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구 위원장 “채무자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가 필요하다”
최종구 위원장 “채무자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가 필요하다”
  • 임권택 기자
  • 승인 2019.02.15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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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제학회-서민금융연구원 학술대회 기조연설...채무자대리인제 제시

최종구 위원장은 14일 부채정책에 대해 “문제는 마땅히 있어야할 규율에 공백이 있었던 것이고 앞으로는 균형된 시각에서 새로운 규율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한국경제학회와 서민금융연구원이 이날 서울 성균관대에서 공동 주최한 학술대회에서 '가계부채를 중심으로 한 부채의 인식과 대응'을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날 최 위원장의 기조연설은 부채에 대한 경제적 시각에서 벗어나 역사적·사회적 인식 등 철학적 사고를 도입, 빚에 대한 인식의 대변화를 촉구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21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최종회의를 열어 개편방안 최종안을 확정·발표했다.(사진=금융위)
지난해 12월21일 최종구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서민금융 지원체계 개편 태스크포스(TF) 최종회의를 열어 개편방안 최종안을 확정·발표했다.(사진=금융위)

이는 결국 현재 서민의 빚 탕감에 대한 단순한 도덕적 해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 사고의 변화를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신선함에 이어 새로운 충격으로 다가온다.

그만큼 과거와 다른 시대변화가 왔음을 의미한다. 이날 최 위원장의 기조연설은 채무자의 입장에서 본 시각이다.

최 위원장은 “2008년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미국, 유로 등 전세계 중앙은행의 부채가 크게 증가했고 이제는 이를 되돌리는 과정에 있다”며 “정부부채 문제로 그리스, 포르투갈, 스페인 등 유로존 국가들이 곤욕을 치루는 국가도 있다”고 밝혔다.

또 “민간의 경제주체들도 부채의 역습을 피하지 못했다”며 “중국은 기업부채의 급격한 증가를 크게 우려하고 있고, 부동산 경기 붐과 가계부채 증가는 글로벌 현상이 되었다”고 말했다.

최 위원장은 “우리도 이미 1,500조원을 넘어선 가계부채에 대해 살얼음 위를 걷듯 조심스럽고 세밀하게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계부채에 대해 금융당국은 금융기관 건전성, 거시건전성, 소비자 보호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먼저 전통적인 시각으로서 금융기관의 건전성 차원으로 여신이 부실화되어 금융기관이 파산하고 그에 따라 예금자 등 소비자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시각이다.

은행법, 보험업법 등에서 대출 한도와 포트폴리오를 규제하고 대손충당금을 쌓도록 하는 것 등은 이러한 시각을 반영한 것이라 밝혔다.

다음으로 거시건전성 측면에서 대출의 부실화는, 단기자금거래 등을 통해 금융기관들끼리 서로 부채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정상적인 금융기관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최 위원장은 “금융기관의 부실은 실물경제에도 영향을 미친다”며 “금융산업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남짓에 불과하지만 금융부문이 무너지면 마치 블랙아웃이 발생하듯이 모든 국가경제가 마비될 수 밖에 없다”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대출은 소비자 보호의 측면에서도 중요하게 바라보아야 한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금융상품은 구조가 복잡하고 어려워 불완전 판매의 소지가 높다”며 “대출 상품은 상환, 회수, 추심 등 상품 판매 이후의 단계에서 더욱 큰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에 보다 두터운 보호가 필요할 것”이라 했다.

문명의 진화에 따라 ‘상부상조로서의 빚’이 ‘금전적인 빚’으로 바뀌면서 갈등과 분쟁거리로 변질되어 갔다

이날 최 위원장은 세 번째 시각인 소비자 측면에서 부채의 특수성에 관해 설명했다.

인류사적으로, 부채의 역사는 공동체의 역사였다. 공동생활을 하는 과정에서 상호협력이 필요했고 한번 도움을 받으면 다음번에 도움을 주어야 했다.

그러면서 최 위원장은 “부채는 공동체의 생존본능으로 역사에 등장했지만, 문명의 진화에 따라 ‘상부상조로서의 빚’이 ‘금전적인 빚’으로 바뀌면서 갈등과 분쟁거리로 변질되어 갔다”고 말했다.

고대 도시국가에서는 부채거래가 확대되면서 고리대(Usury) 문제, 잔혹한 추심, 채무노예 등 부작용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공동체의 불안과 와해를 막기 위해 부채에 대해 규율도 시작되었다고 설명한다.

기원전 18세기 바빌로니아의 함부라비 법전에서는 과도한 이자수취를 금지했고 폭풍이나 가뭄 등으로 곡식 수확량이 준 해에는 빚을 갚지 않아도 된다는 규정도 소개했다.

또 최 위원장은 “빚에 대한 규제는 종교적으로도 강한 지지를 받으면서 중세 시대에까지 이어졌다”며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득을 얻기 위해 돈을 빌려주는 일은 바람직하지 못한 거래로서 비판과 제재를 받아야 한다”는 말도 소개했다.

이러한 정신은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이어져 대금업과 이자징수를 철저히 금지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르네상스가 시작되고 도시국가를 중심으로 상업이 활성화되면서 이러한 인식에 변화가 시작되었다고 밝혔다.

중세까지는 사람들에게 '성장'이라는 개념이 없었고, 세상은 그저 반복적으로 순환하는 곳으로 한쪽의 성공은 다른 쪽의 손해를 의미하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러한 제로섬의 사회에서는 금융거래뿐만 아니라 “남의 돈을 버는” 모든 상업활동은 비윤리적, 비도덕적인 행위일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상업과 산업의 발달은 피할 수 없는 대세였다. 아담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의 기능과 역할을 규명함으로써 이윤 추구와 상업적 거래에 대해 도덕적 해방구를 열어 주었다.

그러다 20세기 들어서면서 부채가 경제에 본격적으로 '활용'되기에 이르렀다고 설명했다.

1920년대 미국에서는 대량생산된 상품을 밀어내기 위한 판매신용이 급격하게 확대되었다.

최 위원장은 “뉴딜정책도 31개 핵심프로그램 중 15개가 신용공여 프로그램이었다”며 “개인들에게도 절약과 근검보다는 부채를 활용한 유연한 소비와 자산운용이 합리적인 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고 설명했다.

미국의 사회학자 다니엘벨은 이러한 과정에서 ‘부채(Debt)’가 ‘신용(Credit)’이라는 보다 중립적인 용어로 교체되었다고 지적했다.

최 위원장은 “부채와 관련한 우리나라의 역사적 경로는 좀 특이한 측면이 있다”며 “전후 만성적인 자금부족의 상황에서 정부가 외채(外債)를 끌어와 수출과 중화학 부문에 직접 배분하면서 가계부문의 부채 접근성을 사실상 차단해왔다”고 설명했다.

당시 가계는 저축의 주체로서 가계부채는 생소한 개념이었고 국내부채의 대부분은 기업부채였다고 소개했다.

당연히, 부채정책의 초점도 기업부담 경감에 있었다고 말한 최 위원장은 “현재 개인의 고금리부담을 막는 역할을 하는 이자제한법도 당초에는 가계의 이자수익을 제한하고 기업의 금융부담을 경감하기 위해 도입(‘62년)된 것”이라 했다.

이어 “1998년 외환위기 이후 상황은 반전을 맞았다”며 “정부의 직접적 자금배분 방식이 한계를 보이면서 전면적인 금융자율화가 실시되었고 금융기관은 가계대출에 대한 공격적 영업을 개시햇다”고 밝혔다.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급작스런 전환과정에서 안타깝게도 2003년 카드사태를 겪었고, 집값 상승과 맞물려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확대되었다고 밝혔다.

가계부채는 근본적으로 기업부채와는 다른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 최 위원장은 “차주유형과 자금성격의 차이뿐 아니라 결정적으로 청산단계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기업부채는 기업의 소득이 중단되면 기업해체와 파산을 거쳐 빚을 청산할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최 위원장은 “가계부채는 실업 등으로 가계의 소득이 중단되어도 개인이 어떻게든 그 빚을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며 “주택담보대출의 경우에도 담보처분으로도 상환재원이 부족할 경우 결국 개인이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빚의 무서움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라 지적했다. 개인이 차주인 부채는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인적 무한책임”이라고 했다.

개인이 차주인 부채는 죽지 않는 한 끝나지 않는 “인적 무한책임”이다.

특히 “사람은 먹고 입는데 돈을 쓸 수밖에 없는데, 채권자는 그 돈이라도 줄여서 빚을 갚아야 한다”며 “그렇기 때문에 추심은 가혹성과 잔인성을 가지게 된다”고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각 국가들은 가계부채의 증가에 대응하여 채무자를 보호하기 위한 규율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했다‘

최 위원장은 “경제사적으로 한 시대의 협력적 생산관계의 근간을 이루어 왔던 지주와 농민의 관계, 자본가와 노동자의 관계, 그리고 현대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는 대립적 긴장관계로 변질될 수 있는 만큼 사회적 관여를 통해 사회안정을 유지해온 것이 인류의 공통지혜”라고 설명했다.

한편, 하나의 ‘대출상품’으로서 가계부채는 계약을 맺는 과정에서도 특이한 점이 있다고도 했다.

대출은 주식, 펀드상품, 예금 등 여타 금융상품과 달리 판매자인 금융기관이 위험을 지게 되는 구조이다. 따라서 아무한테나 대출을 해주지는 않고 채권자가 '선별'을 거쳐 상품을 판매하게 된다.

선별의 기준과 과정이 객관성과 공정성을 가지지 못할 경우 “보편적 정의감”에 어긋나 보이는 이러한 선별의 결과는 금융기관의 신뢰에 큰 상처를 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대출 과정의 투명성 제고를 위한 각국 정부의 노력들이 가계부채에 대한 또 하나의 국제적 정책 경향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관련, 최 위원장은 “우리나라도 개인 채무자 보호를 위한 규율체계를 지속적으로 정비하고 강화해 왔다”며 “부채에 대한 규율체계는 아직도 형성 중에 있다”고 밝혔다.

최 위원장은 “신용질서의 훼손과 도덕적 해이 발생으로 결국 소비자의 금융접근성을 제한하게 될 것”이라는 반론도 많다고 지적했다.

우선, 상환가능성이 낮은 차주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이 과연 옳은 행위인가 하는 문제이다.

두 번째로, 상환능력을 상실한 채무자에게는 빚을 감면해주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주제이며, 마지막으로, 이러한 부채에 대한 규율강화는 불법사금융의 확대를 가져와 규율 효과가 반감될 것이라는 것이다.

어려운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어야 하는가에 대해 최 위원장은 즉답을 피하고 가계부채를 과거 금융거래 이력을 바탕으로 한 금융기관의 건전성 차원에서만 관리할 것이 아니라 채무자 측면에서 장래상황을 염두에 두고 봐야 한다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말로 대신했다.

아울러, 소득수준으로 감당하기 힘든 빚에 대해서는 빌려준 사람도 책임이 있다는 금융기관의 책임성(Lender’s responsibility)이라는 시각을 우리 규율체계에 반영하려는 노력은 계속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채무조정에 대해 최 위원장은 “우리는 지난 15년간의 점진적 개선과정을 통해 원금의 절반이상 감면이 허용되는 채무조정제도를 갖게 되었다”며 “나아가 개인회생은 작년부터 변제기간이 5년에서 3년으로 단축되었고 지난해 12월 발표한 '서민금융체제 개편방안'에 따라 신용회복제도도 감면율을 크게 높이는 개선을 추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우리가 이렇게 과감한 채무조정제도를 가지게 된 것은 ‘전략적 파산’과 같은 도덕적 해이 문제는 그렇게 크지 않다는 현실에 대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혔다.

불법 사금융에 대해 최 위원장은 “정책당국으로서 고민은 크다”며 “불법사금융을 최대한 억제하기 위해서는 대출모집‧광고 절차에서부터 불법사금융업자에 대한 처벌강화까지 다방면에 걸친 대책을 동시에 마련‧추진해야 할 것”이라 했다.

새로운 특별한 권한과 절차를 신설하기 어렵다면, 현재 도입되어 있는 채무자대리인 제도를 활용하여, 불법사금융 피해자를 위해 금융당국이 대리인 역할을 하는 방안도 고려해볼 수 있다고 최 위원장은 말했다.

마지막으로 최 위원장은 “그 동안 금융기관이 채무자 이익을 훼손해 왔다는 것을 지적하거나 합법적인 범위 내의 이익추구 행위를 비난할 의도는 없다”며 “금융기관도 자기 돈이 아닌 남의 돈을 대신 운영하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이라 했다.

이어 “부채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도 아니다”며 “부채의 양면성, 즉 창조와 파괴 가능성을 지적한 것"이라 했다.

또 "긍정적 기능을 더욱 키우기 위해 부정적 효과를 차단하려는 것“이라 최 위원장은 강조했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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