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부 자유무역' 시대 개막: 트럼프 관세 위협과 맞바꾼 대미 투자의 의미
'위기 최소화, 기회 극대화' 전략: 상업적 합리성, 금융 리스크 분산 등 안전장치 확보
'선결·후속 과제 해소' 관건: 비관세 압박 대비 및 산업 공동화 방지 대책 병행 시급
지난 7월 30일 한미 관세 협상 타결 이후, 3.5개월만인 지난달 14일 한미 양국은 관세와 투자, 안보 등 포괄적인 합의 내용을 담은 '공동 팩트시트(Joint Fact Sheet)'와 '한미 전략적 투자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발표했다.
이번 한미 양국의 합의는 통상을 넘어 외교·안보 및 경제 지형에 변화를 가져오는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3천5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투자는 국내 경제에 위험 요소가 될 수 있으나, 미국의 핵심 공급망에 진입할 수 있는 전략적 기회이기도 하다.
다만 합의의 상당 부분이 향후 후속 절차와 협상의 몫으로 남아있고, 대미 투자의 성과도 이행 속도와 구체화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이에 국회입법조사처는 23일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합의: 위기인가, 기회인가?' 보고서에서 공동 팩트시트(JFS)·투자 양해각서(MOU)를 경제·통상 관점에서 분석하여 향후 이행 과정과 결과를 조망하며 점검이 필요한 핵심적인 선결·후속 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공동 팩트시트(JFS)의 합의 내용이 막대한 경제적 부담과 규제 주권 침해 가능성 등의 우려가 존재하지만, 한미동맹의 협력 범위를 경제-안보 영역으로 확장하고 실리를 획득했다는 측면에서는 진일보한 성과라고 평가했다.
* 투자 및 관세 합의
△ 3천500억 달러 대미 투자: 정부 주도 2,000억 달러(연간 최대 200억 달러)는 조선, 에너지, 반도체, 인공지능(AI) 등 핵심 경제 안보 분야에 집중, 민간 주도 1,500억 달러는 조선업 협력에 적용
△ 관세 조정: 한국산 제품의 상호관세 최대 15%, 자동차부품 및 목재제품의 관세(232조 관세) 15% 조정, 반도체는 경쟁국(대만)보다 불리하지 않은 수준, 항공기·부품 및 제네릭의약품 등 일부 품목에 대한 상호관세 면제 등
△ 조건부 발효: 관세율 발효 시점은 자동차 및 부품에 대한 관세는 투자 MOU 이행을 위한 「대미투자특별법안」의 국회 제출 달의 1일 자로 소급(11월 1일), 제네릭 의약품·일부 천연자원 상호관세 면제 조치는 공동 팩트시트에 포함된 비관세 관련 이행 계획 합의가 이루어지는 시점 등
* 비관세 및 안보 협력 강화
△ 비관세 현안: 디지털 서비스 차별 금지, 데이터 국경 간 이동, 변호사-의뢰인 비밀유지권(ACP) 인정, 농산물 검역 규제 협력 강화 등 핵심 비관세 현안 해소 합의
△ 전략적 파트너쉽: 핵을 포함한 확장 억제 재확약, 한국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승인, 우라늄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에 대한 美 지지 확보 등 경제-안보 영역으로 협력 범위 확장
아울러, 한미 전략적 투자 MOU는 선례를 제공했던 미일 투자 MOU 사례와 비교했을 때, 기본 구조(framework)는 유사하지만, 금융 리스크 분산 및 상업적 합리성의 대원칙 아래에 다층적 안전장치를 확보하는 데 보다 주력한 것으로 평가했다.
* 투자 리스크 관리
△ 상업적 합리성 원칙(Commercially Reasonable): 원금 회수 보장 문구 도입(미일 투자 MOU: 관련 조항 없음)
- 상업적 합리성이 있는 투자란 투자위원회가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판단했을 때 충분한 투자금 회수가 보장되는 투자를 의미함
△ 우산형 특수목적법인(SPV): 정부 투자금 2,000억 달러, 한쪽 프로젝트 손실을 다른 쪽 프로젝트 수익으로 보전 가능(미일 투자 MOU: 개별 프로젝트 SPV로 손실 보전 유연성 낮음)
△ 분납 및 조정: 연간 200억 달러 한도 내에서 분납 방식(캐피탈 콜)을 채택, 시장 불안 우려 시 조달 규모·시기를 조정할 수 있는 안전장치 마련(미일 투자 MOU: 지급 상한선 및 '조달 규모/시기' 조정권 명문화 없음)
* 법적 성격 및 관세 인상 리스크
△ 법적 비구속성을 명시, 단 투자 불이행 시 미국의 관세 인상 허용 조항 존재
입법조사처는 대미 투자를 단순히 방어적 수단이 아닌, 국익 증대와 미래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교두보로 활용해야 하는데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하면서, 이를 위해 면밀히 점검해야 할 5가지 선결 및 후속 과제를 제시했다.
보고서는 먼저, 특별법의 치밀한 제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관세 혜택의 실현과 대미 투자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상업적 합리성(Commercially Reasonable)' 개념을 국내 법령으로 뒷받침하여 대미 투자의 근거와 안전장치를 최대한 확보하는 것이 '특별법' 제정의 핵심이다.
다만, 중요한 것은 법안 처리 속도보다는 내용의 치밀함이며, 현재 발의된 특별법안에 담긴 내용들을 포함하여 추가적인 보완 사항들이 법 제정 과정에서 충분히 논의·반영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국익에 기여할 전략적인 프로젝트의 설계와 제안이 필요하다고 했다.
'상업적 합리성' 원칙에 따라 국내 산업 경쟁력과 공급망 안정에 기여할 프로젝트를 설계 및 제안해야 한다. 특히 상업적 합리성을 판단하는 데 있어 한미 양국이 공감할 수 있는 객관적·구체적 선정 기준을 마련함으로써 양국 간의 정책·전략 목표 충돌을 사전에 방지할 필요가 있다.
실제 대미 투자 집행 과정에서 직면할 수 있는 노동 및 행정적 규제 장벽과 이행 리스크에도 대비해야 한다.
또한, 경제 안정화와 산업 공동화 방지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했다.
대규모 달러 유출 가능성에 대비하여 외환시장 안정화 정책을 한층 강화하는 한편, 대미 투자 효과가 국내로 환류되어 산업 고도화를 촉진하면서도, 자본과 인력 유출이 산업 공동화 현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국내 투자 인센티브 제도 개선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비관세 방어 및 미해결 이슈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협상 준비에 돌입한 비관세 현안들은 미국의 최대 관심사로 관세와 연계되어 규제 주권 압박 근거로 활용될 수 있다. 디지털 규제와 농산물 위생검역 등 특히 민감한 비관세 이슈들은 국내 산업 보호와 국제 표준과의 균형점을 맞추면서 치밀한 방어와 협력 논리를 가져가야 한다.
한미 FTA와 철강 관세 등도 기존의 혜택을 복원한다는 차원에서 후속을 끈질기게 이어가야 한다.
마지막으로, 미국의 통상정책 불확실성과 법적 리스크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번 합의는 한국의 이행을 전제로 실효적이나 동시에 대외 변수들로 인해 유동적이기도 하다. 미국 관세 정책 효과가 가시화되는 양상,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의거한 관세 정책의 적법성 판결과 내년 중간선거 등 미국의 정치·경제적 변동성이 JFS·MOU 이행 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 대외 환경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는 '컨틴전시 플랜(Contingency Plan)'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입법조사처는 "지난했던 협상 과정을 거쳐 한미 양국이 관세와 투자 합의를 약속한 만큼, 경제-안보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도록 대미 투자를 치밀하게 계획하고 추진함과 동시에 잠재적 위험을 선제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입법적·정책적 노력을 병행하면서 국익 증진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밝혔다.[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