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한중 FTA를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
LG경제연구원 ‘한중 FTA를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
  • 박래정 수석연구위원
  • 승인 2011.12.04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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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의 통상환경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갈등의 골이 동아시아를 경계로 형성되고 있다. 미국이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확대와 해군의 호주 주둔을 관철시키자, 중국은 파키스탄, 뉴질랜드, 아세안에 이어 한국 및 일본과의 FTA 추진으로 맞불을 놓고 있다.

수많은 갈등을 감수하면서 미국과의 FTA를 일단락 지은 한국 정부로서는 EU, 미국 등 거대경제권과의 FTA가 실제로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채 실감하기도 전에 중국을 대면하게 됐다. 미국, EU보다도 버거운 상대일 수 있다.

이미 형성된 탄탄한 분업관계나, 지리적 인접성을 감안할 때 한중 FTA의 전반적인 기대효과는 무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중저가 제조분야에서의 중국의 원가경쟁력을 고려하면, 중국과의 FTA는 어떤 나라와의 FTA보다 국내에서 파열음이 크게 날 수밖에 없다.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10주년을 맞는 중국경제는 시장개방이란 극약처방을 통해 산업경쟁력을 비약적으로 신장시키는 데 성공했으며 이는 최근 한중간 교역구조 변화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중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통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높아지는 최근의 쏠림 현상을 볼 때, China Risk가 고스란히 Korea Risk로 전이되지 않도록 안전장치를 여러 겹 마련할 필요가 있다. 수출을 성장동력으로 키웠던 중국경제가 내수동력 신장이란 구조개선에 실패한다면 경착륙 위험은 더욱 커질 것이다.

중국 정부는 지금까지 한국 정부가 상대했던 FTA 파트너들과는 체질이 다르다. 일사불란한 지휘체계를 가진 만큼 FTA의 이익을 나누는 협상과정에서 자신의 패를 쉽게 드러내지 않는다. 사회주의적 공유원칙이 굳건한 만큼, 양허 조건도 매우 까다로울 것이다. FTA 체결 후에도 행정의 자국 이기주의식 시장간섭이 문제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과의 FTA 체결은 한국경제를 선진국 시장과 개도국 경제의 ‘접점’으로 올려놓을 것이다. 비교우위를 효과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중요한 과제를 안게 되는 셈이다.

급변하는 동북아 통상환경

“한중일 FTA의 조속한 실현을 위해 노력하자” (원자바오 중국 총리, 11월 아세안 정상회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참여 하겠다” (노다 요시히코 일 총리, 11월 일본 국회)

동북아 통상환경에 지각변동이 느껴진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회원자격을 얻은 중국은 현재까지 17개국과 FTA를 체결했다. 칠레, 싱가포르, 파키스탄, 뉴질랜드, 아세안 등 경제규모가 작은 나라들이다. 파장이 클 경제대국과의 FTA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온 것이다. 1990년대 이후 가장 왕성하게 직접투자를 해온 한국, 일본과의 FTA에 대해서도 산업경쟁력에서 크게 뒤질 게 없는 한국과 먼저 체결하고, 이어 일본과 맺는다는 단계적 체결 전략을 숨기지 않았다. 원 총리의 11월 발언은 이 같은 전략을 상황에 따라 수정할 수 있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중국의 궤도 수정은 미국의 대중(對中) 전략 변화와 관련이 깊다. 중국의 대국굴기(大國?起)가 인접국과의 영유권 분쟁으로까지 외연이 확장될 조짐을 보이자, 미국은 기다렸다는 듯 중국에 대한 압박강도를 높이고 있다. 미 해군의 호주 주둔 선언과 같은 군사외교적인 압박과 함께 TPP에 대한 아시아국가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등 경제적 차원의 압박도 병행하고 있다. 노다 일 총리의 발언 역시 탈출구 없는 일본 경제의 고민을 반영한 것이지만, 중국의 불안감을 자극하기엔 충분했다.

중국을 G2라 부르기 시작한 것은 미국 전략가들이었다. 중국이 미국 경제규모의 40%대에 불과한 것과 달리 일본의 GDP는 이미 1995년 미국의 70%를 넘어섰다. 하지만 그 때는 미국의 누구도 일본을 G2라 호칭하지 않았다. 더구나 인당 GDP로 따지면 중국은 여전히 미국과 비교조차 민망한 개도국 수준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중국을 G2로 부른 것은 글로벌 경제의 위기, 구체적으로 미국경제의 위기 상황에서 중국이 고통을 나누길 바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최근 중국에 대한 미국의 전방위 압박은 이 같은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면서 협조를 구걸할 게 아니라 힘의 우위로 압박하자는 동기가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중국이 과거 독일이나 일본처럼 미국의 기대대로 움직이지 않는 대표적인 사안은 바로 환율이다. 미국은 중국 위안화가 큰 폭으로 절상되기를 기대한다. 위안화 절상은 한국 원화 등 동아시아 경제의 통화를 동반 절상시켜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확대 추이를 개선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출이라는 성장동력을 단번에 잃을 것을 우려하는 중국으로선 위안화 절상을 추진하되 속도를 조절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압박에 맞서 중국은 자연스럽게 자국을 구심점으로 하는 동아시아 경제블록을 쌓으려 하고 있다. 첫 단계라 할 아세안과의 FTA는 이미 발효됐고, 이제 동진(東進)할 차례이다. 원자바오, 리커창 등 중국의 4, 5세대 지도자들이 한중 FTA를 촉구하는 발언 빈도가 잦아지고 있으며, 이는 중국에 매년 막대한 무역흑자를 올리는 한국으로 압박이 아닐 수 없다. 더구나 한중 FTA는 한국정부가 먼저 제기했던 사안이라는 점에서, 산관학 공동연구까지 종료된 마당에 정부간 협상을 마냥 미루기도 어려운 처지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FTA는 한국이 체결한 다른 FTA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무엇보다 중국경제의 운용체제는 한국의 다른 FTA 상대국이 운용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모델이 아니다. 더군다나, 그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한중 분업구조가 수교 후 근 20년 간 굳건히 정착되고, 중국 내 한국기업의 제조법인들이 제3국 시장개척에 필수적 생산거점으로 기능해오면서 우리 기업들의 대중 노출도(exposure)가 상당히 높아졌다. 이 같은 두 가지 특징은 중국과의 FTA 협상이 그 과정에서 이익의 균형을 찾기가 매우 어려우며, 협정이 발효될 경우 한국경제가 받을 파장도 매우 클 것임을 시사한다. 한중 FTA의 특이성을 고려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한중 교역구조의 특징과 변화

한중 FTA가 우리 경제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위해서는 먼저 양국 간의 교역 현황을 자세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중국에 대한 한국의 교역의존도가 매우 높고, 계속 높아져 왔다는 점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한중 교역은 단순히 규모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구조적인 면에서도 여러 가지 특징과 변화를 보여준다.

첫째, 양국간 무역구조가 점점 더 보완적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두 나라의 무역구조가 보완적이라는 것은 한 나라의 주요 수출품이 상대국에서도 역시 중요한 수입품인 경우가 많다는 뜻이다. 예컨대, 한국의 총수출에서 자동차 비중이 매우 높은데, 중국의 총수입에서도 자동차가 높은 비중을 차지한다면 한국과 중국은 자동차라는 상품에 대해 서로 보완적인 무역구조를 갖는다. 또, 이런 상품이 많아질수록 두 나라 무역구조의 보완성은 점점 더 높아진다. 물론 이 때 한국의 자동차 수출이 꼭 중국에 대해 이뤄진다거나, 중국의 자동차 수입이 한국산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저 한 나라의 수출구조와 무역 상대국의 수입구조가 유사해 두 나라 사이에 교역이 늘어날 여지가 충분하기만 하면 이 두 나라는 서로 ‘무역보완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한국과 중국의 서로에 대한 무역보완성을 계산한 결과, 한국의 수출에 대한 중국의 보완성은 양국 간 교역이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부터 꾸준히 높아져왔으며, 2000년대 중반 이후 그 속도는 둔화됐지만 여전히 조금씩이나마 증가하고 있다. 2005년과 2009년을 비교해 보더라도, 무역보완성이 낮아진 일본(40.45→37.80)이나 미국(49.70→44.88)과 달리 58.64에서 59.52로 높아졌다. 같은 기간, 중국의 수출에 대한 한국의 보완성은 더 큰 폭으로 높아져 38.94에서 44.80으로 5.86p 증가했으며, 대중 무역구조가 우리보다 훨씬 더 보완적인 미국(4.12p)과 일본(4.41p)보다도 증가 폭이 더 컸다.

이처럼 상호 무역보완성이 높다는 것은 교역 확대 여지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다. FTA 등을 통해 관세 장벽을 낮출 경우 교역 확대 효과가 클 것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둘째, 한중 간 교역에서 중간재(=부품+부분품)와 최종재(=자본재+소비재)의 흐름이 바뀌고 있다. 한국의 대중 수출에서는 중간재와 자본재 비중이 줄어든 반면, 한국의 대중 수입에서는 오히려 그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를 보여준다. 우리나라의 대중 교역을 UN에서 제시하는 상품별 분류(BEA) 기준에 따라 기초재, 부분품, 부품, 자본재, 소비재 등으로 나눠 분석한 결과, 수출의 경우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만 2005년보다 2009년에 높아졌을 뿐, 중국 내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부분품, 부품, 자본재 등의 비중은 모두 낮아졌다. 그러나 한국의 대중 수입 측면에서는 오히려 반대 현상이 나타나 소비재 수입은 그 비중이 줄어든 반면 부분품, 부품, 자본재의 비중은 증가했다.

전통적으로 한중 교역은 생산분업 구조가 강해 중간재와 자본재 비중이 높았고, 대체로 한국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최근 중국의 제조업 생산 역량 고도화와 내수시장 활성화로 중간재와 자본재 자급률이 높아지고, 소비재 수요가 늘어나면서 이런 결과가 나타나게 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한중간 분업구조에서 중국의 목소리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와 같은 중국 제조업의 부상은 동북아 3개국의 국제분업 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지금까지 한중일 3국 교역의 기본 구조는 중국이 한국과 일본으로부터 중간재와 자본재를 수입해 가공한 후 이를 역외로 수출하는 방식이었다. 그 결과, 중국은 한국과 일본에 대해 대규모 무역적자를, 나머지 전세계 국가들에 대해서는 무역흑자를 기록해왔다. 그러나 앞으로 한국과 일본에 대한 중국의 의존도가 낮아질 경우 동아시아 역내외의 이런 비대칭성에도 상당한 변화가 예상되는 만큼, 우리 기업들로서는 중국과의 분업구조 유지에 필수적인 제조업 역량 격차를 유지할 수 있도록 새로운 비교우위를 끊임없이 발굴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셋째, 한국의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우리의 중국에 대한 교역의존도는 1980년대 말 이후 줄곧 높아져 왔으나 수출은 2005년 이후 22% 내외, 수입은 2007년 이후 17% 내외를 안정적으로 유지했다. 그러나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 선진국 수출이 급격히 위축되면서 2009년 이후 대중 수출 비중이 다시 확대되는 추세를 보이면서 2010년에는 25%를 넘어섰다. 이와 같은 수출 의존도 증가는 중국 경제와 한국 경제와의 동조화를 심화시킨다는 점에서 중국경제 호황기에는 교역이 활발해지는 긍정적 측면이 기대되지만, 중국경제에 돌발 변수가 발생할 경우 우리 경제에까지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에서 Risk 상승의 측면이 있다.

한중 FTA의 특이성

한중간 교역구조의 높은 보완성과 활발해지는 산업 내 무역 현황을 고려할 때 한중 FTA가 발효될 경우 이점이 적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양국 간 자원배분의 효율성이 높아질 뿐 아니라, 한-EU FTA와 한미 FTA를 통해 획득한 서비스 경쟁력 향상 효과를 가장 크게 얻을 수 있는 시장 역시 중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중 FTA는 협상 개시에 앞서 고려해야 할 이슈가 적지 않다. 이미 중국에 대한 우리의 수출 의존도가 매우 높아진 상황인데다, 두 나라 간의 경제적 분업구조, 경제체제의 차이, 협상 주도력 격차 등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한 두 가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높은 수준의 분업구조 정착

일반적으로 FTA의 경제적 효과는 관세인하를 통한 가격인하가 시장을 키우고 이것이 생산 및 소득증가로 이어지면서 발생한다. 관세인하 폭이 클수록 가격인하 효과가 커질 것이며 따라서 최종적인 소득증가 효과도 크게 기대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과 중국의 상대국 수입품에 대한 실효 관세율, 즉 명목상의 평균 관세율이 아니라 품목별 수출 비중을 가중치로 이용해 계산한 관세율은 각각 6.0%, 3.9%로 낮은 편이다. (한국이 중국보다 더 높은 것은 농산물 등 높은 관세율을 적용 받는 품목의 수입 비중이 상대적으로 더 높기 때문이다.) 여기서 중국의 실효관세율 3.9%는 관세환급을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중국은 수출을 독려하기 위해 수출용으로 수입해오는 원부자재에 대해서는 수출 후 관세의 상당부분을 돌려주고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중국의 실효관세율은 더욱 낮아진다. 그렇더라도 미국의 대한(對韓) 관세율이 2.5% 인 만큼, 한미 FTA보다 한중 FTA가 관세인하 폭이 더 클 가능성이 높으며, 그 파장 역시 더 클 것이다.

위에서 기술한 관세인하의 소득증대 효과는 단기적으로 자국 내에서 나타난다. 중장기적으로는 교역확대에 따른 생산구조가 효율화되는 과정을 거치면서 생산요소의 재편이 가속화되고 이 같은 자본축적 효과까지 고려하면 부가가치 증가규모는 더욱 커질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이 추정한 한중 FTA 거시경제 효과에 따르면, 관세가 완전 철폐될 경우 GDP는 0.52% 포인트, 자본축적 효과까지 감안할 경우 2.56% 포인트 상향된다.

한국이 FTA를 체결한 다른 교역국과 달리 중국엔 이미 대단히 많은 한국기업이 진출해 조업하고 있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중국의 저렴한 인건비, 우호적 토지사용료 및 특혜세율, 지리적 근접성, 저평가된 위안화 등 한국보다 크게 양호한 수출환경 등을 고려한 선택이었다.

중국 제조업분야에 대한 한국의 직접투자 추이를 보면 한국의 중국 제조업 투자는 한중 수교 직후인 1990년대 중반 1차 러시를 이뤘고, 중국이 세계무역기구(WTO) 가입한 뒤인 2000년대 초반 또 한 차례 붐을 이뤘다. 2차 붐에 해당하는 2003년엔 우리나라 전 업종의 해외직접투자에서 차지하는 중국 제조업 투자비중은 32%까지 치솟았다. 투자금액 기준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지속적으로 신기록을 경신하고 있었다.

실제로 전자 IT분야에서 국내 대기업들의 중국 내 생산액은 이미 한국 생산액을 넘어선 곳이 많다. 중국 내수시장에 대한 진출목적보다는 3국 시장 수출거점으로 육성한 것이 대부분이다. 보다 노동집약적인 중소기업들은 임금 등 국내 원가상승세를 견디다 못해 2000년대 들어 산둥 장수성 등 한국과 가까운 연해거점에 새 둥지를 유행처럼 옮겼다.

이 같은 직접투자의 영향으로 한중간 교역에서는 미국 유럽 등 다른 거대경제권과의 교역에 비해 비소비재 비중이 유달리 높게 나타난다. 비슷하게 비소비재 비중이 높은 일본과의 교역구조를 생각해볼 때 한중일 간에는 긴밀한 분업관계가 형성돼 있는 것이다.

대개의 FTA는 체결 이후 자본축적 효과 확대를 도모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에 집중하지만, 이미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중국과의 FTA에서는 한국계 기업들의 안정적 이익창출 및 본국으로의 이전이 더 중요하고 화급한 이슈로 부각될 수밖에 없다. 구체적으로 중국 내 한국기업의 내수시장 접근을 가로막는 다양한 진입장벽의 제거, 제조분야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사업서비스 분야의 개방, 외환규제 완화, 합법적인 과실송금 방안의 다양화 등이 주요 이슈가 될 수 있다.

한중 FTA로 추가적인 관세인하 프로그램이 가동되면, 교역규모는 더욱 커지고 자본축적 효과도 추가적으로 기대할 수 있다. 더욱이 최근 중국 정부가 추진 중인 경제구조 개선작업의 핵심은 내수의 성장동력 제고이다. 중국시장의 전략적 의미가 ‘수출거점’에서 ‘내수시장 활용’으로 바뀐다면, 더욱 많은 자본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효과는 노동 등 생산요소의 가격 차이가 클수록 크게 나타난다. 그러나 최근 수 년 새 급작스럽게 진행된 중국의 임금인상 정책, 토지가격 급등세 등으로 한국의 대중 직접투자는 위축되고 있는 게 현실이다. 향후 위안화의 점진적 절상세 등 수출환경 악화까지 고려한다면 중국 투자환경은 더욱 약화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자본축적 효과가 몇 년 전의 추산보다 상당히 낮아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한중 FTA의 기대효과를 논하며 미래의 자본축적 효과에 초점을 맞추기에 앞서 이미 진출한 한국기업의 부가가치 창출과 본국이전에 우선적인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커지고 있다.

경제 체제의 차이가 가장 큰 난관

한국이 이미 FTA를 맺은 국가들과 달리 중국이 ‘고유의 사회주의시장경제’를 운용한다는 점도 중요한 차이다. 간단히 말해 사회주의적 공유원칙을 견지해나가되 시장메커니즘을 적절히 활용하는 경제이다. 이러한 특징은 FTA 협상 및 이행에도 상당한 난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중국은 시장개혁을 지속적으로 확대해왔지만, 경제활동의 기초가 되는 토지나 국가기간산업에 종사하는 핵심기업은 국가소유나 공동소유 원칙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교통 통신 금융 등 기간산업의 핵심 기업들은 대부분 국가가 최대지분을 지니고 있으며 시장감독기구의 우호적 지원을 받고 있다. 외국기업 입장에서 바라보면, 해당분야의 시장개방은 체제 안정성과 직결되는 사안인 만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이들과의 경쟁은 중국 정부와의 경쟁이슈가 된다는 뜻이다. 아울러 해당 분야 국유기업의 경쟁력에 위협을 가할만한 환경변화도 중국 정부가 수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사례가 국유 중장비업체인 쉬공(徐工)의 매각계약 파기 건이다. 2005년 미국계펀드가 쉬공의 인수계약까지 맺었지만, 중국 정부는 한 해 뒤 ‘외국투자자 역내기업 인수관련 규정’을 제정한 뒤 소급 적용해 무산시켰다. 중국 정부는 2008년에는 공정거래법(反壟斷法)까지 제정해 외국 투자자의 자국기업 인수에 대한 제동장치를 추가로 마련했다.

특히 중국은 올해를 기점으로 성장잠재력이 큰 7개 산업분야를 전략적 신흥산업으로 지정하고 선진국에 버금가는 글로벌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대대적인 금융 세제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 분야는 산업생태계가 만들어지기 위해선 초기 재정지원과 상당한 규모의 내수시장이 필수적인 것으로 지적되며, 중국으로선 양호한 인큐베이팅 조건을 갖춘 셈이다.

따라서 이 분야를 선도하는 글로벌 선진기업들이 중국 시장참여 가능성을 타진하고 있지만, 중국은 대부분 외자지분 한도를 절반 이하로 설정해놓고 있다. 기술유출을 우려하는 외자로서는 사실상 시장참여가 봉쇄돼 있다. 최근 미국 정부 등이 이 분야에 대한 중국 정부의 재정지원이 WTO가 제한하고 있는 보조금 지급에 해당된다고 보복조치를 예고하고 있는 만큼 한국정부도 향후 FTA 협상과정에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중국 정부의 협상력과 행정 편의주의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시장자율을 강화해왔지만,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영도’ 원칙을 견지하고 있다. 공산당 영도의 핵심은 당의 핵심지도자들이 국가 각급 행정기구의 영도자급 지위를 장악함으로써 관철되는데, 즉 공산당을 정점으로 행정 사법이 종속됨을 의미한다. 특히 사법부 현장의 예산 및 인사권은 소속 지방의 의회(지방 전인대)에 속해 있으며, 이 의회 대표들도 공산당이 사실상 인선하고 있다.

FTA 협상에서 중국 공산당은 이 같은 영도원칙에 따라 자국 내 제 정파의 이해를 반영하거나, 이익단체에 휘둘리지 않고 중장기적 국익 관점에서 일관성 있는 협상전략을 펼칠 수 있다. 제 정파 및 다양한 이익그룹의 이해를 반영해야 하는 한국 정부로선 협상 초기부터 패가 노출될 수밖에 없다.

중국 중앙정부가 그 동안 맺었던 FTA 조항은 지방정부의 시행령 등에 막혀 관철되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FTA 대상국이 경제소국이었던 탓에 체결 후 현장까지 FTA 법규를 강제할 만한 협상력을 지니지 못했던 때문이다.

향후에도 지방정부의 세원(稅源) 및 현지 주민들의 일자리를 보장하고 있는 지방국유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우려가 큰 FTA 조항은 제대로 준수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지방 행정기관의 투명성 및 중립성을 자신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기업이 법규와 현실의 괴리를 사법당국에 호소하려 해도 해당지역 재판에서는 승소를 장담하기 어려운 구조이다. 따라서 중국 중앙정부와 체결한 협정을 지방정부가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강제장치를 사전에 마련할 필요가 있다.

위 세 가지와 같은 중국의 정치경제적 특징을 종합해볼 때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중국 특색의’ 비관세 장벽 극복이 어느 나라와의 FTA보다 중요한 과제로 등장할 것이다. 주요 산업에 대한 진입장벽은 ‘체제의 한계’ 탓에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일 수 있고, 이러한 정황은 협상전술에 적절히 반영될 수 있을 것이다. 중앙정부와 합의한 내용을 지방정부에 이행을 확약 받는 것도 중국적 현실에선 효과적인 접근법이다.

최근 동아시아 통상환경의 급변은 기본적으로 이 지역에 대한 미국과 중국의 전략적 이해가 충돌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에 대해 미국이 FTA를 체결하고, 중국이 적극적으로 FTA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은 대중 FTA 협상력을 배가시킬 수 있는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문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지정학적 교차점에 있는 일본 역시 미국과 중국의 ‘구애’를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최근 일본 정부 지도자들의 발언을 종합하면 일본은 지역안보 면에선 미국의 안보우산을 쓰면서도, 경제적으로는 미국이 주도하는 TPP와 중국이 운을 뗀 한중일 FTA에 모두 긍정적 사인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중간자적 입장을 취해 협상력을 극대화하겠다는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일본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중간자적 입장을 취하고 있지만, 한국은 이미 미국과 FTA를 체결, 국회비준을 통과한 만큼 미국에 대한 패는 노출시킨 셈이 됐다. 이제 중국과의 FTA 협상전략에 있어서 일본과 같이 공동보조를 취할 것인지, 일본과 중국에 선후(先後)를 둘 것인지 선택해야 할 상황이다.

한일과 중국의 경제운용 체제의 차이, 한일 두 나라의 개방 유보조항의 유사성 등을 감안하면,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한일 공동보조가 한국 단독의 FTA 협상보다 유리할 수 있다. 중국 내 시장접근을 가로막는, 체제 특성에서 유래되는 비관세장벽은 한국기업뿐 아니라 일본 기업들로부터도 원성을 사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제조업이 대중(對中) 비교우위를 누리는 기술격차는 대부분 중간재 부품 분야에서 나오는 것으로서 이 분야에서 일본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사실 역시 중요하게 고려해야 한다. 한국 제조업이 중국에 제공했던 가치의 상당부분이 일본에서 유래된 만큼, 한중일 FTA가 한국의 비교우위를 조기에 소멸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무시할 수 없다. 중국이 당초 ‘한국 다음 일본’이라는 단계적 FTA 전략을 선호했던 것도 일본의 제조 경쟁력이 더 강해 자국에 미칠 파장이 더 클 것이란 우려 탓이었다.

긴 안목에서 보면, FTA의 선후관계가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 있다. 분업관계가 지구촌 어느 지역보다 강하게 형성돼 있는 동북아에서 어느 두 나라간의 FTA는 바로 인접국의 FTA로 확장될 공산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가 미국과 FTA를 체결한 뒤 인접국의 FTA 협상요청이 밀려오는 것은 좋은 방증일 것이다.

한국경제는 유럽 및 미국과의 FTA 체결로 선진국 경제와 시장개방 및 확대 계기를 맞게 됐다. 아세안 인도에 이어 중국과 FTA로 묶이게 되면, 선진시장과 개도국의 접점에 서게 된다. 두 경제권의 접점에서 비교우위를 최대한 발휘하기 위한 긴 안목의 대응이 중요하다. 정부는 ‘원산지 규정’을 최대한 유리하게 설계해서 FTA 협정 시 관철시켜야 하며, 기업들은 아세안을 포함해 가치사슬을 재배분할 필요가 있다. ‘접점’에 섰을 때 비교우위를 최대한 창출하기 위해선, 고부가가치화와 원가경쟁력 제고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해야 할 것이다.[LG경제연구원 박래정 수석연구위원·김형주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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