 겸손함과 강인한 의지를 서로 상반되는 성질로 보았지만, 동양적인 가치관으로 보면 두 기질은 서로 다른 영역의 것이 아니다. 바로 겸손함은 겉으로 표현되는 외부적인 성향이고 강직함은 내적인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다. 흔히 내적으로 강직한 사람은 굳이 그것을 표현하려 하지 않기 때문에 겉으로는 유해 보이고, 안으로 유약한 사람은 그것을 감추려고 밖으로 강인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래서 내적으로는 강인함을 가지면서도 겉으로는 온화한 모습을 보이는 성향을 동양에서는 외유내강이라고 하여 오랜 세월 군자나 성인의 기질로 일컬어져 왔던 것이다. 바로 자만하지 않는 기업이 이러한 외유내강의 특징을 가지고 있어서 잘나갈 때도 방심하지 않고 중심을 잡으며 회사가 어려울 때는 강인한 의지력으로 이를 극복해내는 것이다.

Ⅳ. 신중함의 미학

올해 1월 개봉한 독립영화인 <워낭소리>는 모두의 예상을 깨고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여 상반기 최고로 화재가 되었다. <워낭소리>의 흥행 요인을 이야기할 때 많은 평론가들은 관객의 입 소문이 주효했다는 것과 함께, 요즈음에는 보기 힘든 우직함이라는 주제가 사람들의 심리를 자극했다고 한다. 농약을 치지 않고 농사를 짓는 노인의 모습이 40살이 넘어 기력이 쇠하였는데도 묵묵히 논밭을 가는 늙은 소와 어우러져 현대 도시인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이러한 ‘느린 영화’가 오히려 빠른 이야기 전개와 극적인 반전을 가지고 있는 영화에 식상한 관객에게 어필했다는 것이다. 최근 몇 년간 흥행한 영화는 만화를 원작으로 하는 헐리우드 sf 영화나 <007>이나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시리즈 액션 영화가 대부분이었다. 영화판도 빠르고 화려함이 성공의 키워드였다. 관객들도 이러한 유행에 젖어 들어 감동보다는 화려한 볼거리를 즐겼다. 하지만 <워낭소리>의 흥행은 이처럼 스피드와 볼거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움직임 속에서도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소재는 영원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현대 경영환경은 끊임없이 변화하고 혁신에 의해서 새로움을 만들어 내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신중함은 변화 불감증으로 여겨지는 속도의 시대, 꼼꼼함은 유약한 것으로 치부되는 도전의 시대가 되었다. 하지만 자칫 성급한 의사결정으로 조직에 구멍이 생길 수도 있고 무분별한 투자로 인해서 뒷수습을 못하여 어려움에 빠질 수도 있다. 속도를 강조하고 과감함을 강조하는 컨설턴트들은 자칫 기업을 소화불량에 걸리게 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너 자신을 알라”고 하는 소크라테스의 말이 더욱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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