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잡스 없는 애플의 달라진 기류’
LG경제연구원 ‘잡스 없는 애플의 달라진 기류’
  • 이종근 책임연구원
  • 승인 2012.04.19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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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애플은 스티브 잡스와는 본격적으로 다른 행보를 보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뉴아이패드의 디자인, 대규모 배당 계획 및 특허 전략에 있어서 기존 경영방식과는 상충된 노선을 택했다. 스티브 잡스의 일화와 다른 기업의 사례를 통해 애플의 변화가 주는 의미에 대해 살펴 본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사망한 지 어느덧 반 년이 흘렀다. 잡스가 없는 애플에 대해 당초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하기도 했지만, 아직까지 새로운 CEO인 팀 쿡(Tim Cook)은 무난하게 포스트 잡스(Post-Jobs) 체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잡스 사후 애플의 주가는 50% 이상 상승하였고, 매출 및 현금 보유고도 꾸준하게 상승을 이어나가고 있다. CEO는 바뀌었지만, 아직까지 애플 제품 및 브랜드 가치는 건재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최근 애플의 행보를 보면 향후 잡스 시절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 이유는 ▲뉴아이패드(The new iPad)의 디자인, ▲대규모 배당 계획 발표, ▲특허 전략의 변화 조짐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잡스는 애플 제품 디자인에 대해 지나칠 정도로 집착했었고, 배당 및 특허권 침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었기 때문에 애플의 최근 움직임은 주목할 만한 변화로 여겨진다. 생전 잡스가 애플에 미쳤던 절대적인 영향력을 감안해 볼 때, 잡스와는 다른 노선을 시작하려는 애플의 ‘변화’가 오히려 ‘도전’으로 비춰질 만큼 파격적이다.

애플에게 이러한 ‘도전’은 이제 시작일 뿐이다. 애플이 혁신의 아이콘으로 지속할 수 있을지, 아니면 과거 잡스가 없던 시절의 애플처럼 다시 평범한 기업으로 전락할지 애플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애플 전략의 변화 움직임

잡스가 사망한 후, 애플은 제품, 재무, 특허 및 마케팅 분야를 중심으로 변화의 조짐을 보여왔다. 특히, 최근 한 두 달 동안 애플은 잡스의 기존 경영전략과는 매우 상충되는 움직임을 본격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

● 애플 신제품, 디자인보다 성능 개선에 초점

지난 3월 중순, 애플은 아이패드2의 후속 신제품인 뉴아이패드를 출시했다. 기존 제품(아이패드2) 대비 해상도, 그래픽 성능, 음성인식, 카메라 성능 등 주요 스펙이 향상되었으며, 4G(LTE) 기능도 탑재되었다. 출시 3일 만에 판매량이 300만대를 돌파하면서 초기 흥행몰이에 성공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 보면 더 두꺼워지고 무거워지는 등 디자인에 있어서는 오히려 아이패드2 대비 역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잡스가 디자인에 있어서 한 치의 양보도 없었던 것과는 배치되는 모습이다. 잡스 생전에 디자인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 엔지니어가 찾아와 잡스가 원하는 수준까지 제품의 두께를 줄일 수 없다고 하자, 잡스는 그 자리에서 해당 제품을 수족관에 던져 버렸다. 수족관에 빠진 제품에서 기포가 몇 개 뿜어져 나왔고 잡스는 빈 공간이 있다는 증거라며 두께를 더 줄이라고 호통쳤다. 결국 더 얇고 디자인이 우수한 애플 제품이 나왔다. 또, 애플 경영진(Top Management) 구성에 있어서 잡스는 디자인 부서에 가장 큰 힘을 실어준 것으로도 유명하다. 잡스는 디자인 최고책임자인 조나단 아이브에게 타 부서장을 능가하는 막강한 권한을 부여하여 핵심 엔지니어들이 기술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난이도 높은 디자인을 구현할 수밖에 없도록 조직을 운영하였다.

한편, 최근 로이터(Reuters) 뉴스에 의하면, 애플이 향후 출시하게 될 아이폰5에 4.6인치 디스플레이를 탑재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잡스는 4인치 이상 화면의 경우 한 손으로 화면을 조작하기 힘들다면서 반대 입장을 분명히 밝혔었다. 그러나, 주요 경쟁사들이 4~5인치 대의 대화면 디스플레이 휴대폰을 출시했고 시장 수요가 이에 긍정적으로 반응하면서 애플 입장에서도 3.5인치 화면만을 고집하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 되어버렸다. 갤럭시 노트, 옵티머스 뷰 등 하이브리드 형태의 제품까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아이폰 디스플레이 사이즈에 대한 고민은 깊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잡스가 주도했던 애플은 ▲완성도 높은 제품 성능, ▲군더더기 없는 고유 디자인, ▲콘텐츠 플랫폼 및 차별화된 수익모델을 통해 혁신의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했다. 또 다른 혁신을 위해 모험을 거는 것이 맞을 지, 아니면 이미 확보한 역량을 최대한 레버리지 하면서 경쟁에 대응해 나가는 것이 현명할 지 아직 단정지을 수는 없다. 일단 팀 쿡이 뉴아이패드를 통해 보여준 모습은 후자에 가까운 모습이고, 생전 잡스의 모습과는 확실히 달라진 행보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 대규모 배당 계획 발표

애플은 재무관리 측면에서도 잡스 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난 3월 말, 애플은 17년 만에 대규모 배당 및 자사주 매입 계획을 공식적으로 발표하였다. 애플은 주당 2.65달러의 주식 배당을 실시하고 오는 9월부터 향후 3년 간 100억 달러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이를 위해 애플이 3년 간 투입하는 자금은 450억 달러 규모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애플은 현금 보유 규모가 지속적으로 급증하였으며, 현재 1,000억 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투자자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배당 압력을 받아왔었다.

애플이 보유한 현금 규모는 주요 IT업체 몇 곳을 인수하고도 남을 정도이며,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에 의하면 향후 2년 간 그리스의 빚을 대신 갚아줄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일반적인 기업에서 이 정도 규모의 현금을 보유했다면 배당을 하는 것이 특이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유독 애플의 배당 계획이 주목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잡스는 1996년 애플에 복귀한 이후 무배당 원칙을 고수해 왔다. 배당에 부정적인 입장을 보인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1990년대 애플은 현금 부족으로 인해 유동성 위기를 겪었으며, ▲완성도 높은 기술 확보를 위해 대규모 R&D 자원 확보는 필수적이라는 점이 그의 경영철학이었기 때문에 배당을 반대했던 것이다. 한 기업이 배당을 추진한다는 것에는 여러가지 함의가 있을 수 있지만, 잡스 입장에서는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신제품 개발과 혁신에 지속적으로 도전하기 위해서는 대규모 현금이 손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강했던 것으로 판단된다.

잡스가 살아 있었더라면 끝까지 무배당 원칙을 고수했을까? 엔드 투 엔드(End-to-End) 통합 방식을 그토록 좋아했던 잡스가 통신사업까지 직접 하고 싶어했다는 점을 감안해 본다면 배당에 대해 계속 부정적 입장을 취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애플의 대규모 배당 계획 발표는 잡스의 색깔을 벗고 새로운 애플의 모습을 지향해 가는 전략의 출발점으로 느껴진다.

● 특허전략의 변화 조짐

애플의 특허 전략에도 변화의 징조가 보이기 시작했다. 잡스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Walter Isaacson)에 따르면 특허 침해에 대해 잡스는 과도할 정도로 공격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죽는 순간까지 남아 있는 내 인생과 은행에 있는 애플의 자금 400억 달러를 모조리 바쳐서라도 상황을 바로잡을 생각이다. 핵전쟁도 불사할 수 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전 세계 9개국에서 특허 소송 중인 삼성전자와 애플이 최근 합의를 타진 중이라는 보도가 계속 나오고 있으며, 미국 법원의 요청으로 양 사 CEO는 합의 협상에 본격적으로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특허 소송에 대해 크로스 라이센싱(Cross Licensing) 방법을 취하는 것은 매우 일반적인 전략이지만, 잡스가 유독 기술 및 특허 소송에 감정적일 정도로 예민하게 대응했던 것을 감안해 본다면 애플의 최근 움직임은 이례적이다. 관련 업계에서는 특허 이슈에 대해 팀 쿡은 잡스보다 조금 더 비즈니스 관점에서 냉정한 대응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는 소송을 필요악의 관점에서 보지, 무한한 보복의 도구로 간주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차피 소송 중인 회사와 핵심 부품 협력을 지속해야 하는 입장에서 합의를 이끌어 내는 것이 궁극적으로 애플에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 외에도 팀 쿡을 중심으로 한 애플의 경영진은 잡스 때와는 다른 모습을 계속 보여주고있다. 잡스의 공식 전기에서 언급된 아이TV(가칭) 출시설에 대해서도 팀 쿡은 비밀주의를 고수하기보다 주요 언론매체를 통해 “어느 정도 사실이다”라는 입장을 밝혔으며, 잡스가 큰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자선 활동이나 폭스콘(Foxxcon) 노동자의 노동 환경 개선에도 공식적인 지원을 약속하였다.

사례를 통해 본 애플의 고민

누가 뭐래도 애플은 현재 IT업계에서 가장 좋은 실적을 거두고 혁신을 선도하고 있는 기업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잡스 사후 애플에게도 많은 고민이 쌓이고 있을 것이다. 과거에도 애플과 같이 승승장구하다가, 창업자의 은퇴 또는 사망으로 인해 기업이 크게 흔들렸던 사례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월트 디즈니社, 소니 등의 기업은 카리스마 넘치는 창업자 CEO가 자리에서 물러난 후 급격하게 어려움을 겪었었다. 실제로 잡스는 사망하기 전 팀 쿡을 비롯한 애플 경영진에게 이 기업들을 반면교사 삼아 애플을 영속하는 기업으로 이끌어 달라고 당부하였다.

● 월트 디즈니社, 후계 구도 취약 및 시너지 약화

월트 디즈니社는 만화영화 제작가인 월트 디즈니(이하 ‘월트’)가 1928년 설립한 미국의 대표적인 엔터테인먼트 회사이며, ‘미키마우스(1928)’, ‘백설공주와 일곱난쟁이(1937)’, ‘피노키오(1938)’, ‘신데렐라(1950)’,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1951)’, ‘메리 포핀스(1964)’ 등이 연달아 흥행에 대성공하면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다. 이러한 번영에는 월트의 형인 로이 디즈니(이하 ‘로이’)의 공도 컸다. 월트와 로이는 대조적인 성격의 소유자들이었는데, 월트가 예술가이면서 자기중심적인 기질을 가진 경영자였다면 로이는 현실적인 실무가였다. 이러한 정반대 성격으로 인해 다툼도 있었지만 서로 잘 조율하면서 월트 디즈니社의 번영을 주도했다. ‘월트 & 로이’의 조합은 ‘잡스 & 팀 쿡’과도 유사해 보일 정도로 상반된 경영 방식이 오히려 시너지를 내는 형태였다.

월트는 그가 온 정열이 다 바쳤던 디즈니월드가 한창 건설 중이던 1966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수 년 뒤 그의 형 로이 마저 사망한 후 시간이 좀 흐르자 월트 디즈니社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다. 강력한 리더십을 가졌던 창업자 형제의 사망 후 후계자들은 파벌을 형성하면서 서로 대립하게 되었으며, 월트 디즈니社의 사업 간 시너지도 급격하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창업자가 원했던 월트 디즈니社의 수익모델은 콘텐츠(영화, TV프로그램, 애니메이션) 제작을 통해 캐릭터와 스토리를 만든 후, 이를 기반으로 테마파크(예: 디즈니랜드)와 캐릭터 상품(예: 미키마우스 인형) 매출을 증대시키는 것이었다. 하지만, 테마파크가 안정적으로 거액의 이익을 창출하게 되자 경영진들이 이에 지나치게 의존하여 콘텐츠 제작을 소홀히 하게 되었다. 결국 테마파크의 입장료 감소로 이어져 전체적인 수익모델이 무너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잡스는 유독 월트 디즈니社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애플과 월트 디즈니社는 닮은 점이 많다. 월트가 그의 야심작 디즈니월드의 개장을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듯이 잡스도 아이TV, 아이폰5(가칭) 등 그의 역작을 끝내 보지 못하고 눈을 감았다. 잡스는 월트 디즈니社의 개인 최대 주주로서 월트 사후에 겪었던 회사의 위기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애플 직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던 잡스 추도식에서도 나타났듯이 잡스는 사망을 앞둔 시점에서도 팀 쿡에게 월트 디즈니社가 겪었던 어려움을 공유하면서 애플의 번영을 부탁했다고 한다.

● 소니, 시장의 변화를 놓쳐 혁신 아이콘 퇴색

20세기 중후반의 소니는 지금의 애플에 버금가는 트렌드 메이커(Trend Maker)였다. 소니 로고가 찍힌 대형 TV, 워크맨을 소유한 소비자들이 자부심을 느낄 정도로 당대 최고의 전자기업이었다. 그런데, 1990년대 말, 공동 창업자였던 모리타 아키오, 이부카 마사루가 세상을 떠나면서 소니의 위기는 서서히 시작되었다. 카리스마 넘치는 전임 CEO들에 익숙해져 있던 소니의 임직원들은 후임 CEO인 이데이 노부유키 회장(이하 ‘이데이’)의 리더십에 의문을 품고 반발했으며, 이 후 소니는 많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소니는 결국 ‘전자산업의 디지털 전환’이라는 엄청난 패러다임 변화 속에서 의사결정이 번번이 지연되면서 한국과 미국 기업들에 선도 지위를 내주고 말았다.

이데이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Business Week)가 선정한 최악의 경영자라는 불명예를 안기도 하였다. 이데이는 당시의 어려움을 회고하면서 ‘소니는 창업자의 비전에 의해 움직이는 회사였기 때문에 창업자의 비전만이 모든 의사결정의 기본과 표준처럼 보였다’고 하였다.

결국, 월트 디즈니, 소니 두 회사 모두 창업자가 세상을 떠난 후 회사가 굴곡을 겪었던 공통점이 있다. 그 원인은 두 가지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시장은 급변하고 있는데 여전히 ‘전임 CEO였다면 과연 어떤 의사결정을 내렸을까?’에 집착하였다. 둘째, 이미 달성한 성공에 도취되어 새로운 도전에 소극적이었다. 과연 애플은 잡스의 공백을 메우며 이러한 실패 사례를 잘 극복해 낼 수 있을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잡스 사망 후 애플의 성적표는 일단은 긍정적으로 보여진다. 지금까지 아이폰4S, 뉴아이패드의 판매가 기존 제품들의 실적을 상회하고 있으며, 주가도 사상 최대치를 경신하는 등 정량적인 부분에서는 잡스의 빈 자리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런데, 아직까지는 이러한 호실적이 잡스의 후광 효과 때문이라는 견해가 많다. 앞서 언급했던 사례에서도 나타났듯이 창업자 사망에 따른 기업의 리스크는 단 기간 내에는 잘 드러나지 않고 잠재된 상태로 있다가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시장변화 트렌드와 맞물려 한꺼번에 몰려올 가능성이 있다. 뉴아이패드의 경우에도 전작에 비해 뚜렷한 혁신 포인트가 없더라도 이미 이뤄놓은 많은 것들, 예를 들어 앱스토어, 아이클라우드, 아이북스 등에 힘입어 당분간 상승세를 지속할 수 있을 가능성이 높다. 올해 내로 출시될 가능성이 높은 아이폰5 역시 아이폰4S 대비 성능 개선만으로도 교체 수요를 감안해 본다면 시장 수요는 어느 정도 창출해 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스트 잡스 체제는 기존의 시장 및 경쟁 구도를 와해시킬 새로운 패러다임에 대해 어떤 대응을 할 것인지 고민이 될 것이다. 예를 들어, HTML5 기반의 웹 앱(Web App)이 활성화 되어 애플의 네이티브 앱(Native App) 경쟁력이 약화된다거나, OLED 패널 인프라를 내재화한 한국 기업들이 TV 및 모바일 기기에 다양한 형태로 적용함으로써 새로운 디자인 혁명을 주도한다면 애플은 현재의 기득권으로 버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1990년대 중반 애플은 최악의 재정난에 허덕였다. 그러나, 불과 10년 만에 애플은 당시 막강한 현금을 보유했던 IT기업들을 제치고 현재 최고의 선도 기업으로 거듭났다. 바꾸어 보면 현재 애플의 재무적/인적 자원이 풍부하다고 하더라도 변화 속도가 빠른 IT산업에서는 언제든지 낙오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겉으로는 화려하고 평온해 보이는 애플에게도 많은 고민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故 스티브 잡스의 조언

만약 잡스가 살아있었다면 지금 이 시점에서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까? 이제 더 이상 그의 의견을 들을 수 없으니 그가 생전에 공개적으로 언급했던 말들을 종합하여 유추해 보자.

“ 잡스라면 어떻게 했을까 고민하지 말고, 옳은 일을 선택하라”

잡스는 생전에 자기 중심적이고 독선적인 성격으로 유명했지만, 그는 죽음을 앞두고 팀 쿡에게 월트 디즈니社의 사례를 언급하면서 애플의 미래를 걱정했다고 한다. 잡스는 애플 CEO 시절, 자신이 옳다고 확신한 일에 대해서는 주위의 만류가 있더라도 끝까지 추진하여 실행하는 성격이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독재를 위한 독재가 아니라 애플과 같은 혁신 기업이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고 커 나가기 위해 악역을 자처했을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유독 변화 속도가 빠른 IT업계에서 몇 년 전 생각에 매몰되어 변화에 소극적이 된다면 그 회사는 성장은 고사하고 생존하기 조차 힘들다. 그래서, 항상 남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새로운 모험을 계속 해야 한다. 잡스가 생전에 가장 좋아했던 광고 카피는 ‘Think Different’이다. 이 카피에 내재된 의미 중에 ‘Think Different, even Steve Jobs’라는 말도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새로운 사업 환경 속에서 애플의 영속성을 위해서라면 다르게 생각해야 하고, 심지어 잡스가 가졌던 생각도 과감하게 깰 수 있어야 할 지 모른다.

“가장 집중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가? 나머지는 모두 제거해라”

잡스는 평범함을 벗어나기 위해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몇 가지를 달성하기 위해서 나머지는 과감하게 희생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잡스가 절대적으로 강조했던 것 중 하나는 ‘디자인’이며, 애플의 제품을 보면 그의 확고한 철학도 읽을 수 있다. 예를 들어, 아이폰은 디자인을 위해 배터리 분리가 불가능하도록 설계되었고, 화면이 더 쉽게 깨질 수 있으며, 안테나 이슈가 발생하는 등 실용성도 일부 해치는 모험을 하였다.

물론, 이번에 출시한 뉴아이패드의 경우, 사용자는 인지하기 힘든 수준으로 두께, 무게가 일부 증가했다. 하지만, 잡스 입장에서 이러한 징조조차 위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본다. 하나 둘 타협하기 시작하면 애플의 핵심 가치까지도 결국 훼손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경종을 울리지 않았을까? 경쟁 환경이 급박하게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경쟁사가 탑재한 기능을 좇기 위해 허겁지겁 기능 개선을 하다 보면 가장 집중하고 싶은 포인트를 잃게 될 상황에 당면할 수 있다.

“혁신자의 딜레마에 빠지지 마라”

‘혁신’의 사전적 의미는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함’이다. 즉, 기득권에 안주하지 않고 와해적인 방법을 찾아 실행에 옮기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한 번 혁신에 성공한 기업은 새로운 혁신을 찾아 모험을 하기 보다는 이미 확보한 역량을 더 레버리지 하려는 관성을 갖기 마련이다.

최근 1~2년 간 증권가에서는 애플의 주가에 대해 끊임없는 논쟁이 나왔었다. 주가 상승에 긍정적 입장의 분석가들은 기존 애플 생태계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이 일종의 동물원 효과로 인해 지속적으로 애플 제품을 사려는 경향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반대 입장의 사람들은 더 이상의 마술(Magic)은 없다면서 애플의 역량을 본다면 더 이상의 파괴적 혁신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는 주장을 하며 현재의 주가를 거품(Bubble)으로 간주하기도 하였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양 측면의 분석가들은 공통적으로 새로운 혁신을 애플이 지속적으로 창출하기는 어렵다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그만큼 천하의 애플이라고 하더라도 혁신을 지속시키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잡스가 최근 10년 간 이룩한 혁신은 수십 년 간 IT 및 미디어 업계에 몸 담으면서 고민하고 좌절을 겪으면서 힘겹게 얻어진 것이다. 잡스가 엄청난 현금을 벌어들이면서도 배당에 그토록 인색했던 이유도 혁신이 그만큼 어려우며 수많은 시행착오가 수반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혁신 기업이 또 다른 혁신을 이어나가는 것은 훨씬 더 어렵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지 모른다.

‘잡스’ 없는 애플의 새로운 도전

사실 애플의 새 경영진이 잡스의 경영방식을 그대로 따를 필요는 전혀 없다. 그리고 급변하는 IT환경 속에서 전임 CEO의 전략을 무조건 추종하는 것이 더 위험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근 애플이 보여준 일련의 모습들은 분명히 평범한 기업들이 하는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처럼 느껴진다. 지금까지 소비자들은 애플의 제품과 서비스에 열광했지만, 그 만큼 기대치도 크게 높여 놓았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최근 애플 주가가 등락을 거듭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높게 형성된 기대 수준에 못 미치는 작은 이벤트에 대해서도 향후 애플의 주가는 출렁일 가능성이 다분하다.

포스트 잡스 체제의 성공 여부는 이제 본격적으로 시험대에 올랐다. 올해 중으로 출시가 예상되는 아이폰5, 아이TV에서 잡스가 없어도 애플은 혁신적일 수 있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질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찰스 다윈(Charles Darwin)의 말처럼 강한 종(種)이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 살아남는 것이 바로 비즈니스의 세계이다. 애플이 새롭게 변화해 가는 환경 속에서 잡스를 뛰어 넘어 어떠한 혁신 포인트로 소비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지 귀추가 주목된다. 항상 새로운 도전을 하지 않으면 혁신은 지속될 수 없으며, 자기 잠식을 하지 않으면 경쟁사가 잠식하게 된다. 포스트 잡스 체제의 성공 여부는 애플이 자기 잠식을 두려워하지 않고, 잡스의 생각을 뛰어 넘어 새로운 혁신을 지속해 나갈 수 있느냐에 의해 좌우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종근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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