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세계 주가 폭락, 성장궤도 하향의 서막인가’
LG경제연구원 ‘세계 주가 폭락, 성장궤도 하향의 서막인가’
  • 이창선 연구위원
  • 승인 2011.08.15 13: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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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먼 쇼크 이후 전 세계의 시선이 다시 미국에 집중되고 있다. 미국의 국가채무 상한 확대 과정에서의 재정긴축 방안 발표와 뒤따른 신용등급 하락으로 미국의 주가가 급락하고 전 세계의 주식시장도 동반 급락했다. 미국의 국가채무한도 협상이 난항을 겪던 지난 7월 중순 이후 미국과 우리나라 등 각국 주가는 거의 20% 가까운 하락률을 보이고 있다. 주가지수의 변동성을 나타내는 공포지수(VIX)는 그동안 20 전후에서 움직이다가 최근 급격한 상승세로 전환되어 한때 50 가까운 수준까지 급등한 바 있다.

유럽 재정위기가 아직 해결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마저 더블딥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 세계경제의 향후 진로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최근 미국을 중심으로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진 원인을 진단하고 향후 전망, 우리경제와의 관련성 등을 살펴본다.

급락 이전 주가는 세계경제 4% 중반 고성장 복귀 가능성을 반영

최근 세계 각국의 동시적인 주가 급락은 이전의 주가가 과대평가되었다는 판단에 근거한 것이다. 리먼 쇼크 이후 급락했던 각국의 종합주가지수는 이후의 빠른 회복 과정에서 반등해 대부분 금융위기 이전의 고점에 근접하거나 넘어선 바 있다. 주가지수는 미래 수익의 현재가치를 반영하고 미래 수익은 성장속도와 유사하게 증가하기 때문에 주가지수가 과거 수준을 회복했다는 것은 결국 경제가 리먼쇼크 이전, 즉 2000년대 중반 고성장기와 가까운 성장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 지난해 세계경제 성장률은 5.1%에 달해 초호황기인 2003~2007년의 5년간 평균 성장률 4.7%보다 높았다. 올해 중동사태나 일본대지진 등 충격에도 불구하고 IMF 등 주요전망기관들은 올해 세계경제가 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고 내년 이후에는 성장세가 더 높아질 것이라는 전망치를 내놓은 바 있다.

이는 금융위기를 초래했던 부채문제를 세계경제가 큰 부작용 없이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반영한 것이다. 선진국 정부가 민간부문의 부채를 떠안은 상황에서 경기부양을 통해 민간경제를 회복시키면 세수가 늘어나면서 고성장과 함께 정부부채 부담이 장기적으로 축소되는 상황을 전제한 것이다. 리먼 사태의 진원지인 미국이 고실업으로 늘어난 고용확대 여력을 바탕으로 과거의 성장세를 회복한다면 세계경제가 활력을 찾으면서 유럽 재정위기 문제도 완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IMF는 6월 전망에서 미국의 성장률이 올해와 내년 각각 2.5%와 2.7%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해 2000년대 평균 성장률을 회복할 것으로 보았다.

정부에 대한 신뢰도 급격히 저하

그러나 7월말의 경제성장률 발표와 미국의 채무상한 확대 과정에서 발생한 충격들은 이와 같은 긍정적 시나리오가 달성되기 어렵다는 회의감을 경제주체들에게 불러일으킨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경기의 향방을 조절할 수 있다고 믿었던 미국 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가 급격하게 줄어든 것으로 판단된다. 수정된 경제성장률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미국의 경제성장률은 1.5%p 하향조정 되었으며 이에 따라 상반기 미국경제 성장률은 0.8%에 머물렀다. 각종 경기부양책과 양적 완화 정책에도 불구하고 성장활력이 그다지 높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중장기 재정긴축 방안은 경기부양을 위한 재정정책 수단을 현저하게 제한시키게 된다. 더욱이 미국의 신용등급 하락은 기축통화국인 미국도 국가부채가 계속 늘어날 경우 신뢰에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을 실감하게 하였다. 결국 정부부문이 경기하강을 막는 버팀목 역할을 하지 못할 수 있고 더 나아가 부채규모의 확대를 억제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중장기적으로 수요를 축소시키는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이 부각된 것으로 보인다. 이는 미국경제의 장기적인 성장세를 떨어뜨리고 전 세계적인 성장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

미국이 세계GDP 즉 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해서 줄어들고 있지만 소비부문에서는 여전히 전 세계 소비의 약 1/4를 차지할 정도로 중요하다. 개도국이 투자 중심으로 고성장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미래에 소비할 수 있는 생산 능력을 높이는 것이기 때문에 미국의 소비가 둔화될 경우 이는 세계교역과 투자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세계경제 성장세를 떨어뜨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결국 세계 경제가 4%대의 성장에 미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각국의 주가지수가 새로운 예상 성장경로에 부합하는 수준으로 빠르게 조정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재정지출 축소, 경제외적 충격으로 상반기 미국경기 둔화

미국경기는 지난해 하반기 이후 활력이 뚜렷하게 약화되는 모습을 보여 왔다. 2010년 상반기까지만 하더라도 3%대 후반의 고성장세가 지속되었는데 이는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정부지출 확대가 소비와 투자 증대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재정정책의 효과가 줄어들면서 2010년 하반기 이후 미국 성장세는 다시 둔화 추세를 보였다. 지난해 말 이후 2차 양적 완화가 시행되었지만 올해 들어서도 미국의 성장회복은 빠르지 않았다. 위기극복을 위해 크게 늘렸던 재정지출이 정상화되는 과정에서 정부부문에서의 이전지출이 줄어들어 가계소득의 감소 요인으로 작용했다. 특히 최장 99주로 지급기한이 되어 있는 고용보험이 점차적으로 만료되면서 실업수당 지급이 크게 줄어드는 추세를 보였다. 지방재정 악화 등에 따른 공무원 임금 지급액도 둔화되면서 정부소비는 올 들어 성장을 떨어뜨리는 역할을 했다. 정부로부터 의 이전지출과 공무원 임금 지급 등 정부부문에서 창출된 민간소득은 실질기준으로 올 상반기 중 전기비 1.6%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함께 곡물가격 상승과 고유가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일본 대지진에 따른 공급망 붕괴 등 경제외적인 충격도 경기회복을 어렵게 한 주요 요인이 되었다. 올 2분기 자동차 소비와 관련된 GDP 감소분은 0.65%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전반적인 원자재 가격 상승의 효과까지 감안할 때 외부적 충격에 따른 효과가 자생적인 경제 회복의 모멘텀을 상당부분 약화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제 기대심리 저하...상승모멘텀 부재

하반기 미국경제의 긍정적인 측면은 외부적 충격의 효과가 줄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2분기 이후 국제 농산물 가격의 상승세가 멈추고 유가도 5월 이후 정점을 지나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에 따른 인플레이션 압력은 일단 한풀 꺾인 상태이다. 6월 미국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전월 대비 하락했다. 일본대지진에 따른 공급망 교란효과도 줄어들 전망이다. 일본의 제조업 부문 생산은 3분기 중 지진 이전 수준을 회복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수송기계 분야의 공급차질도 9월까지는 대부분 해소될 것으로 보고 있다. 만약 미국의 채무상한 확대와 관련된 일련의 충격이 없었다면 미국경제는 올 하반기에 완만하게나마 회복세를 보였을 가능성이 크다. 추후 발표될 경제지표들이 보내는 신호에 따라 경제상황에 대한 기대가 등락하는 불안정한 모습이 지속될 것이다. 소비나 매출, 고용 등과 관련된 7월 이후의 지표들이 예상보다 좋게 나올 경우 불안심리가 완화될 수도 있다.

그러나 신뢰위기가 부각된 미국경제는 어느 정도 전망의 하향조정이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중요한 점은 경제주체들의 기대심리가 무너졌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이후 기대심리는 미국의 실물경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 되어 왔다. 금융위기 이전에는 소비자 기대심리와 경기가 동행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는 기대심리 변화에 따라 수요가 바뀌었다기보다는 경기 변화가 소비심리에 영향을 주는 효과가 컸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심리의 변화는 즉각적으로 발생하지만 이것이 경제활동에서의 수요 변화로 이어지는 데는 시차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반면 금융 위기 이후에는 소비자 기대심리가 경기에 선행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미국의 대표적인 소비자 심리지수인 미시간 소비자 기대지수는 경제성장률에 대해 1~2분기 선행해서 움직이는 모습이 나타난다. 소비심리가 경기를 선도하게 된 것은 대외적 수요, 정책적 수요 등 외생적 부문이 수요를 이끌어갈 여지가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경기가 위축된 상황에서는 수출 등 대외수요 확대를 통한 수요반등이 어렵다. 소비가 회복되지 않는 한 투자심리도 살아나기 어렵다. 위기 이후의 급격한 경기침체로 9% 이상의 높은 실업률이 이어지는 등 경제의 공급여력이 확대되어 있는 상황에서 수요확대를 위해서는 자발적인 소비의 확대가 필수적이다. 기업들은 비용 절감 등을 통한 수익증가에도 불구하고 경기의 본격적인 회복을 확인하려고 하고 있다. 미국기업들은 소비회복이 일정 기간 이어지는 것을 확인한 후 투자에 나서고 소비가 둔화되면 곧바로 투자증가세도 둔화되는 조심스런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고유가 등 외부적 충격에 의해 소비자 기대지수가 올 초반 이후 이미 하향추세로 돌아섰으며 하반기 이러한 외부적 충격이 완화되더라도 정부의 역할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면서 기대의 하락세는 더욱 가속될 전망이다. 향후 10년간 2조 4천억 달러 규모의 재정긴축은 직접적으로 성장을 떨어뜨리는 요인으로도 작용하겠지만 경기 기대심리를 제약해 부진을 장기화시킬 우려가 있다.

경기부양을 위한 미 정부의 정책 수단 제한

자생적인 경기회복 모멘텀이 약화된 상황에서 기대해 볼 부분은 미국 정부의 경기부양 대책일 것이다. 재정면에서 운신의 폭이 좁은 가운데서도 가능한 경기부양 조치로는 지난해 말 1년간 연장되었던 장기실업자에 대한 실업급여 지급을 다시 연장하거나, 내년 말 만료되는 감세 조치를 연장되는 방안이 현재 거론된다. 그러나 국가신뢰도 회복을 위해 재정긴축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이는 정치적으로 합의가 쉽지 않은 데다, 연장이 되더라도 경기의 악화를 완화시키는 정도의 미미한 효과에 그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재정지출 확대가 어려운 상황에서 통화정책에 대한 의존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미 정책금리가 제로인 상황이어서 활용 가능한 정책수단이 제한되고 있다. 지난 8월 9일 개최된 FOMC 회의에서 미연준은 0~0.25%인 연방기금금리를 2013년 중반까지 유지하기로 명시적으로 밝힌 바 있다. 이전까지 상당 기간(extended period) 제로금리를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유지해 온 것에 비하면, 저금리 기조를 강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효과의 영향으로 FOMC 회의 이후 장기금리가 하락세를 보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밖에 미연준이 추가적으로 사용가능한 수단으로 단기채권 매각 및 장기채권 매입(operation twist), 현재 0.25%인 초과지준금에 대한 금리 인하, 추가적인 양적 완화가 동원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역시 양적 완화가 가장 큰 효과를 발휘할 수단이다. 양적 완화는 장기금리를 낮추는 한편, 주가 상승과 달러 약세를 유발시켜 성장 및 고용을 늘리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3차 양적 완화, 시행가능성과 효과 모두 불투명

그러나 FRB 내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더라도, 6,000억 달러 규모의 2차 양적 완화가 장기금리를 낮추는 효과는 0.2~0.3% 포인트에 불과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양적완화가 가계나 기업에 대한 대출을 늘리는 직접적인 효과는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난다. 지난 2차 양적완화 정책에 의해 연준의 국채 매입으로 풀려 나간 본원통화(Monetary Base)의 대부분은 초과 지준 형태로 미연준에 다시 돌아온 것으로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3차 양적 완화(QE3) 정책을 시행하는 데 넘어야 할 제약들이 많다. 인플레이션 우려로 양적 완화 정책에 대해 반대하는 목소리가 연준 내에서 2차 때 보다 더욱 높아져 있는 상황이다. 지난해 2차 양적 완화 당시 FOMC 위원 중 한 사람만이 반대에 나섰으나, FOMC 위원 구성의 변화로 인해 이번 8월 제로금리 유지를 장기화하기로 한 FOMC의 결정에는 세 사람이 반대표를 던졌다.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이 2차 양적 완화가 거론되던 지난해 8월 당시 1.1%에 불과하여 디플레이션까지 우려되는 상황이었음에 비해 올해 6월 중에는 3.6%로 높아져 있다는 점이 반대론자를 설득하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지난 7월 의회 청문회에서 버냉키 미 연준 의장 역시 경제가 추가 악화되고 디플레이션 위협이 돌아올 때 추가 부양책을 검토할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하면 3차 양적 완화는 주가급락세가 지속되는 등 금융불안이 심화되면서 경제상황 악화 우려가 증폭되는 경우에나 가능하고 그 규모도 2차 때보다 커지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양적 완화를 시행하더라도 이에 따른 후폭풍을 무시할 수는 없다. 지난 2차 양적 완화가 달러화 약세를 유발하여 자국통화의 강세로 이어질 것으로 염려한 신흥국들의 반발이 미-중 간 환율문제와 겹치면서 각국간 첨예한 환율 갈등을 초래한 바 있다. 3차 양적 완화는 또 다시 신흥국들의 반발을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자칫 세계경제의 침체 방지를 위한 국제공조가 어려워지면서 국제금융 불안이 확산되는 사태가 재연될 수 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할 때 향후 미국경제 성장세는 예상보다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주요 IB 들은 미국의 성장률 전망을 올해 1%대로 낮추고 내년에도 2%대로 하향조정 하고 있다. 이러한 전망의 조정은 주식시장 급락이 발생하기 이전에 제시된 것이어서 실제 성장률은 이보다 더 낮게 나타날 수도 있다. 이 경우 미국은 9% 이상의 고실업이 지속되면서 수요부족의 악순환이 발생하게 될 것이다. 성장부진이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도 지속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와 가계, 금융기관의 디레버리지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경기반등의 모멘텀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유럽의 재정 불안 해결 난망

최근의 주가 급락은 그 자체로 지난 금융위기 시기와 같이 금융시스템을 마비시켜 실물경기를 급락시키는 형태로 진행될 가능성은 크지 않을 것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는 주택가격이 급락하면서 많은 가계와 금융기관의 파산을 야기했지만 주가 급락은 금융시스템의 불안을 야기하는 정도가 이에 비해 크게 낮다. TED 스프레드 등의 금융위기 지수 등이 아직 안정적인 것은 이를 반영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유럽 금융위기라는 중대한 리스크가 공존하고 있다.

앞서 위기가 시작되었던 그리스는 2차 구제금융을 통해 다시 한 고비를 넘겼다고 하나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이 자체적인 자금조달이 점차 어려워지면서 추가 구제금융이 필요해질 수 있다. 이들 세 나라는 그래도 유로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다 합쳐서 6%에 불과하여 유로존 정책당국이 통제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유로존 내 경제 비중이 각각 12%, 17%에 달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의 재정위기 불안감이 점차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한 때 6%대로 상승했던 양국의 10년 만기 국채수익률이 유럽중앙은행(ECB)의 국채 매입으로 다시 5%대로 하락하며 재정위기 우려감이 완화되는 듯하다. 그러나 양국의 경제성장률이 1% 미만에 그치고 있어 세수 확대가 여의치 않은 데다, 계획된 재정긴축 프로그램이 제대로 이행되지 못할 경우 재정건전화에 대한 신뢰가 낮아지면서 금리가 재차 급등할 수 있다.

두 나라가 구제금융이 필요한 상황에 대한 유로 차원의 대비가 아직 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4,400억 유로의 재정안정기금만으로 두 나라의 향후 수년간 만기도래 국채금액을 감당하기에는 부족하다. 재정안정기금은 유로존 내 국가들의 보증으로 조성되는데, 구제금융을 받은 국가들은 여기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유로존 내 경제 규모가 큰 편에 속하는 스페인과 이탈리아까지 구제금융 대열에 나선다면 재정안정기금 규모는 당초 규모에 턱없이 못 미치게 된다. 이 때문에 재정안정기금의 확충 문제가 거론되고 있으나 가장 큰 부담을 지게 될 독일 등의 반발로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더욱이 최근에는 기존의 재정취약국외에도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 이후 프랑스의 신용부도스왑(CDS) 프리미엄이 급등하는 등 신용등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S&P 등 신용평가회사들이 프랑스의 AAA 지위를 유지했지만, 미국 못지않게 높은 국가부채 비율과 재정취약국 국채를 대거 보유한 프랑스 금융기관들의 손실 가능성 등을 고려할 때 신용등급 강등 우려가 향후에도 계속 제기될 수 있다.

유럽 재정위기와 미국 더블딥 우려는 모두 선진국 정부의 국가부채 문제 해결 능력에 대한 신뢰 정도에 기반하는 데다 양 지역 간 금융연계를 통해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이 중 하나의 리스크가 부각될 경우 다른 부문으로 파급되면서 상호 증폭 과정이 발생할 수 있다. 근본적인 문제 해결 방안이 단기간 내 제시되기 어렵기 때문에 미국과 유럽의 리스크는 번갈아 가며, 혹은 동시에 대두되면서 장기적인 세계경제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다.

대외 충격 흡수능력 제고

충격이 미국에서 발생했지만 종합주가지수 하락폭은 우리나라가 주요국 중에서 높은 편에 속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식시장으로부터 외국인투자자 들이 대거 이탈했기 때문이다. 다만 주가는 급락했지만 채권에는 외국인 투자자금의 유입이 여전히 이어지면서 채권수익률은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아직 외국인 투자자금의 대거 이탈에 따른 외환유동성 악화 현상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TED 스프레드의 안정에서 보듯이 국제금융시장에서 유동성 경색 문제가 크게 불거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주가하락이 직접적으로 가계나 금융기관 부실로 이어지는 경로가 크지 않아 금융위기 시와 같은 금융기관 간 신용경색 현상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시기에 비해 외환부문의 건전성도 개선되었다. 외국인의 주식과 채권투자자금이 크게 늘어난 반면, 단기외채는 리먼사태 이전인 2008년 6월말의 1,768억 달러 수준에서 올해 1분기 말 현재 1467억 달러 수준으로 줄어들었다. 총외채에서 단기외채가 차지하는 비율도 48.2%에서 38.4%로 낮아졌다. 그동안 정책당국이 은행의 선물환포지션한도 규제 등을 통해 단기외채 축소를 유도한 효과 등에 기인한다. 외환보유액은 2,581억 달러에서 3,110억 달러로 확대되면서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도 크게 낮아졌다.

그러나 유럽 재정위기가 확대될 경우 유럽계 금융기관을 중심으로 급격한 자금회수 가능성은 여전히 존재한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기관들이 유럽계 금융기관들로부터 차입한 비중은 6월말 기준으로 36% 달하고 역외시장에서 간접 차입금까지 감안하면 그 비중이 더욱 높아지게 된다. 유럽 재정위기 등이 악화되거나 국제금융 불안이 확산될 경우 유럽 금융기관들의 달러화 자금에 대한 자금경색이 발생할 수 있다. 이 경우 국내금융기관에 대한 유럽 금융기관들의 자금 회수로 이어질 수 있다. 실제로 지난해 이후 국제금융시장이 불안해지는 시기마다 나타난 외국인투자자금의 이탈은 유럽계 금융기관에 의한 것으로 나타난다.

단기외채 비율이 낮아졌지만 주요 신흥국에 비해서는 여전히 높은 편이다. 지난 글로벌 위기 당시에도 단기외채비율이나 외환보유액 대비 단기외채 비율인 높은 나라일수록 통화절하율이 컸던 바 있다. 아직도 우리 금융시장은 국제금융 불안이 악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의 이탈에 의한 국내금융시장의 혼란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경기 침체 시 우리 주력제품 수요 더 크게 위축

실물경제 측면에서도 부정적인 영향이 점차 가시화될 것이다. 주가의 하락은 자산효과를 통해 소비를 위축시키고 경제불안 심리를 높여 기업 투자활동도 예상보다 둔화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나 보다 큰 영향은 대외부문에서 나타나게 될 것이다. 미국이 우리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한 하락 추세를 보여 1990년 30% 수준에서 지난해 10% 내외로 줄어들었다. 그러나 미국의 수요는 세계교역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미국의 수입 감소와 세계 수입 변화의 상관관계는 0.69로 상당히 높게 나타난다.

세계경기 둔화시기 중에는 내구재 교역이 더욱 크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인다. 2008~2009년의 세계경기 침체기간 중 평균적인 교역증가율은 -6.5%를 기록했으나 전자제품, 자동차 등 내구재부문 교역은 -13.9%로 훨씬 크게 위축된 바 있다. 내구재 수요 둔화는 관련된 전자부품 등의 수요 둔화로 이어져 이들 부문의 비중이 큰 우리나라의 수출에 더 크게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특히 반도체나 LCD 등 공급과잉 우려가 큰 부문은 수요가 둔화될 경우 가격하락이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수출경기가 급격하게 위축될 우려도 있다.

우리나라는 금융위기 이후 내수부문의 성장이 지연되는 가운데 수출이 성장을 주도해 왔다. 세계경기 둔화로 수출의 활력이 낮아질 경우 국내경기도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경기의 조정국면이 상당기간 지속되거나 다시 하강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려우며 연간 성장률도 당초 예상되었던 4%대를 달성하지 못할 우려가 있다.

외화유동성 악화 가능성에 대비해야

최근 미국의 더블딥 우려, 유럽재정 불안 지속, 각국 주가의 동시 폭락에 의한 국제금융 불안 확산은 그동안 세계경제의 향후 전망이 다소 낙관적인 기대에 기반했다는 점을 드러내 주는 것이라고 보여 진다.

미래 경기에 대한 불안이 확산되고 있으나, 정부부채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이나 유럽 모두 정책적 대응 수단이 여의치도 않다. 통화완화 정책이 시행된다고 해도 이는 정책수단이 제한된 가운데 사용되는 고육지책일 뿐 민간부문의 소비와 투자 확대의 불을 지피기에는 부족하다.

정책효과가 민간의 소비와 투자 심리를 살리기에 부족하다면 향후 빠른 경기회복은 어려운 상황으로 보인다. 주요국의 신용등급 강등이 이어지는 등의 충격이 금융불안으로 이어져 경기가 급격히 위축되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다.

글로벌 경제상황이 악화되면서 국내적으로도 외화유동성 악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당시에 비해서는 외환건전성이 크게 개선된 상태여서 국제금융 상황이 불안해질 때마다 제기되는 외화유동성 경색 우려는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향후 국제금융불안이 더욱 악화될 경우 외국인 투자자금이 주식, 채권, 외화차입금으로부터 대거 이탈할 수 있어 외환유동성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 때 크게 효과를 보았던 외환스왑 라인의 개설을 포함한 비상시 외화유동성 확보에 힘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당장은 외환유동성 문제가 불거질 우려가 있지만, 최근의 국제금융 불안이 가라앉고 나면 중장기적으로는 미국의 통화완화정책 장기화에 의한 해외자본 유입 급증이 염려된다. 그동안 취해 왔던 자본유입 규제 조치의 강화를 포함하여 과도한 자본유입과 뒤이은 대규모 자본유출로 금융 혼란이 발생할 가능성에도 대비해야 한다.

거시정책면에서는 아직 물가불안이 지속되고 있는 만큼 그 동안의 긴축기조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향후 세계경기 둔화가 가속될 경우에는 국제유가 하락과 수요압력 둔화로 인플레이션 우려가 크게 완화될 것이다. 세계경기 불안 지속시 경기에 중점을 두는 정책 전환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LG경제연구원 이창선 연구위원 · 이근태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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