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증세론의 허상
부자증세론의 허상
  • 연성주 기자
  • 승인 2017.07.22 20:1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드디어 부자증세 카드를 꺼내들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공약에 증세를 내세웠으나 당선 이후에는 일절 입에 담지 않았다.
지난주 발표한 100대 국정과제에도 증세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청와대와 정부가 침묵을 지키는 가운데 증세론에 불을 붙인 것은 여당이다.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0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연간 순이익 2000억원을 넘는 대기업에 법인세율을 22%에서 25%로 인상하자"고 제안했다. 또 5억원 초과 고소득자의 소득세율을 42%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을 통한 부자증세 방침을 공식화한 것이다.
또 정부내에서는 여당 출신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증세 공론화에 총대를 멨다. 김 장관은 이날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작심한 듯 증세없는 복지를 비판했다.
여당 중진들이 발벗고 나선 것은 증세에 대한 청와대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잘짜진 각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논란에 마침표를 찍은 것은 문 대통령이다.
문 대통령은 21일 "기획재정부가 증세 방안들을 마련해주기 바란다"며 여당이 제안한 부자증세 방안을 수용하겠다는 뜻을 표명했다.
문 대통령은 "증세를 하더라도 대상은 초고소득층과 초대기업에 한정될 것"이라며 증세의 방향까지 제시했다.
청와대와 여당이 사실상 증세 방침을 표명하면서 기재부는 당초 신중했던 입장을 바꿔 다음달 2일 발표예정인 내년 세제개편안에 최고 세율 인상안을 포함시킨 것으로 알려졌다.
여당이 증세론을 들고 나온 이유로는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를 이행하려면 5년동안 무려 178조원이 필요하지만 재원 마련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는 다른 곳에 쓰고 있는 예산을 줄이는 세출 절감으로 95조원을 끌어오고 세입 확충으로 82조원을 확보하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장밋빛 낙관'에 의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러나 여당이 제기한 부자증세는 해결책이 아니다.
추 대표 주장대로 해도 법인세를 더 내야 하는 기업은 116곳이고 소득세의 경우에도 불과 4만여명 정도다. 세수증대 효과는 연간 3조8000억원 안팎에 머물러 정부가 필요한 예산의 20% 남짓이다.
세제 전문가들은 초고소득자에 대한 세금을 더 매긴다는 상징적인 의미가 있을 뿐 세수 증대효과가 별로 없다고 지적한다.
법인세는 전세계적으로 낮추는 추세에 역행하는데다 현재 상위 1% 기업이 전체 법인세의 76%를 낼 정도로 대기업들은 충분히 많은 세금을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국내 매출비중은 10%에 불과하지만 납부한 세금의 국내비중은 67%에 달한다고 한다. 즉 돈은 주로 외국에서 벌어들이면서 세금은 국내에 대부분 내고 있는 셈이다.
정부와 여당은 부자들의 주머니를 털어 재정 부족을 해결하려는 '꼼수'를 부려서는 안된다.
복지를 위해 쓸 돈이 부족하면 국민들에게 증세 필요성을 솔직히 털어놓고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참여정부 시절 종합부동산세 카드를 꺼냈다가 엄청난 조세저항을 부른 아픈 추억을 갖고 있는 여당은 증세는 하되, 대상을 일부로 한정함으로써 조세저항을 최소화한다는 전략이다.
여당에서는 증세라는 단어 대신에 '조세정상화'나 '명예과세'라고 부르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과세 대상이 극히 일부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편 가르기 여론전에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제라도 정부와 여당은 모든 국민들에게 이해를 구해서 단 한푼이라도 더 많은 국민이 세금을 부담하도록 해야 한다.
근로자와 기업의 절반가량이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 상황에서 늘어나는 법인세의 90%를 10개 기업이 부담하는 '표적증세'는 안된다.
구정모 강원대 교수는 "보다 큰 복지를 원한다면 많이 버는 사람은 많이 내고, 조금 벌더라도 능력에 따라 세금을 내는 국민 개세주의가 확립돼야 한다"면서 "최고세율을 올리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저변도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엇보다 '넓은 세원 낮은 세율'로 가야 한다. 종합부동산세와 같은 특정계층을 겨냥한 징벌적 조세정책은 곤란하다.
문재인 정부는 '1번 국정과제'로 적폐청산을 내세웠다. 부자증세라는 명목하에 세수는 별로 늘리지도 못하면서 국민들을 갈라놓는 처사가 바로 적폐라고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386-12 금성빌딩 2층
  • 대표전화 : 02-333-0807
  • 팩스 : 02-333-0817
  • 법인명 : (주)파이낸셜신문
  • 제호 : 파이낸셜신문
  • 주간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8228
  • 등록일자 : 2009-4-10
  • 발행일자 : 2009-4-10
  • 간별 : 주간  
  • /  인터넷신문
  •   등록번호 : 서울 아 00825
  • 등록일자 : 2009-03-25
  • 발행일자 : 2009-03-25
  • 간별 : 인터넷신문
  • 발행 · 편집인 : 박광원
  • 편집국장 : 임권택
  • 전략기획마케팅 국장 : 심용섭
  • 청소년보호책임자 : 임권택
  • Email : news@efnews.co.kr
  • 편집위원 : 신성대
  • 파이낸셜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 Copyright © 2024 파이낸셜신문. All rights reserved.
인터넷신문위원회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