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채용비리와 바닥으로의 경쟁
은행 채용비리와 바닥으로의 경쟁
  • 강경훈 동국대 교수
  • 승인 2018.02.12 14:4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파이낸셜신문=강경훈 동국대 교수] 최근 여러 공기업 및 은행들에서 채용비리 문제가 불거진 바 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검찰의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사회 여러 곳에 채용비리가 생각보다 만연해 있어 충격이 매우 크다. 
 
▲ 강경훈 동국대 교수 
금융감독원에서는 앞으로 ‘금융회사 채용비리 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채용비리 실태 점검을 제2금융권까지 확대한다고 하니 충격과 파장이 더 커질 전망이다.
 
사회적 파장과 혼란이 크더라도 젊은이들을 좌절과 불신의 나락으로 떨어뜨리는 채용비리 문제는 발본색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다.
 
반면 문제가 된 은행들의 반론도 있다. 우선 무엇이 비리이고 무엇이 영업관행인지에 대해서 시각차가 크다.
 
예를 들어 은행의 입장에서 입점 대학의 학생들에게 혜택을 준 것이 왜 수사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이 있을 수 있다. 
 
일각에서는 감독당국의 과도한 개입이 민간은행의 자율성을 훼손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가뜩이나 관치금융의 구태를 쉽게 벗지 못하고 있는 국내 금융의 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라는 걱정이다.
 
은행의 자율성은 중요하다. 이들의 경영이 외부의 지나친 간섭에 따라 왜곡되거나 역동성을 잃게 된다면 경제의 건전한 발전도 불가능하다. 자율경영이 방종이나 비리로 연결될 것이라는 우려도 기우에 불과할 수 있다.
 
소비자나 투자자의 감시 기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장에서는 다수의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우수하지 않은 직원을 비리로 채용하는 은행이 있다면 저만 손해이고 결국 경쟁에서 도태되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는 시장 경쟁이 항상 좋은 방향으로 이루어지지만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 2007-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교훈 가운데 하나는 시장 경쟁도 악순환으로 연결되어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 좋은 상품을 더 낮은 가격에 공급하는 것이 건강한 경쟁(healthy competition)이라면 부실한 금융회사가 금융소비자를 현혹하는 금융상품을 공급하여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방식의 경쟁도 가능하다. 건실한 금융회사는 소비자들을 현혹하는 대출상품을 많이 팔아 단기적으로 수익을 올리더라도 결국 연체율 상승 등의 문제가 불거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부실 금융회사들이 소비자를 현혹하는 대출상품을 경쟁적으로 취급하는 경우 이 흐름에 동참하지 않으면 당장 시장점유율이 크게 떨어지는 등의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참여하게 될 수 있다.
 
채용비리에서도 이러한 가능성이 엿보인다. 채용비리의 수혜자는 정치권이나 고위 공직자 등 영향력 있는 사회인사와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개별 은행의 입장에서는 채용비리를 제공하고 영향력을 얻을 수 있다면 밑지는 장사가 아닐 수 있다.
 
더욱이 현행법 하에서는 채용비리가 사기나 뇌물 범죄가 되기 힘들다고 하니 수지맞는 장사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은행들이, 나아가 모든 기업들이 정치, 경제, 사회적 영향력을 추구하여 앞다투어 채용비리를 일삼는 상황을 상상해보자.
 
사회 발전이 후퇴하는 것은 물론이고 각 은행이나 기업이 당초 원하던 영향력을 얻지도 못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경제 시스템의 위기로 연결된 사례라면 채용비리는 사회 전체의 시스템 위기로 연결될 소지가 있다고 하겠다.
 
감독당국은 개별 금융회사의 자율성을 존중하고 경영에 부당 개입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경쟁이나 소비자 감시 등 시장규율이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바닥으로의 경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미국이나 유럽의 주요국에서도 중요하게 부각되고 있는 이슈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채용비리는 감독당국이 개입해야 하는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감독당국의 임직원들에게는 더욱 엄한 잣대와 중한 처벌이 요구된다. 나아가 채용비리의 청탁자나 수탁자, 수혜자들을 제대로 단죄하지 못하는 현행법을 고치는 것은 국회와 정치권의 임무가 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86-12 금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0807
  • 팩스 : 02-333-0817
  • 법인명 : (주)파이낸셜신문
  • 제호 : 파이낸셜신문
  • 주간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8228
  • 등록일자 : 2009-4-10
  • 발행일자 : 2009-4-10
  • 간별 : 주간  
  •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825
  • 등록일자 : 2009-03-25
  • 발행일자 : 2009-03-25
  • 간별 : 인터넷신문
  • 발행 · 편집인 : 박광원
  • 편집국장 : 임권택
  • 전략기획마케팅 국장 : 심용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권택
  • Email : news@efnews.co.kr
  • 편집위원 : 신성대
  • 파이낸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신문. All rights reserved.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