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진실은
‘죽음의 공장’ 한국타이어…진실은
  • 김선재 기자
  • 승인 2016.07.08 09:2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대책위, 산재은폐 공모여부 대검찰청‧법사위 진정
▲ 한국타이어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는 노동자들이 많지만, 산재를 신청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산재와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죽음의 공장'이라고 불린다.
(자료=장그래 노조)


가습기 살균제의 주원료인 PHMG(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의 인체유해성을 옥시가 고의로 은폐해 수천명의 피해자 및 사망자가 발생한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 이후 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유해성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가운데, 한국타이어의 노동자 집단사망사건이 다시 한 번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한국타이어는 공장에서 일하다가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은 노동자들이 많지만 산재신청을 할 경우 인사상 불이익을 주거나 합의를 종용하는 등 산재와 관련된 논란이 끊이지 않아 ‘죽음의 공장’으로 불린다.

그런가하면 노동자 집단사망의 원인 파악을 위해 지난 2008년 역학조사를 진행했던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역학조사 결과를 아직까지 공개하지 않고 있어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된다.

■ 2007년까지 93명, 이후 올해 1월까지 38명…총 131명 사망

‘장그래 대전충북지역 노동조합 한국타이어 산재협의회(장그래 노조)’는 지난 4일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사건의 검찰 수사와 국정감사를 촉구하는 진정서를 각각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대검찰청에 제출했다.

▲ 장그래 노조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제출한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관련 검찰 수사 및 국정조사 촉구서
(자료=장그래 노조)


▲ 장그래 노조가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관련 대전지방고용노동청과의 공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8년 역학조사 조작, 충남대학교 병원의 고 박찬복 씨에 대한 허위진단서 발부 등에 대한 수사를 촉구하며 대검찰청에 제출한 진정서. 장그래 노조는 2015년 12월 충남대학교 병원이 백혈병으로 사망한 고 박찬복 씨에 대해 쯔쯔가무시병으로 사망했다는 허위진단을 했다고 주장했다. (자료=장그래 노조)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사건은 지난 2006년부터 2007년 사이 한국타이어 대전 및 금산공장에서 일하던 노동자 15명이 사망하면서 사회적 관심을 끌기 시작했고, 2008년에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노동부의 의뢰를 받아 이들의 집단사망의 원인을 찾기 위한 역학조사를 실시하기도 했다.

이 사건은 2008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대검찰청 국정감사에서 다뤄진 바 있는데, 여기에서 1996년부터 2007년까지 한국타이어 공장 등에서 일하다가 사망한 사람들의 명단과 사망원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에 따르면 한국타이어 대전 및 금산공장, 중앙연구소 등에서 일하던 근로자들은 각종 암과 심근경색 등 비슷한 질병으로 12년간 총 93명이 사망했다.

해당 자료를 공개한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는 “솔벤트 등 유기용제에 장기간 노출돼 있으면 암 등 각종 질환이 발병한다”면서 “사측과 노동부는 십수년 전부터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이 공정과정에서 유기용제에 노출돼 병들고 죽어가는 것을 알고도 이를 방치·은폐했다”고 주장했다.

한국타이어 유기용제 의문사 대책위원회와 장그래 노조에 따르면 2008년 국회 국정감사를 통해 한국타이어 근로자의 특수건강검진 대상자 4,495명 중 2,239명(일반질병 유소견자 1,274명, 요관찰자 965명)이 추적관리 대상자로 확인됐음에도 한국타이어 측은 설비의 설치 및 개선·추적관리 대상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사후관리를 하지 않았고, 대전지방고용노동청 역시 관리 감독 업무를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또한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2007년 특별근로감독에 들어갔어야 하지만, 한국타이어에 자율감독기간을 둬 증거를 인멸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줬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이후 실시된 특별근로감독에서도 창문밀폐 등 1,900여건의 지적사항이 발견됐으며, 이는 감사원 감사 결과 지적된 사항으로, 감사원은 이에 대해 징계를 요구하기도 했다.

▲ 감사원 징계 요구서 (자료=장그래 노조)


이와 관련해 장그래 노조는 진정서에서 “지난 2015년 12월에 38세 노동자 박찬복 씨가 사망해 한국타이어 및 사내하청의 전·현직 중증질환 노동자, 유족 7명이 지난 1월 대전지방고용노동청에 한국타이어 및 사내하청 크로바실업을 고발하고 특별근로감독 및 역학조사를 촉구했지만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다”면서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의 공모 여부를 철저히 조사해 엄벌에 처해달라”고 요구했다.

박응용 노조 위원장은 “고발인 조사 과정에서 노조가 확보하고 있는 2008년 이후 한국타이어 사망자 명단 38명과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이 확보한 2008년 이후 한국타이어 질환 사망자 명단이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 “2008년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역학조사는 조작된 것”

장그래 노조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 사건에 대한 역학조사 재조사를 요구했다.

이들은 지난 2월 22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정문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유기용제 부문을 배제시킨 2008년도 역학조사는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의 사인을 덮기 위해 조작된 조사임이 확인됐다”며 재조사를 요구했다.

2008년 한국타이어 역학조사 평가위원회 관계자를 통해 조사에서 유해물질이 제외된 상태로 조사가 진행됐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역학조사가 이뤄졌던 2008년 당시 노동계에서는 이 전 대통령의 임기가 시작되는 시기라 한국타이어에 대한 산재조사는 물 건너간 것이라는 비판이 많았었다.

역학조사가 조작됐다는 근거로 노조는 올해 2월 유해물질에 의한 업무관련성 산재신청을 한 한국타이어 전·현직 노동자 4명에 대한 고려대 안산병원의 진단을 들었다.

고려대 안산병원은 이들에 대해 업무수행 과정에서 노출된 복합유기용제 ‘HV-250’과의 연관성을 배재하기 어렵다면서 ‘복합유기용제 업무관련성 진단서’를 발부했다.

▲ 고려대학교 안산병원의 정봉진 씨에 대한 업무관련성 평가서 (자료=장그래 노조)


또한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일하다 사망하거나 질병을 얻어 산재를 신청한 근로자들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8년 이전 역학조사에도 복합유기용제를 근로자의 사망 또는 질병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

▲ 고(故) 유병택 씨에 대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 (자료=장그래 노조)


장그래 노조는 “한국타이어에서 20년간 근무한 유종원 씨는 역학조사에서 벤젠, 크실렌, 카드뮴 등 유기용제 중독으로 인한 산업재해를 인정받았고, 2003년, 2004년 유기용제에 의한 산업재해를 인정한 대법원 판례를 뒤엎는 것이 2008년 역학조사”라면서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최종역학조사 결과 보고서는 벤젠, 톨루엔, 흄, 자이렌, 분진 등 노동자들의 사망원인이 된 유기용제와 유해화합물에 대한 조사 및 결론이 빠져 2008년 이후에도 한국타이어 노동자를 집단사망하게 하는 중대범죄행위의 근거가 됐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2008년 역학조사 결과보고서를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에 대한 조사도 요구했다.

▲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의 2008년 역학조사 최종 보고서 (자료=장그래 노조)


박 위원장은 “2008년 역학조사와 별도로 진행된 고(故) 유병택 등 사망자 8명에 대한 개별 역학조사에서는 흄, 분진, 벤젠, 톨루엔, 자이렌 등 유해화합물이 인용됐다”며 “8년 동안 최종역학보사 결과보고서를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가 외부 압력에 의해 고의로 조작돼서인지 여부에 대해 국정조사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한 종합편성채널은 뇌질환과 암 등으로 사망한 한국타이어공장 노동자들의 사례를 소개하면서 이 회사에서 1992년부터 최근까지 131명의 근로자가 암이나 뇌·심장질환으로 사망했지만, 산재판정을 받은 경우는 소수에 불과하고,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2008년 한국타이어 노동자 집단사망에 대한 역학조사 결과 보고서를 지금까지 공개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이 종편채널은 해당 보고서를 입수해 공개했는데, 보고서는 타이어를 고온 처리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하얀 연기 ‘흄’에서 발암가능성이 있는 성분이 검출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흄’의 위험성은 지적했지만 추가 조사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

▲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내부. 하얀연기(흄)가 공장 내부를 가득 채워 마치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다.
(자료=장그래 노조)


우리나라에는 아직 흄과 관련된 유해성 보고나 관리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이다. 고용노동부는 10년 전에 영국의 기준을 따라야 한다는 용역 결과 보고를 받았지만 관리기준을 만들지 않았다. 영국은 ㎥당 0.6mg 이하로 관리하고 있다.

박순실 산재협의회 간사는 “환경법이 개정돼 기업들이 사용하는 유해물질은 모두 공개돼야 하지만 한국타이어는 이마저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정보공개도 요구하는 등 다방면으로 노력했지만, 꿈쩍도 안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근로복지공단은 한국타이어 노동자 4명이 접수한 ‘유해물질에 의한 질병 업무관련성 산재신청’에 대해 산업안전보건연구원에 역학조사를 의뢰했다.

박 간사는 “이에 대해 역학조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사단에 산업안전보건연구원 외 외부자문단과 전문가 등을 포함시킬 것을 요구했지만, 연구원 측이 이를 거부했다”고 말했다.

관련해서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은 “현재 4건의 역학조사가 진행 중인데, 조사위원회에는 연구원 인원 외 학계나 외부 전문가들이 이미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 “한국타이어 집단사망 사건은 정경유착이 원인”

장그래 노조는 이 사건의 원인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 2007년 산재보상보험법 전면 개정으로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산재신청이 원천적으로 봉쇄됐는데, 이 책임이 이 전 대통령에게 있다는 것이다.

박 위원장은 “이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었던 시절부터 산재보상보험법을 고치기 위해 곁가지를 치는 작업을 해왔다고 보면 된다”면서 “조현범 사장과 이 전 대통령 셋 째 딸 이수현은 이 전 대통령 서울시장 시절(2001년) 결혼했다”고 말했다.

산재보상보험법은 2007년 전면 개정됐는데, 이후 산재 승인률이 반토막이 났다는 것이다.

박 간사는 “2011년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이 모여 개최한 산재보상보험법 관련 토론회에서 산재보상보험법 개정 전과 개정 이후 산재 승인률이 반토막 난 것이 데이터로 확인됐다”며 “질병판정위원회를 신설해 산재 승인이 안 되는 방향으로 직업관련 질병 인정 범위 기준을 변경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토론회 자료에 따르면 산재신청에 대한 승인율은 2000년 79.2%에서 36.1%로 크게 줄었고, 특히, 뇌심혈관질환과 관련해서는 14.4%로 승인율이 낮았다.

이어 “이는 2007년 15명의 사망자가 발생하자 산재신청을 할 수 없도록 법률적으로 막아버린 문제”라면서 “수백만명에 달하는 국내 중화학공업 종사자들은 현재 복합유기용제에 노출된 채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도 병에 걸리면 그냥 죽으라는 얘기”라고 울분을 통했다.

또한 “이후에도 한국타이어 노동자들의 사망이 이어졌고, 산재 승인은 이뤄지지 않았다”며 “법 개정부터 역학조사 조작, 노동부가 근로감독을 하지 않는 부분까지 한 라인에서 움직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 “늦었지만 이제는 사람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

최근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인근 주민들로부터 공장에서 흘러나오는 가스로 인한 악취로 고통 받고 있다는 민원이 이어지고 있다.

또한 공장 인근 주민들에게서 백혈병 환자들이 발견되고 있는데, 노조에 따르면 대덕구 송촌동에서만 21명의 백혈병 환자가 나왔다. 대부분 10대 학생들이었다.

박 간사는 “한국타이어 공장에서 나오는 유해가스 때문에 공장 인근의 주민들 중에서도 혈액암 환자가 증가하는 등 위험이 공장 내부에서 외부로 확산되고 있다”며 “비록 많이 늦기는 했지만, 지금이라도 잘못을 바로 잡아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방향으로 가야지, 은폐한다고 일이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현재까지 제기된 문제들은 노조의 주장일 뿐 2008년 이후 추가로 진행된 역학조사에서 일부 문제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고무 흄이나 유기용제 등에서 기준치 이하로 검출되는 등 작업 환경에 커다란 문제점이 지적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노조의 고발과 관련해서는 “상황을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86-12 금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0807
  • 팩스 : 02-333-0817
  • 법인명 : (주)파이낸셜신문
  • 제호 : 파이낸셜신문
  • 주간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8228
  • 등록일자 : 2009-4-10
  • 발행일자 : 2009-4-10
  • 간별 : 주간  
  •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825
  • 등록일자 : 2009-03-25
  • 발행일자 : 2009-03-25
  • 간별 : 인터넷신문
  • 발행 · 편집인 : 박광원
  • 편집국장 : 임권택
  • 전략기획마케팅 국장 : 심용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권택
  • Email : news@efnews.co.kr
  • 편집위원 : 신성대
  • 파이낸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신문. All rights reserved.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