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실리콘밸리 해법으로 본 한국형 창업 방정식’
LG경제연구원, ‘실리콘밸리 해법으로 본 한국형 창업 방정식’
  • 김형주 연구위원
  • 승인 2013.08.27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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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력 대기업 중심의 성장 모델을 보완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혁신형 기업 및 창업 생태계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물론 과거에도 창업이나 중소기업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혁신과 창의가 강조되는 최근의 움직임과는 사뭇 달랐다.

혁신형 창업 생태계를 이야기할 때 가장 자주 등장하는 사례는 미국의 실리콘밸리이다. 그러나 수많은 나라와 도시들이 다양한 형태로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 했지만 그 많은 시도들 중 제대로 된 성공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정치경제 환경뿐 아니라 사회문화적 배경과 산업구조적 특성 등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단순한 모방은 실패의 지름길일 수밖에 없다.

실리콘밸리 사례를 열심히 연구해 온 우리나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방정식을 무작정 수용하기보다는 우리의 한계와 비교우위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새로운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먼저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비교 분석하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적 대안을 모색해 본다.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창업 생태계

한 경제의 생태계가 장기간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해당 생태계 내에서 생산된 상품이나 서비스를 소비할 시장과 그 생산을 위해 투입되는 노동과 자본, 그리고 이를 결합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 이 장에서는 실리콘밸리와 한국의 창업 생태계를 이 네 가지, 즉 시장과 인적자원, 자본과 정책 환경의 관점에서 비교함으로써 그 한계와 특징을 파악한다.

실리콘밸리, 글로벌 성공을 위한 핵심 관문

실리콘밸리를 비롯한 미국 주요 창업 단지의 성공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자 글로벌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의 위상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크고 세계가 늘 주목하는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경쟁력 있는 기업과 대학을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이나 지식이 끊임없이 새로운 상품과 서비스로 탈바꿈하는 미국은 각종 첨단 기술의 테스트와 확보, 비즈니스 실행 등에 가장 적합한 환경이라 할 수 있다.

스웨덴, 인도, 중국 등 수많은 국가들과 여러 도시들이 실리콘밸리를 모방하기 위하여 다양한 산업 기지를 구성하고 실리콘밸리의 특성을 적극적으로 벤치마킹 하였지만 대부분 성공을 거두지 못한 것은 바로 이런 탁월한 시장의 부재가 주요 원인 중 하나로 꼽힌다.

정치, 사회, 경제, 문화 등 다방면에서 글로벌 패러다임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서 성공을 거둔 제품과 서비스는 빠른 시일 내 세계 어느 지역에서나 성공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중국과 인도 등 신흥시장의 급부상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업들에게 미국 진출은 여전히 전세계적인 성공을 위한 핵심 관문으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IT 산업의 주도권이 하드웨어에서 고부가가치 소프트웨어로 넘어가고 있으며 바이오와 헬스케어, 청정 에너지 등 새로운 기술 트렌드가 빠르게 부상하면서 이들 분야에서 핵심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미국은 여전히 확고한 지위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리콘밸리의 많은 벤처 기업들 역시 미국에서의 성공을 기반으로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여 빠른 성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한편으로 다른 나라의 많은 벤처 기업들 또한 실리콘밸리로 진출하여 거점을 확보하고 이를 기반으로 해외 진출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외에서 그나마 벤처 생태계 육성에 가장 성공한 사례로 꼽히는 이스라엘 역시 자국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적극적으로 실리콘밸리와의 네트워크 구축 및 현지 진출을 기반으로 우수한 벤처 기업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되었다.

좁은 내수시장에 치중하는 국내 벤처기업들

이와 달리 우리나라의 벤처 생태계는 아직까지 협소한 내수 시장에 의존하는 경향이 커 성장이 더딘 상황이다. 1970~80년대 한국경제가 이룬 고도 성장에는 좁은 내수 시장의 한계를 딛고 적극적으로 해외시장에 진출하였던 수출 중심 전략이 큰 기여를 하였다.

글로벌 금융위기에도 흔들림 없이 견고한 경제 성장을 이끌고 있는 것으로 평가 받는 독일의 강소기업들도 창업 초기부터 특정 전문 분야에서의 차별화된 기술과 품질을 기반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으며, 에이서(Acer), 에이수스(Asus), HTC 등 대만의 여러 IT 기업들도 작은 중소기업으로 시작하여 일찍이 내수 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해외 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하는 등 선진국의 많은 벤처 기업들은 수출 경쟁력을 기반으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벤처기업 역시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는 이처럼 적극적인 해외 진출을 통해 시장 규모의 한계를 극복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우리나라 벤처 기업의 대부분은 글로벌 역량이 부족하고 이와 관련된 사업서비스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해외 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조사에 의하면 국내 벤처 기업들 중 해외시장에 진출하지 않는 기업이 과반을 넘고있으며 그나마 진출한 기업들도 부가가치 높은 수출로 이어진 경우가 그리 많지 않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의 1차 벤처 붐을 통해 선진국보다 앞서 초고속 인터넷 등 IT 인프라를 신속하게 구축하고 적극적인 창업 정책 지원을 펼친 바가 있다. 일부 부작용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에 힘입어 많은 벤처 기업들이 등장하고 이들 중 상당수가 중견 기업으로 빠르게 성장하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벤처 기업들이 내수 중심 사업을 고집하며 적극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지 않으면서 성장률이 현저하게 둔화되고 내수 중심 사업 기반이 포화 상태에 이르는 등 쉽지 않은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심지어 MP3, 인터넷 전화, 소셜네트워크 등 혁신적인 기술과 서비스를 다른 지역보다 앞서 선보였음에도 세계 시장 진출에 실패해 비즈니스의 주도권을 넘겨주는 등 아픈 선례가 많이 남아 있는 실정이다.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을 안고 있는 벤처 생태계

실리콘밸리에서는 스탠포드, 버클리 등 세계 유수의 대학을 중심으로 해마다 우수한 인재들이 배출되는데, 이들의 상당수가 실리콘밸리에서 창업을 선택하거나 지역 벤처 기업으로 입사하고 있다. 이들 대학들은 1960년대와 70년대에 걸쳐 실리콘밸리의 탄생과 도약을 견인할 수 있었던 기술적 원천이 되었으며, 동시에 우수한 기술 인력들을 충분히 양산하는 데에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오늘날에도 이들 대학들은 전세계의 유능한 인재들을 경쟁적으로 흡수하고 양질의 교육을 통하여 새로운 기업을 일굴 수 있는 재목으로 양성하고 있다. 또한 실리콘밸리 기업들도 지속적인 투자를 통하여 대학의 질적 성장에 기여함으로써 대학과 기업 간 밀접한 공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특히 스탠포드 대학은 오늘날 실리콘밸리를 전세계적인 벤처 생태계로 육성하는 데에 가장 큰 기여를 하였다. 스탠포드 대학 출신이 창업한 기업의 매출은 프랑스의 국내 총생산과 비슷한 2조 7,000억 달러에 이르고, 1930년대 이래로 동문들이 영위하는 기업은 3만 9,900개, 창출된 일자리는 무려 540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스탠포드 대학을 졸업한 학생들의 약 25%가 학교 주변 32km 안에 기업을 세우는 등 졸업 이후 창업에서도 학교와의 지속적인 연결을 통하여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으로 손꼽힌다.

특히 스탠포드 대학 자체적으로 직접 투자자와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 및 교수들을 연결시키거나 이들의 기술이 상업화로 연결될 수 있도록 각종 지원을 아끼지 않음으로써 창업 준비가 한층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돕고 있다.3 이외에도 스탠포드 대학은 기업가 정신 센터를 비롯한 연구 기관과 스탠포드 기술 벤처 프로그램 (Stanford Technology Venture Program), 기업가 학생 비즈니스 협회 (Business Association of Stanford Entrepreneur Students) 등 여러 창업 관련 조직 등을 통하여 학생 및 교수들이 자발적으로 창업에 나서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
다.

반면 우리나라의 대학들은 벤처 생태계의 활성화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 못하고 있다. 대부분의 대학 졸업자들이 창업보다는 대기업이나 공공 기관 등으로의 취업에 집중되는 것도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상황이다.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구직자들은 창업에 나서기보다는 소위 안정된 직장을 선호하게 되었다.

따라서 많은 대학생들이 이들 직장에 입사하기 위하여 오랜 기간에 걸쳐 구직 활동을 이어감으로써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 특히 취업난이 확산됨에 따라 대학에서도 학생들의 취업에 많은 관심을 쏟고 있으며 상대적으로 창업에 대한 교육 및 장려 활동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와 달리 학교에서 생산된 기술과 아이디어가 창업을 통하여 상업화에 이를 수 있는 환경의 조성이 쉽지 않다.

창업 DNA를 가진 이민자들의 활발한 유입

실리콘밸리는 특히 다른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의 적극적인 창업으로 더욱 빠른 성장을 거듭할 수 있게 되었다. 캘리포니아 지역은 다른 지역보다 높은 25.4%의 이민자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이들이 세운 첨단 기술 기업이 전체의 31%를 차지하고 있는데,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전체 기업의 43.9%가 이민자들이 설립한 기업이라고 한다.

이에 따라 실리콘밸리로 이주하는 인재들의 비율도 크게 증가하고 있는데, 스탠포드 대학의 조사에 의하면 1984년 이래로 스탠포드 대학원생의 44%가 외국 국적이며, 2010년에는 이 비율이 56%에 이르렀다고 한다. 인텔과 야후(Yahoo), 이베이(eBay), 구글(Google) 등 다양한 출신의 이민자들이 설립한 기업은 오늘날 미국을 넘어 세계 경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데, 이들 기업들은 2012년 미국에서 56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630억 달러의 매출을 올리는 등 미국 경제의 중요한 축으로 자리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많은 실리콘밸리 기업들은 경쟁력 있는 인재들의 확보에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미국이 보다 적극적인 이민 정책을 통하여 보다 많은 우수 인재를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은 기후 및 주거와 교육 수준의 만족도가 높으며 특히 다양성을 존중하는 관용의 문화가 조성되어 일찍이 동아시아, 인도, 유럽 등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을 끌어 모을 수 있었고, 이들이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기반으로 활발한 창업에 나섬으로써 벤처 생태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었다.

특히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이민자들이 다시 본국으로 돌아가 활동하는 사례가 증가하면서 실리콘밸리는 미국을 넘어 전세계 창업 단지의 네트워크 허브로 자리잡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민자들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 상황에서 본국으로의 두뇌 유출이 가속화되면 실리콘밸리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이러한 이민자들의 국경을 넘나드는 꾸준한 활동은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성장을 거듭할 수 있게 한 원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공계를 외면하는 한국의 우수 인재들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과거에는 많은 인재들이 과학 기술 분야로 뛰어들어 우리나라의 빠른 경제 성장을 이끌 수 있었던 반면, 오늘날에는 이공계 기피 현상이 확산되면서 우수한 인재들이 이공계 대학으로의 진학을 꺼리고 법률, 의학 등 분야로 집중되는 등 경제적 안정성에 대한 선호가 커지고 있다.

특히 오랜 시간과 노력이 소요되는 기초 학문은 물론이고 당장 산업계에서 활용할 수 있는 공학 분야에서도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는 사례가 증가하는 등 이공계 전반에 걸쳐 큰 위기가 닥치고 있다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러한 이공계 진학 기피 현상은 벤처 생태계의 근간을 뒤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벤처 창업의 열기가 고조되었던 2000년대 초 컴퓨터 공학을 중심으로 이공계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증가하기도 하였지만, 오늘날에는 대부분의 이공계 학문을 기피하는 현상이 확산되고 있다.

특히 고급 능력을 갖춘 석박사급 인재들의 배출이 둔화되고, 그마저도 기업으로 가거나 창업을 하기보다는 대학이나 국책연구소에 남기를 선호해 혁신적인 기술과 비즈니스를 창조할 수 있는 기업가적 엔지니어나 과학자의 출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고 있다.

더군다나 미국 등 선진국과 달리 국내로 들어오는 이공계 유학생들의 벤처 생태계 진입이 매우 미흡하며, IMD에서 집계하는 우리나라의 해외고급인력유인 지수 역시 2002년 5.19(23위)에서 2010년 4.58(33위)로 크게 하락해 실리콘밸리와 같이 외국인들의 활발한 창업 활동을 단시간 내 기대하기도 쉽지 않다. 한편,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의 2012년 조사에 따르면 이공계 박사의 해외 취업 의향은 34.3%인 반면, 국내로 복귀하고자 하는 비중은 25.1%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나 국내 인력의 해외 유출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큰 상황이다.

실리콘밸리 고유의 개방과 협력 분위기

또한 실리콘밸리 특유의 도전 정신 역시 창업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였다. 1850년대 캘리포니아 지역의 금광을 찾아 수많은 이민자들이 몰려 오면서 본격적으로 주거지구가 형성된 이래 새로운 도전과 개척을 미덕으로 간주하는 문화가 뿌리깊게 자리잡았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큰 기업에 들어가기 보다는 자발적으로 창업에 나서고 이를 통하여 성공한 사람들이 자본과 경험들을 아낌없이 다시 지역 사회에 투자하면서 다른 이들이 다시 창업에 나설 수 있게 돕는 선순환 구조를 형성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실리콘밸리가 보스턴의 MIT와 하버드 대학 중심으로 구성된 루트 128 단지와 설립 배경이나 성격이 유사함에도 불구하고 더욱 빠르게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은 바로 이 지역의 고유한 개방과 협력의 분위기가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루트 128 단지는 실리콘밸리보다 앞서 혁신적인 연구 및 창업 붐을 경험했지만 2차 세계 대전 이후 대기업 중심의 경직된 문화에 사로잡히면서 군수에서 민수 시장으로의 적기 전환에 실패하였다. 반면 실리콘밸리에는 벤처 생태계의 터전을 일군 HP 등 여러 기업을 중심으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가 형성되었고, 전문화된 중소기업들이 활발하게 성장하면서 각 기업 간 상호의존성이 더욱 높아졌다.

그 결과, 수많은 기업이 빠르게 등장하고 사라지는 치열한 경쟁이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기업, 대학 및 연구소, 그리고 사업서비스 기업 간에 인력과 정보가 활발하게 교류할 수 있는 촘촘한 네트워크가 자생적으로 구축되었다. 특히 1960년대부터 기술의 고도화 및 상업화가 본격적으로 진전됨에 따라 각 기업간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전문 인력간의 지식 축적 및 교류의 필요성이 증가하면서 실리콘밸리의 네트워크는 한층 견고하게 구성될 수 있었다.

실패에 관대한 환경 vs. 실패에 냉엄한 환경

창업에 대한 실패 가능성은 미국이라고 결코 낮은 수준이 아니다.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의 쉬크하 고쉬(Shikhar Ghosh) 교수는 2004년부터 2010년까지 벤처캐피탈 기업으로부터 100만 달러 이상 투자를 받은 미국의 2,000개 벤처 기업 중에 75%가 투자자에게 원금조차 돌려주지 못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위험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에서는 창업 실패에 대해 관대한 환경이 조성되어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 없이 창업에 나서고 있다. 이들은 실패한 경험이 오히려 이후 성공을 위한 좋은 밑거름이 되고 개인의 커리어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여긴다고 생각하므로 창업에 따른 위험과 어려움을 기꺼이 감수하고 있는 것이다.

반면 우리나라의 경우 창업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실패에 대한 부담감으로 도전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기 위한 다양한 제도들이 마련되고 있지만, 여전히 실패의 경험은 경제적 손실은 물론이고 재취업이나 재창업을 시도하는 데에도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특히 창업을 하더라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하기 보다는 중장년층을 중심으로 요식업 등 상대적으로 안전한 사업에 더 큰 관심을 가짐으로써 실리콘밸리와 같은 성공 신화가 등장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벤처 생태계 구성원 간 긴밀한 네트워크 구축도 아직까지는 탄탄하게 자리잡고 있지 못하고 있다. 최근 들어 벤처 기업간의 파트너십 체결 및 교류 활동이 일부를 중심으로 자생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나 실리콘밸리와 같이 인적 자원과 정보가 활발히 교류되고 상호간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튼튼한 네트워크로 발전하기에는 여전히 갈 길이 먼 상황이다.

실리콘밸리의 엔젤투자, 규모와 전문성에서 벤처캐피탈 압도

현재 미국 벤처캐피탈의 40%가 실리콘밸리에 집중되어 있을 정도로 벤처 기업에 충분한 자금을 공급할 수 있는 투자 환경이 조성되어 있다. 따라서 벤처 기업은 비교적 손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으며, 특히 초기 창업부터 기업 상장까지 이어지는 과정에서 각 단계에 특화된 투자 자본이 풍부하게 형성되어 있으므로 각 기업은 적절한 시기에 필요한 자본을 유치할 수 있다. 또한 벤처캐피탈 전문기업만이 아니라 포드(Ford)와 제너럴 모터스(GM), 스타벅스(Starbucks) 등 다양한 분야의 대기업들도 실리콘밸리의 벤처 기업에 전략적으로 투자하고 이들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얻는 데에 집중하고 있다.

특히 실리콘밸리에서는 갓 태어난 신생 기업에 대한 엔젤 투자(Angel investment)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가능성 있는 기업들이 창업 초기에 현금 흐름을 창출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소위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 단계를 넘는 데에 결정적인 도움을 제공한다. 이러한 엔젤 투자는 실리콘밸리뿐 아니라 미국 경제 차원에서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미국 벤처연구센터(Center for Venture Research)에 의하면 엔젤 투자 규모는 2012년 229억 달러에 이르고 이를 통하여 미국 전역에 27만 5,000개의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였다고 한다. 또한 2010년 설립되어 신생 기업과 투자자를 연결하는 온라인 플랫폼인 엔젤리스트(AngelList) 등 새로운 형태의 엔젤 투자 방식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최근 실리콘밸리의 엔젤 투자는 그 규모와 전문성 면에서 기존의 벤처캐피탈 기업을 압도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기존의 엔젤 투자가 창업 과정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한 동문이나 지인 등의 소액 자금 제공 위주였다면, 지금은 여러 투자기업들이 외부 자금을 적극적으로 유치하여 펀드를 조성하고 있으며 투자 금액의 규모도 수백만 달러에 이를 정도로 엄청나게 증가하였다. 최근 스탠포드 대학 졸업생 루카스 듀플란(Lucas Duplan)이 설립한 모바일 결제 기술 기업 클링클(Clinkle)은 정식으로 서비스를 출시하기 전임에도 불구하고 실리콘밸리 사상 최대인 2,500만 달러의 엔젤 투자를 유치하기도 하였다.

나아가 엔젤 투자 기업들은 대상 기업의 선별 및 창업의 전 과정을 육성하는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마련하는 등 적극적으로 경영 활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성공한 창업가 및 벤처 투자가뿐만 아니라 제시카 알바(Jessica Alba), 애쉬튼 커처(Ashton Kutcher) 등 할리우드의 스타들과 일반인들까지도 이러한 엔젤 투자에 활발히 참여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리콘밸리의 자본 투자가 M&A 등을 통한 신속한 수익 회수 중심으로 이루어지면서 상대적으로 단기 성과 창출이 쉬운 모바일과 소프트웨어 분야에 투자가 집중되고 있다는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Built to last’를 쓴 경영학자 짐 콜린스(Jim Collins) 역시 이런 이유로 실리콘밸리의 투자 패러다임이 벤처 기업이 대기업으로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기도 하였다.

또한 다수의 불특정 투자자로부터 인터넷을 이용하여 소액을 투자 받아 창업에 나서는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 새로운 자금 모집 방안으로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최근 우리나라를 비롯한 각국 정부에서도 적극적인 활성화 의지를 보이고 있는 크라우드 펀딩은 복잡한 절차가 필요하지 않으며 다양한 목적으로 자금을 손쉽게 조달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되면서 빠른 성장을 거듭하고 있는데, 2011년 기준으로 전세계적으로 약 119만 건의 크라우드 펀딩 프로젝트가 형성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특히 미국이 벤처 및 중소기업의 성장을 도모하고자 JOBS(Jumpstart Our Business Startups Act) 법안을 통하여 크라우드 펀딩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함으로써 크라우드 펀딩은 기존 벤처 투자의 보완적인 수단으로서 더욱 주목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위험을 싫어하는 한국의 벤처캐피탈, 고사 직전의 엔젤투자

한편 우리나라 벤처캐피탈 기업은 1990년대 중반까지는 높은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벤처 기업의 부족과 고금리 기조 지속으로 크게 성장하지 못하고 주로 정부 세제 및 금융 지원에 기대어 융자와 금융 상품 투자에 전념하였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 인터넷 등 각종 IT 기술의 보급이 확산되고 아시아 외환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의 벤처 기업 육성 정책이 본격적으로 발표되면서 벤처 기업 투자가 증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후 IT 거품이 붕괴되고 벤처 열기가 식으면서 투자는 큰 폭으로 감소하였다. 특히 여러 차례의 위기를 거치면서 대부분 벤처캐피탈 기업들이 주로 3년 이상의 업력을 가진 기업의 투자에 주력하게 되었다. 그 결과 초기 기업에 대한 엔젤 투자가 급감하여 2000년대 초 5,000억 원 규모에서 2010년 326억 원으로 감소하였다.

또한 우리 정부는 시장의 선택을 통해 기술이나 제품의 고도화를 자연스레 유도하기보다는 주로 자금의 공급을 통하여 벤처 기업을 육성하는 데에 정책 초점을 맞춤으로써 벤처캐피탈 기업들이 초기 기업에 적극적으로 선별 투자할만한 유인이 사라졌다. 아울러, 자금 유치와 관리에 비교우위를 가진 금융 인력의 진출이 늘어나면서 기술과 시장 개척 등에 특화된 전문 인력을 벤처 투자로 유도하는 데에 실패하였다.

더군다나 벤처 생태계 내에 우수한 인재와 수준 높은 연구 활동, 그리고 혁신을 추구할만한 기업가 정신이 부족해지면서 시장으로 유입된 자본 역시 효율적으로 사용되지 못하고 방만하게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많다.

특히 많은 벤처 기업들이 민간보다는 정부의 정책적 지원에 의지하고 있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벤처캐피탈과 기업 간 신뢰와 긴밀한 협력에 기반한 충분한 투자가 이루어지지 못하므로 상당수의 벤처 기업들은 민간 투자를 통한 자생적인 성장보다는 정부의 자금 지원에 의존하고 있는 경향이 높다. 연구에 의하면 2010년 말 기준으로 국내 벤처 기업 중 90.6%가 기술평가 보증 및 대출 등 정부의 지원을 받은 기업이고 민간 벤처캐피탈 기업들로부터 투자를 받은 기업은 2.5%에 불과하므로 최근의 벤처 기업 증가는 주로 정부의 지원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창업의 성공 확률을 높이는 엑셀러레이터

실리콘밸리에서는 1970년대부터 벤처 기업들의 성장을 돕는 법률, 회계, 경영 자문 등 다양한 사업서비스 전문 기업이 자리잡기 시작하여 벤치 기업과의 긴밀한 연결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였다. 특히 사업 서비스의 이용 시 금전적 보수 지급 외에도 지분 제공과 전환사채 발행 등 다양한 방법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창업자의 부담을 크게 덜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사업 서비스 활성화의 중요한 요인으로 손꼽힌다.

최근에는 초기 기업을 성공적으로 육성시킬 수 있는 인큐베이터(Incubator)와 엑셀러레이터(Accelerator) 기업의 활동도 두드러지고 있다. 이들은 초기 기업에게 소액의 자금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창업에 필요한 공간 및 각종 프로그램을 제공하여 기업의 빠른 성장 및 안착을 돕고 있다. 현재 유명 벤처 투자자 폴 그래함(Paul Graham)이 설립한 엑셀러레이터 기업 와이 컴비네이터(Y-Combinator)를 비롯하여 500 스타트업(500 Startups), 테크 스타(Tech Stars) 등 200여 개 이상의 기업들이 실리콘밸리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 기업들은 신선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들의 창업을 돕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거나 혹은 유망한 인재들을 모아 내부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고 창업을 할 수 있게 돕는 등 다양한 방식의 창업을 지원하고 있다. 대표적인 엑셀러레이터 기업인 와이 컴비네이터는 설립 후 2011년까지 약 300여개 이상의 창업 기업을 지원하였으며 에어비엔비(AirBnB), 레딧(Reddit), 드롭박스(Dropbox) 등의 성공적인 벤처 기업을 탄생시키는 등 그 역량을 인정받고 있다.

이와 같은 인큐베이터와 엑셀러레이터 비즈니스가 활발하게 전개되면서 중국과 인도 등 글로벌 투자자와 많은 대기업들도 실리콘밸리에 창업 지원 전문 기업을 자체적으로 설립하여 운영하는 등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사업화하기 위한 다양한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16 나아가 이와 같은 사업 서비스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를 넘어 뉴욕과 시카고 등 미국 내 다양한 창업 특화 지역에 걸쳐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추세이다.

또한 영국이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 하여 만든 국립과학기술예산재단(National Endowment for Science, Technology and Arts)을 통하여 스타트업 팩토리(Startup Factory)라는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등 전세계 많은 나라들 역시 벤처 생태계를 위한 사업 서비스 활성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인큐베이터와 엑셀러레이터의 설립이 과열되면서 투자를 받는 기업의 역량 수준이 떨어지고 창업 프로그램의 경쟁력도 저하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벤처캐피탈 기업 DFJ Mercury는 북미의 29개 엑셀러레이터 기업을 조사한 결과 와이 컴비네이터와 테크 스타 등 소수의 기업만이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었을 뿐 45%의 기업들은 벤처캐피탈로부터 투자를 받을 정도로 성공적인 기업을 단 하나도 키우지 못하였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이러한 기업들이 새로운 혁신적 기업을 장려하기 보다는 실리콘밸리의 과열된 투자 열기에 편승하여 수익을 창출하고 있으므로 실리콘밸리의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기여하기 힘들 것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경우 실리콘밸리와 같이 기업의 성장을 이끌 수 있는 전문 서비스 기업이 아직까지 크게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인큐베이터 및 엑셀러레이터의 경우, 현재 대표적 인큐베이터 기관인 창업보육센터 등이 그 역할을 담당하고는 있다. 최근에는 1세대 창업자들을 중심으로 자생적인 엑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으며, 정부 역시 전문 엑셀러레이터 기업들에 대한 지원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들 기관들이 창업 및 벤처 기업을 충분히 지원할 수 있는 특화된 전문성과 민간 부분과의 네트워킹 등 질적인 부분에서는 갈 길이 멀다. 대부분 벤처 기업들이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에 의존해 창업을 했기 때문에 기업을 이끌어 갈만한 전문 지식과 역량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본 유치, M&A, 지재권, 법률 자문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도움을 줄 수 있는 전문 서비스의 지원이 중요하지만 그 수요에 비해 공급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에서 활동하고 있는 창업자나 벤처캐피탈리스트에게 “실리콘밸리 발전에 있어 정부의 역할이 무엇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면 대부분 “실리콘밸리에서 정부의 역할은 없다”고 대답하곤 한다. 하지만 조금 더 깊이 들여다 보면 지금까지 실리콘밸리에서 일어난 혁신의 대부분은 정부의 지원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정부의 지원이나 개입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부의 역할이 어느 부분에 집중되어야 하고 어느 정도 시점에 손을 떼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실리콘밸리 초기, 든든한 고객이 되어 준 美 국방부

1891년 스탠포드 대학의 설립 이후 실리콘밸리 지역에 기술 창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는데, 이들 기술 기업은 동부의 대기업들이 선점하고 있는 일반 가전제품 등 범용 분야가 아닌 전자부품, 군사용 기기, 통신장비 등 특화된 분야에서의 혁신에 집중하였다. 이는 세계 대전에 참전하는 미국 군대의 수요와 잘 맞아 미 국방부는 초기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가장 중요한 고객 중 하나가 되었다.

스탠포드 대학 설립 초기에 학생 및 졸업생에 의해 창업된 회사의 예로 1909년에 설립된 FTC(연합 전신 회사, Federated Telegraph Company) 및 1910년에 설립된 전자부품 회사인 마그나복스(Magnavox) 등을 들 수 있다.

FTC는 민간을 대상으로 사업을 영위하였으나 그리 성공적인 결과를 얻지는 못하였다. 그러던 중 1913년 미 해군과 통신장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마그나복스 또한 제 1차 세계대전 당시 미 해군에 잡음 방지 마이크로폰 등을 공급하였다.

1940~60년 사이 제 2차 세계대전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미군의 군사용 기기/부품 수요는 급증하였고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군납 매출 또한 크게 증가하였다. 마이크로파 전자관 매출을 예로 들면 1940년에 수백만 달러 수준이던 실리콘밸리 기업의 군납 매출이 1959년에는 1억 1,300만 달러로 증가하였다. 반도체, 진공관, 마이크로파 전자관 등의 분야에서 미 국방부는 실리콘밸리 기업들의 제 1 고객이었다.

군납 매출이 급증함에 따라 실리콘밸리 지역의 제조업 규모는 크게 증가하였고, HP나 페어차일드 반도체 등 훗날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기업들의 안정적인 성장을 이끌었으며, 결국 실리콘밸리가 하이테크 제조업의 중심이 되는 결과를 낳을 수 있었다.

물론 국방부의 도움만으로 이런 결과물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실리콘밸리 지역이 이렇게 국방부 수요의 급증에 성공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것에는 이 지역 고유의 문화, 즉 혁신을 추구하고 유연하며 협력과 창업을 장려하는 분위기가 크게 기여하였다.

군에서 원하는 혁신적인 제품을 끊임 없이 개발하고, 빠른 속도로 생산공정을 개선하여 생산 원가를 낮추며, 시의적절한 창업을 통해 고객 수요를 충족시켰던 것이다. 밀집된 지역에 동종의 기업과 종사자들이 모여 있는 집적효과 또한 R&D~생산에 이르는 전 영역에서의 생산성 향상에 한 몫 하였다.

이처럼 유연한 실리콘밸리 지역의 문화적 특성은 1960년대 들어 국방부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을 때도 진가를 발휘하였다. 군사용 기기에 사용되는 반도체와 마이크로파 전자관을 만들던 기업들이 군수품 시장의 축소를 바라보며 발만 구르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재빠르게 마이크로파 오븐과 컴퓨터용 집적회로를 생산하기 시작하는 등 제품 라인업을 효과적으로 전환한 것이다.

페어차일드 반도체를 예로 들면, 군납에 의존하던 1950년대 후반에는 불과 8종류의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생산하였지만 1964년까지 130여 종에 이르는 트랜지스터와 집적회로를 개발해 내는 등 수요 변화에 빠르게 대응했다.

기존 기업 차원에서 환경변화에 잘 대응한 것뿐 아니라 신규 기업들도 지속적으로 창업되었다. 페어차일드 반도체에서 일하던 고든 무어(Gordon Moore)와 로버트 노이스(Robert Noyce)는 인텔을, 제프 샌더스(Jeff Sanders)는 AMD를 창업하였다. 이와 같은 빠른 대응에 힘입어 1960년대 중반 매출의 50% 이상을 국방부에 의존하던 실리콘밸리 반도체 기업들은 1972년에는 국방부 매출 비중을 12%로 낮출 수 있었다.

반면, 1960년대 이전까지 실리콘밸리에 필적하는 하이테크 산업 단지로서 군사용 기기 매출도 높았던 보스턴 루트 128 지역은 국방부 매출이 감소하던 1960~70년대 기간 동안 성공적인 대응에 실패하였고 결국 실리콘밸리에 대응하던 명성을 잃게 되었다.

실패의 확률이 높은 고위험 분야 연구에도 지원 아끼지 않는 미국의 R&D 정책

군납 시장이 줄어든 1960년대 이후 실리콘밸리에 대한 미 정부의 직접적인 영향력은 크게 줄었지만 정부는 여전히 R&D 정책을 포함한 다양한 형태로 실리콘밸리 기업들을 포함한 미국 내 창업/중소 기업들을 직간접적으로 지원해왔다.

미국 정부의 R&D 관련 조직은 크게 에너지부(Department of Energy), 국방부(Department of Defense) 등의 정부 부처, 국가과학재단(NSF, National Science Foundation), 항공우주국(NASA)과 같은 독립 정부 기관, 정부 부처/기관의 지원에 의해 운영되는 연구소인 FFRDC(Federally funded R&D center) 등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정부 부처와 기관들은 직접 또는 FFRDC를 통해 R&D를 수행하거나 대학과 기업 등에 R&D 기금을 제공한다. 2013년 4월에 제안된 미국 정부의 2014년 R&D 예산은 총 1,427억 달러에 이르며 이는 규모 면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미국 정부 R&D 정책의 특징은 개별 기업이 투자하기 힘든 기초연구 및 중요하지만 실패 확률이 높은 고위험 분야 연구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다는 것이다. 국가과학재단 및 국립보건원 등의 기초연구 지원, 항공우주국 및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Defense Advanced Research Projects Agency) 등의 고위험 분야 연구는 미국 하이테크 기업 경쟁력의 튼튼한 기반이 되고 있다.

또한 정부 예산으로 진행된 R&D 결과물이 기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사업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국립보건원, 항공우주국 등의 기관들은 R&D 결과물을 외부에 이전(Out-licensing)하여 사업화로 연결시키는 것을 주요 미션으로 삼고 기술 이전 부서를 통해 적극적으로 외부 기업과 소통하고 있다.

1980년에 통과된 베이-돌 법(Bayh-Dole Act)은 연방정부의 지원으로 진행된 R&D에 대한 소유권을 연구자(대학, 기업 등)가 가질 수 있게 함으로써 대학과 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독려하고 사업화 가능성을 증대시켰다.

그리고 정부는 R&D 초기 단계(기초연구, 기술성숙도 1~3단계)에 집중하고 기업은 후기 단계(개발연구, 기술성숙도 7~9단계)에 집중하여 중간 단계(응용연구, 기술성숙도 4~6단계)의 연결이 부족하다는 반성 하에 중간 단계에 대한 정부와 기업의 협업을 강화하려는 노력 또한 지속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주변의 스탠포드, 버클리 대학, 국립 로렌스 버클리 연구소(Lawrence Berkeley National Laboratory)22 등의 학계와 연구소는 정부의 R&D 예산으로 수준 높은 연구를 진행하며 이를 기업들과 공유하고 있다. 수많은 하이테크 기업들 또한 정부의 R&D 예산을 직접 지원 받거나 정부의 R&D 결과물을 지렛대 삼아 혁신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R&D를 지원하는 특화된 프로그램인 SBIR(Small Business Innovation Research)도 존재한다. 매년 1억 달러 이상의 외부 R&D 예산을 가지고 있는 정부 부처/기관의 경우 R&D 예산의 2.5%를 SBIR을 위해 배정해야 한다. 현재 국방부, 에너지부, 국가과학재단 등 11개의 정부 부처/기관이 이에 해당되며, 제안서를 제출한 중소기업들을 대상으로 심사 후 R&D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한국의 R&D, 도전적 목표보다 달성하기 쉬운 목표 추구

한국의 경우, R&D 투자 규모는 국가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높은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구개발비 비중(공공+민간)은 2011년 기준 4%로 세계 2위권이며, 연구개발비 규모는 세계 6위 수준이다(미국은 각각 9위 및 1위).

그러나 양적 지위에 비해 질적 수준과 생산성, 즉 시장 파급력은 아직 충분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국가 단위의 기술력 수준을 거시적으로 보여 주는 지표인 기술무역수지비(기술 수출액/도입액)를 살펴 보면 0.41로, 1.46인 미국보다 낮은 것뿐 아니라 OECD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또한 공공부문 R&D 결과가 사업화로 이어지는 비율은 약 20%로 영국(70.7%), 미국(69.3%)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이는 국가 연구개발비 중 정부재원 연구개발비 비중이 26.1%로 미국(40.0%), 영국(38.4%)에 비해 낮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매우 낮은 수치이다.

전문가 인터뷰 및 문헌 조사를 통해 확인한 결과, 국가 R&D 정책의 문제점으로 주로 지적되어온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먼저, ‘범국가적’인 R&D 방향 설정 및 그에 따른 장기적이고 일사불란한 진행이 미흡했고, 연구개발 과제 진행에서 부처 간 역할 분담이 모호하거나 중복되는 경우가 많다. 사업화 관점의 R&D 전략 수립 및 진행이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단기 성과 창출 압력이 높고 실패 시 재도전이 허락되지 않는 분위기 때문에 도전적인 목표보다는 달성하기 쉬운 목표를 설정하는 경향이 크다. 그리고 기초연구보다 응용/개발 연구, 선도형 기술보다는 추격형 기술 개발에 치중해 왔다.

다행히 이러한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 미래창조과학부에서는 ▲유사·중복 정비 및 신규 R&D 사업 사전 기획 강화 등 R&D 투자시스템 선진화, ▲대학·출연연구소의 연구성과물을 이전·확산하는 사업화 R&D, 창업기업 및 중소·중견기업 연구개발 지원확대 등을 통한 창업촉진 및 중소기업 경쟁력 강화 지원, ▲기초연구 및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연구 지원 확대 등을 포함하는 ‘2014년 정부연구개발투자 방향 및 기준(안)’을 지난 4월 발표하였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정부의 창업 지원 정책도 실리콘밸리 벤치마킹 중

세계 각국으로부터 훌륭한 창업 환경을 가진 국가로 벤치마킹 되고 있는 미국이지만, 경제 발전 및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창업 환경을 더욱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았다. 그와 같은 인식 하에 2011년 1월, ‘창업 미국 계획(Start-up America Initiative)’을 발표하였다.

이 계획은 크게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으로 나눠져 있으며, 각 부문별로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마련하여 추진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정책은 창업기업의 자금 접근성 확대, 창업자와 멘토 연결, 장애 요인 제거, 혁신 촉진 등의 내용을 담고 있고, 민간부문에서는 장기적으로 창업 생태계를 육성하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하며, 창업자와 멘토/대기업을 연결하는 등의 지원 노력을 시작하도록 했다.

먼저 공공부문 정책인 창업기업의 자금 접근성 확대를 살펴 보면, 중소기업청(SBA, Small Business Administration) 주관으로 임팩트투자펀드(Impact Investment Fund)와 초기단계혁신펀드(Early-stage Innovation Fund)라는 펀드를 조성하여 민간부문과의 매칭 펀드 형식으로 5년간 각각 최대 10억 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또한 5년 이상 소유한 중소기업 주식에 대한 양도소득세 감면, 저소득 지역 민간 투자 세액 공제 규칙 간소화 등도 추진되고 있다.

창업자와 멘토의 연결을 강화하여 창업 성공률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그린에너지 기업, 퇴역군인 창업 등을 지원하는 멘토링/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또한 창업 및 성장을 가로막는 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이민 창업자 비자 지원을 강화하고, 정부 고위 관료들이 직접 기업가들로부터 의견을 들을 수 있는 다양한 장을 마련하고 있다.

혁신 촉진을 위해서 국가과학재단은 공공-민간 파트너십인 NSF 혁신 회사를 만들어 연구결과물이 학계/기업과 더 잘 연결되게 하고, 국립보건원도 내부 연구결과를 창업 바이오벤처들이 더 잘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협약을 체결했으며, 특허청은 특허심사 기간 단축을 위한 전략을 추진하고 있다.

장기적인 창업 생태계 육성을 위해, 민간부문 주도로 추진 중인 ‘창업 미국 파트너십(Startup America Partnership)’에는 기업, 대학, 창업자, 투자자 등이 참여한다. 이미 10억 달러 이상의 민간 재원을 확보하여 효과적인 기업가정신 교육, 원천연구의 시장 상용화 지원, 창업지원을 위한 멘토링/인큐베이팅 프로그램 등을 각 지역별로 마련하였다.

창업 미국 파트너십 이외에도 기업가 정신 교육을 위한 네트워크 활동, 대기업과 창업가의 연결 등이 적극 추진되어 인텔, IBM, HP 등 다수의 대기업들이 창업기업을 위한 투자금과 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이상의 프로그램들은 실리콘밸리의 발전에 기여한다기 보다는 실리콘밸리를 벤치마킹하여 창업 여건이 좋지 않은 타 지역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려는 목적이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다만, 그런 목표에도 불구하고 미국 창업 생태계의 발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은 ‘보이지 않는 손’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즉, 직접적인 자금 지원을 통해 단기적으로 창업을 부흥하기보다는 공적 역량과 민간의 자율적 협력을 이끌어내 생태계의 자생적 기반을 닦고 장애물을 제거하는데 더욱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국내 창업 지원, 투자보다 융자에 치중

한국의 창업 정책도 그 역할이 적지 않았다. 지난 15년간 비교적 짧은 기간에 벤처 관련 산업 및 생태계의 태동과 빠른 성장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부의 직접적 지원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고, 민간의 투자 의욕을 근본적으로 제고하는 데는 실패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국내 창업 자금 조달 환경은 여전히 투자보다 융자 중심으로 머물러 있고, 중소기업 자금조달 역시 총액의 99%를 융자에 의존하고 있다. 창업 초기 민간 부문의 엔젤투자도 극히 저조한 상황이다.

창업 정책의 또 다른 이슈로 회수전략의 부족을 들 수 있다. 회수전략은 크게 상장 및 인수합병(M&A)으로 나눠볼 수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코스닥 상장 이외에 M&A를 통한 회수 기회가 매우 낮다. 2004~2007년 사이 세 번에 걸쳐 M&A 활성화 방안이 마련되어 간이합병 기준 완화 등 절차 간소화와 M&A 정보 중개시장 개설 등에 노력하였으나 실제 M&A 활성화 효과는 미미했다.

기업의 성장을 막고 있는 제도들

M&A가 활성화되지 못한 이유는 R&D를 직접 수행하는 것을 선호하고 기업규모 확장을 저해하는 제도와 관행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는 직접 수행 R&D 또는 특허권과 같은 명시적 기술 취득에만 세제 혜택을 부여하여 기술형 M&A에 대한 인센티브가 취약하다. 그리고 시가 대비 높은 가격으로 기업을 매각할 경우 초과 부분에 대해 양도세(11%)가 아닌 증여세(최대 50%)를 납부해야 하는 등 기업 매각에 따른 세제 부담이 과도하다.

국내 대기업의 경우 매년 계열사 숫자가 언론에 공개되고, 중소기업을 인수할 경우 문어발식 계열확장이라는 대중의 질타를 받는 경우가 많아 주저하곤 한다. 중소기업의 경우 타 기업을 인수하는데 필요한 자본과 역량이 충분한 경우에도, 합병을 통해 중소기업 기준을 벗어나면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한 각종 지원제도에서 제외되기 때문에 이를 피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기술보호 환경이 취약하여 M&A보다 저가의 비용으로 경쟁사의 기술을 도용하거나 탈취하는 것이 용이한 것도 M&A 활성화의 저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와 같은 창업 정책 상의 이슈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지난 5월 ‘벤처·창업 자금생태계 선순환 방안’을 발표하였다. 먼저 자금 측면에서는, 창업기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융자에서 투자 중심으로 변경하기 위해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 제도, 엔젤투자 활성화, 5천억 원 규모의 미래창조펀드 조성 등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M&A 세제 부담 완화 및 R&D에 준하는 세제 인센티브를 강구하고, 대형 자본의 M&A 시장 진입 촉진을 위한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며, 중소기업 기술보호 지원을 확대하는 등의 회수전략 개선 계획도 포함하였다. 또한 아이디어의 사업화를 지원할 창업 플랫폼 구축, 국내외 우수 기술인력의 벤처·창업 유입 촉진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당분간은 정부의 적극적인 역할 필요

우리나라는 아직 실리콘밸리와 같이 민간 주도의 혁신적 창업 생태계가 활성화되는 단계에 접어들지 못한 상황이다. 더군다나 오랜 시간 경제 전반에 걸쳐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과 관리가 이뤄져 온 데다 우리 경제의 성장 잠재력 둔화, 세계경제의 저성장 기조 확산 등이 겹침에 따라 한동안은 벤처 기업들의 자생적인 성장을 기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따라서 새롭게 싹트는 혁신적 창업 생태계가 제대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일정 부분에 걸쳐 정부의 주도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초창기 실리콘밸리의 성장에는 미국 군수 산업의 시장 조성이 큰 역할을 담당하였고, HP와 구글 등 여러 혁신적인 기업들도 그 뿌리를 찾아가보면 정부의 연구 개발 프로그램의 성과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또한 현재도 대학의 연구 개발을 중심으로 정부의 실리콘밸리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효과적인 정부 지원은 벤처 생태계 활성화의 촉매로 작용할 수 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은 직접 지원보다는 최소 시장 조성이나 지나친 리스크 분담, 불필요한 규제 제거 등 되도록 간접적인 지원에 그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지원을 하더라도 최종적인 승자의 선택은 시장에서의 자유로운 경쟁을 통해 이뤄지도록 관련 정책들을 정교하게 디자인해야 하며, 정부의 역할을 민간 부문에 넘겨줄 최적의 시점에 대한 고민도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고유의 강점 살려야

실리콘밸리와 이스라엘 등 외국 벤처 생태계의 성공 방식을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쉽지 않다. 실리콘밸리의 벤처 생태계는 자본주의 및 관용적 문화, 교육의 우수성 등 지역의 강점을 기반으로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되었으며, 이스라엘 역시 초기 정부의 강력한 지원 정책과 별개로 미국과의 특수 관계에 따른 시장 접근의 용이성, 유태인 네트워크의 막강한 자본 등 특수한 이점에 따라 벤처 생태계가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따라서 우리나라의 강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경쟁력 있는 벤처 생태계를 조성하는 최선의 길이 될 수 있다. 즉, IT와 더불어 자동차, 건설, 중공업과 화학 등 다양한 업종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는 독특한 산업 특성이나 아시아를 아우르는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등이 그것이다. 이종 산업간의 융합 활성화, 동아시아 벤처 네트워크 등 이런 비교우위를 잘 활용할 수 있는 방향으로 벤처 기업의 육성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또한 대기업과 중소기업, 벤처기업 등을 물리적으로 구분 짓기보다는 각자의 비교우위, 즉 중소기업이나 벤처의 혁신 역량, 대기업의 시장 창출 및 기술 역량 등을 바탕으로 긴밀한 공생 관계를 유지하도록 돕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한편, 이스라엘 벤처 생태계처럼 혁신적인 창업이 활발히 늘고 있지만 대기업으로의 성장보다는 해외 매각에 치중해 정부 지원과 육성이 경제 전반의 성장 및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지 못하는 사례도 반면교사로 삼을만하다.

때로는 창업 억제, 폐업 촉진이 필요할 수도

정부의 벤처 기업에 대한 반짝 지원 확대 정책으로도 일시적으로 벤처 기업의 숫자를 늘리고 일자리를 증가시킬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장기적인 경쟁력 강화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단기대증적 처방 및 다수 기업에 대한 소액/중복 지원 등의 문제로 기업의 경쟁력 강화에 실패하고 전체 창업 생태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경우도 있었다. 현재의 문제점과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최근 발표한 창업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개선된 정책방향은 전반적으로 국내 창업 생태계의 이슈들을 잘 다루고 있다. 다만 직접 지원을 통한 창업 활성화 정책은 장기적인 창업 생태계 육성과 발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 특히 고용 창출 목적의 창업 활성화 정책은 저부가가치 기업의 과잉생산을 유도하는 등 추진 의도와 달리 좋은 일자리의 양산에 실패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 중심의 창업 도전은 적극적으로 지원하되 자영업 등 경쟁이 치열하고 경제 전반의 산업연관 효과가 크지 않은 업종의 창업에 대해서는 충분한 고민과 준비의 기간을 갖게 하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다. 다시 말해, 재무상황이 취약하고 기술력이 부족한 기업에 대한 지원 등 ‘생존’을 위한 지원이 아닌 될성부른 나무를 키우는 ‘성장’을 위한 지원, 직접 지원이 아닌 창업 생태계 전반을 육성하는 간접적 지원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난 10여 년의 선례에 비춰보면 정부가 자금 지원을 강조할수록 실패 가능성이 높다. 자금은 가장 유용한 수단이지만 동시에 도덕적 해이를 초래하기도 가장 쉬운 탓이다. 따라서 되도록 특정 개별 기업에 대한 지원은 최소화 하고, 자생적 성장에 대한 의지와 능력을 갖춘 기업들은 누구나, 언제든 접근할 수 있는 인프라 형성에 보다 주안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즉 교육 및 컨설팅과 업무 시설 제공, 건전한 벤처 문화 조성 등 신생 기업의 성장 여건 조성을 위한 간접 지원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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