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 ‘수퍼 엔고, 추세전환의 기로’
LG경제연구원 ‘수퍼 엔고, 추세전환의 기로’
  • 배민근 책임연구원
  • 승인 2012.03.06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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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들어 단기간 동안 엔화가치가 빠르게 절하되면서, 엔화강세 기조의 추세적 후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현재 엔화약세 국면을 야기한 몇몇 요인은 단시일 내 완화될 가능성도 있지만, 무역수지 악화나 재정부실 문제 같이 일본경제의 구조적 불안정 징후가 지속되는 경우에는 엔화에 대한 약세압력이 가중될 수도 있다.

엔화환율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글로벌 금융위기 발생 이후 엔화는 강세를 지속, 지난 해 10월 말 달러당 75.8엔까지 하락했다. 하지만 11월 이후 서서히 약세 흐름을 나타내기 시작해, 2월 말 현재 달러당 80엔 선을 상회하고 있다. 특히 지난 2월 중순 10조엔 규모의 두 번째 양적 완화를 전후한 시기로부터 2월 말까지 불과 보름 만에 달러 대비 5%가 넘는 급격한 절하세를 나타냈다. 엔/달러 환율이 80엔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해 5월 하순 이후 9개월만의 일이다.

금융불안 완화로 안전자산 수요 약화

엔화가 약세를 보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유럽 재정위기에 대한 우려가 많이 줄어들면서 국제금융시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그리스에 대한 추가 구제금융과 국채교환, 민간부문의 손실분담에 대한 협의가 비교적 순조롭게 진행돼 오고 있으며, 지난 해 12월 하순 유럽중앙은행이 총 4,890억 유로 규모의 3년 만기 장기대출을 실행에 옮기면서 유럽 내 금융기관들의 자금사정과 국채시장도 빠르게 안정을 찾는 모습이다. 국제금융시장의 불안 정도를 나타내는 변동성 지수(VIX)가 리먼사태 발생 이전인 2008년 상반기보다 낮은 수준으로까지 하락하면서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에 대한 선호가 약화되고 있다.

일본경제 부진과 통화완화가 엔화 약세 유도

미국과 일본의 엇갈리는 경기흐름도 엔화약세를 이끄는 요인이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하반기부터 시작된 고용과 소비 중심의 경기개선 흐름이 올해 들어서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실업률 하락에 힘입어 소비심리가 호전되면서, 제조 및 서비스업 활동에도 개선흐름이 확산되는 모습이다. 반면 일본경제는 대지진 이후 예상되었던 복구수요의 창출이 아직 본격화되지 못함으로써, 실물경제가 전반적으로 부진한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또 그간 진행되어 온 엔고로 인해 수출경기와 채산성이 악화되고 있으며, 대다수 원전의 가동이 중단된 데 따른 전력공급 차질로 생산과 소비 모두 제약을 받고 있다.

경기악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은행은 지난 해 10월과 올해 2월 두 차례에 걸쳐 각각 5조 엔과 10조 엔 규모의 장기국채 매입, 즉 양적 완화에 나섰다. 이러한 경기상황과 통화정책을 반영해 국제금융시장에서 나타나는 달러와 엔화에 대한 단기 조달금리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런던은행협회가 고시하는 3개월 만기 은행간 금리의 경우 작년 상반기에는 달러 조달금리가 서서히 하락해, 달러와 엔화, 두 통화간 조달금리 격차가 0.1%p 이하로 좁혀졌다. 하지만 하반기 들어 달러 조달 금리가 상승하면서 올해 초에는 최대 0.4%p까지 다시 벌어졌다. 같은 기간 동안 유로화에 대한 조달금리도 약 0.6%p 하락했는데, 이는 캐리 트레이드의 조달통화가 달러에서 엔화와 유로화로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경상수지 악화, 추세 전환의 서막 될 수도

지난해 기록한 일본의 무역수지 적자도 엔화약세를 지속시키는 요인이다. 일본의 무역수지는 지난해 사상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데 이어, 올해 들어서도 지난 1월에 1조 4,750억엔(185억 달러)의, 월간 기준으로는 사상 최대 규모의 적자를 나타냈다. 일본의 수출산업은 위기 이후 엔화강세가 지속되면서 가격경쟁력상실로 인해 이미 상당부분 고전해 왔다. 여기에 지난 해 상반기 발생한 동북지방의 대지진으로 인해 일본 수출산업의 공급능력에 차질이 생기면서 지난 해 연간 수출이 전년도 대비 한 자리 수 증가에 그치는 결과를 낳았다.

이 같은 공급능력의 제약은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일시적 현상에 해당한다. 하지만 이와는 별도로 일본의 무역흑자는 이미 지난 2004년을 기점으로 추세적으로 축소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이는 환율변화로 인한 가격변동 요인이나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하는 일시적인 공급차질 이상의 수출경쟁력 약화 요인, 즉 혁신능력의 감소나 품질경쟁력 약화 등 일본 경제 전반에 걸친 부정적 징후들이 반영된 결과일수도 있다.

여기에 에너지 및 원자재가격 상승으로 인한 수입액 증가 요인과, 과거 2000년대 중반과 비교할 때 엔화가치가 여전히 초강세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할 때, 올해 또는 그 이후에도 일본의 무역수지가 이전과 같은 탄탄한 흑자기조로 복귀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예상된다.

경상수지도 마냥 안심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무역적자에도 불구하고 지난 해 일본의 경상수지는 10조 엔 가까운 흑자를 거두었다. 하지만 전년도의 17조 엔에 비해서는 40% 이상 감소했다. 경상수지 흑자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작년 한 해 14조 엔에 이르는 막대한 규모의 소득수지 흑자의 기여가 절대적이다.

1990년대 후반, GDP의 20% 내외이던 일본의 대외순자산이 최근에는 50%를 상회하는 수준으로까지 늘어났다. 그 결과 지난 2005년 이후 소득수지는 줄곧 매년 10조엔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위기 이후 진행되어 온 엔화 강세 기조에 힘입어 일본 내 각 경제주체들의 해외자산 취득도 다시금 크게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당분간은 상품수지 실적이 부진하더라도 소득수지 흑자에 기반한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기조는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소득수지의 증가도 지속 가능하지 않으며, 경상수지 흑자 또한 추세적으로 줄어들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최근 발표된 자료에 따르면 골드만 삭스(Goldman Sachs)를 비롯한 주요 투자은행들은 오는 2020년을 전후해 일본의 경상수지가 적자를 기록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세계경제의 성장세 둔화와 저금리가 지속될 경우 일본 내 경제주체들이 보유한 해외자산에서 나오는 수익률 또한 추세적으로 하락할 것이기 때문이다.

즉 지난해 나타난 무역적자나 경상흑자의 급격한 감소는 일본경제에서는 드물게 나타나는, 일시적이고 돌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일본 경제의 구조적 안정성 저하나 경쟁력 약화를 반영하는, 그러한 징후가 미리 나타난 것일 수도 있다. 향후에도 이러한 징후가 지속되고 일본경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이 확산되는 경우, 엔화는 추가적인 약세 압력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

재정여건 개선 안 되면, 머지 않아 신용등급 추가 하락 가능성도

장기추세 변화의 또 다른 징후적 사례는 바로 일본의 국가신용등급 하락이다. 지난 해 8월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Moody’s)가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을 Aa2 등급에서 Aa3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이는 중국이나 대만, 칠레와 동일한 수준에 해당한다. 일본의 재정적자 누적과 막대한 국가부채 규모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며, 국채의 대부분을 국내투자자가 보유하고 있어 상환능력 부족의 위험은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평가가 일반적이다. 실제로 국가신용 등급 하락 이후에도 엔화가치가 두드러지게 하락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재정건전성 회복을 위한 일본정부의 의지와 경제 전반에 대한 조절 능력, 그 성과에 있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5년간 빈번한 총리교체로 인해 경제 및 재정문제에 있어 장기적인 전략이 제대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고 있으며, 경제의 저성장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세 신설을 비롯한 세수기반 확충에도 쉽게 나서지 못하는 모습이다.

저축과 부채를 둘러싼 불균형은 더욱 심각하다. 인구구조의 노령화와 실물경제의 장기부진으로 가계소득이 정체되면서 저축률은 크게 떨어졌고 정부부채는 누증되어 왔다. 1990년대 초반 15%에 이르렀던 가계저축률이 지난 2010년 말에 이르러서는 3% 이하로 줄어들었다. 정부재정의 적자구조가 바뀌지 않는다면, 향후 가계의 낮은 저축률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기업의 경쟁력까지 저하될 경우, 더 이상 정부부채를 국내에서 조달하기 힘든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다.

장기적으로 건전재정과 수출경쟁력 회복이 관건

최근 나타나고 있는 엔/달러 환율의 상승이위기 이후 진행되어 온 엔화의 강세 기조, 즉 수퍼 엔고로부터 약세흐름으로의 추세 전환을 의미하는 것인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지난 해 그리고 올해 들어 발생한 일시적 요인에 의해 나타나는 측면이 강하고, 그러한 요인들은 머지 않아 상당 부분 완화될 수도 있다. 위기 이후 미 연준과 유럽중앙은행 등도 일본 못지 않게 강력한 통화완화를 실시 중이다.

또 유럽발 불안이 다시 불거지는 경우에는 안전자산 선호가 재개되면서 다시 엔고흐름이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국제유가의 상승은 석유자원에 대한 수입의존도가 높은 일본의 무역수지를 악화시키는 요인이지만, 과도한 유가상승이 미국을 비롯한 여타 선진국 경제에 충격을 주고 금융시장 혼란이 가중되는 경우에는 엔화에 대해 강세요인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해외로부터의 소득유입도 당분간은 현재와 같은 유입추세가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무역수지 악화나 재정건전화의 지연은 지금까지 위기 시 일본경제가 다른 나라들에 비해 월등한 안정성을 보이면서 엔화가 안전통화로 각광받게끔 만들었던 요인들에 대해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고도성장기 동안 축적된 경쟁력과 자산의 힘으로 과도한 정부부채를 감당해내는 구조가 언제까지 지속 가능할 것인지는 아직 미지수이다.

향후 엔화환율에 대한 전망도 아직은 전망기관에 따라 엇갈리는 분위기다. 다만 최근 들어 유럽 재정위기를 비롯한 세계경제가 안고있는 위험의 수위가 상당부분 낮아진 상태이고, 올해 미국경제의 더블 딥 우려가 다시금 제기되지 않는다면, 당분간 엔화환율은 지금의 달러당 80~85엔 범위에서 등락할 가능성이 커 보인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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