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엔고 장기화로 수출경쟁전선 아시아로 확대’
LG경제연구원 ‘엔고 장기화로 수출경쟁전선 아시아로 확대’
  •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 승인 2011.12.13 12: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0년대 중반의 엔저 현상이 2007년 엔고로 반전된 후 4년 이상 경과되고 있다. 이번 엔고는 과거 엔고에 비해 상대적으로 장기간 지속되고 있으며, 명목 기준으로는 1달러당 70엔대에 진입하여, 사상최고치를 갱신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엔고는 그 동안의 일본 물가의 하락을 고려하면 실질 기준으로는 1990년대 중반의 초엔고 수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일본 물가가 하락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던 실질적 초엔저가 시정되면서 엔화의 평가절상률이 확대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엔고의 배경은 장기화되고 있는 글로벌 금융 불안속에서 엔화가 안전통화로 인식되는 데 있다. 일본 물가상승률이 각국에 비해 낮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엔고의 배경인 구미 금융재정 불안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당분간 엔고현상이 퇴조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이러한 가운데 과거 비정상적인 엔저시기에 일본 내에서 설비확대에 나섰던 일본기업의 경우 설비과잉으로 엔고의 충격을 크게 받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산업별로는 철강, 자동차, 디스플레이 등에서 엔고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부품 및 소재 산업 등 일본의 기반산업의 경우도 엔고에 적응하기 위해 생산거점의 아시아 이전을 확대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으며, 이것이 중장기적으로 아시아 역내 분업을 확대시킬 전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세계경제의 부진 과정에서 나타난 엔고가 과거와 같은 큰 반사이익을 가져다 주지는 않고 있다. 그러나 일본 수출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하락, 우리나라 수출상품의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자동차 등이 상대적으로 대일경쟁력이 향상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는데 이는 산업별 원/엔 구매력 환율로 봐도 뚜렷하다.

엔고가 당분간 지속된다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머지않아 일본기업의 아시아 생산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한 일본기업과 아시아기업들의 더 거센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의 엔고를 누리기 보다 미래 우리기업의 경쟁력 기반을 다질 수 있는 길지 않은 기회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세계경제 불안 속에서 장기화되는 엔고 현상

초엔고인가

올해 7월 이후 1달러당 70엔대 후반의 엔고가 지속되고 있다. 이번 엔고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금융시장 불안이 불거진 2007년 6월 이후 나타나기 시작해, 2008년 리먼 브라더스의 파산과 유럽 및 미국의 재정위기를 거치며 심화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러한 엔고현상은 1차적으로는 엔 캐리 트레이드의 청산과 함께 엔화가 안전자산으로 자리잡은 데 기인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경제가 장기부진 국면에서 여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에서 비합리적이라는 시각도 적지 않다.

이번 엔고는 이미 4년 6개월 동안 진행되고 있으며, 과거 일본경제 및 일본기업이 세계경제에서 지배적인 위치를 넘보던 1980년대 후반보다 길어지고 있다. 심지어는 1990년대 초반의 초엔고 시기를 능가할 가능성도 있다. 이러한 엔고 현상에 대해 일본 정부는 기초적인 경제여건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이라는 입장을 보여 왔으며 금년 들어서는 적극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엔화의 약세 유도에 나서고 있다. 지난 7월 28일에서 8월 29일 사이에 4조 5,129억엔, 10월 28일에서 11월 28일의 1개월에 7조 7,000억엔을 투입하여 대규모 시장 개입을 단행했다.

반대로 미국, 유럽 등 주요선진국들은 현재의 엔화 환율이 일본경제의 펀더멘탈에서 크게 벗어난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엔고완화를 위한 공동 시장개입 또한 지난 3월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 당시의 경우처럼 일시적인 조치에만 국한하고 있다. 오히려 지난 10월에 파리에서 개최된 G20 정상회의에서는 유럽 등이 일본의 자금협력을 기대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외환시장 개입에 대해서는 견제하는 자세를 드러냈다.

현재의 달러당 70엔대의 엔화환율은 명목환율 기준으로는 사상 최고 수준의 엔고에 해당한다. 하지만 그 동안 일본의 물가 하락세와 미국 등 각국의 물가수준 변화를 고려한 구매력평가환율을 기준으로 보면, 지금의 달러당 70엔대 후반도 극심한 초(超)엔고라고 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동안 일본의 물가상승률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훨씬 낮았기 때문이다. 특히 장기불황 시기 동안에는 물가가 하락한 국면도 나타났다. 즉 다른 나라들의 입장에서 자국 수출상품의 대일 가격경쟁력을 유지한다는 관점에서는 그 만큼 엔화의 강세가 불가피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실제로는 지난 2000년대 중반까지 달러당 120엔을 상회하는 엔화약세 국면이 지속되었고, 이 때문에 오히려 일본 제품의 수출가격 경쟁력이 비정상적으로 높아지는 상황이 전개되었다.

따라서 지금의 엔화강세 국면은 이러한 비정상적인 엔저가 시정되는 과정에서 명목 엔화환율이 절상됨으로써 그 동안 누적되어 온 명목환율과 구매력평가환율간의 불균형이 해소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의 수출 물가를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환율은 달러당 57엔 정도에 달하고 있으며, 소비자물가를 기준으로 한 구매력평가환율은 달러당 75엔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다. 과거 극심한 엔고 시기에 명목 환율이 수출물가 구매력평가환율에 근접했던 것을 고려하면 최근의 1달러당 70엔대의 엔고는 과거의 엔고기와 비교해 엔고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이다.

엔고로 인해 일본의 수출이 전반적으로 감소하고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본의 수출은 동일본대지진의 여파로 지난 4월에는 전년동월 대비 12.4% 감소했지만 8월에는 2.8%, 9월에도 2.3%의 증가흐름으로 반전했다. 10월에는 3개월 만에 다시 감소했으나 이는 엔고만의 영향 이라기보다도 유럽 재정위기 등의 해외수요 부진 요인도 함께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엔화, 안전통화로 인식되면서 강세 기조 지속

과거 엔고 시기와 비교할 때, 이번 엔고 기간이 이미 상당히 지속돼 왔고, 일본정부도 어느 정도의 국제마찰을 감수하면서도 계속 외환시장에 개입할 의지를 보이고 있지만 구매력평가환율 수준과 일본의 국내외 경제여건 등을 감안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엔화가 큰 폭의 약세를 나타낼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2012년 일본경제는 동일본대지진의 복구수요에 힘입어서 주요 선진국 중에서는 유일하게 뚜렷한 성장 확대 기조가 예상되는 데다, 최근 엔고의 배경이 되고 있는 구미 각국의 재정·금융 불안은 장기화 추세가 예상된다. 유로존 부채문제 등을 둘러싸고 구미의 재정·금융 위기가 심화될 경우에는 엔화환율이 달러당 60엔대 진입을 시험할 정도로 엔고압력이 확대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장기적이고 꾸준한 이번 엔고의 배경은 글로벌 금융 불안의 만성화 속에서 엔화가 안전통화로 자리잡고 있다는 데 있다. 일본은 세계최대의 대외순채권국이기 때문에 글로벌 자금 흐름이 원활해지기 위해서는 일본 자금이 해외로 순유출 되어야 한다. 그러나 금년에 발생한 동일본대지진이나 유럽재정위기가 고조될 때와 같이 일본에서 해외로의 자금 유출이 감소하게 되거나 일본으로의 자금 회수가 발생하게 되면 엔화가 강세를 보이게 된다. 이 경우 해외의 채무자들은 외화자산을 매각하고 엔화를 조달해 엔화 채무를 서둘러서 상환하려는 경향이 강해지기 때문에 엔고를 더욱 가속화시킬 유인도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미국도 일본과 같은 제로금리 대열에 들면서 캐리 트레이드 통화로 부상, 엔 캐리 트레이드의 환류(還流)에 따른 엔고압력 자체는 약화된 측면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국제수지 가운데 자본계정을 통해 나타나는 자금유출 규모의 축소 및 순유입 전환 움직임은 일본의 대외투자 위축으로 인한 엔화강세가 앞으로도 상당기간 지속될 수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2011년 1~9월의 경우 일본의 대외증권 투자수지(외국의 대일투자 - 일본의 대외투자)는 9.2조엔의 흑자를 기록하는 등 일본의 대외증권 투자가 전년도와 비교해서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신용등급이 높은 선진국 정부 등의 기관들이 발행하는 1년 미만의 단기 유가증권(money market instruments)의 대외수지 흑자가 금년 1~9월에는 전년동기비로 118.4% 증가한 14조 9,788억엔을 기록했다. 해외 단기 금융 상품에 대한 일본 투자가들의 투자가 상대적으로 크게 위축되었음을 의미한다.

반면 경상거래 측면에서는 흑자기조가 약화되었다. 향후 일본의 무역 및 서비스수지가 크게 흑자를 거두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엔고의 지속으로 인해 일본 수출산업의 가격경쟁력이 약화되고 있고 동일본대지진으로 인한 원자력발전의 폐기로 향후 화석연료에 대한 수입수요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 점은 자본거래 측면에서 지속되고 있는 엔고압력을 완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경상수지는 기존 해외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 등 소득수지의 막대한 흑자로 인해 당분간 흑자 기조를 지속할 가능성이 높다. 금년 1~9월의 경우 소득수지의 흑자가 11.3조엔에 달해 무역·서비스 수지가 1.9조엔의 적자를 보여도 경상수지가 8.5조엔의 흑자를 기록하는 데 큰 힘으로 작용했다. 금년도에 세계를 놀라게 한 거대한 지진과 쓰나미의 피해를 입은 상황에서도, 오히려 일본이 다른 나라들을 지원할 만큼 국제수지가 안정적이라는 점은 안전자산으로서의 엔화의 입지가 쉽사리 약화되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재정측면에서는 중장기적으로 엔화약세 요인이 두드러지지만, 단기적으로는 안정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고 있다. 지난 해 일본 정부의 누적채무는 GDP의 200%를 돌파하는 등 유럽 각국에 비해 재정사정이 나쁜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10년 만기 국채의 유통수익률이 1%대 초반에 그쳐 주요선진국 중에서 최저 수준이며, 실질적으로도 높은 신용력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신용평가기관으로부터 더블에이마이너스(AA- ; S&P 기준, 네 번째 우수등급) 등급을 받고 있는 일본의 국채금리는 일본보다 높은 최상위 등급, 즉 트리플에이(AAA)를 받고 있는 다른 선진 각국의 국채보다도 낮은 수준인데, 이는 일본국채의 90% 이상이 일본 내에서 소화되고 또한 경상수지의 흑자구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이는 등 일본의 초과저축 상황이 장기간 지속돼 오고 있기 때문이다.

향후 중장기적으로는 인구구조의 고령화에 따라 일본가계의 저축률이 하락할 가능성이 높지만, 그 대신 기업저축은 오히려 확대되는 모습이어서, 일본경제 전체적으로는 민간의 초과저축 상태가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장기적으로 일본사회의 고령화 정도에 걸맞는 재정개혁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국가부채 규모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가까운 시기에 유럽과 같은 재정위기를 맞게 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는 점이 엔고의 배경이 되고 있다.

물론, 통화의 가치는 물가 수준, 국제수지, 재정건전성 등에 의해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며, 해당 국가의 경제성장, 자산 수익률 등이 중요한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러한 측면에서 경제가 장기간 침체되고 있는 일본의 엔화가 계속 강세를 보인다는 것은 일본경제의 펀더멘탈과는 부합하지 않는 측면이 강하다. 어떻게 보면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의 명목 환율이 구매력평가환율과 괴리된 현상 또한 일본경제의 낮은 성장률과 그에 따른 관련 자산의 낮은 기대수익률이 일부 반영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미국의 금융위기와 유럽의 재정위기 이후 구미 각국의 경제가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에 일본경제 부진으로 인한 엔화 약세 압력이 상대적으로 약화됨으로써 명목 엔화환율이 구매력평가 환율 수준으로 회귀하는 과정에 있다고 할 수 있다.

구미 각국의 재정 및 금융을 포함한 경제상황의 급격한 호전, 일본의 재정파탄 등 두가지 경로가 있는 데 이들이 수년 내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거의 희박하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현재의 엔고기조는 당분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할 수 있다.

엔고가 일본 산업에 미치는 영향

2000년대 초반 설비확장한 기업들, 설비과잉으로 고전

단시일 내 엔저로의 전환을 기대하기 힘들어지자, 일본기업들에게서도 2000년대 중반에 형성되었던 엔화약세에 대한 기대가 상당부분 후퇴하고, 반대로 달러당 70엔대의 엔고가 상당 기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을 바꾸면서 기업활동에 임하는 움직임이 점차 가시화되고 있다. 올해 초만 하더라도 일본기업들은 달러당 90엔대의 엔화환율을 기준으로 사업계획을 수립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지난 7월 말에는 연 평균 환율에 대한 전망치가 달러당 80엔대로 하향 조정되었으며, 지난 11월에 이르러서는 달러당 75~79엔으로 보는 상장 기업이 90%에 달했다. 이는 일본기업들이 2000년대 중반까지의 초엔저기에 전개했던 기업 전략을 수정해야 할 필요성을 인식하면서 엔고의 장기화를 기업경영에 있어 중장기적인 전제조건으로서 받아들이기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2000년대 중반, 실질환율 기준으로 1980년대 수준까지 엔화가치가 하락하자, 부가가치가 낮은 부문도 수출가격경쟁력의 일시적 상승에 힘입어 일본 내에서 생산설비를 과도하게 확장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히토츠바시대학의 사이토 마코토 교수는 2002~2007년의 초엔저 기간 중에 일본기업들이 이러한 비합리적 엔저를 영원하리라고 착각하고 일본에서 쓸데없이 설비를 확장하여 경제적 풍요를 낭비했다는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일본 테이코쿠 데이터뱅크(TDB)의 8월 조사에 따르면 조사 대상 기업 1만 1,070사 중 엔고에 따른 악영향을 우려한 기업은 3,927개사, 35.5%에 달했다.

산업별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산업별 구매력평가환율을 계산해 명목환율과의 격차를 살펴보았다. 그 동안의 미국, 일본 산업간 물가상승률 격차를 고려한 산업별 구매력평가 환율이 명목환율보다 약세, 즉 높은 수준을 나타내면 그만큼 해당 일본산업이 엔고로 타격을 받는다고 할 수 있다. 철강, 자동차를 포함한 수송기계 등이 엔고의 부정적 영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으며, 전기전자, 화학 등의 영향은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 전자산업의 경우 해외생산이 자동차 산업에 비해 더 활발했기 때문에 엔고기에도 해외부품 조달을 통해 엔고로 인한 가격 상승효과를 억제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국제협력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전기전자 산업의 해외생산 비중(해외생산/일본본국생산+해외생산)은 2011년 기준으로 49%에 달해, 자동차의 35.9%를 앞서고 있다. 실제로 소니의 경우 이번 2011 회계연도에는 미국 달러화에 대한 엔화 환율의 변동에도 수익에 영향을 받지 않는 경영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전자 산업 중에서도 비가격 경쟁력이 강한 부품 관련 분야의 경우 상대적으로 양호하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일본에서 생산 규모를 크게 확대한 LCD, PDP 등의 디스플레이 분야는 엔고의 타격을 상대적으로 크게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파나소닉, 소니 등이 잇따라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면서 디스플레이 사업을 축소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하고 있는 중이다.

한편 자동차 산업의 경우 도요타 등이 동일본대지진의 영향까지 겹쳐 엔고로 인한 수익 악화에 고전하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자동차 업계의 경우도 디스플레이 산업과 같이 2000년대 중반의 초엔저기에 레저용 차량 등의 생산 능력을 확충했기 때문에 엔고에 따른 수출 부진이 과잉설비 부담과 함께 기업 수익 악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기업의 해외 투자 확대로 아시아 분업 확대

과거 엔고를 계기로 일본기업은 아시아 지역 등으로 해외투자를 확대했으며, 이러한 일본기업의 투자와 아시아 지역으로부터의 제품 및 부품 조달 확대로 인해 아시아 분업이 확대되는 패턴을 보여 왔다. 1990년대 중반의 엔고기에는 전자산업에서 브라운관 TV, 오디오 등을 비롯한 생산기반이 대거 동남아 등지로 이전되고 일본 내 공장의 생산 기능이 순식간에 소멸되는 패턴을 보이기도 했다.

2000년대 중반의 경우 초엔저 현상으로 일본기업의 해외투자는 상대적으로 부진을 보였다. 제조업 일본 대기업의 해외투자/일본 국내투자 비율은 2005년의 54.8%를 정점으로 2009년까지 42%로 하락해 왔다. 그러나 최근 엔고의 가속화와 함께 2010년 이후에는 해외투자 비율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서 2011년 계획치로는 74.2%까지 급등할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엔고의 타격이 상대적으로 클 것으로 추정되는 자동차 산업의 경우 2011년도의 계획에서 해외투자가 9,779억엔으로 늘어나 일본 투자의 2배 정도에 달하고 있다. 일본 자동차 산업으로서는 엔고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투자를 늘려 해외생산 비중의 확대에 주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아직 일본 자동차 산업에서 주요 일본 공장을 폐쇄하려는 움직임은 나타나고 있지 않지만 도요타가 대미 수출차량인 캠리(중형차), RAV4(RV 차량) 등의 미국 현지 생산 라인을 확충하는 한편 닛산자동차가 마치(소형차), 티아나(중형차)의 태국 공장 생산을 확대하는 등 제품 모델 차원에서 생산 이전이 가속화되고 있다.

자동차 산업은 철강, 합성수지, 유리, 알루미늄, 전자부품 및 전자제품, 섬유, 전선, 모터, 각종 기계 및 공구, 타이어 등 다양한 소재 및 부품 산업에서 수요를 창출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과 관련된 일본 제조업의 출하금액은 총 57조엔에 달하는 막대한 규모이며, 일본 자동차 산업의 해외이전 가속화로 인해 관련 산업의 경우도 아시아 지역 등으로 이전되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동일본대지진에 따른 충격과 전력불안 우려가 커지자, 지금까지 일본 내 생산을 고집해 왔던 첨단 소재 및 부품 기업의 경우도 해외생산을 확대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장치산업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이들 업종은 인건비 비중이 상대적으로 낮고 연구개발의 중요성이 강조되어 왔기 때문에 일본기업들이 국내생산을 선호했지만 최근 아시아 지역의 인프라 기반이 확충되고 연구기능도 향상되고 있어서 굳이 엔고로 인해 비용부담이 높은 일본을 고집하지 않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 유일의 DRAM 반도체 제조회사인 엘피다 메모리는 히로시마 주력 공장의 생산능력의 40%를 대만으로 이전할 방침이며, 파나소닉은 말레이시아에 450억엔을 투자하여 태양전지 생산 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파나소닉은 중국에서 2차전지 생산을 추진하는 등 일본기업은 차세대 첨단 비즈니스에서도 처음부터 아시아 현지 생산체제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이와 함께 일본기업은 중국, 인도 등에 현지 연구센터도 신설 및 확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일본기업이 이번 엔고를 계기로 차세대 첨단 제조업을 포함한 기반 기술 산업을 아시아 지역으로 분산할 것으로 보여 이것이 중장기적인 효과를 미치면서 아시아 역내 분업의 고도화를 촉진할 것으로 보인다.

엔고가 우리경제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경제 불안이 엔고의 긍정적 영향 희석

과거 엔고기는 글로벌 경기 호조와 겹친 경우가 많았다. 일본의 수출이 급증하며 엔화가 상승하는 과정에서 원/엔 환율도 상승해 일본과 유사한 교역구조를 지닌 우리경제는 세계경기 호조와 가격경쟁력에서의 잇점을 동시에 누리면서 수출이 빠르게 늘어났다. 엔고에 따른 수출 확대로 우리나라의 원화도 강세 경향을 보였지만 엔화만큼 절상되지 않아 가격경쟁력을 유지하는 시기가 지속되면서 일본기업의 한국에 대한 투자도 확대되었다. 국내소비 및 투자가 동반호조를 나타내는 선순환이 발생한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경우 이러한 상관관계가 약해지는 모습이다. 앞에서 본 바와 같이 최근의 엔고는 글로벌 금융 불안을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엔고와 함께 세계경제성장률이 소폭 하락하고 있어서 우리경제의 성장률 수준은 과거 원/엔 환율 상승시기의 절반 이하로 낮아졌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기에 엔화가치는 높아지는 반면 원화가치는 하락하는 상반된 관계가 최근으로 오면서 더욱 확대되고 있다. 원화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주요 통화 가운데 금융 불안에 취약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엔화강세 국면에서 과거에 경험했던 긍정적인 수출확대 효과 못지 않게 국내 외환시장 불안이라든가 경기부진 같은 부정적 파급효과 또한 함께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엔고로 인한 한국의 세계시장 점유율 확대 효과는 뚜렷

물론, 과거와 달리 엔고기에 원화가 약세를 보이는 것은 해외시장에서 우리기업과 경합하고 있는 일본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큰 어려움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세계경제가 회복될 경우 엔고의 긍정적인 효과가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최근 들어서는 유럽 재정위기로 인한 금융시장의 불안이 다소 완화되고 세계적으로 주가가 일부 회복흐름을 나타내는 상황에서도 엔고흐름은 지속되고 있다. 세계경제의 전반적 불안감이 남아있는 속에서도 세계경제가 점차 회복되고 엔고도 유지되는 상황이 전개될 경우 우리나라 수출의 확대 효과가 보다 뚜렷해질 수 있다.

한일 양국 통화가치의 상반된 흐름에 따른 기업실적의 명암도 점차 뚜렷해지는 모습이다. 지난 2008년 발생한 국제금융시장의 극심한 불안을 거친 후 주요 수출품목에 있어 한일 양국의 세계시장 점유율 추이를 보면 우리기업들의 시장지위 개선이 두드러지는 반면, 일본기업들은 시장점유율이 하락하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다. 최근에는 차세대 산업인 2차전지의 세계시장 점유율에서 한일 역전이 일어나 일본에서도 큰 주목을 받았다. 또한 엔고로 인한 타격이 상대적으로 큰 것으로 나타나고 있는 일본 자동차 산업의 경우도 한국 자동차의 세계 시장 점유율 확대를 크게 경계하는 모습이기도 하다.

한·일간의 수출경합 품목이 2000년대 이후 많아지고 있어서 엔고가 한일 수출 점유율의 변화를 촉진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원래 한국과 일본의 수출품목의 구성은 유사했지만 1990년대까지만 해도 기술수준이나 제품 리더십(Product leadership), 브랜드 파워 등에 있어 차별화되는 측면이 강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러한 격차가 상당부분 해소되고 세계시장에서의 경합 관계가 강해졌다. 특히 전자제품이나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는 한·일간의 경쟁력이 거의 대등한 수준으로까지 진전되고 있다. 한국 산업이 차세대 분야로의 고도화를 계속 모색한 반면 일본은 2000년대 중반의 초엔저기에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LCD 등 디스플레이 분야에서의 주도권 탈환을 꿈꾸고 대규모 투자를 하는 등 일본의 수출 및 산업구조의 하향화 경향도 한·일간의 수출 경합도를 높이는 요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구매력평가 환율도 대일 수출경쟁력 향상에 유리한 상황

일본의 물가하락이나 한국의 상대적으로 높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한 구매력평가 환율 측면에서 보면, 명목 환율의 엔고만큼은 아니지만 한국의 대일수출 경쟁력 향상을 확인할 수 있다.

기준 시점을 2003년 1월로 하면 원/엔 명목환율은 원화가치는 49.5% 절하했으며, 수출물가 기준 구매력평가 환율의 절하율도 8.7%에 달하고 있다. 구매력평가 환율의 절하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은 양국의 물가상승률에 격차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수출산업은 명목 원/엔 환율의 상승으로 인한 가격경쟁력 약화요인의 상당부분을 가격 절감을 통해 흡수해 왔던 것으로 보인다. 반면, 한국의 경우 일본에 비해 상대적으로 비용 절감 및 가격 억제가 부진해, 명목환율 측면에서 원화가치의 하락을 통해 대일 수출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주요 업종별로 보면 구매력평가환율과 명목환율의 갭이 크고 대일수출경쟁력이 상대적으로 확대된 산업으로서 전기전자, 자동차 산업 등이 있는 반면, 화학, 철강은 엔고에 따른 혜택이 상대적으로 작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 역내 분업구조 고도화에 대비해야

종합적으로 보면 이번 엔고는 아시아 분업구조나 한일 산업의 경합 관계에 구조적인 변화를 주는 계기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세계 경제 둔화로 인해 엔고의 혜택을 실감하기 어렵지만 일본기업과 비교해 볼 때 한국기업의 세계시장 점유율이 확대되고 있고 일본기업의 대아시아 투자 확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나라로서는 엔고를 계기로 나타나고 있는 이러한 구조적인 변화에 대한 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일본 자동차산업과 함께 부품 및 소재 산업 등이 아시아로 활발하게 이전될 경우 우리나라 주력 산업에서 아시아 진출 일본기업과의 경합도 심해질 수 있으며, 2차전지, 태양전지 등의 차세대 제품 분야에서도 일본기업의 아시아 거점과의 경합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아시아 각국과 비교해서 대 엔화 환율의 절하율이 높은 편이긴 하지만 물가상승률도 아시아 각국에 비해 높기 때문에 아시아 각국과 비교한 구매력평가 환율 측면에서 그다지 유리한 편은 아니다. 특히 대만의 경우 우리나라와 비슷한 수준의 대 엔화 환율 평가절하를 기록하면서도 물가상승률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수출가격 경쟁력 측면에서 더욱 유리하다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나 대만의 대 엔화 환율은 세계경제 및 일본경제의 추이에 따라 결정되고 우리나라나 대만 자체의 물가상승률은 대 엔화 환율에 큰 영향을 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나라로서는 대만 등 아시아 각국에 비해 물가·비용 측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위를 점해야 엔고의 긍정적인 효과를 극대화할 수가 있을 것이다.

우리나라로서는 일본이 2000년대의 초엔저기에 한국 산업 등을 너무 의식하면서 수출 및 산업구조의 하향화 경향을 보인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기존 주력 산업에서 고부가가치화에 노력하며 기업의 글로벌 생산체제를 경제여건 변화에 맞게 효율적으로 운영하여 기존 제품의 경쟁력을 강화해 나가야 하겠지만 신흥국의 부상하는 산업과 정면 대결하면서 국내에서 기존 제조업의 과잉투자를 초래하는 것은 경제적 자원의 낭비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각국의 수출 및 산업구조의 고도화에 대비하여 보다 차별화된 고부가가치 분야에서 승부하는 자세가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아시아 역내의 제조업이 고도화되고 높은 성장세가 지속될 경우 이 지역의 시장 매력도가 높아질 것이며, 이들과 산업재 측면에서 다양한 분업 기회를 포착하는 한편 소비시장 공략에 한층 주력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LG경제연구원 이지평 수석연구위원, 배민근 책임연구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86-12 금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0807
  • 팩스 : 02-333-0817
  • 법인명 : (주)파이낸셜신문
  • 제호 : 파이낸셜신문
  • 주간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8228
  • 등록일자 : 2009-4-10
  • 발행일자 : 2009-4-10
  • 간별 : 주간  
  •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825
  • 등록일자 : 2009-03-25
  • 발행일자 : 2009-03-25
  • 간별 : 인터넷신문
  • 발행 · 편집인 : 박광원
  • 편집국장 : 임권택
  • 전략기획마케팅 국장 : 심용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권택
  • Email : news@efnews.co.kr
  • 편집위원 : 신성대
  • 파이낸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신문. All rights reserved.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