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전사자,“후배 손으로 찾아드리지 못해 부끄럽다”
전쟁전사자,“후배 손으로 찾아드리지 못해 부끄럽다”
  • 신영수 기자
  • 승인 2012.06.0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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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지역에서 발굴된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가 지난 5월 25일 조국으로 돌아왔다.

이들이 미국을 거쳐 62년 만에 귀향하는 데는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55) 단장(대령)과 김종성(49) 중령, 이도환(42) 소령, 전철규(42)·권재우(40) 상사 등 5명의 1년 가까운 숨은 노력이 있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미국 하와이에 있는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에서 북한에서 발굴한 카투사 출신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를 한국에서 준비해 간 오동나무관에 옮기고 있다. 벽 뒷면에 KPAC 슬로건인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란 문구가 보인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미국 하와이에 있는 합동전쟁포로실종자사령부(JPAC)에서 북한에서 발굴한 카투사 출신 국군 전사자 유해 12구를 한국에서 준비해 간 오동나무관에 옮기고 있다. 벽 뒷면에 KPAC 슬로건인 ‘조국은 당신을 잊지 않는다(YOU ARE NOT FORGOTTEN)’란 문구가 보인다.

“우리 선배님 유해를 감싸고 있던 유엔기를 태극기로 바꿔 다시 싸는데 눈물이 나더군요. 북한 땅에 묻혀 계신 선배님들을 후배인 우리 손으로 찾아드리지도 못했고, 미국에 10년 넘게 계셨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게 정말 부끄럽고 죄송했습니다.”

지난 5월 27일 국립서울현충원 안에 있는 감식단 본부에서 만난 이들은 일요일인데도 봉환(奉還) 마무리 작업을 하느라 분주했다.

북한에 묻혀 있던 유해 12구를 발굴한 것은 미국 합동전쟁포로 실종자사령부(JPAC)였다.

JPAC은 1996~2005년 북한 지역에서 미군 전사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2백26구의 유해를 발굴해 하와이에 있는 JPAC본부로 가지고 갔다.

JPAC은 DNA 감식 결과 이 중 12구가 아시아계인 것을 확인했다. 2000~2004년 장진호 전투 지역에서 발굴한 유해였다.

JPAC은 지난해 8월 이 같은 사실을 유해발굴감식단에 통보했다.
한·미는 당시 장진호 전투에 투입된 미군 부대에는 아시아계 미군 병사가 거의 없었고, 유해가 발굴된 곳이 미군 전사자만 추려내 매장한 장소였다는 점 등을 근거로 이들이 당시 미군에 배속된 카투사(KATUSA)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전사자 예우 차원 수송기 보내 직접 모셔와

박신한 단장은 “지난해 11월 12구의 유해가 국군 전사자가 거의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지만, 이를 공개할 수 없었다”고 했다.

“북한이 ‘국군 유해를 가져가려고 의도적으로 벌인 일이 아니냐’면서 트집을 잡아 유엔군 전사자 발굴까지 막을까 봐서”였다.

유해발굴감식단은 JPAC본부에 보관 중인 12구의 유해에서 각각 손톱 두 마디만큼의 뼛조각을 떼어와 한국에 보관 중인 1만9천 여 개의 유가족 DNA와 대조 작업을 벌였다.

처음엔 6구의 유해가 유가족 DNA와 일치할 가능성이 있었지만, 정밀검사 결과 고(故) 김용수 일병만 신원이 확인됐다.

고 이갑수 일병은 함께 발견된 인식표를 근거로 병역 기록을 역추적해 가족을 찾은 뒤 DNA 비교로 신원을 밝혀냈다.

우리 정부는 국군 전사자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수송기를 보내 유해 12구를 직접 모셔오기로 했다.

지난 5월 18일 박 단장 등 5명이 유해 봉환을 위해 특별수송기를 타고 하와이로 떠났다.

美 JPAC본부에서 우리 전통방식으로 입관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대령)과 김종성 중령, 권재우 상사, 이도환 소령, 전철규 상사(오른쪽부터).
유해발굴감식단 박신한 단장(대령)과 김종성 중령, 권재우 상사, 이도환 소령, 전철규 상사(오른쪽부터).
이들은 JPAC본부에서 유해 12구에 대해 우리 전통 방식으로 입관 작업을 했다.

지퍼백에 담겨 있던 유해 하나하나를 한지로 싸서 옻칠한 오동나무관에 넣었다.

뼛조각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처음 감식했을 때 찍은 사진과 일일이 비교 작업을 했다.

입관하는 데만 총 6시간이 걸렸다고 한다.

특별수송기는 하와이를 출발해 급유와 비행 정비 등을 위해 마셜 제도에 있는 콰잘린 섬과 괌을 경유했다.

이들은 괌 미군기지에서 관을 덮고 있던 유엔기를 태극기로 바꿨다.

이도환 소령은 “미국은 국군 전사자가 유엔군으로 참전했다는 의미로 유엔기로 관을 감쌌다”면서 “선배님들을 마땅히 태극기로 예우해 드리고 싶었다”고 했다.

전철규·권재우 상사는 하와이에서 성남 서울공항에 올 때까지 49시간 동안 12구의 유해를 떠난 적이 없다고 한다.

특별수송기가 26시간 동안 괌 공군기지 격납고에 머물 때 미군 2명이 경계 근무를 위해 배치됐지만, 두 상사는 유해 곁에서 컵라면을 먹고 간이침대에서 자며 자리를 지켰다.

박 단장은 봉환행사 준비를 위해 하루 먼저 귀국했고, 나머지 4명은 유해 12구와 함께 25일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했다.

4명은 특별수송기 한쪽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유해를 향해 거수경례를 하고 조포 21발이 발사되는 장면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봤다.

김종성 중령은 “6·25전사자 봉영행사에 대통령이 참석한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배들이 이제야 마음 편히 눈을 감으실 것 같다”고 했다.

박 단장은 “유해 한 구씩 지프로 옮겨 싣고 공항에서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하는데 운전자들이 ‘북한지역 발굴 국군전사자 유해 국내 봉환’이라고 써 있는 문구를 보고 길을 비켜줘서 고맙고 감사했다”고 했다.

신원이 확인된 고 김용수 일병과 고 이갑수 일병의 유해는 이달 중 대전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유해발굴감식단은 나머지 10구의 유해도 정밀 감식을 통해 신원을 확인해 나갈 예정이다.

“유족들 유전자 시료 채취해야 신원확인”

김 중령은 “발굴한 국군 전사자 유해 6천4백여 구 중 신원이 확인된 것은 79명에 불과하다”며 “국군 전사자 유가족이 DNA 시료 채취에 응하지 않으면 신원을 확인할 방법이 없다”고 했다.

이 소령은 “특히 북한에서 전사한 국군전사자의 유족이 아예 포기를 하고 유전자 시료 채취에 응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앞으로 남북 공동 유해발굴에 대비해 검사에 응하셨으면 한다”고 했다.

박 단장은 “시군구보건소나 유해발굴감식단(1577-5625)을 통해 간단하게 유전자 시료 채취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기사에 꼭 넣어달라”고 부탁했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의 부대 구호는 다음과 같다.

“그들을 조국의 품으로. 마지막 한 분을 모시는 그날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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