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금융에 대한 기대와 우려
사회적 금융에 대한 기대와 우려
  • 한재준 교수
  • 승인 2018.03.06 1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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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신문=인하대 글로벌금융학과 한재준 교수]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부의 양극화를 초래하는 자본주의, 특히 금융주도 자본주의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고 있다.
 
빈부격차와 고용불안이 이슈가 되면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회적 경제의 중요성도 주요국에서 대두되고 있다.
 
▲ 한재준 인하대 교수 
한국은 IMF 외환위기 이후 자본주의가 급속화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었지만 이를 개선할 사회적 움직임이 아직은 충분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 반증이 청년실업과 세대간 갈등, 경력단절자와 은퇴자에 대한 복지와 고용 기회 제공 부족이다. 이 때문에 2017년 대선기간중 소득과 부의 불평등 해소가 이슈가 되었고, 문재인 정부에서 복지정책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하지만 복지를 위한 증세가 쉽지 않기 때문에 그 대안으로 사회적금융이 조명을 받고 있다. 
 
사회적금융이란 재무적 이익과 함께 사회적 가치(Social Value)를 추구하는 금융을 말한다. 통상 민간기부금과 사회적책임투자(SRI)도 포함된다. 협의로는 협동조합 등 사회적 경제조직에 투자, 융자 및 보증 형태의 자금 지원을 의미한다. 
 
이들 사회적 경제조직에는 통상 사회적기업, 협동조합, 마을기업 그리고 자활기업이 포함된다. 이들은 수익활동을 벌인다는 점에서는 영리기업과 유사하지만 구성원간 협력과 자조를 바탕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EU 등 유럽에서는 저성장·저고용 경제구조로 인한 부족한 일자리와 복지수요에 대한 대안으로 사회적 경제조직이 부상하고 있다. 그리고 이 활동을 지원하려는 사회적금융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지역개발금융기관(CDFI: Community Development Financial Institutions) 기금이 대표적이다. 이 기금은 클린턴 미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저소득층·낙후 지역 개발을 위해 1994년 설립되었다. 신협이나 대안 금융기관 을 지역개발금융기관(CDFI)으로 인증하고, 이 기금이 자금을 공여하면 인증된 금융기관들이 저소득지역 개발자를 선별하여 대출이나 출자를 실행한다.
 
재원은 정부가 마련하지만 자금수요자를 선별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담당할 지역금융기관을 CDFI로 인증하고, 이들이 자금수요자를 선별하고 있다. 마치 벤처시장에서 정부 재원으로 조성된 도매업자인 모태펀드가 소매금융업자인 자(子)펀드에 출자하면 이들이 직접 유망한 초기기업을 발굴하는 것과 유사하다. 
 
CDFI는 사회적 기업, 협동조합 등의 활동 목적, 생산물, 정책, 주민과의 파트너십 등을 평가해 지원 대상 조직을 선별한다. 영국에서는 사회투자 도매금융기관격인 빅 소사이어티 캐피털(BSC: Big Society Capital)이 2012년에 조성되었고, 이웃나라인 일본도 휴면예금을 활용한 비영리재단을 설립하여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자금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사회적투자기금이 있다. 또 몇몇 대기업이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사회적금융관련 사업을 실시했거나, 공제형태의 자조기금이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규모가 크지는 못 했다.
 
이 때문에 정부는 지난 2월 ‘사회적금융 기반 마련을 위한 방안’을 발표했다. 크게 세가지 안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첫째는 3천억원의 ‘사회가치기금’을 조정하는 것이다. 영국의 BSC과 미국의 CDFI기금을 모델로 민·관 합동으로 도매금융 기금을 조성하는 방안이다. 둘째로는 이 자금을 소매업차원에서 중개할‘사회적 금융중개기관 인증제’이다. 셋째는 기존 정책금융기관을 통한 사회적 금융 확대이다. 서민금융진흥원의 대출, 신용보증기금을 통한 보증으로 정부가 직접 사회적금융에 마중물을 붓겠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그간 사회적금융이 부족했기 때문에 마중물로 정부 지원은 필요하다. 그러나 아래와 같은 우려에 대한 미세조정은 필요하다. 마중물이 지나칠 경우 사회적 경제조직 생태계 조성과 자생력 구비에 부정적일 수 있다는 우려다. 예를 들면 도덕적 해이 가능성이다. 사회적 경제조직은 무엇보다도 자조성, 관련 생태계의 유기적 조성이 중요한데, 단기성과주의와 보여주기식 행정이 앞서다 보면 장기 영속성을 잃을 수 있다는 우려다. 
 
정부안에서는 정책보증이라는 당근을 통해 은행이 동원될 가능성이 높은데, 당근이 떨어질 경우 은행을 통한 자금지원은 수익성과 자산건전성 우려로 지속되지 못할 공산이 크다. 이전 정부에서 녹색금융과 기술금융이 정책보증이란 당근을 앞세워 양(量)으로 승부하려했지만, 정권이 바뀌면서 동력을 상실했었다. 미소금융의 경우 마중물이 과도해지다보니 민간에서 사회연대은행 등 마이크로파이넌스의 자생적 토양이 구축된 선례도 있다. 
 
사회적 경제조직의 생태계 조성이 중요하듯이, 이를 지원할 사회적 금융중개기관의 생태계 조성도 매우 중요하다. 이 때문에 ‘사회적 금융중개기관 인증제’도 숫자 늘리기에 빠져서는 안 될 것이다. 금융업의 기본 원리인 유인 구조, 평가인프라 구축을 염두해 중장기적으로 추진되길 바래본다. 
 
실무에서는 ‘사회적금융 평가시스템’ 이 가장 큰 난제로 이야기된다. 재무적 가치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평가하고, 이를 근거로 대출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역발상이 필요하다.
 
돌봄·간병과 같은 공공성이 짙은 서비스를 재무가치화하기 보다는 정부나 지자체가 담당할 경우 지출한 비용보다 사회적 기업이나 협동조합이 더 적은 비용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거나, 동일한 비용이더라도 서비스 질을 높일 경우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이다. 미소금융이라면 대안 금융중개기관이 정부계보다 연체율을 낮게 관리한다면 지원금에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것도 가능하다. 사회적 경제조직에 대한 평가기법은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쌓이면서 개선될 것이다.
 
시집살이처럼 들릴 수 있지만, 어쩌면 지금이 양극화 해소에 나설 마지막 기회이고, 그 방안인 사회적 금융이 실패해 또 다른 정부실패로 치부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돌다리도 두드리는 마음으로 나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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