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전세사기범 발본색원하고 전세 보증제도 전면 보완해야"
[칼럼] "전세사기범 발본색원하고 전세 보증제도 전면 보완해야"
  • 파이낸셜신문
  • 승인 2023.01.1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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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박근종 작가·칼럼니스트

올들어 첫 기준금리가 인상됐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지난 13일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올리며 불과 1년 5개월 만에 10차례나 인상이 이어지면서 대출자들의 고통이 심화하고 있다. 2021년 8월 연 0.5%였던 기준금리는 이날 3.50%로 올라 무려 3%포인트나 상승했다.

지난해 9월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1756조8,000억 원이나 되며, 예금은행의 변동금리 대출 비중은 77.9%나 된다. 와중에 사상 첫 일곱 차례 연속 인상을 단행함에 따라 대출 차주들의 불안감이 커가는 것은 물론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 조치에도 불구하고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서 ‘깡통전세’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우려된다. 세입자는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손해를 보고 임대인은 임차인의 강제경매로 집을 날리는 피해가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런 피해가 현실화됐다. 최근 부동산경기 침체로 세입자가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전세 보증 피해 사고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수도권 빌라·오피스텔 1,139채를 갖고 있다가 170억 원가량의 전세보증금을 돌려주지 않고 사망한 ‘빌라왕’ 김 모, 인천 일대에서 30여 년간 건축업을 하며 2,709채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챈 ‘건축왕’ A 모, 수도권 일대에서 빌라·아파트 3,493채를 매입해 임대업을 해온 ‘빌라의 신’ 권 모 등 자본 없이 이른바 ‘갭 투기(매매가와 전세금 차액만 내고 집을 매수)’만으로 소유하게 된 주택을 악용해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가로채는 ‘전세 사기’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문제는 서민 세입자들을 울리는 사기범들이 수도권 중심에서 전국 각지로 확산하는 추세다. 무엇보다 가짜 집주인을 내세워 보증금을 빼돌리는 것은 기본이고, 신탁회사에 집을 담보로 맡기고 거액의 자금을 빌리는 등 범행 수법도 다양하게 진화하고 갈수록 대담해지고 있다. 사기 일당들이 보증금을 가로채는 수법은 참으로 교묘하고 지능적이다. 주로 매매가와 같거나 높은 가격에 세입자와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동시에, 세입자가 낸 보증금으로 주택을 매입하는 일명 ‘동시 진행’ 수법을 사용했다. 이러한 수법으로 돈 한 푼 들이지 않고 주택을 무한정 사들일 수 있었다.

또한 건물주, 분양대행사, 빌라왕, 공인중개사 등이 공모하여 시세 정보가 정확하지 않은 신축 빌라나 다가구주택의 전세 가액을 매매시세보다 높게 책정한 후 세입자에게 임대사업자인 집주인이 보증금반환보험에 가입했으니 안전하다고 거짓말로 속여 안심시킨 뒤 명의를 빌라왕에게 이전한 다음 세입자와 계약하도록 유도하는 조직적 ‘팀플레이’수법을 사용했다. 이들이 차액을 나눠 먹고 나면 빌라는 자연스럽게 전세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는 ‘깡통주택'이 된다. 이 과정에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허술하기 짝이 없는 가입 기준과 심사를 악용했다. 피해가 고스란히 세입자들에게 돌아가고 있는 만큼 국가가 책임을 지고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한다.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에 가입한 임대사업자가 보유한 주택 중 절반 이상이 보증금·대출 등 부채가 집값의 80%를 넘는 이른바 ‘깡통전세’라는 충격적인 통계가 나왔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입이 의무화된 2020년 8월 이후 임대사업자 보증보험 가입 주택 총 70만 9천여 세대의 54%인 38만 3천여 세대 집주인의 부채비율이 80%를 넘는다는 통계치다. 부채비율은 집주인의 담보권 설정 금액과 전세보증금을 합한 금액을 집값으로 나눈 수치다. 이 비율이 80%를 넘으면 집을 처분해도 세입자가 보증금을 제대로 돌려받지 못할 수 있어서 ‘깡통전세’라고 한다. 일반 전세에 비하면 그나마 안정적이라는 임대사업자 전세의 절반 이상이‘깡통전세’라니 당연히 충격이 클 수밖에 없다.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제도는 보증금 사고가 발생하여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때 보증사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집주인 대신 세입자에게 우선 갚아주고 먼저 지급해주고, 나중에 집주인한테 돌려받거나 집을 처분해 돈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보증금 미반환 사고가 급증하면서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임차인에게 돌려준 대위변제액은 무려 9,241억 원에 이른다. 2018년 583억 원에서 2021년 5,040억 원으로 3년 만에 8배가량 늘어난 데 이어, 지난해엔 2021년보다 83.4% 급증했다. 반면에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지난해 집주인에게서 회수한 금액은 2,490억 원에 불과했다. 그 여파로 공사마저 재무 건전성에 적신호가 켜져 자본을 수혈받아야 할 처지에 빠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세 보증보험을 두고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일이 발생한 데는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느슨한 가입 심사에도 적잖은 책임이 있다.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을 주택가격과 동일 수준까지 보증해주고,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해 사기범들이 무자본 ‘갭 투기’를 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줬다.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했다는 것은 예컨대 공시가격이 3억 원이라면 4억5,000만 원까지 시세로 쳐서 공사가 보증해줬다는 얘기다. 실제로 사기범들은 자기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도 세입자의 전세금만으로 집을 매매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세입자들에겐 보증보험에 가입하는데 전혀 문제없다는 식으로 안심시켰다. 특히, 가격 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을 사기 대상으로 삼아 집값을 실제보다 높게 부풀렸다. 신축 빌라는 전문적인 감정평가를 받아야 하는데, 현재 수수료를 임차인들이 부담하도록 하고 있어 이용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이와 같은 ‘전세 사기’ 사건 피해자들은 자금이 부족하고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20∼30대가 대부분이다. 사회초년생, 1인 가구, 신혼부부 등 주로 취약계층에 해당한다. 보증금을 떼인 피해자들의 독립 의지를 단칼에 꺾어버린다는 점에서 ‘전세 사기’ 사건은 악질적인 반사회적 범죄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피해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긴급 주거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등 세입자 보호, 피해자 구제제도 등은 허접하고 빈약하기 그지없다. 경찰도 전담팀을 두면서 지난 5개월간 856명의 사기범을 검거는 했지만, 여전히 서민 전세금이 사기범의 먹잇감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하다. 따라서 정보 사각지대에 놓인 소외 계층과 주거 불안에 몰린 경제적 약자를 먹잇감으로 삼아 젊은 세대의 꿈과 희망을 앗아가고 빈곤층을 절망으로 몰아넣는다는 점에서 반드시 응징돼야 할 범죄다. 정부의 피해 예방 대책 강화는 물론이고 검찰이나 경찰 등 수사당국도 ‘전세 사기’를 근절하겠다는 단호하고 결연한 의지를 갖고 신속하고 강력하게 수사해 서민의 삶을 등친 악질 전세 사기범이 다시는 이 땅에 발붙이지 못하도록 발본색원(拔本塞源)해야 한다.

자체에 전세 세입자 피해를 줄이기 위한 다각적인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당연히 전세보증금 반환보험제도 전반을 손질하고 법적·제도적 허점을 보완해야 함은 물론이다. 전세보증금과 선순위 채권을 합한 금액에 대해 집값의 80% 수준까지만 보증하도록 한도를 낮추는 것도 대책이 될 수 있다. 정부는 집값 산정 기준이 문제가 되자 지난해 11월 공시가격의 140%로 낮췄는데, 이것도 높다는 지적이 나오는 만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가액산정이 어려운 신축 빌라 등은 감정평가를 의무화하고, 감정평가 수수료는 공사가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무주택자들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전세금이 사기범의 먹잇감이 되거나 이들을 보호해야 할 보증제도가 악용당하는 사태는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무엇보다 집주인에 대한 정보를 세입자가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른바 ‘깜깜이 가액’ 신축 빌라 시세를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안심 전세’ 앱을 서둘러 출시하고, 세입자가 집주인의 담보 대출 현황과 세금 체납, 선 순위 임차인 정보 등을 보다 더 손쉽게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며, 세입자가 확정일자 부여에 관한 임대차 정보를 요청할 때 집주인이 이에 동의하도록 의무화하고 우선 변제받는 임차보증금 한도도 현실화하는 입법도 서둘러야 한다.[파이낸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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