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조선 백의정승 명재(明齋) 윤증 展
[Culture] 조선 백의정승 명재(明齋) 윤증 展
  • 조경화 기자
  • 승인 2018.03.22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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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3월29일~5월13일 전시 
 
 조선 후기 단 한번도 관직에 나가지 않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그를 흠모하며 따랐다. 
 
언제나 ‘화합’ ‘평화’를 사랑한 백의정승 명재 윤증. 오늘날 우리 정치권에 새로운 귀감이 될 명재 윤증전이 개최될 예정으로 있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예술의전당은 오는 29일부터 5월 13일까지 서울서예박물관에서 <명재 윤증>展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조선 후기 정치사의 핵심 인물이자 소론의 영수(領袖)인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 - 1714)의 유물을 통하여 그의 삶과 사상을 체계적으로 선보이는 전시이다.
 
86년의 삶에서 단 한번도 벼슬길에 오르지 않았지만
소론의 영수로 추앙된 백의정승 명재 윤증
 
▲ 윤증 초상 (이명기 본 구법) (1788)
 
명재 윤증(明齋 尹拯, 1629 - 1714)은 조선 후기 대표적인 산림으로, 소론의 영수로 추앙받았다.
 
그는 86세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단 한 번도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학문적, 인격적으로 그를 존경하고 따랐다. 지방에 거주하며 권력과 거리를 두었던 그를 두고 ‘백의정승(白衣政丞)’이라 불렀다.
 
조선 19대왕 숙종은 얼굴 한 번 보지 못했던 윤증에게 우의정의 벼슬을 내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정치사에서 윤증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그가 치열한 논쟁의 시대를 겪으면서도 언제나 화합과 평화를 추구했기 때문이다.
 
명재 종가에서 간직한 보물 제1495호
<윤증 초상>과 <영당기적> 
 
▲  영당기적 (작자 미상, 1885년)
 
이번 전시에는 <윤증 초상>과 <영당기적> 두 점의 보물이 전시될 예정이다.
 
윤증 종가에 전해 내려오는 초상 5점과 초상 제작관리 내력이 상세히 적힌 <영당기적>은 2006년 보물 제1495호로 일괄 지정됐다.
 
이번 전시에는 이명기가 1788년에 구법으로 그린 초상이 <영당기적>과 함께 전시될 예정이다. 윤증의 초상은 생전에 변량이라는 화가가 처음 그린 후 윤증 사후 장경주, 이명기, 이한철 등에 의해 제작됐다.
 
조선의 명문가 3대에 걸쳐 시호를 받다
경종이 내린 윤증 <시호 교지>
 
명재 윤증의 집안은 조선시대 문과 급제자를 46명이나 배출할 만큼 명문가였다. 그의 집안에서 시호를 받은 인물이 9명이며, 특히 윤증(문성공)은 조부인 문정공 윤황(尹煌, 1571 - 1639), 아버지 문경공 윤선거(尹宣擧, 1610 - 1669)와 함께 3대에 걸쳐 시호를 받기도 했다.
 
비록 윤증은 관직에 오르지 않았지만, 그의 학문과 교육은 전국의 선비들을 매료시켰다. 이번 전시에서 볼 수 있는 <시호 교지>는 1723년 조선의 20대왕 경종이 윤증에게 내린 것이다.
 
명필 3형제 윤증의 글씨를 낳다
 
▲  명재 윤증 친필 주자시 (연도미상)
 
명재 윤증의 집안은 명문가이면서도 명필(名筆)가였다. 그의 큰아버지인 동토 윤순거(童土 尹舜擧, 1596 - 1668)는 당대의 명필로 이름을 떨쳤다.
 
그가 초서로 쓴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는 보물 제1671호로 지정되어있기도 하다. 또한 큰아버지 윤문거, 아버지 윤선거 역시 글씨가 뛰어나 삼형제의 글씨를 모은 <노성3선생필적>에는 박세당, 박세채 등 당대 이름난 인물들이 발문을 쓰기도 했다.
 
윤증 역시 가문의 영향으로 빼어난 글과 글씨를 많이 남겼다. <명재 친필 주자시>, <명재 친필 8폭병풍> 등의 작품을 통해 윤증의 경쾌한 초서를 감상할 수 있다.
 
노론과 소론 분화의 시작
윤증, 송시열 그리고 <신유의서>
 
조선 후기 서인이 정권을 잡은 후 남인에 대한 처벌 수위를 놓고 강경한 입장을 보인 노론과 온건한 입장의 소론으로 분화됐다.
 
한 때 스승과 제자 관계였던 우암 송시열(尤庵 宋時烈, 1607 - 1689)과 명재 윤증은 각각 노론과 소론의 영수가 되어 정국을 이끌게 되었다. 윤증은 송시열이 윤휴(尹鑴, 1617 - 1680) 등을 사문난적으로 몰아 죽이자 이를 비판하기 위해 송시열에게 보낼 <신유의서>를 작성했다.
 
윤휴는 윤증의 아버지 윤선거의 오랜 벗이었는데, 송시열은 윤선거가 생전에 윤휴와의 관계를 끊지 못하는 것에 불만을 가지기도 했다.
 
윤증과 송시열의 이러한 갈등을 흔히 회니시비(懷尼是非)라 부르며, 노론과 소론의 분당 계기로 작용하기도 하였다.
 
▲   명재 윤증 친필 절명시 (1714)
 
윤증과 선비들의 편지
조선 문인들의 대화를 엿보다
 
윤증은 조선 후기 존경받는 대학자였던 만큼 동시대 인물들과의 교류도 활발했다.
 
윤증이 주변 인물들과 주고받은 간찰들은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또한 송시열, 김장생, 윤휴, 박세당, 허목 등 당대 최고학자들의 친필을 그대로 확인할 수 있는 다양한 간찰 자료도 이번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시는 명재 종가와 확당가에 전하는 유물을 중심으로 총 4가지 주제로 구성되며, 1섹션에서는 윤증 선생의 친필, 문집, 초상 등을 중심으로 명재의 삶을 이야기한다.
 
2섹션에서는 윤증 선생의 가계를 중심으로 한 인물들을 조명하며, 3섹션에서는 당시 윤증 선생과 교유하던 학자 및 문하생들의 친필 글씨를 확인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4섹션에서는 조선후기 윤증 선생과 관련한 다양한 자료 등이 전시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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