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과 정부 간 정책 공조 중요"
"정책방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 강화"
이창용 한은총재는 16일 "팬데믹 이후 한국은행 통화정책의 기본적인 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물가안정목표제 하에서 금리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는 것"이었다며 "예상치 못한 고인플레이션이 발생함에 따라 기준금리를 0.5%에서 3.5%까지 역사상 가장 빠르고 큰 폭으로 인상했고, 이러한 조치를 통해 인플레이션이 목표수준으로 안정됨에 따라 지난해부터는 네 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2.5%까지 인하하면서 정책 기조를 전환했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이날 서울 중구 한국은행에서 열린 ADB-BOK-JIMF 콘퍼런스에 참석하여 이같은 내용의 기조연설을 했다.
이 총재는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 정책적 어려움도 함께 경험했다"며 "급속한 금리 인상기에는 환율 급등과 금융 불안이 나타났고, 정책 기조를 전환하는 국면에서는 금융불균형증대와 국내 정치 불안이 발생하면서 정책 목표 간 상충이 심화되었다"고 언급했다.
이에 "한국은행은 금리정책뿐 아니라 단기 유동성공급, 외환시장 개입, 거시건전성정책, 대출정책 등 다양한 수단을 조합하여 대응했다"며 "이와 같은 접근은 2020년 국제통화기금(IMF)이 공식적으로 제안한 통합적 정책체계(Integrated Policy Framework, 이하 IPF)의 기본 취지와 맞닿아 있으며, 다수의 신흥국들이 그 이전부터 실무적으로 활용해온 정책 운용 방식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총재는 여러 정책조합을 통해 정책목표간 상충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얻은 교훈도 적지 않았다며 세 가지, 즉 중앙은행과 정부 간 정책 공조, 정책커뮤니케이션의 과제, 국가별 적용의 유연성에 대해 언급했다.
먼저 중앙은행과 정부 간 정책 공조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 총재는 "여러 기관이 정책 수단을 나누어 보유하고 있는 경우 기관간 긴밀한 협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한국은 기획재정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 등 4개 기관이 매주 정례적으로만나 경제·금융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소통채널은 각 기관이 고유의 정책을 독립적으로 운용하면서도 필요한 분야에서는 정책 공조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기반이 되고 있다"며 "다만 한국은행은 주요국과 달리 직접적인 거시건전성 정책수단과 미시감독 권한을 보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정부와의 조율 과정에서 정책 강도나 방향에 대해 이견이 있을 경우 정책대응의 신속성과 유효성이 떨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따라 "중장기적으로는 중앙은행의 거시건전성 역할을 보다 강화하는 방향으로 법적·제도적 장치를 보완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다음으로 정책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을 언급했다
이 총재는 변동환율제하에서의 통화정책 운용은 "환율은 시장에 맡기고거시경제 안정은 물가안정목표제를 통해 도모한다"는 명확한 커뮤니케이션이 가능 하지만 "여러 정책 수단을 조합하여 운용하는 경우 이러한 접근을 시장에 직관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시장과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으면 정책 효과도 제약될 수 있기 때문에 정책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그 수단도다변화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로 한국은행이 2022년 하반기 분리대응 조치를 시행했을 당시 일부에서는 물가보다 금융·외환시장 안정에 더 큰 비중을 두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이 총재는 "당시는인플레이션 기대를 적기에 관리하지 못할 경우 고물가가 고착화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에 "한국은행은 2022년 10월부터 ‘금통위원들의 향후 3개월 내 조건부 기준금리 전망’을 제시하기시작했다"며 "이는 과거의 전략적 모호성에서 벗어나 정책방향을 정량적으로 전달하면서, 통화긴축 기조가 지속되고 인플레이션이 안정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를 형성하는 데 기여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정책방향에 대한 커뮤니케이션을 지속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며 "다만 한국은 대외 요인을 통제하기 어려운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현실적 제약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러한 여건을 감안하면서 시장에 보다 구체적인 정보를 어떻게 전달할 수 있을지 계속 모색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으로, 정책 조합은 국가별·시기별 여건에 맞춰 유연하게 설계하고 적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총재는 "경제 상황은 국가마다 다르고 한 나라 안에서도 시기에따라 변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국가와 상황에 동일한 해법을 적용할 수는 없다"며 "중요한 것은 자국의 구조와 당시의 충격특성에 맞는 최적의 정책조합을 설계하는 것"이라 했다.
이어 "한국의 경우 과거보다 환율 상승에 대해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었는데 그 배경에는 4천억 달러를 상회하는 외환보유액, 그리고 외환시장의 구조적 변화가 있었다"며 "글로벌 금융위기이후 한국의 외환시장에서는 자본 흐름의 주체가 비거주자에서 거주자로 전환되었고, 해외증권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대외 포지션도 순대외채무국에서 1조 1천억 달러 수준의 순대외채권국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이러한 변화는 "환율 상승 충격에 대한 한국 경제의 흡수 능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과거에는 고정환율제 또는 관리변동환율제를 운용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원칙적으로 시장에서 환율수준이 결정되도록 하되, 대내외 충격으로 환율의 변동 속도가 급격히 확대될 경우 금리정책, 외환시장개입 등의 조합을 통해 그 속도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밝혔다.
앞으로도 "한국은행은 기준금리 운용과 더불어, 다양한 수단을 상황에 맞게 적절히 활용하여 대내외 충격에 기민하게 대응해 나가는 한편, 금융·경제 구조의 개선을 위한 노력도 지속적으로 병행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파이낸셜신문=임권택 기자 ]

