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금융 120년④] 1912년 ‘은행령’ 공포로 일반은행 난립
[한국금융 120년④] 1912년 ‘은행령’ 공포로 일반은행 난립
  • 임권택 기자
  • 승인 2019.03.12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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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행 설립과 일본의 금융자본침투가 본격화하는 가운데 우리나라 금융제도는 일본의 식민지정책에 따라 정비확장 과정을 거친다.

먼저 1911년에는 한일간의 금리차에 따른 일본자금의 과도한 한국유입을 막기위하여 ‘조선이식제한령(朝鮮利息制限令)’이 제정된 데이어 1912년에는 1906년에 발포된 ‘은행조례’를 폐지하고 그 대신 ‘은행령’을 공포하여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동경영에 의한 일반은행 설립의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1910년 후반에 들어와서는 제1차세계대전중의 경제호황을 배경으로 은행의 설립이 급격히 증가한다.

1978년에 발간한 한국금융30년사에 따르면, 당시 신설된 은행은 한국인과 일본인의 공동출자은행으로는 1912년에 대구의 鮮南상업은행(후에 선남은행 변경), 구포의 龜浦은행(후에 경남은행의 변경), 1913년에 부산 상업은행과 대구은행, 1920년에 전주의 三南은행이 각각 설립됐다.

한국인의 독립경영은행으로는 1913년 충남의 湖西은행, 1918년 東萊은행, 대구의 慶一은행, 1920년 고성의 해동은행, 1920년 광주의 호남은행이 설립됐다.

일본인 독자경영은행으로는 1912년 원산의 칠성은행, 1913년 경성은행, 1916년 진남포의 삼화은행, 1919년 원산상업은행, 1920년 대구의 경상공립은행 등이 잇따라 설립됐다.

한국산업은행 구본점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기관으로 활동해왔으나 1948년 광복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도입이 소멸하면서 1954년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으로 재출범해 오늘에 이르렀다,(사진=78년 한국금융30년사)
한국산업은행 구본점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 산하 최대의 금융기관으로 활동해왔으나 1948년 광복 이후 일본으로부터의 자본 도입이 소멸하면서 1954년 ‘한국산업은행법’에 따라 한국산업은행으로 재출범해 오늘에 이르렀다,(사진=78년 한국금융30년사)

은행설립과 더불어 은행업무도 확충된다.

1914년에는 그동안 급격한 산업경제의 발전에 따라 이미 현실에 맞지 않게 된 ‘농공은행조례’를 개정하여 구 조례에 의한 영업범위 이외에 비영리법인에 대한 무담보대출, 토산물을 담보로 하는 어음대부, 유가증권에 의한 대부, 환업무등을 추가하여 영업법위를 확대했다.

또 동양척식주식회사의 업무를 대리하여 풍부한 자금을 지방농공업자에 까지 침투시키는 길을 열어주었다.

또한 그해 ‘지방금융조합규칙’을 개정하여 지방금융조합이 농공은행업무를 대행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농공은행만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 농공은행을 통합하여 자본금을 증액하고 지급능력을 확대하기 위한 특수정책금융기관의 설립이 논의된다.

1918년 6월에 ‘조선식산은행령’이 공포되고 그해 10월 조선식산은행이 발족한다. 조선식산은행은 조선총독부가 조선에서 농업생산을 극대화하기 위해 일본인의 직접적인 투자와 경영에 의존하는 은행이다.

공칭자본금 1,000萬圓, 납입자본금 419萬圓으로 출발한 조선식산은행은 장기저리자금 공급기관으로서의 특수성에 따라 정부로부터 각종 특혜를 받았다.

즉 식산은행은 산업자금공급기관이기 때문에 일정한 한도내에서 채권을 발행하는 특전이 부여됐다.

식산은행은 그 업무로서 산업금융 및 공공금융이외에도 일반금융업무를 겸영하고 있었으며 조선은행과 대리점계약을 체결하여 국고금을 취급하는 한편 각종 도금고 및 시금고 업무도 담당한다.

또 日本勤業은행의 대리점으로서 동은행이 발행한 채권을 판매하기도 했다.

한편, 1918년 6월 ‘조선식산은행령’의 공포와 때를 같이하여 ‘지방금융조합령’이 폐지되고 대신 ‘금융조합령’이 공포됐고, 이를 근거로 금융조합연합회가 설립된다.

또한 1922년 ‘無盡業令’에 의하여 특수금융기관으로 6개의 무진회사가 설립된다.

無盡(상호신용계)회사는 당시 금융기관으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도시 노동자 및 영세 상공업자 간의 자금 융통을 담당한 서민 금융기관이다.

무진제도는 그 이전에도 일본인의 집단거류지를 중심으로 보급 발달되어 1921년 7월말 현재 77개에 달할 정도였다.

무진제도가 제정되면서 기존의 무진업계는 회사형태로 통합정비되어 무진업이 새로운 제도금융으로서의 기틀을 갖추게 된다.[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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