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니스 매너-45]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비즈니스 매너-45]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 동문선 신성대 사장
  • 승인 2019.08.07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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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서는 간혹 졸부들이 상류층 커뮤니티 진출을 위해 독선생 과외수업으로 매너를 배우기는 하지만, 선진문명 사회의 중류층 이상이면 누구나가 다 그렇게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책으로 묶어 내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해서 대부분의 서구 발간 소셜에티켓 책의 용도는 일반 사회생활 초년생들과 같은 정규 무대 사회생활 미숙자들을 위한 사교예절 에티켓 실무 지침서이다.

더러 신분이 상승 되는 자들을 위해 매너의 표현, 실행 각론만을 다룬 소셜에티켓 책자도 있지만 호스트 역보다는 게스트 즉, 얻어먹는 자의 입장에서 의무방어전 용도 시각에서 씌어져 있다., <편집자주.

◇ ‘인간성 회복’이 아니라 ‘인간존엄성에 대한 인식’부터

동문선 신성대 사장
동문선 신성대 사장

예전에 뉴스에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혼수상태에 빠졌던 남성이 12년 만에 회복해 어엿한 사회인으로 성장한 이야기가 잔잔한 감동을 주었습니다.

마틴 피스토리우스라는 남성은 12살 때 희귀병인 '크립토콕쿠스 뇌막염'을 앓아 의식불명에 빠졌었지요.

부모의 극진한 간호로 2년 후 의식은 깨어났지만 그걸 가족들에게 알릴 방도가 없었답니다.

다행히도 의식이 돌아온 지 10년이 지난 스물네 살에 그의 뇌는 완전한 기능을 되찾았습니다.

비록 휠체어에 의지하지만 마틴은 현재 웹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으며, 단란한 가정을 꾸려 행복하게 살고 있답니다. 그는 자신이 갇힌 몸에서 벗어난 원동력을 ‘존엄성’이라고 말했습니다.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 기적적으로 회복할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12살 이전에 그는 이미 ‘인간존엄성’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안데르센 동화에 '두 처녀'라는 짧은 작품이 있습니다.

자갈로 길을 포장할 때 사용하는 ‘달구’라는 도구가 있었답니다. 단단한 나무로 아래쪽은 넓고 철끈으로 단단하게 둘러져 있으며, 가늘고 긴 꼭대기에는 두 개의 팔이 튀어나와 있지요. 포장공들이 이 두 팔을 잡고 들었다 놓았다를 하며 자갈을 다집니다. 예전부터 무슨 이유인지 덴마크 사람들은 이 달구를 ‘처녀’라고 불렀답니다.

한데 어느 날 도로국에서 이 ‘처녀’ 대신 ‘달구’라는 정식 명칭으로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자 연장 창고에 있던 두 처녀는 이 새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불만을 터뜨렸습니다.

“처녀는 사람한테 붙이는 이름이고, 달구는 물건에 붙이는 이름이지. 우린 물건 취급을 받을 수 없어. 이건 모욕이야! 그럴 바에는 차라리 쪼개져서 땔감이 되는 게 나아!”

같은 창고에 있던 수레며, 측량기 등이 새 이름을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라고 설득했지만, 두 처녀는 자기들끼리 부를 때에는 항상 “처녀”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그 중 나이 어린 처녀는 ‘달구’라는 이름으로 바뀌는 바람에 항타기(杭打機, 말뚝 박는 데 쓰는 커다란 망치)와의 약혼까지 깨어져 계속 처녀로 남았다고 합니다.

◇ 매너는 자기 존중의 실천

한국에서 길을 가거나 전철 안에서 시비 붙는 꼴불견을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심지어 복잡한 도심 대로 한복판에서 농경사회시대 외길 논두렁 위에서 다투듯 차(소)를 세워두고 싸우는 광경도 흔히 봅니다. 대부분 시시콜콜한 것으로 시작된 감정싸움이지만 시비의 본말을 떠나 반말, 쌍욕, 멱살잡이로 치닫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심지어 고속도로에서 보복운전도 서슴지 않는데 이는 살인행위와 동일한 범죄입니다.

기본을 우습게 아는 한국인들은 툭하면 “에티켓은 지킬수록 손해!”라며 무시하려 들곤 하지요. 상대가 상스럽게 군다고 해서 똑같이 상스럽게 나가는 것은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는 어리석은 짓입니다. 에티켓이든 매너든 상대방만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궁극적으로 자기 존중, 인간 존엄을 위한 것입니다.

옛말에 ‘공경하면서 멀리 한다’는 말이 있지요. 그게 선비들의 기본적인 처세술이었습니다. 화가 날수록, 상대가 미울수록, 상스러울수록 더욱 예(에티켓)을 쌓아올려 멀리하였습니다. 소인배는 상스러움으로 우열을 가리려 들지만 군자는 더욱 공경한 언행으로 자기 방어벽을 높였습니다.

서양 상류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속으론 아무리 경멸하고 원수같이 여겨도 겉으로는 웃으면서 관계를 정리합니다. 호불호(好不好)가 명료한 한국인들이 서양인들의 이런 상투적인 친절을 자신에 대한 호감으로 착각하여 오버하다 난감한 경우를 당할 때가 많습니다.

◇ 인성이 아니라 인품이다

인성교육법이 만들어져 시행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세계 최초의 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실 ‘인성(人性)’이란 교육의 대상이 아닐 지도 모릅니다. 바뀌는 성질의 것이 아니니 말입니다.

맹자, 순자, 율곡, 퇴계 선생을 다시 불러 모셔도 결론이 나지 않을 난제 중의 난제입니다. 한데 용감한 한국인들은 그걸 가르치겠다고, 아니 뜯어고치겠다고 ‘인성교육법’이라는 걸 만들었습니다. 오죽했으면 그랬으랴 짐작하고도 남지만 아무래도 무리한 것 같습니다.

도대체 인성을 어떤 기준으로 평가하고 어떻게 고치겠다는 걸가요? 그저 수천 년 전 요순(堯舜), 공맹(孔孟)의 행적과 남긴 말씀 외우면 인성이 개선된다던가요?

기실 세계적으로 유학, 아니 유교를 가장 지극히 받들어 온 한민족이 아니던가요?

그런 나라가 새삼 공맹(孔孟)을 들먹이다니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무렴 ‘인성교육법’을 만든 그 선량들부터 ‘인성점검’을 좀 했으면 싶기도 합니다.

선진문명사회는 인간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여깁니다. 물론 법조문에는 ‘인간존엄성’이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실정법을 넘어서는 자연법이 있듯이 인간존엄성이 위협받는다면 성문헌법조차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법이란 인간 존엄성 보호가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글로벌 매너란 그 같은 사고에서 싹튼 것이기에 한국식 법정신과 전통 윤리 관념만으론 이해하기가 좀체 버거울 때가 많습니다.

글로벌 비즈니스 본선무대는 신사들이 노는 곳입니다. 제대로 배워야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일제 시대 우리의 선각자들은 독립을 위해 전 재산과 목숨까지도 다 바쳤습니다. 해방 후에는 교육에 많은 재산을 바치고 헌신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글로벌 시대,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체질개선작업으로 품격교육운동에 매진해야 할 때입니다. 자기존엄, 인간존엄, 인격존중 의식 확보야말로 진정한 ‘사람됨’의 교육이니까요.[파이낸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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