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저축은행 임직원 등 200여명 영업정지 직전 수백억원 빼돌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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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금융이 막장에 떨어졌다. 사상 초유의 농협전산망 마비와 현대캐피탈 해킹 사태로 금융시스템의 근간인 전산망에 구멍이 뚫린 데 이어 저축은행 임직원이 영업정지 조치 직전에 자기 돈을 먼저 빼돌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졌다. 신뢰를 먹고 사는 금융기업이 지켜야 할 마지막 선마저 무너졌다.
25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 2월 17일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를 받기 직전인 15일과 16일 영업시간이 끝난 오후 4시 이후 각각 190억원과 185억원이 인출됐다. 금감원은 이중 상당 부분이 부산저축은행 임직원과 특수 관계인 200여명이 영업정지 조치를 미리 알고 돈을 빼간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회사 임직원들은 다른 어떤 직업보다도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그런 이들이 고객의 이익을 외면하고 제 잇속만 차린 것은 "침몰하는 여객선에서 승무원들이 승객들은 제쳐놓고 자신들 먼저 구명보트에 오른 격"이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금융업 종사자들의 모럴해저드는 제2금융권인 저축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작년 6월엔 경남은행 서울영업부 부장이 은행장 인감증명서를 도용하고 은행 서류와 인감을 위조해 부동산 대출 보증을 서면서 5000억원대의 금융사고를 냈다. 작년 초엔 외환은행 지점장이 고객 예금 등 683억원을 횡령했다가 금융당국에 적발됐다.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이번 전산망 마비 사태에 대해 "비상임이어서 업무를 잘 모르고 내가 한 것도 없으니까 책임질 것도 없다"며 책임 회피에 급급했다. 이런 모든 상황을 파악하고 위기를 사전에 차단해야 할 감독기관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를 넘긴 한국 금융이 이젠 내부에서 썩어들어가면서 무너지고 있다. 더 큰 위기가 오지 말란 법이 없다.
하성근 한국경제학회 회장(연세대 교수)은 "글로벌 위기를 빨리 탈출하는 과정에서 단기적인 이익에 집착하다 보니 금융회사들의 기초적인 시스템 운용이 소홀해졌다"면서 "1997년 imf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외부로부터의 충격이었다면 최근 막장드라마에 가까운 금융사고들은 금융시스템을 붕괴시킬 수도 있는 내부로부터의 위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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