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이끈 '이건희 회장' 별세...향년 78세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이끈 '이건희 회장' 별세...향년 78세
  • 임권택 기자
  • 승인 2020.10.25 1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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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급성심근경색증 쓰러진 후 6년5개월간 병상에서 지내
삼성 "장례는 가족장으로 간소하게"...조화와 조문 사양
파산직전 한국반도체 인수...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켜

한국 재계의 거목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25일 서울삼성병원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이날 삼성전자는 "장례는 고인과 유가족의 뜻에 따라 간소하게 가족장으로 치르기로 했다"며 이에 조화와 조문은 정중히 사양한다고 밝혔다. 이건희 회장은 지난 5월 급성심근경색으로 서울 이태원동 자택에서 쓰러진 뒤 6년만에 하늘나라로 갔다.

고인은 1942년 1월9일(양력) 대구에서 태어나 부친인 이병철 삼성창업주 별세이후 1987년 삼성그룹 2대 회장에 취임하여 삼성은 물론 한국경제 발전을 주도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 관장, 아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삼성복지재단 이사장, 사위 김재열 삼성경제연구소 사장이 있다.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전자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사진=삼성전자

◇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키우겠다"는 약속 지킨 이건희 회장

"삼성을 세계적인 초일류기업으로 성장시키겠습니다"

1987년 회장 취임과 더불어 선언된 그 약속은 당시 사람들에게 메아리 없는 외침에 불과했지만, 세월 속에 하나씩 하나씩 실현되었고 세계를 놀라게 했다. 이건희 회장이 취임한 1987년 10조원이 채 못되던 삼성그룹의 매출액이 2018년 387조원으로 약 39배 늘었으며, 이익은 2천억원에서 72조원으로 359배, 주식의 시가총액은 1조원에서 396조원으로 무려 396배나 증가했다.

삼성이 IT 산업의 모태인 반도체를 시작한다고 했을 때 아무도 삼성이 지금과 같은 위치에 오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이건희 회장이 파산 직전의 한국반도체를 인수한다고 했을 때 모두가 반대했다.

지금이야 반도체 하면 '삼성'을 떠올리는 시대가 됐지만, 그 때만 해도 한국반도체 인수는 말도 안되는 공상과 같은 이야기였다. 일본의 한 기업 연구소는 '삼성이 반도체를 할 수 없는 다섯 가지 이유'라는 보고서를 내놓으며 비판 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건희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언제까지 그들의 기술 속국이어야 하겠습니까? 기술 식민지에서 벗어나는 일, 삼성이 나서야지요. 제 사재를 보태겠습니다"

1986년 7월 삼성은 1메가 D램을 생산하면서 반도체 산업을 본격적으로 꽃 피우기 시작했다.

삼성은 64메가 D램 개발로 기술 주도권을 확보한데 이어 생산량을 늘리며 시장 점유율도 1위를기록, 기술과 생산 모두에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기업으로 올랐다. 반도체의 성공에 이어, 애니콜 신화가 뒤를 이어받았다. 신경영 선언 이후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신수종 사업으로 휴대폰 사업을 예견했다. 

"반드시 1명당 1대의 무선 단말기를 가지는 시대가 옵니다.  전화기를 중시해야 합니다."

1995년 8월 마침내 애니콜은 전세계 휴대폰 시장 1위인 모토로라를 제치고, 51.5%의 점유율로 국내 정상에 올라섰다. 당시 대한민국은 모토로라가 시장점유율 1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한 유일한 나라였다.

이건희 회장은 2000년 신년사를 통해 21세기 초일류 기업의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또 한 번의 계기를 만들었다.

"새 천년이 시작되는 올해를 삼성 디지털 경영의 원년으로 선언하고, 제2의 신경영, 제2의 구조조정을 한다는 비장한 각오로 사업구조, 경영 관점과 시스템, 조직 문화 등 경영 전 부문의 디지털화를 힘있게 추진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먼저 변화의 흐름을 읽고 전략과 기회를 선점하는 것입니다."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여
1987년 이건희 회장이 취임식에서 그룹 깃발을 흔들고 있다./사진=삼성전자

◇ 1992년 세계 최초 64M D램 반도체 개발 성공...미래를 열다

1992년 삼성이 세계 최초로 64M D램 반도체 개발에 성공했다. 삼성 반도체가 메모리 강국 일본을 처음으로 추월하며 세계 1위로 올라서는 순간이었다. 세계무대에서의 1위라는 기쁨에 젖어있던 삼성. 그러나 단 한 사람, 이건희 회장은 심각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밤잠을 설치며 다가올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고민했다.

이 회장은 1993년 오사카 회의에서 "작년 중순부터 고민을 하기 시작해서 작년 말부터 하루에 3시간에서 5시간 밖에 잠이 안 왔다"고 밝힌 바 있다. 이건희 회장이 감지했던 위기가 닥쳐왔다. 1993년, 품질보다 생산량 늘리기에 급급했던 생산라인에서 불량이 난 세탁기 뚜껑을 손으로 깎아서 조립하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이 사내 방송으로 보도됐고 파장이 커지면서 질보다 양을 앞세우던 기존 관행에 제동이 걸렸다.

당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글로벌 위상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이었다. 이건희 회장은 미국의 대표적인 전자제품 양판점인 'Best Buy'를 돌아보다가 진열대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는 삼성 제품을 바라보았다.

"'삼성이라는 이름을 반환하라'고 했다. 먼지 구덩이에 처박힌 것에 어떻게 삼성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겠는가"

삼성 제품이 뛰어난 품질로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던 이건희 회장에게 불량 세탁기 고발 영상이 담긴 사내방송 테이프가 전달됐다.

이를 본 이건희 회장은 그동안 쌓여온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꾸라"는 말로 유명한 신경영 선언을 내놓았다. 1993년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시작된 신경영 대장정은 총 8개 도시를 돌며 임직원 1천8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350여 시간의 토의로 이어졌다.

대한민국이 OECD 회원국에 가입한 1996년 삼성은 연평균 17%의 놀라운 성장률을 기록했다. 성장일로에 들어선 삼성이 안심하고 기뻐하고 있을 때, 멕시코 티후아나 전자복합단지를 방문중이던 이건희 회장은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했다.

"반도체가 조금 팔려서 이익이 난다 하니까 자기가 서있는 위치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그저 자만에 빠져 있다."

이건희 회장의 질책과 함께 삼성은 내부 자만을 경계하고 장래 위기에 대비하기 위해 비상경영에 돌입했다. 삼성그룹은 경영 전 분야에 걸쳐 3년 동안 원가 및 경비의 30%를 절감하겠다는 '경비 330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했고,한계 사업을 과감히 정리하고 차세대 사업에 집중하는 한편,경영 합리화와 사업재구축을 목표로 비상경영을 진행했다.

삼성이 비상경영에 들어간지 1년 후인 1997년, 대한민국에는 IMF 외환위기가 닥쳐왔다. 위기에 미리 대비하고 허리띠를 졸라맨 삼성은 외환위기라는 거센 파도 속에서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급변하는 세계 디지털 시장을 선점하는 기회를 만들어냈다.

2004년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사진=삼성전자
2004년 이건희 회장이 반도체 공장을 방문했다./사진=삼성전자

◇ 사회 문화 변화를 이끌다..."학력제한 폐지"

1957년 1월 민간 기업 최초로 공개 채용 제도를 도입해 27명의 사원을 채용한 삼성은 1995년 한국 기업사에 대변혁을 가져 온 또 하나의 중대 발표를 했다. 다름아닌 "삼성 공채, 학력제한 폐지"를 발표하고 학력 위주에서 실력 위주로 전환했다.

전 세계가 무한 경쟁으로 가는 열린 시대를 맞아 이건희 회장은 학력과 성별, 직종에 따른 불합리한 인사 차별을 타파하는 열린 인사를 전격 지시했다.

"대학 졸업장과 관계없이 입사할 수 있는 기회를 동일하게 주고 입사 후 승진, 승격에도 차별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삼성의 입사 기준은 학력이 아니고 실력입니다."

이때부터 삼성은 대졸 공채 대신 3급 신입사원 입사 시험을 실시했습니다. 시험에 합격할 실력만 되면 대학 졸업장은 의미가 없는 것이 되었다.

무엇보다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여성 분야에서 일어났다. 여성에 대한 차별을 과감히 없애고 동등한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했다. 1987년 취임 초부터 여성 인재의 중요성을 강조한 이건희 회장은 여성들이 육아 부담 때문에 마음 놓고 일하지 못하는 현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그 어느 기업보다 앞서 어린이집 사업을 현실화 했다.

2016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 장면/사진=삼성전자
2016년 16라인 반도체 기공식 장면/사진=삼성전자

◇ 이건희 회장 "상생과 동반성장" 선언

이건희 회장 취임 이듬해인 1988년, 삼성은 중소기업과 공존공생을 선언했다. 삼성이 자체 생산하던 제품과 부품 중 중소기업으로 생산이전이 가능한 352개 품목을 선정해 단계적으로 중소기업에 넘겨주기로 결정하면서 큰 화제가 됐다.

그리고 1993년 신경영 선언 당시 이건희 회장은 작게는 삼성의 발전을 위해, 크게는 대한민국 경제 성장을 위해 협력업체 육성을 다시 한번 역설했다.

"삼성그룹의 대부분이 양산조립을 하고 있는데 이 업의 개념은 협력업체를 키우지 않으면 모체가 살아남지 못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건희 회장은 삼성 계열사들에게 신뢰에 기반해 협력회사와 수평적이고 전략적인 파트너 관계를 맺으라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삼성에서는 '거래처, 납품업체, 하청업체'라는 말이 사라졌음. 그 대신 '협력업체'라는 표현을 쓰며 모두가 다 같은 삼성 가족임을 확인했다.

이건희 회장은 한발 더 나아가 1996년 신년사에서 "협력업체는 우리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신경영의 동반자"라고 정의했다.

◇ 스포츠 지원, 세계로 도약하다

2011년 7월 6일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발표를 앞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의 국제 컨벤션 센터에 집중됐다.

그리고 한국 시간으로 밤 12시 IOC 총회장에서 자크 로케 IOC 위원장은 "이번 올림픽 개최지 선정에 도전한 모든 나라를 환영한다"고 말하면서 하얀 봉투 속의 카드를 공개했고, 이내 "평창"을 외쳤다.

2009년의 시작과 함께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에 적극 나선 이건희 회장은 1년 반 동안 170일간 해외 출장을 다니며 IOC 위원들을 만났다. 이 기간 이건희 회장이 평창 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누빈 거리는 지구를 5바퀴 돌고도 남았다.

2011년 7월6일 평창올림픽 유치 발표 순간 /사진=삼성전자

◇ 소프트 경쟁력 강화에 박차

 이건희 회장은 1996년을 '디자인 혁명의 해'로 선언하고 디자인 경쟁력 강화에도 더욱 박차를 가했다. 

"올해를 그룹 전 제품에 대한 「디자인 혁명의 해」로 정하고 우리의 철학과 혼이 깃든 삼성 고유의 디자인 개발에 그룹의 역량을 총집결해 나가도록 합시다."

마침내 2002년 4월 혁신적인 디자인의 휴대폰 'SGH-T100'이 출시되었다. 이건희 회장은 이 제품 개발 단계부터 꼼꼼히 디자인을 살폈고 잡기 쉽게 넓으면서도 가볍고 얇은 디자인을 제안했다. 조가비 형태의 이 휴대폰은 '이건희폰'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며 출시와 함께 큰 화제가 됐고 글로벌 1000만대 판매라는 대기록을 수립했다.

이건희 회장의 도전은 멈추지 않았다.

2005년 이건희 회장은 세계적 명품과 디자인의 격전지인 밀라노에 주요 사장들을 소집하고 '디자인 전략회의'를 주재했다. 이 자리에서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디자인 경쟁력을 1.5류로 평가하며 다시 한번 글로벌 초일류 수준으로 혁신할 것을 주문했다.

"삼성 제품의 디자인 경쟁력은 1.5류입니다. 제품이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시간은 평균 0.6초인데 이 짧은 순간에 고객의 발길을 붙잡지 못하면 승리할 수 없습니다."

이건희 회장은 삼성의 '밀라노 4대 디자인 전략'도 발표했다. 그 내용은 독창적 디자인과 UI 아이덴티티 구축, 디자인 우수인력 확보, 창조적이고 자유로운 조직문화 조성, 금형기술 인프라 강화 등으로 1996년에 이은 '제2 디자인 혁명' 선언이었다.

이후 삼성의 디자인은 다시 한번 벽을 뛰어넘었음. 이듬해 출시된 와인잔 형상의 보르도TV는 2006년 한 해에만 300만대가 판매되며 세계 TV시장의 판도를 바꾸어 놓았다.

이렇듯 이건희 회장 이후 삼성은 100년 기업을 향한 그 무수한 노력과 도전의 연속이었다. 회장 취임 당시 미래를 향한 약속, IT 강국의 초석, 글로벌 영토확장, 위기극복의 리더십, 사회 문화 변화 선도, 사회공헌 활동, 상생과 동반성장, 스포츠 지원, 소프트 경쟁력 강화, 그 모두가 100년 기업 삼성의 밑거름이 되었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

이건희 회장 청년기/사진=삼성전자
이건희 회장 청년기/사진=삼성전자

◇ 이건희 회장(李健熙) 약력

1942년 1월9일(양력) 대구/ 1961년 서울대학교사범대학부속고등학교/ 1965년 와세다대학교 경영학 학사/ 1966년 조지워싱턴대학교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과정 수료/ 2000년 서울대학교 명예경영학박사/ 2005년 고려대학교 명예철학박사/ 2010년 와세다대학교 명예법학박사 / 1966년 동양방송 입사/ 1978년 삼성물산 부회장/ 1979년 삼성그룹 부회장/ 1982년~ 1997년 대한아마추어레슬링협회 회장 / 1987년~ 1998년 삼성그룹 회장/ 1996년~ 201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 1998년~ 2008년 삼성전자 대표이사회장/ 2010년 삼성전자 회장/ 2017년 국제올림픽위원회(IOC) 명예위원/ 미국 Korea Society '밴플릿 어워드'(2006년 9월)/ 홍콩디자인센터산업기술통상부 공동 주최 디자인 경영자상(2004년11월)/ 프랑스 국가최고훈장 '레종 도뇌르 코망되르'(2004년 6월)/ 대한민국 국민훈장 무궁화장(2000년 7월)/ IOC 올림픽 훈장 (1991년 12월)/ 대한민국 체육훈장 청룡장(1986년 12월)/- 대한민국 체육훈장 맹호장(198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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